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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관 신규식 선생.
 예관 신규식 선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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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독립운동 지도자 중에는 사학자가 많았다.

박은식ㆍ신채호ㆍ장도빈ㆍ계봉우ㆍ정인보 등이 꼽힌다. 여기에 신규식을 포함시켜도 무방할 것이다. 이들은 치열한 역사의식이 있었기에 가열찬 독립전쟁에서 자신을 지키고 조국해방투쟁에 나설 수 있었던 것이다.

신규식은 『통언(痛言)』, 일명 『한국혼(韓國魂)』이라는 장편사론을 1920년 10월 중국인이 상하이에서 발행하는 『진단(震壇)』이라는 반월간지에 연재하였다. 연재하는 동안 독립운동가들은 물론 중국지식인들로부터 큰 반향을 일으켰다. 그가 이 책을 집필한 것은 망명 직후부터 시작하여 1914년 탈고하여 틈틈이 수정한 것을 『진단』에 연재한 것이다. 

이 책은 그가 쓴 유일한 사론(史論)으로 내용은 어느 사학자의 사서(史書)에 못지 않지만, 안타깝게도 일반에 덜 알려지고 제대로 평가받지 않았다는 점이다. 중국의 지식인 고암(高岩)은 중국에서 발행된 『중앙일보(中央日報)』(중화민국 44년 4월 25일자)의 「한국 혁명지사 신규식」에서 "『한국혼』은 문천상(文天祥)의 「정기가(正氣歌)」와 같고, 피히테의 「독일국민에게 고함」과 같다. 절망보다 더한 슬픔은 없으므로 한국인은 응당 광복의 의지를 굳건히 해야 한다고 있는 힘을 다해 표명하였다."고 썼다. (주석 1)

문천상이 감옥에 갇혀 지은 「정기가」는, 천지의 정기가 자신의 몸속에 가득하여, 비록 감옥에 갇혀 있기는 하나 어떤 악취도 자신을 침해하지 못할 것임을 서술하고 "천지가 가득 올바른 기운 있으니/엇섞여 온갖 형체 빚어냈네/땅에서는 강과 산이 되고/하늘에서는 해와 별이 되었네/사람에게서는 호연(浩然)이라 이름하였는 바/허공 중에 가득 차 있도다"라고 시작되는 장시이다.

『한국혼』은 민필호가 1955년 타이완에서 신문 연재의 순 한문판 그대로 간행하였고, 김동훈 등 연변대 교수진이 1998년 8월 베이징 민족출판사에서 발행한 『신규식 시문집』에 처음으로 한글로 번역 소개하였다. 그리고 『전집』 제1권에 한글판과 원본이 함께 실렸다. 

『한국혼』은 국망의 시기에 망명지식인이 우리나라 역사를 소개하면서 역사적 주요 대목을 강조하는 일종의 통사(通史)에 속한다. 하지만 연대기적인 서술이 아니고 그때 그때 저자의 사관을 드러내는 형식이다. 그래서 사(史) 대신 언(言)을 써서 '통언'이라 책명을 지은 것 같다. 

적지 않은 분량이고 어느 대목 하나도 놓치기 아까운 글이지만, 임의로 발췌한다.

망국 백성들의 울부짖음이 아직도 귓전에 들려오는 이때 우리도 마침내 폴란드와 같은 신세가 되고 만 것이다. 우리는 지난날 폴란드인의 슬픈 운명을 애처러워 하였으나 지금은 스스로의 운명을 슬퍼하기에도 겨를이 없게 된 채 다시는 떨치고 일어나지 못한단 말인가, 저놈들에게 괴로움을 당하면서도 다시는 스스로를 구할 길이 없단 말인가. 우리 신명(神明)의 후손들은 스스로 멸망하는 것을 앉아서 바라보기만 하며 이것을 하늘이 빚어 낸 도태로 돌려 버리려는가?

아아, 우리 동포들이여! 잠깐만 시간을 내어 나의 눈물로 뿜어내는 원통한 이야기를 들어 달라. 눈물이 말라도 말은 그치지 않고 말이 그치더라도 마음은 죽지 않으리……옛날 중국의 오(吳)나라 왕, 부차(夫差)는 그의 아버지가 비참하게 죽은 것을 원통하게 생각하여 뜰에 한 사람을 서 있게 하였다. 그리고 늘 자기가 지나갈 때마다 "부차야, 너의 월(越)나라 왕이 너의 아버지를 죽인 것을 잊지 않았지?" 하고 외치게 하였다. 그때마다 그는 "예, 감히 잊지 않았습니다." 라고 대답하였다. 

이것은 오랜 세월에 걸친 비통한 이야기이며 그 영혼을 일깨우려고 했던 까닭이다.

주석
1> 『전집①』, 46쪽, 재인용.

 

덧붙이는 글 | <[김삼웅의 인물열전] 독립운동의 선구 예관 신규식 평전>은 매일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태그:#신규식, #신규식평전, #예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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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독재 정권 시대에 사상계, 씨알의 소리, 민주전선, 평민신문 등에서 반독재 언론투쟁을 해오며 친일문제를 연구하고 대한매일주필로서 언론개혁에 앞장서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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