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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당이 추진하고 있는 '벤처기업법 일부개정 법률안'이 논란이다. 박상인 서울대 교수는 "복수의결권 허용으로 재벌이 1주당 10개 의결권을 행사할 수 있게 되면 소유-지배의 괴리가 150배로 폭발한다"며 "경제력 집중에 대해 현재 문제 제기하는 것들이 무의미해지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여당이 추진하고 있는 "벤처기업법 일부개정 법률안"이 논란이다. 박상인 서울대 교수는 "복수의결권 허용으로 재벌이 1주당 10개 의결권을 행사할 수 있게 되면 소유-지배의 괴리가 150배로 폭발한다"며 "경제력 집중에 대해 현재 문제 제기하는 것들이 무의미해지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 서울대 시장과정부연구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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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소기업들이 자녀에게 경영권을 쉽게 세습할 수 있게 하는 법안입니다. 그렇게 되면 이후 재벌들이 '나도 할 수 있게 해달라'고 하기 훨씬 쉬워지겠죠. 정말 나쁜 법안입니다."

박상인 서울대 교수는 더불어민주당 일부에서 추진하고 있는 '벤처기업법 일부개정 법률안'에 대해 혹평했다. 벤처기업이 복수의결권을 도입할 수 있도록 한 이 법안은 김병욱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지난달 26일 대표 발의했다.  

박 교수는 이 법안에 대해 지난해 12월 학계와 시민사회단체로부터 이미 강한 비판을 받았던 정부안보다도 훨씬 후퇴한 안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정부안에는 벤처기업 창업주가 발행한 복수의결권 주식의 존속 기간을 10년으로 제한하는 일몰조항이라도 들어가 있었는데, 김병욱 의원 안에서는 이런 안전장치마저 사라져 큰 문제라는 것이다.  

박 교수는 "창업주가 복수의결권 주식을 한 번 발행하면 계속 가질 수 있도록 한 것"이라며 "(재벌이나 중소기업의) 2세가 벤처기업을 만들어 복수의결권 주식을 발행해 가지고 있다가 모회사 보통주 주식과 교환해버리면 세습이 완료된다"고 지적했다. 

이어 "재벌은 벤처기업이 될 수 없기 때문에 정부안이나 김병욱 의원 안이 통과하더라도 당장은 재벌이 복수의결권을 활용하기 어렵지만, 시간이 지나면 재벌기업들이 이에 대한 규제를 풀어달라고 하게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사라진 10년 일몰조항... 세습 활용 가능성 커져

현행 벤처기업법상 벤처기업은 중소기업으로 제한돼 있는데, 중소기업기본법에선 중소기업을 매출액 등으로 한정하고 있어 재벌은 벤처기업이 되지 못한다. 하지만 법상 벤처기업의 정의를 조금만 수정하게 되면 복수의결권이 재벌의 세습 도구로 악용될 수 있다는 우려다. 

전성인 홍익대 교수 역시 "일단 교두보를 마련해놓고, 나중에는 (중소기업과의) 역차별을 주장하면서 규제를 완화할 가능성이 높다"며 "그렇기 때문에 (복수의결권을 도입해도) 재벌은 해당하지 않으니 괜찮다고 말하는 것은 대단히 위험한 주장"이라고 경고했다. 

전 교수는 인터넷전문은행법 도입 과정을 선례로 들었다. 그는 "은행법상의 예비인가 조항을 없애는 대신 인터넷은행에 대한 사후 관리를 엄격히 하겠다는 조건으로 인터넷은행법이 제정됐다"면서 "그런데 이후 (대주주 적격성 등) 문제가 발생하자 법제처 유권해석을 통해 대주주(모회사)에 문제가 있더라도 당사자(모회사 대표)에게만 문제가 없으면 된다는 식으로 변질했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렇게 규제가 점차 풀어진 사례가 한두 가지가 아니다"라며 "벤처기업법도 그렇게 될 가능성이 농후하다"고 부연했다. 

소수 주주 보호 장치도 무용지물

또 10년 일몰조항을 삭제하면서, 법상 소수 주주의 권리를 보호하기 위한 장치도 사실상 무용지물로 만들었다는 비판도 나왔다. 

정부안과 김병욱 의원 안에는 창업주가 복수의결권 주식을 도입하려면 4분의 3 이상 주주의 동의를 받도록 하고 있다. 그런데 이번 발의안의 경우 일몰조항이 없어 창업 초기 주주의 수가 적은 시기에 다수의 복수의결권 주식을 발행한 뒤 장기간 유지한다면 이런 보호 장치를 피해갈 수 있다. 

박상인 교수는 "복수의결권을 10년까지만 가질 수 있는 일몰조항이 있으면, 창업주 입장에선 너무 빨리 복수의결권을 도입할 경우 손해를 볼 수 있어 도입 시기를 늦추는 효과를 내게 된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런데 김병욱 의원 안에는 일몰조항이 없기 때문에 주주가 몇 명 되지 않을 때 미리 복수의결권을 충분히 발행하고 유지할 수 있다"며 "그렇게 되면 주주 4분의 3의 동의를 받아야 한다는 조항 자체의 의미가 사라진다"고 지적했다.   

김병욱 의원 안의 경우 복수의결권 부여 수에 제한이 없다는 점도 문제로 지적받고 있다. 김 의원의 법안에는 '의결권 수가 1주마다 1개를 초과하는 복수의결권 주식을 발행할 수 있다'는 조항만 존재한다. 사실상 창업주가 1주당 100개, 1000개까지도 의결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꾸밀 수 있는 구조다. 이 역시 1주당 10개까지만 의결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한 정부안보다도 후퇴했다. .

"집단소송제 함께 도입해야 견제 가능"
 
시민사회노동단체들이 지난 2월2일 오전 11시 국회 분수대 앞에서 복수의결권 법안 폐기 기자회견을 개최했다.
▲ 기자회견 시민사회노동단체들이 지난 2월2일 오전 11시 국회 분수대 앞에서 복수의결권 법안 폐기 기자회견을 개최했다.
ⓒ 한국노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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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와 김병욱 의원 등 여당 의원들은 복수의결권을 도입하려는 이유로 세계 각국 거래소와의 형평성 및 벤처기업의 경영 안정성 보장을 들고 있다.  

김병욱 의원 안은 "최근 거래소 사이에 상장기업 유치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홍콩, 싱가포르 거래소가 복수의결권을 허용했다"며 "우리나라에서도 이를 통해 벤처기업이 지배권을 확보하고 대규모 투자로 지분이 희석되더라도 안정적인 경영을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밝히고 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해외 입법례 중 일부만 참고해 복수의결권을 도입하는 것은 적절치 않으며, 실제 도입하더라도 창업주의 경영권 확보에 큰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전성인 교수는 "홍콩, 싱가포르처럼 하려면 벤처기업법이 아닌 상법을 수정해 복수의결권을 도입해야 하는데, 그러려면 집단소송제나 다중대표소송제도 함께 도입해야 한다"며 "이런 부분이 마련돼야 창업주가 1주당 여러 개의 권리를 가지더라도 견제가 가능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다른 나라의 법을 참고하려면 그 법의 전체를 들여다봐야 한다"며 "특정인에 유리한 조항만 도입하고 다른 조항은 배제한다면 불균형이 초래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박 교수는 "홍콩의 경우 중국 기업이 복수의결권으로 상장한 경우가 있고, 싱가포르와 영국 런던에서는 아직 실적이 없다"며 "복수의결권을 가지고 상장하는 회사를 투자자들이 선호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창업주가 아닌 투자자들의 의결권 있는 주식은 1주당 1개의 권리만 행사할 수 있기 때문에 투자자 입장에서는 투자 매력도가 떨어진다는 얘기다. 

그러면서 "복수의결권을 가지고도 상장에 성공할 수 있는 기업이라면 미국이나 다른 선진국의 증권거래소에서도 상장이 가능한 회사"라며 "우리나라에서 복수의결권을 허용해주더라도 이런 기업들이 한국에서 상장할 일은 없을 것"이라고 부연했다. 그는 "결국 벤처기업법 개정안은 기업이 세습에 활용할 수 있게 하는 법안"이라고 다시 한번 강조했다. 

정부안 힘 싣기용 무리수?

김경율 경제민주주의21 공동대표는 "정부안도 문제지만, 정부안에는 재벌이 이를 악용할 소지를 없애기 위한 일몰조항 등이 나름대로 마련돼 있다"며 "그런데 김병욱 의원 안은 그런 장치마저 삭제해버린 문제 있는 법안이다, 재벌 맞춤용으로 악용될 가능성이 매우 커 우려스럽다"고 밝혔다. 이어 "김병욱 의원 안은 이대로 통과할 수 있을지 의문이 드는 법안"이라며 "정부안에 힘을 실어주기 위한 법안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전 교수 역시 "이대로 통과하길 바라고 만든 법안이라기보다 일단 적당히 얼기설기 만들어 올린 뒤 정부안을 통과시키는 데 압박을 가하기 위한 법안으로 생각된다"며 "김병욱 의원이 소속된 상임위원회 쪽 이슈도 아니다, 많은 책임을 느끼고 만든 법안 같지 않다"고 했다. 김 의원이 소속돼 있는 국회 정무위원회는 국무조정실·국무총리비서실, 국가보훈처, 공정거래위원회, 금융위원회 등의 소관 사항을 처리하는 곳이다. 벤처기업법 관할 상임위는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다. 

김 의원과 함께 발의자 명단에 이름을 올린 의원들은 더불어민주당 박성준(국방위)·정성호(기획재정위)·윤재갑(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이상헌(문화체육관광위)·김영호(외교통일위)·이용빈(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홍성국(정무위)·서동용(교육위)·문진석(국토교통위) 의원 등이다. 

한편 김병욱 의원실 관계자는 "복수의결권 도입 자체에는 신중해야 한다는 입장"이라며 "복수의결권의 존속기간을 10년으로 한다면 도입 7~8년 이후부터 경영권 불안이 증폭될 가능성이 있어 (관련 규제를 완화했다)"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복수의결권을 허용하더라도 주주총회를 거쳐 기업 상황에 맞게 의결권 수를 결정하게 되므로 무한대로 의결권이 주어지는 것은 아니다"라며 "(10개 한정 등) 일률적으로 규제할 경우 실효성이 떨어진다고 판단해 이런 법안을 발의했다"고 밝혔다. 

중소기업법 등이 개정될 경우 재벌이 복수의결권 제도를 경영권 승계에 악용할 수 있다는 주장에 대해선 "관련 법 개정이 쉽지는 않을 것"이라며 "상법이 아닌 벤처기업법을 통해 복수의결권을 허용하려는 것도 이런 부분을 고려한 것"이라고 말했다. 

태그:#벤처기업법, #복수의결권, #차등의결권, #재벌, #김병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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