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미얀마의 현재는 과거 한국 민주주의 투쟁의 역사와 다르지 않습니다. 수원 지역에서도 매주 일요일마다 미얀마 이주민들이 현지 상황을 알리는 선전전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수원시민단체 활동가들이 '밍글라바 미얀마 : 미얀마 이주민 인터뷰 프로젝트'를 기획했습니다. '밍글라바'는 미얀마어로 '안녕하세요'입니다. [편집자말]
"한국 사람들에게 뭔가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었어요. 미얀마에서는 한 번도 안 해봤어요. 피를 뽑는 게 처음에는 무서웠지만, 하고 나니 뿌듯해요."  

밋따아웅. 발음하기 낯선 이름만큼, 먼 미얀마에서 한국을 찾아온 사람. 그는 한국 사람들에게 감사한 마음을 전달하기 위해 헌혈을 한다. 헌혈을 계속하기 위해 좋아하던 술, 담배도 줄였단다. 무엇이 그에게 이런 마음을 품게 했을까.

"며칠 전부터 쿠데타가 일어날 거라 소문이 돌았지만, 실제로 그렇게 될지는 몰랐어요. 쿠데타가 일어났다는 이야기를 듣고 설마 했는데, 기사를 검색하니 사실이었어요. 닭살이 쭉 돋았어요. 아이와 가족들 생각이 먼저 났죠."

2월 1일 밋따아웅씨의 고국인 미얀마에서 군부에 의해 쿠데타가 일어났다. 시시각각 들려오는 쿠데타 진행 소식, 시민들의 저항 소식. 폭력진압과 수많은 사망자, 고문 등의 불안정한 상황에서, 밋따아웅씨는 할 수 있는 게 없어 답답하고 발만 동동 굴렀다. 미얀마에 있는 2살 난 아이와 가족들 걱정 때문이었다. 현지의 사정으로 인해 배우자와 아이는 현재 친척들이 있는 외곽지역으로 이동해 살고 있다. 하루 한 번 영상통화로 안부를 묻는다.

먼 타국에서 밋따아웅씨가 가족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미얀마 상황을 알리는 일이었다. 매주 일요일, 수원역에 나와 미얀마 상황을 알리는 시민 선전전에 함께하고 있다. 선전전에는 미얀마 민주주의를 알리기 위해 거리에 선 이주민들과 한국의 시민들이 참여한다.

코로나19 상황 때문에 일하는 곳의 사장님은 밖에 다니지 말라고 했다. 하지만 밋따아웅씨는 '내가 여기에서 할 수 있는 것은 이것밖에 없다'는 생각에 사장님 몰래 참여하고 있다. 일요일 시위에 참여하면 답답함도 어느 정도 사라지고, 마음을 잡고 일을 할 수 있었다. 밋따아웅씨는 함께하는 미얀마 이주민과 한국 시민들이 너무 고마웠다. 한국 시민들이 보여준 연대에 보답하고 싶다는 마음은 그를 헌혈로 이끌었다. 

이 특별한 헌혈시위는 4월 중순부터 시작됐다. 헌혈은 미얀마 민주화 투쟁에서 희생된 시민들에 대한 피 끓는 슬픔과 한국이 보내준 연대에 대한 감사의 마음을 상징하고 있다. 매주 일요일마다 미얀마 이주민들은 돌아가면서 헌혈에 동참하고 있다. 5월 9일에는 많은 이들의 참여로 수원역 헌혈의 집 저장고가 가득 찰 정도였다. 코로나19로 헌혈이 줄었다고 하는데 미얀마 시민들이 보내는 뜨거운 마음은 오히려 흘러넘치고 있었다.

밋따아웅씨의 꿈
 
헌혈에 동참한 미얀마 이주민들이 인증샷을 남겼다
 헌혈에 동참한 미얀마 이주민들이 인증샷을 남겼다
ⓒ 수원이주민센터

관련사진보기

 
밋따아웅씨는 한국에 거주한 지 8년이 되었다. 현재 송탄의 박스공장에서 인쇄 기계 만지는 일을 하고 있다. 다른 나라보다 이주노동자 대우가 좋다는 이야기에 한국을 선택했다는 그. 실제로 와 보니까 먹는 것, 오가는 것이 편하고, 가족들에게 돈을 보낼 수 있어 좋았다. 쉬는 날에는 공장 옆 비닐하우스 일을 돕는 아르바이트를 하고, 한국에 있는 미얀마 이주민들에게 미얀마 음식을 만들어 배송하는 아르바이트도 한다.

주5일 근무에, 아르바이트에, 쉬는 일요일에는 수원역 선전전까지. 그의 일주일은 빈틈이 없었다. 왜 이리 바쁘게 사냐 물으니, 그는 멋쩍게 웃으며, '가족들을 위해 조금이라도 더 일해야 한다'고 답했다. 미얀마의 가족들과 하루라도 빨리 함께하고 싶은 마음 때문이었다.

"아이 엄마가 병원 쪽에서 일하고 있는데, 5년 일하면 병원에서 임대하는 집을 분양받을 수 있어요. 쿠데타가 일어나면서 그 기회가 사라졌죠. 저의 꿈은 아내와 아이와 그 집에서 사는 것이었는데, 지금은 그 꿈이 다 망가졌어요. 집도 다시 알아봐야 하는 상황이에요. 가족들 보고 싶을 때, 미얀마에 2번 정도 갔었는데. 지금은 갈 수가 없어요. 올해 8월, 딸 생일에 갈 계획이었는데 무한정 미루어지고 있어요." 

군부의 쿠데타는 그가 가족들과 함께 사는 꿈에서 한 발 더 멀어지게 만들었다. 2살 딸 아이의 걱정 때문에 가족들은 쿠데타로 양곤을 떠날 수밖에 없었고, 부인은 하던 일도 그만두었다. 밋따아웅씨가 보내는 돈으로 생계를 유지하고 있는 형편이지만, 그마저도 쉽게 가족에게 전달되고 있지 않다.

최근 미얀마 은행의 현금인출 수수료가 2.5%에서 약 15%까지 치솟았기 때문이다. 현금인출도 쉽지 않아 현금인출기에 줄을 서는 등 경제적으로 불안정한 상황이다. 소소한 일상을 영유하는 것, 내일에 대한 꿈. 군부의 쿠데타는 당연하게만 여겼던 삶을 유예시키고 있다.

변하는 미얀마에 희망 느꼈지만
 
매주 일요일 수원역에서 미얀마 이주민들과 한국시민들이 선전전을 진행한다
 매주 일요일 수원역에서 미얀마 이주민들과 한국시민들이 선전전을 진행한다
ⓒ 수원이주민센터

관련사진보기

 
한국으로 이주하여 일한 지 8년. 밋따아웅씨는 낯선 타국에서 변해가는 미얀마를 접했다. 군부가 집권한 30년 동안 한다고 해놓고 하지 않던 일들이, 아웅산 수치가 집권하면서 달려졌다. 주변의 환경, 경제적 수준이 변하고 나라 구석구석이 좋아졌다. 밋따아웅씨는 변해가는 미얀마에 희망을 품었다.

"우리 딸은, 세뇌당하는 교육이 아니라 좋은 환경에서 자라고 교육받게 하고 싶어요. 지금 물러나면 옛날로 돌아갈 수밖에 없어요. 군부의 쿠데타를 절대로 용납할 수 없어요. 절대로 88시대처럼 당할 순 없어요. 군부는 잘하고 있다고 늘 언론에서 이야기하지만, 그건 거짓말이에요. 과거로 돌아가지 않기 위해 지금 싸워야 합니다."

달라진 시대에서 느꼈던 희망은 과거의 오류를 반복해서는 안 된다는 단호한 의지를 심어주었다. 다시 당할 수 없다는 마음이, 아이에게 군부의 교육을 받게 하고 싶지 않다는 마음이 먼 타국에서도 그를 저항으로 이끌고 있다. 이번 주에도 그는, 또다시 수원역에 설 것이다. 불안한 마음을 부여잡기 위해, 가족을 위해, 그리고 고국 미얀마를 위해.

한국의 시민들이 더 많이 밋따아웅씨의 곁에, 미얀마의 이주민의 곁에 함께 서주기를 바란다. 밋따아웅씨가 헌혈로 보여준 그 연대에 또다시 화답하기 위해. 

덧붙이는 글 | 이 글을 쓴 안은정 시민기자는 다산인권센터 상임활동가입니다.


태그:#미얀마, #헌혈, #민주주의
댓글

인권에는 양보가 없다는 마음으로 인권활동을 하는 단체입니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