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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대면 교육이라니, 아... 귀찮아... 사이트 접속하고... 설치하고... 인증하고... 휴~ 코로나 때문에 이게 뭐 하는 건지... 내일 제대로 할 수나 있으려나...'

다음 날.

'와 씨. 이렇게 좋아도 돼?'

코로나로 인한 재택 교육. 새로운 시도가 내심 두려웠던 나는 지나치게 격한 감동을 받아 버렸다.
  
재택근무에 심하게 감동받다.
 재택근무에 심하게 감동받다.
ⓒ 남희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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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의, 회사에 의한, 회사를 위한 교육"은 교육이라 쓰고 근무라 읽는다. 표면적으론 교육이지만 회사 교육은 당연하게도 근무의 연장선. 그래서인지 모두가 긴장하는 티가 역력했다.

자꾸만 카메라를 닦는 사람, 큰 차이 없는 카메라 각도를 미세 조절하는 사람, 아까부터 하릴없이 물만 들이켜는 사람. 소리는 들리지 않지만 많은 사람의 어수선함이 눈에 들어왔다. 다행히 나의 어수선함도 온라인상에선 조용했고 그들과 잘 어우러졌다.

시선이 2차원으로 변했다. 입체적인 게 좋은 것인 줄 알았는데 얼굴이 크든 작든 키가 크든 작든 상반신만이 동일한 크기의 격자에 들어 있다. 그 속에서 제각각 자신 있는 방향을 내보이고 있는 얼굴들. 나는 살짝 15도 각도로 고개를 돌리고 오른쪽 턱선을 강조해 본다. 쩝, 역시 원판 불변의 법칙이 작동한다. 각도만으로 해결될 일이 아닌가 보다.

별수없이 정면을 응시하고 이런저런 모습을 보고 있자니, 처음 하는 경험에 내심 불안했던 마음이 차츰 편안해졌다. 어리둥절한 모습에서 조금씩 찾아가는 미소들. 그렇게 우리는 서서히 어색함을 이겨내고 적응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곧 재택근무라는 감동의 물결에 젖어 들었다.

재택근무의 감동

강사님에게 죄송하게도 리더십에 대한 배움보단 재택근무의 이점에 대해 배운 것만 같다. 강의도 훌륭했지만 혹여 모자랐더라도 이 신선함은 결국 평가 점수를 최고치로 올려놓지 않았을까 싶을 정도다.

이틀간의 재택근무는 필요 이상으로 간결하고 좋았다. "코로나 때문에"로 투덜대며 시작해 놓고선, 입에 올리고 싶지 않았던 "코로나 덕분에"라는 말이 무심코 튀어나올 정도였으니, 말 다했다. "덕분에" 캠페인을 철천지원수에게도 하게 될 줄이야. 간사한 내 마음을 그대로 드러나게 한 재택근무는 그만큼 장점이 많았다.

우선, PC만 켜면 출근이다. 걸어서 20분 거리에 살고 있지만, 출근길은 언제나 촌각을 다투는 여정이다. 가까이 살면서도 간당간당하게 등교하던 나는 여전히 그 스릴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데, '즉시 출근'은 그 쫄깃한 마음을 여유로 바꿔 놨다. 게다가 날씨의 제약도 없다. 우중충한 날씨임에도 집안은 환했고 마음은 더 화창하고 뽀송했다. 극강의 호의적인 거친 감탄사가 본의 아니게 터져나온 첫 번째 이유다.

꾸미지 않아도 되는 것도 큰 장점이다. 아무리 화질이 좋아도 내 얼굴은 크게 봐야 엄지손가락 크기다. 조명도 어둡고 얼굴에 그늘도 지지만 전혀 문제되지 않는다. 조명을 신경 쓴 사람은 강사님뿐이다. 어떤 인원은 전등을 후광처럼 써서 얼굴이 아예 까맣다. 상대적으로 화사한 내 얼굴은 돋보이기까지 한다(feat. 혼자 생각). 게다가 참으로 편안한 복장. 모두의 밝은 표정엔 다 시원~한 이유가 있을 테다.

어물쩍 대는 시간도 획기적으로 줄었다. "이것만 제출하시고 쉬시면 됩니다~". 이미 제출했다. 정해진 시간에 가능한 효율을 최대로 끌어올린다. 그리고 바로 옆에 놓인 매트에 드러누워 기지개를 쭉~ 켠다. 회사에서 한두 시간 앉아 있으면 뻣뻣해졌던 허리와 좀처럼 심장보다 높아질 일 없었던 다리가 방긋방긋 웃는다.

가족들에게 잘 다녀오라고 인사하는 것도 빼놓을 수 없다. 이게 이상하게 기분이 좋다. 항상 뒷모습을 보이던 사람이 누군가의 뒤를 봐주며 인사한다. 평소에 뒤봐준 게 없어서 그런지, 이렇게라도 뒤를 봐줄 수 있어 무척이나 흐뭇했다.

개인적으로 좋았던 점만 나열해봤지만 저 중 몇 가지만으로도 재택근무의 장점으론 충분할 것 같다. 뭐든 좋기만 할 리 없을 텐데, 이게 단발성 이벤트여서인지 아쉬운 점은 잘 떠오르지 않는다.

의사소통에도 문제가 없고 웬만한 일들은 다 온라인에서도 가능했다. 협업을 위한 플랫폼이 이렇게 다양했다니. 실무를 하지 않아 확신할 순 없지만 이 정도 인프라만 갖춰지면 SW(소프트웨어)를 개발하는 우리 팀 인력은 전혀 불편함 없이 일 할 수 있을 듯했다.

굳이 단점 하나를 들자면 직접 식사를 차려야 한다는 것인데, 역시 집에서는 하나부터 열까지 손이 갔다. 남편의 점심까지 준비해야 하는 아내 입장에서는 분명 그리 반길 만한 상황이 아니다. 그런데 왜인지 아내는 싱글벙글이다. 좋단다. 고마운 사람. 혹시 재택근무가 일상이 되면 아무래도 요리 정도는 배워야 할까 보다.

반 뼘의 성장

어색하고 번거로워 보였던 재택 교육은 그야말로 신선한 충격이었다. 그리고 변하는 세상에 조금씩 적응해가는 회사도 다시 돌아보게 됐다. 유연근무 도입부터 재택 교육까지. 점차 유연해지는 회사가 참 반갑다. 미우나 고우나 가져왔던 애착은 조금 더 진심이 되었고 욕심에 아쉬웠던 점은 오해로 조금 풀렸다.

언제나 새로운 것을 찾아 헤매던 시기를 지나 편안함을 고집하고 있었음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 안주하는 것이 나이듦의 미덕이 아닐진대, 작은 변화 앞에서 불평하고 움츠러들고 말았다. 그래도 이런 변화에 적응하고 감응도 하는 내가 기특하기도 하다. 번거롭다느니, 불편할 것 같다느니 하던 걱정이 기우가 되던 순간, 뜻하지 않게 반 뼘 정도는 성장했으니까. 세상은 미쳐 돌아간다는데, 덕분에 나는 정신을 차렸다.

컴퓨터를 끄는 것으로 초고속 퇴근을 하면서, 불구대천지원수를 처단하기 위해 무림의 고수가 되어가는 주인공이 떠올랐다. 하나의 무공을 완성하고 비장하게 칼집에 칼을 넣던 그와 신기술을 익히고 뿌듯하게 노트북 덮개를 닫는 나. 언젠가 그처럼, 나의 '레벨 업'이 원수(코로나)를 무찌르기 위한 작지 않은 기술이 될 것만 같다.

컴퓨터를 끄고 거실로 나오는 내게 함박웃음을 머금은 아이들이 달려든다. 아, 좋은 점(?) 하나가 또 추가된다. 일상의 전환이 이리도 빠르다니. 하. 하. 하... 어쨌든 저쨌든 고양이와 하트가 잔뜩 그려진 잠옷 바지가 가뿐해진 마음만큼 유난히도 편한 날이다.
 
감동에는 다 이유가 있지...
 감동에는 다 이유가 있지...
ⓒ 남희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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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개인 브런치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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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글렀지만 넌 또 모르잖아"라는 생각으로 내일의 나에게 글을 남깁니다. 풍족하지 않아도 우아하게 살아가 보려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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