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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2월 29일 경북 영덕군 경정3리항 앞바다에서 혼획된 밍크고래. 영덕북부수협을 통해 4230만 원에 위판되었다.
 지난해 12월 29일 경북 영덕군 경정3리항 앞바다에서 혼획된 밍크고래. 영덕북부수협을 통해 4230만 원에 위판되었다.
ⓒ 울진해양경찰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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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월 11일, 해양수산부(이하 해수부)는 고래 사체의 판매·유통을 제한하는 '고래자원 보존과 관리에 관한 고시'(이하 고래 고시) 개정안을 시행한다고 밝혔다. 이어 13일에는 올해 안에 범고래와 흑범고래 2종을 해양보호생물종으로 신규 지정할 계획도 내놨다.

고래 고시 개정안의 주요 골자는 좌표·표류, 불법 포획된 고래류의 위탁판매(이하 위판)를 금지한다는 것이다. 기존에 '어로 활동 시 부수적으로 어획된 것'으로만 되어 있던 혼획의 정의를 '수산업법에 따른 면허나 허가를 받은 어업의 조업 과정에서 부수적으로 어획된 것'으로 개정하여 '적법한 조업 중 불가피하게 혼획된 경우'에만 위판이 가능하도록 기준을 바꾸었다.

또한, 불법 포획된 고래류의 경우 기존에는 해양경찰(이하 해경)의 수사 후 공매가 가능했으나 이번 고시 개정으로 폐기만 할 수 있게 되었다. 해수부는 이러한 개정안에 대해 "이번 '고래 고시' 개정은 고래류 보호에 대한 정부의 강력한 의지를 표명한 것"이라며 "국제 규범 준수라는 정책적 목표를 조화롭게 달성하기 위한 조치"라고 설명했다.
 
고래류 처리 방법 개정 내용을 정리한 표.
 고래류 처리 방법 개정 내용을 정리한 표.
ⓒ 해수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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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의 로또 사라진다 vs. 반쪽짜리 땜빵 개정안

고래 고시 개정안에 대한 반응은 뜨겁다. 언론에서 앞다투어 "'바다의 로또' 이제 사라지나", "위판 조건 대폭 강화, 고래 공급량 줄 것" 등으로 보도했고 고래고깃집이 몰려 있는 울산 장생포의 주민들은 간담회를 열고 "고래고기 유통 금지는 음식문화를 없애는 것", "장생포 주민 생존권 달린 문제"라는 입장을 내놓았다.

반면 시민단체들은 이번 개정안에 대해 "반쪽짜리 개정안", "땜빵 개정안"이라 밝히며 개정된 고래 고시가 실질적인 효과는 없을 것이라고 성명을 발표했다. 해양환경단체인 시셰퍼드 코리아는 "해수부는 혼획 개념을 좁혀 정의했다고 하지만 의도적·비의도적 혼획을 현장에서 판가름할 기준이 없어 여전히 혼획을 가장한 불법 포획이 일어날 여지가 남아 있다"고 주장했고, 핫핑크돌핀스는 "죽은 고래의 유통 허용은 고래들의 멸종을 가속화할 뿐, 정부는 모든 고래류를 보호종으로 지정해 한반도 해역에서 잡히거나 죽은 고래들이 어떤 식으로든 시장에 유통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고래 고시 개정에 대한 입장이 갈리는 가운데, 개정안이 미칠 영향을 결정하는 쟁점은 고래 고시 개정에서 유일하게 현행 유지인 '혼획' 항목이다. 고래연구센터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2018년 기준 고래 1401마리 중 좌초·표류한 고래의 수는 269마리로 19%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나머지 고래는 안강망, 정치망, 자망 등에 혼획되었다. 즉, 실질적으로 '고래 자원을 보존'하기 위해서는 혼획을 줄여야 한다.

해경에 따르면 2019년 국내 연안에서 혼획된 고래는 총 1960마리이고 지난 5년 평균은 약 1570마리다. 이 수치는 2014년 국제포경위원회(IWC)가 발표한 주요 10개 국가의 평균 혼획 고래 수인 19마리에 크게 상회한다. 해양환경단체 등이 '비의도적 혼획이라 보기 어렵다'고 주장하는 이유가 이 때문이다.

우리나라에는 약 116개의 고래고기 식당이 있다. 수요가 있으니 어떻게든 공급이 필요할 것이고, 주로 식용으로 쓰이는 밍크고래의 사체는 수천만 원에서 수억 원까지 호가하는데, 이는 일반 어민들의 연 소득 절반 이상에 이른다. '로또'라는 표현이 쓰일 만큼 어민들에게는 유혹적인 대상일 수밖에 없다.
 
해양경찰청에 따른 국내 고래 혼획 현황
 해양경찰청에 따른 국내 고래 혼획 현황
ⓒ 선우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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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기준 국제포경위원회(IWC)에 보고된 국가별 고래 혼획량
 2014년 기준 국제포경위원회(IWC)에 보고된 국가별 고래 혼획량
ⓒ 선우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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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래 고시 개정 배경에 '미국 해양포유류법'

고래류를 보호하는 가장 빠른 방법은 모든 고래류를 보호종으로 지정하는 것이다. 현재 보호종으로 지정된 상괭이의 경우 혼획, 좌표, 표류 어떤 방식으로 포획되어도 유통이 불가능하다. 해양환경단체들이 '정말 고래류를 보호하려는 의지가 있다면 보호종으로 지정하라'고 주장하는 이유다. 해수부에서도 의도적인 혼획이 일어나는 실정을 충분히 인지하고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이른바 '반쪽짜리' 개정안을 내놓은 이유는 무엇일까.

우선 고래고기 식당을 운영하는 업주들의 생계 문제가 얽혀 있다. 모든 고래류를 보호종으로 지정하면 당장 고래고기 식당은 폐업해야 할 상황이기 때문이다. 또한 고래 고시 개정의 배경이 고래류 보호를 위한 것이라기보다는 외교적 이유에서 기인했다는 사실도 크다.

해수부는 이번 개정의 정책적 목표 중 하나를 '국제규범 준수'로 밝히며, '미국 해양포유류법에 조응한 것'이라고 발표한 바 있다. 미국은 2017년 '해양포유류보호법'을 개정해 해양포유류를 보호하지 않는 방법으로 잡은 수산물의 수입을 2023년부터 제한한다. 즉 자국과 동등한 수준으로 해양포유류를 보호하지 않는 국가의 수산물을 제한하기 위한 '동등성 평가'를 올해 11월에 시행하는데 그 전에 기존의 고래 고시를 개정할 필요가 있었던 것이다.

이를 위해 해수부는 지난 25일 민·관·해양환경정책협의회 국제어업관리 분과회의를 개최해서 17명의 위원과 함께 고래자원의 보존과 관리에 관한 고래 고시 개정, 범고래 등 해양보호생물 추가 지정, 안강망 어업의 포유류 혼획저감장치 개발·보급 등 해양포유류 보호 노력에 관해 논의한 바 있다.

그러나 비의도적 혼획을 거를 수 있는 관리 장치가 부족한 현 개정안으로는 동등성 평가의 기준에 미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기후 위기 시대에 고래 개체 수 보존은 필수
 
지난 1월 8일 경북 영덕군 남정면 부경항 남동방 2.6해리(약 4.8km) 해상에서 정치망에 혼획된 밍크고래. 영덕군 강구수협에서 6250만 원에 위판되었다.
 지난 1월 8일 경북 영덕군 남정면 부경항 남동방 2.6해리(약 4.8km) 해상에서 정치망에 혼획된 밍크고래. 영덕군 강구수협에서 6250만 원에 위판되었다.
ⓒ 울진해양경찰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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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래는 이산화탄소 포집에 큰 역할을 한다. 나무 한 그루가 매년 흡수하는 이산화탄소의 양은 약 22kg 정도인데 고래 한 마리가 포집하는 이산화탄소의 양은 한 마리당 평균 33t이나 된다.

또한 고래의 배설물에는 식물성 플랑크톤이 자라는 데 필요한 철분과 질소가 다량 포함돼 있어 식물성 플랑크톤의 생존에도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 식물성 플랑크톤은 대기 중 산소의 50% 이상을 생산하고 이산화탄소를 약 370억t 가량 포집한다. 식물성 플랑크톤이 포집하는 이산화탄소 양은 약 1조 7천억 그루의 나무와 맞먹으며, 이는 아마존 4개를 모아 놓은 것과 비슷하다.

식물성 플랑크톤이 없으면 지구상 모든 생물은 정상적인 호흡을 하기 어렵다. 해양생태계는 작은 플랑크톤부터 거대한 고래에 이르기까지 긴밀하게 연관되어 있다. 기후 위기 시대에 고래 개체 수 보존은 필수적이다. 이미 국제적으로 포경은 금지되어 있고 우리나라 역시 국제포경협회 가입국으로 1986년부터 상업 포경을 금지해왔다. 그럼에도 연간 수천 마리의 고래가 유통되고 있는 것은 기이한 현실이다.

이러한 아이러니한 현실을 바로잡고 고래류를 보전하기 위해서는 지금의 개정안으로는 부족할 것으로 보인다. 당장 모든 고래류를 보호종으로 지정하는 것은 현실적인 어려움이 있을 것이다.

해양환경단체들은 고래 혼획에 의해 어구 손상 피해를 입은 어민에게 실비 보상을 해주고 나머지 금액은 국고에 귀속하는 방식으로 고시를 개정할 것을 대안으로 제안한다. 고래 포획에 대한 경제적 인센티브가 발생하지 않도록 해서 의도적 혼획은 줄이고, 고래고기 식당들이 바로 폐업하지 않고 '연착륙'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고래류 보호라는 세계적인 흐름 안에서, 미국, 고래고기 식당 업주, 시민단체들의 눈치도 봐야 하는 정부는 11월까지 어떤 결단을 내릴 것인가, 그 귀추가 주목된다.

태그:#고래고시, #밍크고래, #고래, #해양포유류보호법, #혼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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