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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동산 시장 안정화 관련 입장을 발표하는 오세훈 서울시장. 2021.4.29
 부동산 시장 안정화 관련 입장을 발표하는 오세훈 서울시장. 2021.4.29
ⓒ 서울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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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장 보궐선거로 오세훈 시장이 취임한 지 두 달이 돼 간다. 4.7 재보선 후 여당은 선거 패배에 대한 반성문이라며 부동산 소유자들의 세금을 깍아주는 규제 완화로 선회하고, 승기를 잡은 보수 야당은 민간의 투기판이 될 재개발·재건축 규제 완화를 통한 공급론을 부채질 하고 있다.

"스피드 공급" "재개발‧재건축 한 달 안에 규제 완화"를 전면에 내세웠던 오세훈 시장이 당선되면서, 재건축 단지를 중심으로 한 기대감이 투기를 부추기고 서울 집값 상승을 촉발시키고 있다. 그럼에도 최근 저층주거지에 대한 민간 재개발 규제완화 정책을 발표해, 서울 전역의 투기와 집값 상승, 주거불안 심화가 우려된다. '집'으로 인한 서울 시민들의 고통과 절망을, 10여년 전 뉴타운과 용산참사 시대로의 역행으로 응답하고 있다.

과거 오세훈 시장 재임 당시 서울시 뉴타운 재개발 시기를 돌아보면, 도심 내 저렴 주택은 사라지고 주택 실소유자는 그다지 늘지 않았다. 당시 서울시 실태조사에 따르면, 뉴타운·재개발 사업 전에는 매매가 5억 원 미만 주택비율이 86%에서 사업 후 30%로 줄로, 전세가 4000만 원 미만 주택비율도 83%였으나 사업 후에는 0%가 돼, 저렴 주택이 모두 사라진다는 결과가 발표되기도 했다. 재개발·재건축 규제 완화를 통한 중대형 분양아파트 위주의 주택공급은 서민 주거안정보다는, 다주택자의 주택 수를 늘려주는 역할을 톡톡히 해왔다.

부동산 도시, 세입자의 도시

서울 아파트가 수십억 신고가를 또 경신했다는 아파트값 위주의 보도들을 보고 있으면, 서울은 그야말로 부동산 도시다. '패닉 바잉' '영끌'이라는 신조어들이 집 문제로 절망하는 시민들의 심정을 대변하는 것처럼 사용되지만, 사실상 부동산 욕망을 부추기고 투기를 감추는 수단으로 이용되고 있다.

집에 대한 서울 시민들의 다양한 요구와 불안들을 모두 '부동산'으로 치환시키고 있다. 우리의 안정된 삶의 자리여야 할 '집'이 '부동산'과 '아파트'로만 불린다면, 서울 시민들의 집으로 인한 고통은 반복될 뿐이다. 부동산의 도시에 희망은 없다.

하지만 서울은 세입자들의 도시다. 전국 17개 시도 가운데 유일하게, 무주택 가구 수가 주택 소유 가구보다 많은 곳이 서울이다. 물론 세입자 비율이 높다고 해서 세입자의 도시라고 할 수만은 없다. 미약한 세입자 권리와 서울 무주택자의 삶을 보면 세입자의 도시라고 하는 것은 민망하다.

일찍부터 독일 베를린시는 '세입자들의 도시'로 불리고 있다. 세입자 비율도 높지만 강력한 세입자 권리 보호 제도를 두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10여 년 사이 세입자 보호장치를 무력화시키려는 다국적 부동산 임대기업들의 꼼수가 극성을 부려 임대료 폭등문제가 심각하지만, 베를린 세입자들은 부동산기업에 대한 몰수(수용) 청원운동과 저렴한 공공임대주택 청원운동까지 벌이며 저항하고 있다.

잘 알려졌듯 지난해 초 베를린시 의회가 향후 5년간 임대료를 동결하는 법안을 통과시키기도 했는데, 최근 연방 법원이 임대료 동결은 지방 정부 권한이 아니라며 위헌 결정을 내려 베를린 세입자들의 저항이 커지고 있다. '세입자들의 도시'라는 칭호는 세입자를 보호하는 법률적 제도에만 기인하는 것이 아니라, 100년 전부터 뿌리내린 세입자협회 등을 비롯한 세입자 운동이 있어서 가능했다.

게다가 최근 임대료 폭등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수도인 베를린시는 뮌헨 등 다른 독일의 대도시에 비해 비교적 저렴한 임대료가 유지되는 도시다. 수도의 임대료가 다른 도시보다 더 낮다니, 서울을 생각하면 상상하기 어렵다. 베를린시는 세입자들의 도시이자, 노동자들의 도시, 가난한 예술가들의 도시로 불린다.

'가난하지만, 섹시한 도시(Berlin ist arm, aber sexy)'라는 2003년 당시 베를린시장 클라우스 보베라이트의 말처럼, 베를린은 노동자들과 이민자들, 가난한 학생과 예술가들이 살아가는 매력적인 도시이다. 수도 베를린시는 바로 이러한 노동자들과 가난한 예술가들이 부담 가능한 주거비로 살아갈 수 있는 상대적으로 저렴한 임대료의 도시이며, 세입자들이 끊임없이 소리 내고 저항하는 도시다.
 
'해고와 퇴거' 이중고에 놓인 서울 세입자
 
집걱정없는 서울만들기 선거네트워크로 연대한 시민단체 활동가들이 지난 3월 30일 오전 서울 종로구 참여연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4.7보궐선거 후보 주거공약 평가 결과 발표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집걱정없는 서울만들기 선거네트워크로 연대한 시민단체 활동가들이 지난 3월 30일 오전 서울 종로구 참여연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4.7보궐선거 후보 주거공약 평가 결과 발표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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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이후 주거불평등의 심화는 더욱 고조될 우려가 있다. 재택근무가 가능하며 소득이 유지되는 안정적인 직업군의 사람들은 더 넓고 독립적이며, 쾌적한 집에 대한 욕구가 증가한다. 기업들은 집과 경제의 합성어인 '홈코노미'가 바이러스 확산 이후 자본주의 소비 시장의 다크호스로 부상하고 있다며, 코로나 경제위기를 새로운 기회로 삼고 있다.

반면, 자영업 피고용자, 임시 일용직,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실업 상태로 내몰리거나 소득이 급감하고 있는데, 이들의 상당수는 월세 주택에 거주하고 있어 월세 미납에 따른 퇴거 위기에 놓여 있다.

그야말로 코로나 경제위기를 직면한 불안정 노동자들은 '해고'와 '방 빼'의 이중 위기로 내몰리고 있다. 집은 언제나 모두에게 중요한 문제였지만,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서 집은 더욱 중요해 지고 있다. 집이 누군가에게는 워라벨을 실현할 공간으로, 누군가에게는 생사를 결정하는 공간으로 간주되면서, 주거불평등은 더욱 심화된다. 

포스트 코로나 시기, 주거불평등을 극복하기 위해서도 서울은 세입자들을 위한 도시로 선언되어야 한다. 집을 소유한 이들과 소유하고자 하는 이들만을 바라보는 정책으로, 세입자들의 온전한 주거권을 보장할 수 없다. 주택 소유 여부와 상관없이 안정적으로 살 수 있는 '주거권'의 보장이, 세입자들의 도시를 위한 방향이 되야 한다.

서울지역 노동·시민·사회단체가 모인 '코로나 너머 새로운 서울을 만드는 사람들'은 5월 31일부터 '2021 차별없는 서울 대행진'을 통해, 서울 시민들의 주거권을 비롯한 다양한 서울의 불평등 문제를 제기하며 실천을 전개한다. 세입자들의 도시 서울, 서울 시민들의 주거권 보장의 위해 Stop! Down! Up!을 선언한다. "STOP! 임대료 인상, 강제퇴거!", "DOWN! 집값, 주거비!", "UP! 공공임대주택, 세입자 권리!"를 외치며, 서울 곳곳에서 목소리를 높이려 한다.

임대료 인상을 멈추고, 강제퇴거를 일정기간 동안이라도 중단(퇴거 모라토리움)시킨 조치들은, 지난해 펜데믹 선언 직후 해외 주요 국가와 대도시에서 실시됐다. 착한 임대인의 선의만을 촉구했던 한국의 조치와는 확연히 달랐다. 짒값 안정에 대한 서울 시민들의 목소리는 더 이상 급격한 인상을 막으라는 것이 아니라, 이미 오를만큼 오른 집값을 내리는 하향 안정화다.

또한 노동자 시민들의 전월세 부담 등 주거비 부담도 낮춰야 한다. 서울의 집값 안정과 전·월세 안정, 자산 불평등의 완화를 위해서는 투기와 개발, 부동산에 대한 규제를 더욱 강화해야 한다. 무엇보다 세입자 권리 보호를 강화하고 장기 공공임대주택을 확대해야 한다.

지난해 7월 주택임대차보호법이 개정됐다. 하지만, 세입자들의 권리는 여전히 미약하다. 세입자들의 갱신권은 1회만 보장됐고, 신규 임대차에 대해서는 임대료인상률 제한도 없다.

세입자 비율이 높고, 전·월세 문제가 심각한 서울은 더 강력한 세입자 보호장치가 필요하다. 개정된 법에 따라, 전·월세 인상률은 5% 이내에서 지자체 조례로 정할 수 있도록 위임돼 있다. 코로나 19로 인한 주거 불평등의 심화를 극복하기 위해서도, 서울시는 즉각적인 조례 제정을 통해 임대료 동결 또는 물가 및 소득 인상률 등에 연동해 낮출 수 있게 해야 한다. 공정(표준)임대료 제도의 도입을 통한, 적정 임대료를 산정하는 제도의 도입이 필요하다.

부동산의 도시 서울의 절망을 끝내고, 세입자들의 도시 서울이 선언돼야 한다. 주거 불평등을 끝내는 Stop! Down! Up! 서울은 세입자들의 도시다. 

'을(乙), 불평등 서울을 바꾸자' 릴레이 기고 전체 보기 http://omn.kr/1tjvl

덧붙이는 글 | 필자는 용산참사진상규명위원회, 빈곤사회연대, 주거권네트워크, 도시연구소 등에서 주거권 관련 활동하고 있습니다.


태그:#오세훈, #서울시, #주거권, #부동산, #차별철폐대행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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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참사진상규명위원회, 빈곤사회연대, 주거권네트워크, 도시연구소 등에서, 주거권 관련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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