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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건 카페에서 일하면서 느끼는 것은, 비건들은 참 유난이라는 것이다. 기본적으로 짐이 많다. 텀블러, 다회용기, 비닐봉투를 대체할 주머니까지 바리바리 챙겨다니는 손님들을 매일 같이 만난다. 나는 그 유난이 반갑다. 나 또한 유난스러운 비건이기 때문이다. 

나는 비건도넛(우유, 계란, 버터가 들어가지 않는 식물성 도넛)을 파는 카페에서 일한다. 비건노동의 진수는 가지각색의 '용기'를 만난다는 것이다. 일회용 포장재를 사용하지 않기 위해 다회용기를 직접 챙겨오는 손님들이 많은데, 평소에 생각지도 못했던 용기를 마주칠 때마다(미니밥솥에 비건도넛을 담아가는 등) 나의 상상력도 무궁무진해진다. 

이토록 다양한 '용기'라니 
 
한 번도 본 적 없는 용기를 만날 때마다 손님에게 허락을 받고 사진을 남겨둔다
▲ 가지각색의 개인용기 한 번도 본 적 없는 용기를 만날 때마다 손님에게 허락을 받고 사진을 남겨둔다
ⓒ 김소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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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스 음료를 주문하면서 목이 좁은 텀블러를 내미는 손님에게 "얼음이 안 들어갈 것 같은데요"라고 하면, 백이면 백 "얼음 많이 안 넣어주셔도 돼요"라는 대답이 돌아온다. 심지어는 "미지근하게 주셔도 돼요"라고 하는 손님도 있다. 그러면 나는 '아니, 시원한 음료를 구매하셨잖아요...'라고 생각하며 얼음통에서 작은 얼음만을 골라골라 넣어준다.

개인 용기를 들고 와서 도넛을 포장해 달라는 손님에게 "주문하신 만큼 넣기에 용기 크기가 아주 넉넉하지는 않아서, 뚜껑 닫을 때 도넛이 조금 눌릴 수 있을 것 같은데. 괜찮을까요?"라고 하면, 백이면 백 "막 찌그러져도 괜찮아요"라는 대답이 돌아온다. 그러면 나는 '예쁘게 만들으려고 애쓴 내가 괜찮지 않아요...'라고 생각하며 혼신을 다해 모양이 망가지지 않게 담아낸다.
 
한 번은 도저히 도넛 두 개가 들어가지 않을 것 같은 용기를 받아들고 순발력을 발휘해서 포장을 해드린 적이 있다. 도넛을 반으로 잘라서 무지개모양으로 겹쳐넣었다. 이 도넛은 선물용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받는 사람 또한 의문의 모양새로 들어있는 도넛을 불쾌해하지 않고 선물처럼 받아들 사람이겠지.
▲ 점점 더 늘어가는 포장능력 한 번은 도저히 도넛 두 개가 들어가지 않을 것 같은 용기를 받아들고 순발력을 발휘해서 포장을 해드린 적이 있다. 도넛을 반으로 잘라서 무지개모양으로 겹쳐넣었다. 이 도넛은 선물용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받는 사람 또한 의문의 모양새로 들어있는 도넛을 불쾌해하지 않고 선물처럼 받아들 사람이겠지.
ⓒ 김소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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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건(고기는 물론 해산물과 우유, 계란 등 동물성식품을 먹지 않는 것)이 되는 이유는 다양하다. 공장식축산의 끔찍한 환경에서 사육되는 동물들을 먹지 않겠다는 결심으로 시작하는 것이 대표적이다.

최근에는 육식산업에서 발생하는 온실가스가 전 세계 탄소배출의 15% 이상을 차지한다는 것(이 수치는 전세계의 모든 운송수단에서 발생하는 탄소배출보다 더 많은 양이다)을 알고 기후변화에 대응하는 실천으로써 채식을 시작하는 사람들도 점점 더 늘어가고 있다.

동물 착취를 줄이기 위해 채식을 하는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자연스러운 삶, 자연을 위하는 삶을 지향하기 때문에 환경에 관심이 많은 편이다. 제로웨이스트, 플라스틱프리는 비건들의 핫키워드이기도 하다. 무심코 쓴 일회용 빨대가 플라스틱으로 재활용되지 않고 바다를 돌고 돌아 거북이의 코에 박혀버리거나, 파도 안에서 잘게 부서져 미세플라스틱이라는 이름으로 우리 몸에 돌아온다는 것은 이미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그 때문인지, SNS에는 #빨대이제는뺄때 (음료를 주문할 때 빨대를 빼달라고 하는 캠페인) #용기내챌린지 (음식을 포장할 때 개인용기를 가져가서 일회용품 사용을 줄이는 캠페인) 등의 제로웨이스트 캠페인 해시태그가 점점 더 많이 보이고 있다.
 
내 카드에는 여성환경연대에서 제작한 제로웨이스트 멘트 스티커가 붙어있다. 같은 스티커가 붙어있는 카드를 만날 때마다 괜히 반갑다.
▲ "영수증은 필요하지 않습니다" 스티커가 붙어 있는 신용카드 내 카드에는 여성환경연대에서 제작한 제로웨이스트 멘트 스티커가 붙어있다. 같은 스티커가 붙어있는 카드를 만날 때마다 괜히 반갑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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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대는 안 주셔도 돼요' '텀블러에 담아주세요' '비닐봉투 안 주셔도 돼요' '영수증은 필요하지 않습니다'. 환경을 생각하는 사람들, 채식을 하는 사람들이 외식을 하면서 수없이 반복하게 되는 말들이다.

결국엔 위와 같은 문구가 스티커로 만들어졌고, 비건카페에서 일을 하다보면 신용카드에 이 스티커를 붙인 사람들을 자주 만나게 된다. 그러면 나는 굳이 "영수증 드릴까요?"라고 묻지 않는다. 이 스티커가 무엇인지 아니까. 나도 그 카드를 내미는 사람 중 한 명이니까.

불편을 감수해가면서 공생을 해보려는 사람들의 유난을 마주치면, 나는 곱절로 맞유난을 부리며 마음을 갚고 싶어진다. 그럴 때에 오고가는 눈빛과 미소를 좋아한다. 소설 <보건교사 안은영>의 주인공 안은영이 옆에 있었다면, 이 가게 안에 연대의 젤리들이 가득해지는 걸 볼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하나도 피곤하지가 않다
 
일회용 비닐봉투가 아니라 가방에서 꺼내든 보자기로 도넛박스를 싸간 손님. 보자기의 활약을 알게 된 날이다.
▲ "비닐봉투 대신 보자기에 가져갈게요" 일회용 비닐봉투가 아니라 가방에서 꺼내든 보자기로 도넛박스를 싸간 손님. 보자기의 활약을 알게 된 날이다.
ⓒ 김소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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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만난 유난은 분홍색 보자기. 도넛 두 박스를 묵직하게 구매한 손님에게 봉투가 필요하냐고 묻자, 대답 대신 보자기가 등장했다. 에코백 같은 것이었다면 상자가 가방 안 여유 공간에서 아무렇게나 움직이는 바람에 도넛 모양이 다칠 수 있을텐데, 보자기로 꽉 묶어버리니 모양이 흐트러질 염려가 없다.

게다가 손으로 쪽 잡아들기에 좋아서 들고 다니는 동안 수평을 맞추기도 좋겠다. 보자기는 멋을 내는 선물용 포장 재료로만 눈여겨보고 있었는데, 새로운 쓰임을 알게 되었다. 용기를 내는 손님들 덕에 나의 #용기내 상상력도 업그레이드 되고 있는 것이다.

내가 일하는 이 곳, 비건 도넛 가게의 최종 목표는 포장용박스를 더 이상 주문하지 않는 것이다. 플라스틱을 쓰지 않고, 코팅된 종이 패키지를 아예 생산하지 않는 것.  점점 더 늘어가는 #용기내 손님들을 보고 있자면, 그날이 머지않아 올 것만 같다.

개인용기를 가져오는 손님에게는 꼭 도넛 한 개를 더 넣어준다.

"용기내주셔서 고맙습니다." 
"일회용품 줄이는 것에 동참해주시는 것 감사해서, 도넛 하나를 서비스로 더 넣어드렸어요." 


날마다 생전 처음 보는 용기를 받아들고 도넛의 모양이 흐트러지지 않게 요리조리 계산해가며 담아내고 있다. 하나도 피곤하지가 않다. 내일은 또 어떤 용기를 만나게 될지 기대가 될 뿐이다.

이 맛에 비건노동 한다. 

태그:#비건노동, #비건노동일기, #제로웨이스트, #플라스틱프리, #용기내챌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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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택가족, 그리고 채식하는 삶에 관한 글을 주로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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