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넘게 K리그 최강을 호령하던 전북 현대 모터스를 둘러싼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전북은 최근 동네북으로 전락했다. 지난 4월 21일 K리그 11라운드 울산전(0-0)을 시작으로 벌써 한달이 넘도록 승리가 없다. 최근 공식전 7경기 연속 무승(4무 3패)이다.

개막 후 리그 13경기 연속 무패를 이어가던 수원은 지난 9일 14라운드 수원전(1-3)에서 첫 패를 당한 것을 시작으로 19일 15라운드 울산전(2-4), 23일 16라운드 대구전(0-1)전까지 갑작스럽게 3연패를 당했다. 8승5무3패(승점29)로 순위는 어느새 3위까지 내려갔다. 울산(승점33)에 이어 수원(승점30)에게도 역전당했다.

자연히 불명예스러운 기록도 속출하고 있다. 전북이 3연패를 당한 것은 2013년 11월 이후 무려 8년 만이었다. 7경기 연속 무승도 2012년 기록한 6연속 무승(3무3패)을 뛰어넘는 9년 만에 최악의 기록이다.

전북은 그동안 일시적으로 부진한 경우는 종종 있었지만 쉽게 연패를 당하지 않고 강팀과 큰 경기에 강하다는 이미지를 구축해왔다. 특히 수원과 울산에게는 천적이나 마찬가지였다. 최근 연패에 빠지기 전만 해도 수원전에서는 10경기 8승2무로 압도했고, 울산에게도 지난 2년간 단 한 번도 지지 않았다. 하지만 올 시즌에는 울산과 두 번 붙어 1무1패로 열세를 보이고 있는 데다 경기내용에서도 밀렸다. 올해 초 K리그를 뒤흔든 '백승호 영입 논란'으로 악연을 빚었던 수원에게 안방에서 3골을 내주며 참패한 것도 뼈아프다.

급기야 지난 26일에는 FA 4라운드(16강)에서 3부리그팀에게 덜미를 잡히는 망신까지 당했다. 지난 시즌 FA컵 챔피언인 전북은 K3리그 소속인 양주시민축구단을 상대로 전후반 90분과 연장전을 모두 0-0으로 마친 뒤 실시한 승부차기에서 9대 10으로 패하며 대이변의 희생양이 됐다.

김상식 감독의 지도력이 시험대에 오를 수밖에 없다. 김상식 감독은 전북이 지금의 '왕조'로 도약하기까지 2009년 첫 우승 시절부터 선수와 코치로서 역사를 함께해 온 녹색군단의 레전드다. 김 감독은 지난 시즌을 마치고 사임한 조세 모라이스 감독의 후임으로 전북의 지휘봉을 잡았다. 사령탑은 올해가 처음이었지만 최강희-모라이스 전 감독 밑에서 오랫동안 지도자 경험을 쌓았고 전북의 팀문화와 내부사정에 밝은 '준비된 감독'이라는 기대감이 컸다. 김상식 감독은 사령탑 데뷔 한달만에 K리그 3월 이달의 감독상을 수상하며 순항하는 듯 했다.

하지만 위기가 예상보다 일찍, 그리고 크게 찾아왔다. 사실 개막 후 13경기 무패행진을 달릴 때도 결과가 좋아서 묻혔을뿐 경기내용에 대한 우려는 이미 조금씩 나오고 있던 상황이었다. 김상식 감독은 최강희 감독의 시절의 닥공(닥치고 공격) 축구를 계승하는 '화공(화끈한 공격)'을 자신의 축구컬러로 내세웠지만 막상 뚜껑을 열자 전북은 '답공'(답답한 공격)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

표면적으로 전북은 리그 16경기에서 28골로 여전히 최다득점 1위에 올라있다. 하지만 순항하던 시즌 초반에 득점을 몰아친 것일뿐 4월 후반부터는 득점력이 뚝 떨어졌다. 최근 7경기 연속 무승에 허덕이고 있는 동안에는 총 5골에 그치며 경기당 1골을 넣는 데도 힘에 부쳤다.

김상식 감독은 전북을 상대하는 팀들이 대부분 스리백이나 파이브백을 사용하는 수비적인 경기운영을 하는데서 이유를 찾지만 이는 최강희나 모리아스 감독 시절에도 마찬가지였고 '강팀의 숙명'이라고 할 수 있다. 더구나 대등한 전력을 가진 울산전에서 사실상 압도당한 것을 감안하면 변명이 되기 어렵다.

전통적으로 닥공으로 대표되는 전북의 공격축구는 높은 점유율로 경기 주도권을 움켜쥐고 아예 상대가 반격할 기회를 주지않는 것이었다. 전북은 지난 시즌 득점은 울산과 포항보다 밀렸지만 전체 슈팅과 경기당 유효슈팅(7.4개) 등에서 1위를 기록하며 효율성과 적극성에서 앞섰다. 그런데 올 시즌엔 정반대다. 전북은 K리그1에서 경기당 유효슈팅 비율이 4.88개로 리그 10위에 불과하며 1위 울산(7.77개, 26득점)와 비교하면 총득점은 불과 2골차이인데 유효슈팅은 무려 3개 가까이 격차가 난다.

전북은 지난 시즌 리그 두 자릿수 득점을 넘긴 선수는 한교원 밖에 없었지만 이승기-구스타보-이동국-김보경 등 여러 선수가 고르게 득점을 올리며 다양한 공격루트를 과시했다. 올 시즌에는 일류첸코(9골)과 한교원(6골)에 대한 공격의존도가 너무 높아졌다. 일류첸코는 최근 상대 수비의 집중견제 타깃이 되며 시즌 초반과 같은 폭발적인 화력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으며 일류첸코가 막히면 팀 전체의 경기력이 함께 하락하는 악순환이 계속되고 있다. 또한 지난해 더블의 주역이었지만 올 시즌에는 일류첸코 때문에 주전경쟁에서 밀린 구스타보가 덩달아 컨디션이 하락했다.

2선의 활력소였던 한교원-이승기 등도 잔부상으로 페이스가 떨어진 모습이다. 각종 논란을 감수하며 영입한 백승호는 아직까지 그리 인상적인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백업멤버들의 컨디션 조절 실패는 지난 FA컵에서 구스타보-쿠니모토-백승호 등 모처럼 1.5군을 가동하는 로테이션을 가동했으나 처참한 실패와 조기탈락이라는 참사로 이어졌다.

이동국-손준호의 빈 자리도 예상보다 크게 나타나고 있다는 평가다. 지난 시즌을 끝으로 은퇴한 이동국은 전북에서 팀의 구심점 역할을 해주던 라커룸 리더였고, 손준호는 리그 MVP이자 중원에서 경기운영과 수비안정에 큰 비중을 차지하던 선수였지만 중국으로 떠났다.

또한 좀더 근본적인 문제를 파고들어가면 전북이 장기간의 성공으로 인하여 세대교체 시기를 놓치고 매너리즘에 빠졌다는 평가도 나온다. 전북은 그동안 안정된 신구조화가 강점으로 꼽혔던 팀이다. 전북 왕조의 시작을 알렸던 이동국과 김상식 감독은 입단 당시만 해도 다른 팀에서 방출된 선수들이었으나 전북에서 화려하게 부활에 성공했던 케이스였다.

하지만 지금의 전북은 더 이상 10여년 전과 같이 헝그리 정신으로 무장한 팀이 아니다. 주축 선수들의 연이은 은퇴와 이적으로 이제 전북의 팀정신을 대표하던 프랜차이즈 스타들은 대부분 사라졌고, 현재 전북을 이끌어줘야 할 30대 이상의 노장선수들은 노쇠화 조짐속에 예전의 선배들만큼의 영향력과 리더십은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 전북은 최근 무승에 허덕이는 동안 후반에 급격한 체력저하와 집중력 부족을 드러내며 무너지는 패턴이 반복되고 있다.

권불십년-화무십일홍이라는 속담처럼 세상에 영원한 승자는 없다. 전북도 그동안 연속 우승으로 가려져왔던 팀의 해묵은 문제점들을 이제는 제대로 응시해야 할 시점이 왔을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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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현대 김상식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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