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의 이름으로 영화 '아들의 이름으로'의 한 장면이다.

▲ 아들의 이름으로 영화 '아들의 이름으로'의 한 장면이다. ⓒ 옛나인 필름

 
1980년대 대한민국의 민주화운동은 한국 영화 역사에서 주요 소재 중 하나였다. 5‧18 광주 민주화 운동을 다룬 <화려한 휴가>와 <택시 운전사>가 대표적이고, 1980년대 군부 독재의 시기를 다룬 영화를 모두 포함하면 꽤 많이 찾아볼 수 있다. 이렇게 민주화 운동을 다룬 영화들에선 공통점을 찾을 수 있는데, 군부 독재에 맞서 싸우거나 군홧발에 짓밟힌 피해자의 입장에서 군부 독재의 참상을 다뤘다는 것이다. 무자비한 군인, 피흘리는 시민 등의 모습을 담아내며 피해자들의 고귀한 희생을 부각시키곤 했다.
 
<아들의 이름으로>도 위 작품들처럼 5‧18을 다룬 영화이지만 군사정권 시절 시위 진압에 앞장섰던 공수부대 소대장 출신 '채근(안성기 분)'을 주인공으로 내세움으로써 5‧18을 바라보는 새로운 관점을 제시한다. 대리기사 운전을 하는 채근은 5‧18의 또 다른 피해자이다. 과거의 잘못된 선택으로 인해 영원히 고통받으며, 자신이 저지른 과오를 속죄하기 위한 방법을 찾아다닌다. 제목에서 연상되듯이, 과거의 잘못을 뉘우치는 방법은 채근의 아들과 연관된다. 공수장교 출신 채근, 그의 아들, 그리고 5‧18의 광주는 서로 연결되며 영화의 중심 서사를 구축한다.
 
영화는 다큐멘터리 같기도 하다. 채근으로 대변되는, 시대가 제공한 폭력의 또 다른 피해자를 조명하고 그를 통해 다시금 새로운 시각으로 시대의 폭력을 고발하는 형식을 띠기도 한다.

작품이 주목하는 시대의 폭력은 현재진행형이다. 5‧18 민주화 운동 41주년을 맞이하는 지금까지도 당시 책임자 위치에 있었던 이들은 제대로 된 처벌을 받지 않고 있다. 오히려 여전히 부귀영화를 누리며 평안한 삶을 영위하고 있다. 영화 속 '박기준'은 그 모든 만행을 저질러놓고도 아무 처벌도 받지 않고 있는 당시 군부 세력들과 '그 사람'을 드러낸다. 자신들의 행위를 정당화하며, 책임자의 처벌을 요구하는 국민의 요구를 '좌파‧빨갱이'등의 단어로 매도한다. 교회에 다니며 셀프로 구원받고, 광화문 집회에서 태극기를 들고 외치며 답답함을 해소한다 말한다. 반성할 줄 모르는 그들에게 이정국 감독이 선사한 색다른 엔딩은 관객들에게 시원함과 통쾌함, 그리고 위안을 제공한다.
 
채근은 영화 속 두 인물에게 큰 영향을 준다. 첫째는 임향화 배우가 연기한 '식당 이모'다. 5‧18 광주에서의 일로 상처를 입은 남편이 자살함으로써 실어증에 걸리고, 이후 광주와 관련된 사람들과 마주치지 않으려 했던 그는 극 중 채근의 고백을 듣게 된다. 채근 본인이 공수부대 소대장으로서 과거 저지른 일들을 고백하며 유족들과 국민에게 사과할 때, 식당 이모의 실어증은 해소된다. 이는 채근의 진심어린 사과가 피해자의 상처를 치유했음을 의미한다. 누군가의 상처가 또 다른 상처 입은 자로 인해 치유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둘째는 민우다. 민우는 자신보다 강해 보이는 듯한 선배들에게 맞기도 하고, 돈을 뺏기기도 한다. 그런 그에게 목에 칼을 꽂더라도 맞서 싸우라고 말하는 채근으로 인해 민우는 당하고만 있지 않는다. 채근의 과거를 알기에 그의 행동을 이해하게 된 민우는 자신에게 주어진 것들을 쉽게 내어주지 않는다. 싸우기를 시도하며 결국 자신의 것을 지켜낸다. 과거에 대한 참회로 만들어진 채근의 현재 삶이 민우의 삶에 영향을 끼친 것이다. 
 
 <아들의 이름으로> 한 장면

<아들의 이름으로> 한 장면 ⓒ 엣나인필름

 
<아들의 이름으로>는 새로운 관점으로 1980년 5월 18일의 광주를 보게 한다. 매년 5월 18일은 돌아온다. 이날은 대한민국 모든 국민들에게 영향을 끼친 사건이 일어난 때이지만, 정작 우리는 쉽게 그걸 잊는 듯하다. 시대의 폭력을 합리화하는 논리는 희미해지는 기억을 먹고 자란다. 시민을 군홧발로 짓밟고 총칼로 위협했던 폭력의 정당성은 우리의 망각을 먹고 자라며 아득해지는 기억들이 만들어내는 왜곡 뒤에 숨어 끊임없이 폭력을 가한다. 우리는 여전히 처벌받지 않은 발포 책임자, '그 사람'이 가하는 폭력의 피해자이다.
 
영화 속 박기준(박근형 분)은 채근에게 "역사가 모든 것을 판단해 줄 거야"라고 말한다. 역사가 올바른 판단을 내려왔다면, <아들의 이름으로>라는 영화는 만들어지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우리는 어떤 역사를 써내려가며 어떠한 판단을 후대에 남기고 있는가를 묻게 된다.

<아들의 이름으로>라는 영화가 관객과 만나고, 우리가 영화를 통해 5‧18과 당시 시대를 끊임없이 반추하며 책임자 처벌을 요구한다는 사실은 지금껏 내려온 역사의 판단이 잘못됐음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다. 시대의 폭력은 여전히 존재하고, 그들이 만들어내는 왜곡은 끊임없이 잘못된 역사적 판단을 번식시킨다.

그럼에도 많은 관심을 받아 <아들의 이름으로>가 고발하는 잔존하는 시대의 폭력이 하루 빨리 뿌리 뽑히길 바란다. 
아들의 이름으로 안성기 영화 한국영화 518민주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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