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둑은 인생의 축소판
흔히 바둑은 인생의 축소판에 비유된다. 바둑은 19×19의 좌표 위에 새겨진 361개의 교차점을 대상으로 3백60개의 흑백 바둑돌이 세력 싸움을 벌이는 게임인데, 수천 년 동안 동아시아인들은 바둑에 매혹되어 줄기차게 그 게임을 즐겨왔다.
우리는 한 판의 바둑을 보면서 대국자들의 성격과 기질은 물론 마음 자세, 생활 방식까지도 알 수 있다. 그래서 바둑을 두다가 사람들은 스스로 자신을 비추는 거울을 보는 듯해서 놀랄 때가 많다.
바둑은 반집을 다투는 정밀성 때문에 방식 자체가 우선 과학적이고, 고도의 계산력을 요하는 수학적인 게임이라서 속임수가 있을 수 없다.
바둑에서 승리하기 위해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전체를 보는 눈과 그 관리 능력이다. 바둑에서는 특정한 지역을 놓고 싸우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 대세를 위해서라면 작은 부분은 과감하게 희생해도 좋다.
체스나 장기가 위치 지향적이고 공격적인 반면 바둑은 느슨하게 연결된 광대한 세계에서 고정되지 않은 전략을 가지고 싸울 수 있다. 여기서는 단지 전체의 판세를 읽고, 빠르게 움직이면서 상대에게 자신의 움직임을 예측할 수 없게 전략을 펴는 일이 중요하다.
상대방의 마음과 전체의 판국을 보지 못하면 바둑에서 승리를 거두기는 어렵다.
그래서 바둑의 고수들은 누구나 속마음이 나타나지 않도록 고요하게 수양하는 자세를 취한다. 고요하고 무거운 침묵으로 상대를 제압하면서 여유 있고 주도면밀하게 게임을 운영하는 것이 승리의 비결이다.
중국인의 속내
상대방에게 속마음을 읽히지 않는다는 점에서 중국인들은 바둑의 고수와 비슷하다.
중국인들이 자기 속내를 잘 들어 내지 않아서 그들을 처음 대하는 한국인들은 중국인은 음흉하다, 사기성이 농후하다는 말을 한다. 그러나 그들을 조금만 깊게 사귀어 본 사람들은 중국인들이 바둑의 고수들처럼 느긋한 품성을 가지고 있다고 말한다.
그것은 장대한 중국의 역사와 광활한 대륙이 만들어낸 소산이다.
중국인들과 사귀거나 상거래를 하려는 사람들은 그들이 왜 어떻게 그런 기질을 가지게 되었는지를 제대로 알고 그들과의 관계를 만들어 나가야 한다.
어느 날 장자가 조릉이라는 곳에서 사냥을 하고 있을 때였다. 날개의 폭이 일곱 자에 눈은 한 치나 되는 이상한 까치 한 마리가 남쪽에서 날아왔다. 그 새는 장자의 이마를 스치고 지나가서 밤나무 숲에 앉았다.
"참 묘한 새다. 큰 날개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잘 날지 못하고, 큰 눈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마치 눈뜬장님 같지 않은가!"
장자는 이렇게 중얼거리면서 옷소매를 걷어붙이고 재빨리 밤나무 숲 속으로 들어가 화살을 겨누었다. 그런데 자세히 바라보던 장자는 깜짝 놀랐다.
까치는 나무에 붙어 있는 사마귀를 노리고 있었고, 그 사마귀는 또 시원한 나무 그늘에서 신나게 울고 있는 매미를 노리고 있지 않은가. 사마귀도 까치도 먹이에 마음을 빼앗긴 나머지 자신에게 닥친 위험을 알아차리지 못하고 있었다. 장자는 두려운 생각이 들었다.
"먹이를 노리는 자, 또 먹이가 된단 말인가? 이익을 쫓는 자는 해를 부른다. 정말 위험하기 짝이 없구나."
장자는 활과 화살을 내던지고 급히 밤나무 숲을 빠져나왔다. 그러나 장자는 뒤쫓아 온 밤나무 숲지기에게 붙잡혀 밤도둑이라고 실컷 욕을 얻어먹었다. 그 뒤 장자는 석 달 동안 방에 틀어박혀 뜰에도 나오지 않았다. 제자인 인저가 이상히 여겨 그 까닭을 물었다.
"무슨 일이십니까? 요즘은 뜰에도 나오지 않으시니 말씀입니다."
장자는 이렇게 대답했다.
"나는 나 자신의 우매함을 모르고 있었다. 흐린 물에 마음을 빼앗겨 맑은 못에 몸을 비춰보는 것을 잊고 있었다. 스승의 가르침 속에 '세속에 살고 있는 한 세속의 규칙에 따라야 한다'는 교훈이 있다. 그런데 요전번에 조릉에서 큰 까치에게 정신이 팔려, 금지 되어 있는 것도 미처 생각지 못하고 밤나무 숲 속으로 들어가지 않았겠나? 그 때문에 숲지기에게 엉뚱한 의심을 받아 욕을 얻어먹었기에 그런 내 자신이 부끄러워 이렇게 틀어박혀 있는 것이다."
이러한 장자의 일화는 중국인들에게 전체를 바라보는 종합적인 사고력을 가지게 만들었고, 다시 한 번 생각하고 사물을 바라보는 그들의 사려 깊은 대륙적 기질을 만들어 내는데 많은 기여를 했다고 보아도 좋을 것이다.
사소취대의 전략
1920년대에 젊은 공산주의자 마오쩌둥은 수적으로 열세했을 뿐만 아니라, 빈약한 자금, 미숙한 전투 경험 등 모든 면에서 국민당을 이끌고 있는 장제스에게 대적이 되지 않는 상대였다.
마오쩌둥은 바둑의 고사 중에 있는 사소취대(捨小取大)란 전략을 구사하기로 결심했다. 사소취대란 작은 것을 버리고 큰 곳으로 나아가라란 뜻이다. 마오쩌둥은 중국의 다수를 차지하는 농민의 지지를 얻지 못하면 승리도 불가능하다는 것을 깨닫고 도시를 버리고 농촌을 파고들었다. 당시 중국은 95%이상의 인구가 농민이었고 그들은 보수적이고 전통에 얽매인 사람들이었다. 마오쩌둥은 농민들을 대상으로 혁명을 전개하기 시작했다.
마오쩌둥은 '삼국지' '수호지' '초한지' 등의 영웅호걸이 등장하는 옛날 소설들을 좋아했는데, 그 중에 가장 좋아하던 책이 수호지였다. 그는 중국 민중이 '수호지'의 애독자란 것을 간과하지 않았다.
그는 명분을 중심으로 결합된 의적들의 우애를 강조하면서 혁명군을 수호지에 나오는 의적들의 부대로 만들어 버렸다. 그는 자신들의 투쟁을 억압받는 농민들이 사악한 황제에 대항하여 투쟁하는 것으로 비유했다. 농민들은 공산주의가 무엇인지는 잘 몰라도 그러한 공산당 군대에 편안함을 느꼈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면서 일본이 중국대륙에서 물러나자 국민당 지도자 장제스는 미국의 지원을 받아서 공산당 섬멸작전에 들어갔다. 당시 공산당은 국민당에 비해서 미미한 세력을 가지고 있었다. 장제스는 정예부대를 투입해서 압박하는 작전을 폈다. 그는 주요 도시를 우선 장악하고 그곳을 기반으로 농촌지역으로 영향력을 넓혀서 공산당 군대를 쓸어버린다는 작전을 폈다.
국민당 군대는 대규모 병력을 동원하여 공산당의 해방구에 공격을 개시함으로써 국민당 군대는 쉽게 공산당 거점 도시를 점령했다.
그러나 마오쩌둥은 국민군 부대에 밀리면서도 사소취대의 전략을 착실하게 펴나갔다. 이 전략은 말은 쉽지만 그렇게 쉬운 작전은 아니다. 사람은 누구나 승부에 몰두하거나, 집착을 하게 되면 냉정을 잃게 되고 판단이 흐려지기 일쑤다. 더구나 작은 이익은 눈앞에 보이고 큰 이익은 멀리 있어 잘 보이지 않는 경우가 많은 법이다. 그럴 때 냉정하게 멀리 내다보고 작은 이익을 먼저 포기하기란 정말이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공산당 군대는 저항을 하지 않고 만주의 벽촌으로 물러났다. 전면전 초기에 국민당 군대는 군사적 공세에서 승기를 잡는 것처럼 보였다. 그들은 공산군을 중부평원과 양쯔 강 하류지역에서 몰아내고 해방구의 중심지인 청더(承德), 장자커우(張家口), 린이(臨沂) 등을 차례로 점령한 끝에, 마침내 장정(長征) 이후 공산당의 핵심근거지였던 옌안(延安)까지 점령했던 것이다
그러나 두 군대의 세력관계는 1947년말 일대 전환점에 이른다. 공산당은 내전 초기에 자신들의 근거지 방어 대신 군사력을 빼돌려 기동전·유격전을 구사하여 국민당을 교란시키는 작전을 썼다. 그들은 옌안을 내주는 대신, 보다 광대하고 물자가 풍부한 산시(陝西)로 이동하여 반격할 준비를 갖추었다.
그들은 물 흐르듯이 작전을 펴나가기 시작했다. 공산당의 소규모 부대는 국민당 군대를 괴롭히다가 재빨리 물러나거나, 마을을 점령했다가 몇 주일 뒤에 순순히 내주기도 했다. 공산당 군대는 전위 후위도 없었고 큰 부대를 이루어 움직이지도 않았다.
차츰 국민당 군대는 형태가 없는 공산당 군대를 공격하는 데 애를 먹기 시작했다. 장제스는 마오쩌둥이 겁을 먹었거나 전략을 전혀 모르거나 둘 중의 하나라고 생각했다. 장제스는 일본 육군사관학교에서 정식으로 전술을 공부한 사람이었고, 독일의 군사 전략가 카를 폰 클라우제비츠의 추종자이기도 했다.
그러나 점차 마오쩌둥의 공격 패턴이 드러나자 그는 당황하기 시작했다. 국민당 군대가 도시를 점령하면 공산당 군대는 물러나서 넓은 공간을 이용하여 도시를 외곽에서부터 포위했다. 지원 부대를 보내면 공산당 군대는 지원 부대를 둘러쌌다. 장제스의 군대는 점차 작은 단위로 부서지고 고립되기 시작했다. 화력은 여전히 우세했지만 부대가 제대로 운신을 못하는 상황에서는 아무소용이 없었다.
차츰 국민당 병사들은 공포에 사로잡혔다. 이제 국민당 군대는 도시에서 주저앉아서 사방에서 쏟아져 들어오는 적군을 지켜보기만 했다. 농민들이 가세한 공산당 군대는 국민당 군대를 포위했다. 그들은 쉴 새 없는 선전, 선동 작전을 펴면서 국민당 군대의 사기를 떨어뜨렸다. 탈주자들이 속출했다. 국민당 군대는 정신에서 먼저 지기 시작한 것이다. 고립된 도시들은 공격을 받지 않아도 스스로 무너졌다.
1948년 11월 국민당 군대는 만주를 공산당에게 내주고 말았다. 이로서 모든 면에서 우세했던 국민당 군대로서는 치욕적이며 치명적인 타격을 입었고, 결국 이것이 전쟁의 승패에 결정적인 요인이 되었다.
이듬해에 공산당 군대는 중국 전역을 장악했고 장제스는 대만으로 쫓겨나야만 했다. 그야말로 사소취대의 바둑에서의 전법을 완벽하게 구사한 마오쩌둥의 승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