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월 미얀마의 군부가 쿠데타를 일으켰다. 시민들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미얀마인들의 민주화 운동이 100일 넘게 지속되면서 현재까지 사망한 시민은 780여 명, 체포된 이들도 4천 명이 넘는 것으로 알려졌다. 미얀마에서 군부 쿠데타가 일어난 건 이번이 세 번째다.

그렇다면 군부는 왜 쿠데타를 일으켰을까. 이들은 지난해 11월 선거에서 부정이 있었으며 선관위가 이를 조사하지 않았다고 주장한다. 즉,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계엄령을 선포했다는 것이다. 군부가 민주주의를 이야기하는 아이러니한 상황이다.

이와 관련해 지난 18일 MBC < PD수첩 >은 5.18 광주 민주화 운동 41주년을 맞아 특집으로 미얀마 군부 쿠데타 100일을 조명한 '#세이브 미얀마'편을 방송했다. 취재 뒷이야기가 듣고 싶어서 이번 편을 연출한 성기연 PD를 지난 20일 전화로 인터뷰했다.

다음은 성 PD와 나눈 일문일답이다.
 
 <PD수첩>의 한 장면

의 한 장면 ⓒ MBC

 
- 해외 상황을 방송해야 하는 거라 취재가 쉽지 않았을 것 같아요. 
"너무 어려웠어요. 취재 초기에는 타사 방송들 보면서 '우리도 이렇게 하면 되겠다' 생각했는데, 저희가 본격적으로 촬영할 때 즈음해서 미얀마 군부의 진압이 한층 더 폭력적으로 변해서 (상황이) 너무 위험해졌어요. 예를 들어 다른 방송에서 일했던 VJ분께서도 '미안하다, 요즘은 검문 검색해서 카메라나 시위 관련 촬영물이 나오면 큰일 나니 슈퍼마켓 갈 때도 스마트폰 놓고 다닌다'고 하시더라고요. 그래서 어렵게 촬영을 한다고 하더라도 찍은 건 현장에서 전송하고 싹 지우고 나왔어야 했어요. 그런데 아시겠지만 미얀마 군부가 현재 인터넷을 제한시켜놨어요. 그래서 촬영분 전송받는 것도 추적을 피하려면 IP를 우회하거나 태국의 유심카드를 구해서 해야만 해요. 뭐 하나 할 때마다 작전처럼 해야 하는 상황이었던 거죠. 그래도 분쟁지역 전문인 김영미 PD가 초반에 현장 상황을 공유해주시고 방향 잡는 데 도움을 많이 주셨어요."

- 그전부터 미얀마 사태에 관심이 있으셨어요?
"미얀마 사태가 발생한 시점이 2월 1일이잖아요. 그동안 저희 < PD수첩 > PD들 대부분 미얀마를 관심 있게 보고 있었어요. 그런데 저희는 제작 기간이 긴 프로그램이고, 연일 언론이 미얀마 사태를 보도하니까 '내가 방송할 때쯤이면 이미 사태가 종료되지 않을까?'라는 생각으로 지켜보기만 했어요. 아마 저희뿐만 아니라 방송쪽에 있는 분들 대부분 관심 있게 지켜보지 않았을까요."

- 유독 미얀마 사태에 관심을 많이 보이는 것 같아요.
"안 그래도 저희도 궁금해서 전문가분들한테 물어보기도 했는데 비단 언론뿐 아니라 한국 사람들이 유난히 미얀마에 관심이 많은 거 같아요. 아무래도 우리나라가 비슷한 경험을 했기에 그렇겠죠. '남 일 같지 않다'라는 말씀 되게 많이 하시잖아요? 그런 영향이 가장 크지 않을까란 생각이 있고, 또 하나는 촛불 국면 이후로 우리나라 국민들의 민주주의에 대한 의식 수준 내지 관심이 높아진 게 아닐까란 생각도 듭니다."
 
 미얀마인들의 민주화 운동이 100일 넘게 지속되면서 현재까지 사망한 시민은 780여 명, 체포된 이들도 4천 명이 넘는 것으로 알려졌다.

미얀마인들의 민주화 운동이 100일 넘게 지속되면서 현재까지 사망한 시민은 780여 명, 체포된 이들도 4천 명이 넘는 것으로 알려졌다. ⓒ MPA


- 마침 방송 날이 광주민주화운동 41주년 되는 날(5월 18일)이었는데요. 미얀마와 1980년 광주를 비교하기도 하잖아요. 
"저희는 라인업이 딱 정해져 있어요. 그래서 5월 18일 제 방송 날짜였는데, 5·18의 추구하는 지점과 현재 미얀마의 혁명이 추구하는 지점이 유사하다는 생각에 아이템으로 정하게 됐습니다."

- 취재는 어디부터 시작했나요?
"보통은 자료 서치를 먼저 하고, 제작진이 하고 싶은 방향 잡아서 관련자를 섭외, 촬영하는 순서로 진행하는데요. 이번에는 그렇게 할 수가 없었습니다. 아까 말씀드렸다시피 김영미 PD님이 많은 도움을 주셨는데요. 그분 말씀이 뭐를 찍고 싶다고 해서 찍을 수 있는 현실이 아니라는 거예요. 그래서 일단 접근할 수 있는 모든 루트를 뚫는 데서부터 시작했고요. 그러다 보니 위험을 무릅쓰고 도와주시겠다는 분들을 하나둘 만날 수 있었습니다."

- 현재의 미얀마와 80년 광주의 공통점·차이점은 뭘까요?
"그냥 딱 보이는 것만 봤을 때는 현재의 미얀마와 80년의 광주는 너무 비슷하죠. 쿠데타가 일어난 것, 그리고 비무장 시민들을 군입들이 무력진압하고 있다는 것, 그리고 지식인 계층·학생들뿐만 아니라 모든 시민들이 나가서 함께 싸우는 모습이 우리와 비슷한 것 같아요. 

하지만 미얀마에는 소수민족 문제라든가, 미·중 관계 등이 얽혀 있기 때문에 해법이 훨씬 복잡하더라고요. 지금 미얀마 같은 경우는 중국이라는 뒷배가 있어요. 중국을 등에 업고 국제사회의 압력을 무시하는 형국이죠. 미국은 쿠데타 초기부터 세게 입장을 표명하긴 했지만, 새로 대통령이 취임한 지 얼마 되지 않았고 중국에 비해 미얀마에 미치는 영향력이 작다 보니 상황이 여의치 않다고 전문가분들이 말씀하시더라고요."

- 내전으로 갈 가능성도 있나요?
"저희가 이재현 아산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에게 똑같은 질문을 드렸거든요. 그랬더니 그 질문부터 정정해 주시더라고요. 미얀마 안에는 계속해서 내전이 있었다고요. 이번에 소수민족들이 뉴스에 많이 보도됐잖아요. 미얀마에는 135개의 소수민족이 있고요. 그중에는 수백만 명 이상 규모의 큰 소수민족도 있어요. 군부는 수십 년 동안 끊임없이 소수민족들 탄압해 왔고, 그 과정들이 사실상 전부 내전이었던 거죠. 근데 미얀마 군부는 언론과 교육을 통해서 '우리 군부가 소수민족 반란군을 진압했다' 이런 식으로 자기네 군부 정당성을 유지해온 거예요. 소수민족 입장에서는 되게 억울하겠죠.

이번에 저희가 만난 많은 미얀마의 (특히 버마족 출신) 젊은이들 말이 그동안 군부가 어떻게 소수민족들을 억압해 왔고 왜곡해 왔는지 몰랐다는 거예요. 이번에 시위대분들이 소수민족을 찾아갔고, 임시정부인 NUG(미얀마 민족통합정부)가 소수민족과 함께 한다는 것이 미얀마의 장래에 긍정적인 신호탄이 될 수 있겠다는 이야기도 들었어요. 하지만 시민군을 만들어 군부에 대항하겠다는 것에 부정적인 시각도 많았습니다. 그렇게 되면 더 큰 희생은 불보듯 뻔한 일이라고 해요. 더 많은 사람들이 죽거나 다치고 장기전으로 갈 가능성도 크고요. 그래서 내전으로 치닫기 전에 어떤 식으로든 조치가 취해지면 좋겠다는 생각입니다."
 
 미얀마인들의 민주화 운동이 100일 넘게 지속되면서 현재까지 사망한 시민은 780여 명, 체포된 이들도 4천 명이 넘는 것으로 알려졌다.

미얀마인들의 민주화 운동이 100일 넘게 지속되면서 현재까지 사망한 시민은 780여 명, 체포된 이들도 4천 명이 넘는 것으로 알려졌다. ⓒ MPA

 
- 2008년 제정된 미얀마 헌법을 보면 군부 권한이 너무 막강한 거 같아요. 연방의회 의석 25%는 군부에 할당해야 한다는 내용도 있던데요.
"맞아요. 과거 1988년, 2007년에 각각 혁명이 있었을 때도 시민들이 많이 희생됐고, 국제 사회로부터 비난도 받았어요. 그래서 군부도 겉으로는 민주주의를 지향한다고 해요. 지금도 본인들은 나라 질서를 안정시킨 후 권력을 민간정부로 이양시키겠다고 이야기하거든요. 주요 부처 장관 임명도 군이 하고 군 통수권도 군부가 갖고 있고 의회 25%는 무조건 군부 차지라는 게 사실 어느 나라 헌법에 있겠어요?

방송에 넣고 싶었는데 분량상 빠진 것 중에, 헌법에 아웅산 수치 여사를 겨냥한 내용이었어요. 미얀마 군부 입장에서는 아웅산 수치 여사가 대통령 되면 (군부가) 피곤하잖아요. 그래서 아웅산 수치를 대통령 못 하게 하려고 헌법에 배우자나 자녀가 외국인인 경우에는 대통령에 출마할 수 없다고 넣어놓은 거예요. 수치 여사 남편이 영국인이었거든요. 수치가 대통령이 될까봐 헌법에 그런 조항을 깨알같이 넣을 정도로 치밀했던 거죠."

- 헌법을 바꾸기는 어렵겠죠?
"그렇죠. 원래 헌법이 나라를 운영하는 기본 틀이잖아요. 헌법상의 조항을 바꾸려면 출석 의원의 75%가 찬성을 해야 합니다. 기본적으로 군부가 25%를 차지하고 있고, 군부가 내세우는 위성 정당이 또 있으니, 이 두 그룹만 반대해도 헌법은 영원히 못 바꾸게 해놓은 셈이죠. 그런데 아웅산 수치가 이끄는 NLD(민주주의 민족동맹) 정당이 계속해서 '우리는 헌법을 바꾸겠다'고 하잖아요. 군부 입장에서는 이런 것들이 굉장히 못마땅하고 불안했던 것 같아요."

- 영상 인터뷰도 많이 하신 것 같던데, 섭외는 어떻게 하셨어요?
"일단 섭외는 정말 정말 물어물어 많이 했죠. 예를 들어 SNS로 누구를 섭외하려고 하면 먼저 DM을 보내요. 그런데 그분들 입장에서는 저희를 모르잖아요. 확인이 안 되니까 답을 받기가 어려웠어요. 그래서 어떤 때는 제 얼굴이 다 나온 프로필을 보내서  '나는 군부 쪽 사람이 아니다, 진짜 한국 언론사가 맞다'는 걸 강조해야 했고요. 또 현지 분들의 도움을 받기도 했어요. 방송에도 잠깐 소개했지만, 연락이 두절된 경우도 있고, 답변을 들으려면 한참을 기다려야 했어요. 저희가 인터뷰했던 학생연합 리더가 있었는데 인터뷰 이후 경찰이 들이닥쳐서 학생 8명인가가 체포됐다는 이야기도 들었어요. 다시 한번 용기를 내어주신 그분들께 감사드립니다."
 
 미얀마인들의 민주화 운동이 100일 넘게 지속되면서 현재까지 사망한 시민은 780여 명, 체포된 이들도 4천 명이 넘는 것으로 알려졌다.

미얀마인들의 민주화 운동이 100일 넘게 지속되면서 현재까지 사망한 시민은 780여 명, 체포된 이들도 4천 명이 넘는 것으로 알려졌다. ⓒ MPA

 
- 쿠데타가 일어나면 군부가 먼저 하는 일이 언론 장악인데 미얀마 역시 예외가 아닌 것 같아요. 미얀마 군부는 주요 언론사 5곳을 폐쇄했다고 하더라고요.
"폐쇄한 이유 자체가 '정말 억지구나' 싶어요. 군부가 언론사들에 쿠데타란 말을 쓰지 말라고 했거든요. 이건 쿠데타가 아니라는 거죠. 이번 군부 쿠데타의 명목도 부정선거를 바로잡겠다는 거잖아요. 이 과정에서 쿠데타라는 말을 쓴 언론사들을 폐쇄시킨 거죠. 그래서 지금은 군부가 운영하는 방송사·신문사를 제외한 어떤 언론도 없는 상황입니다. 공식적으로는요."

- 인터넷도 다 막은 건가요?
"원칙적으로 언론사들을 폐쇄시키면서 '면허가 없으니, 이들이 제작하는 뉴스도 인터넷 등 어떤 플랫폼으로도 나가면 안 돼'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기자분들이 모처에 숨어서 계속 보도하고 계시는 상황이고요. 저희는 그중에서 미지마 TV기자 분들과 접촉을 한 거고요."

- 광주에서 미얀마 돕는 움직임이 있나 봐요.
"저희가 사실 미얀마와 5.18을 어떤 식으로 소개할 수 있을까, 자칫 잘못하면 작위적이고 억지스러운 설정으로 비치지 않을까? 이런 고민을 했었거든요. 그런데 미얀마 분들이 하시는 집회를 갔더니 정말 자연스럽게 미얀마 분들과 오월어머니회를 비롯한 광주 분들이 연대하고 계시는 거예요. 그동안 주말마다 계속 해왔다고 하시더라고요."

- 방송 끝부분에 '임을 위한 행진곡'을 BGM으로 넣으셨는데.
"광주 민주화항쟁 당시 광주 시민의 희생 덕분에 6.10 항쟁도 나올 수 있었고 결과적으로 이 나라의 민주주의가 더 발전할 수 있었죠. 하지만 80년 그때를 놓고 생각해 보면 광주는 너무 고립돼 있었어요. 외신들에 알려서 도움을 요청했지만 실패했습니다. 최후의 수단으로 시민들이 스스로 무장해서 싸웠지만 너무나 희생이 컸죠.

저는 미얀마에 시민군이 생겼다는 뉴스를 접했을 때 광주와 너무 비슷해서 안타깝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조직적으로 무장을 하면 군부를 이길 수 있을까? 현실적으로 어렵거든요. 저희 프로그램 말미에 미얀마 젊은이들이 나무 총을 가지고 맨발로 훈련받는 모습이 나오는데 저 친구들이 더 큰 희생을 마주하기 전에 빨리 해결됐으면 하는 마음이 간절해졌습니다. 저희 음악감독님도 같은 마음으로 그 음악을 선정해서 넣어주신 것 같아요."

- 취재하며 느끼신 점이 있다면 한 말씀 해주세요.
"이번 방송을 준비하면서 저는 민주주의가 새삼 얼마나 소중한 건지 생각해보게 됐습니다. 외국 전문가들 인터뷰를 하면 '당신들 나라도 비슷한 경험을 했지. 그리고 민주주의를 누리고 있지'라고 해요. 김영미 PD님에게 미얀마 사람들이 묻더래요. '광주가 있었다면서요. 80년대 우리와 똑같이 했다면서요. 그래서 어떻게 됐어요?'라고요. '광주에서 승리했어'라고 답해주진 못했지만 '한국은 광주민주화운동이 있고 난 후 군부가 독재할 수 없는 나라가 됐어'라고 하신대요. 그러면 사람들이 너무 부러워하고 한국을 롤모델로 삼더라는 말씀을 해주시더라고요. 저는 이번 사태를 계기로 민주주의가 무엇인지, 우리가 어떻게 그것을 이뤄왔는지, 그리고 우리가 어떻게 저들에게 우리의 힘을 더해줄 수 있을지 고민해봤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앞으로도 미얀마 국민들의 투쟁을 함께 지켜보면서 응원하려고 합니다."
성기연 PD수첩 미얀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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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들의 궁금증을 속시원하게 풀어주는 이영광의 거침없이 묻는 인터뷰와 이영광의 '온에어'를 연재히고 있는 이영광 시민기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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