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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정희 시인 30주기를 많아 고정희사업회와 성미산학교가 그를 추모하는 글을 <오마이뉴스>에 보내와 게재합니다.[편집자말]
 
청소년들이 4월부터 교사들과 고정희시를 읽으며 특별활동을 진행했다.
 청소년들이 4월부터 교사들과 고정희시를 읽으며 특별활동을 진행했다.
ⓒ 성미산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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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성미산학교 포스트중등 과정에 재학 중인 한국 나이 19살, 평화로운 세상을 꿈꾸는 문해람이다. 2020년부터 '생명과 평화''는 주제로 폭력과 학살 그리고 투쟁의 역사에 대해 공부해왔다.

올해 역시 작년에 이어 '타인의 고통'이라는 제목으로 피해와 가해의 역사를 넘어 모든 생명이 존엄하게 살아가는 평화에 대해 확장해 가고 있다. 전쟁과 민간인 학살 등을 공부하며, 이것은 그 나라만의 문제가 아닌 전 지구적으로(세계적으로) 연결되어있는, 우리 모두의 문제라는 것을 알아가고 있는 중이다. 그래서 세계 시민의식과 연대가 중요하다고 깨달아가고 있다. 이런 공부의 연장선으로 이 시대를 어떻게 살아야 하나, 우리는 어떤 길을 만들어야 하나 질문을 연결하여 여러 위치에 있는 다양한 사람을 만나는 이야기 자리를 마련하게 되었다.

엄마의 한마디, 시작된 인연
 

올해는 고정희 시인이 돌아가신 지 30년이 되는 해이다. 그리고 나는 올해 봄 고정희를 처음 만났다. 학기 초 '두 우주가 둥그렇게'라는 제목으로 또 하나의 문화, 성미산학교, 하자작업장학교가 함께 고정희 추모 30주기 특강을 진행한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솔직히 의아했다.

계속 '고정희가 누구지?'라는 질문이 머릿속에 맴돌았다. 낯선 이름이었고 시인이라고 하니 더 어렵게 다가왔다. 무언가 함께 한다니까 하긴 하겠지만, 뭔가 썩 내키진 않았다. 그리고 이내 그 마음은 질문으로 이어졌고, 질문이 다시 알아가고 싶은 마음으로 바뀌었다.

처음 고정희란 사람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된 건 엄마와의 이야기를 통해서였다. 어느 날 엄마에게 고정희 추모 30주기 포럼에 대해 말하다가, "나와 같은 대학이네" 하는 엄마의 말 덕분에 연결고리가 생기게 되었다.

엄마와 같은 공간에서 다른 시대를 살았던 시인이었고 그리고 나도 다른 시공간에서 다시 이렇게 연결되다니 신기했다. 우연한 일치가 특별하게 나와 연결된 듯한 느낌이 들었다. 별것 아닌 이 지점이 내가 고정희 시인에 대해 관심을 가지게 된 첫 시작이었다.

그가 살아있었더라면
 
고 고정희 시인의 사진이 생가에 걸려 있다.
 고 고정희 시인의 사진이 생가에 걸려 있다.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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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두 번의 이야기 자리를 통해 고정희 시인을 기억하는 또 하나의 문화 동인을 만났고, 시를 읽으면서 이상하게 그 자리에 있던 우리가 이제 세상에 없는 고정희라는 시인과 그의 시를 통해 서로 연결되어 있음을 느꼈다. 그리고 서로가 연결된다는 것이 신선함과 동시에 어렵게 다가오기도 했다. 연결되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걸까. 분명한 건 그렇게 연결된다는 점에서 고정희의 시는, 고정희가 꿈꿨던 세상은 지금 우리에게도 여전히 유효한지도 모르겠다.

2020년부터 폭력과 학살의 역사 속에서 고통받고 상처받은 사람들의 이야기들을 많이 접했다. 그 속에서 나는 '공감'하려는 노력을 작은 행동과 실천으로 참여해왔다. 고정희 시인 또한 저항하고 투쟁하면서 고통받고 상처받은 사람들과 시대 정의를 위한 시를 많이 쓴 것 같았다.

만약 고정희 시인이 이 시대에 살아있었더라면 세월호 참사에 대해, 산업재해로 비참하게 죽어간 청년들에 대해, 기후위기로 멸종되어갈 수많은 생명을 위해 시를 썼을 거라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민중해방, 민족해방, 여성해방과 여성주의 등 고정희 시인이 노래한 주제는 다양하지만, 결국 그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사랑이 아닐까 생각했다. 슬픔과 눈물이 많은 고정희의 시에는 기도하는 마음이 담겨 있다고 느꼈는데, 바로 '사랑'이 있었기에 그러했다고 믿는다.

사랑으로 연결된 우리

"사랑은 언제나 그곳에 우리가 가야 하는 곳
사랑은 언제나 그곳에 love is always part of me"


고정희 시인과 그의 시를 만나면 가수 이소라의 노래 '트랙 3(Track 3)'이 떠오른다. 고정희 시인의 언어가 사랑의 방식이었듯, 결국 내가 바라는 평화로운 세상의 모습이란 사랑과 깊이 연결되어 있지 않을까. 고정희를 통해, 그의 시를 통해 생각해보게 되었다. 정말 우리 모두가 서로를 사랑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럼 폭력도, 전쟁도, 혐오도 없는 것 아닌가. 사랑은 내가 바라는 평화로운 세상의 또 다른 언어인지도 모르겠다.

나는 고정희 시인이 우리에게 사랑으로 끝까지 삶을 살아가라고 진심으로 응원하고 있는 것 같다. 그런 고정희라는 삶의 굵은 뿌리 위에 새싹을 틔우고 생명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지금 여기에서 할 수 있는 작은 일을 해나갈 것이다.

[관련기사] 
- 이게 다 고정희 시인 덕분이다  http://omn.kr/1tlr6
- 고정희의 시, 10대들에게 손을 내밀다 http://omn.kr/1tmqu 
- "상한 영혼에 손 내밀던 페미니스트 고정희, 지금 더 절실" http://omn.kr/1tlx8

덧붙이는 글 | 글쓴이는 성미산학교 학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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