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05.27 19:10최종 업데이트 21.05.27 1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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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태우의 두 자녀가 서로 다른 이슈로 언론에 보도되고 있다. 두 이슈는 서로 다르지만, 공통점이 있다. 아버지 노태우가 관련됐다는 점이다.

첫째인 노소영(1961년 생)씨는 1조 원대 재산 분할이 걸린 최태원 SK그룹 회장과의 이혼소송에서 아버지의 역할을 적극 강조하고 있다. 지난 4일 세 번째 변론 기일에 돌입한 이 소송에서 노소영씨는 대통령 시절의 노태우가 시댁의 사업 확장에 기여한 역할을 토대로 재산 분할에서 유리한 고지를 차지하려 하고 있다.

재판부가 그 역할을 높이 평가하면 노소영씨는 보다 많은 재산을 갖게 되는 동시에 아버지와 SK의 정경유착을 드러낼 수도 있게 된다. 친정은 물론이고 재벌 기업인 시댁의 부도덕성도 함께 노출시키게 되는 것이다.
 

노태우 전 대통령 아들 노재헌씨가 5.18 국립묘지에 들러 방명록에 서명했다. 이날 노씨는 노태우 전 대통령 이름으로 헌화했다. 2020.5.29 ⓒ 독자제공

 
둘째인 노재헌(1965년 생)씨는 재작년부터 아버지의 5·18 책임에 대해 참회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2019년 8월 23일 그는 광주광역시에 가서 처음으로 국립 5·18 묘지를 참배했다. 지난 25일에는 광주에서 5·18 연극을 관람했다가 관객들과 마찰을 빚기도 했다.

그의 어머니인 김옥숙씨도 꼭 5·18 때문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광주에 가서 참배한 적이 있다. 김옥숙씨가 남편의 대통령 취임 이틀 뒤인 1988년 2월 27일 망월동 5·18묘역을 찾아가 이한열 열사 묘역에 참배했다는 사실이 1988년 당시의 사진과 함께 뒤늦게 보도된 일이 있다. 


보도에 따르면, 이한열 어머니인 배은심씨는 <연합뉴스>와 통화에서 "당시 매일같이 아들 묘를 찾아갔는데, 어느 날 보니 꽃다발 하나가 놓여 있었다"며 "그 이후에 노 전 대통령의 부인이 왔다 갔다는 얘길 들었다"고 밝혔다.
  
광주를 방문해서 고개를 숙이는 김옥숙 모자의 태도는 전두환 가족의 태도와 명확히 대비된다. 하지만 간과할 수 없는 것은, 노태우 가족의 참회가 노태우 자신의 참회를 곧바로 의미하지는 않는다는 점이다. 국민들이 우선적으로 주목하는 것은 노태우 가족보다는 노태우 본인의 참회라는 점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무책임한 회고록

노재헌의 참회를 지켜보는 5월 단체들에서는 '아버지 회고록부터 고쳐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2011년 발행된 <노태우 회고록>에는 <전두환 회고록> 못지않은 무책임하고 파렴치한 내용이 나온다. 그런 회고록이 개정되지 않은 상태에서 노태우 본인이 아닌 그 가족의 참회에 관한 보도들이 나오고 있으니, 앞뒤가 맞지 않는다는 느낌을 떨칠 수 없게 된다.

노태우는 회고록 상권에서 "광주사태 당시 나는 수도경비사령관으로서 서울 지역의 계엄분소장 직무를 수행하고 있었다"라며 "광주에서 발생한 사태에 대해서는 관여할 입장이 아니었다"고 말한다.

그런 뒤, 광주에서 비극이 발생한 원인에 대한 자기 나름의 분석을 내놓았다. 그는 서울시민들과 달리 광주시민들은 시위 현장에서 경찰만 상대해봤을 뿐, 군대를 상대해본 경험이 없었다고 말한다. 이런 차이로 인해 서울시민들은 군에 저항할 엄두를 내지 못한 데 반해 광주시민들은 저항을 선택하게 됐다면서 이렇게 말한다.
 
광주시민들은 군을 경찰과 마찬가지로 생각했을 것이다. 군은 후퇴할 줄 모르므로, 시민들이 물러서지 않는 한 충돌은 불가피했을 것이다.
 
그는 광주에 퍼진 "참으로 악랄한 유언비어" 때문에도 사태가 더욱 악화됐다고 분석했다. "'경상도 군인들이 광주시민들 씨를 말리러 왔다', '무지막지한 군인이 임산부의 배를 갈라 태아를 잘라냈다', '처녀의 젖가슴을 도려냈다'는 등 수많은 유언비어가 사실인 양 퍼져나갔다"며 이로 인해 시민들이 "적개심을 불태우고" 이들 중 일부가 군에 맞서게 됐다고 말한다. 충돌의 원인을 침입자 쪽에서 찾지 않고 방어자 쪽에서 찾았던 것이다.

그렇게 자신의 5·18 책임을 부인하고 광주시민들에게 떠넘긴 그는 자기 친구에게도 책임이 없다고 주장했다. 대통령·국방장관·계엄사령관 및 전남북 계엄분소장의 책임을 지적한 뒤 "당시 전두환 보안사령관은 참모로서 조언하는 입장이었기 때문에 진압 작전과 관련된 직접적인 책임은 없었다"고 말한다. 실권자인 전두환을 참모로 격하시키면서까지 감싸려 한 것이다. 전두환뿐 아니라 노태우 역시 5·18에 대해 비양심적인 자세를 갖고 있는 것이다.

5·18 학살로 연결되는 1979년 12·12 쿠데타 및 1980년 5·17 쿠데타를 주도한 것은 전두환이지만, 군사적으로 쐐기를 박는 역할을 한 것은 노태우였다. 12·12 때 정부군의 기를 꺾은 것은, 북한과 대치 중인 9사단 병력을 전방에서 빼낸 노태우 9사단장의 이해할 수 없는, 과감한 행동이었다.

또 서울에서 5·17 쿠데타를 주도한 부대 중 하나는, 12·12 다음날부터 노태우가 지휘한 수도경비사령부(수경사)였다. 또 광주항쟁 기간인 5월 18일에 야당 지도자 김영삼을 가택연금 하는 데 동원된 부대 역시 수경사 헌병단이었다.

광주항쟁이 진행 중이던 5월 23일경에 비상정부인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국보위) 설치를 반대하는 박동진 외무부 장관을 국군보안사령부(보안사)로 불러 '설득'한 것도 노태우였다. 광주 현장에 직접 가지 않았을 뿐이지, 그는 전두환과 함께 5·18 비극을 일으킨 핵심 인물이었다.

이렇게 전두환 못지않게 책임이 큰데도, 회고록에서 그는 마치 '딴 동네' 일인 듯, 자신과는 무관한 듯, 전두환도 책임이 없는 듯 5·18을 회고했다. 5·18로부터 31년이 지난 시점에 그런 회고록을 내놓았다는 것은 그런 인식이 상당히 강하게 박혀 있음을 의미한다. 그가 참회하고 있지 않음을 뜻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노태우를 설득하라
 

노태우 전 대통령 아들 노재헌씨가 5.18 국립묘지를 찾아 노태우 전 대통령 이름으로 헌화했다. 2020.5.29 ⓒ 독자제공

 
당사자인 노태우가 참회하지 않는 상태에서 김옥숙씨가 1988년에 이한열 묘소를 참배했고 노재헌씨가 2019년부터 광주를 찾고 있다. 이는 김옥숙씨와 노재헌씨가 죄스러운 마음을 갖고 있음을 의미하는 것일 수는 있어도, 노태우가 참회하고 있음을 의미하는 징표가 될 수는 없다. 불과 10년 전에 발간된 회고록에서 그가 자신의 책임을 명확히 부인했다는 점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노태우 가족이 우선적으로 해야 할 것은 국민을 상대로 가족들의 참회를 보여주는 것이 아니다. 물론 그 역시 의미 있는 일이지만, 더 중요한 것은 노태우 본인이 진정으로 참회하도록 설득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노태우의 연령이나 건강 상태는 그의 참회를 가로막는 요인이 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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