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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은 가진 자의 무기가 아니라 낮은 자를 위한 지혜가 되어야 한다." 평생을 실천하는 신앙인으로서, 의로운 인권변호사로서, 약자들의 벗으로서 한결같은 삶을 살다 2004년 선종하신 고 유현석 변호사님의 생전 말씀입니다. 유 변호사님은 70년대 남민전 사건, 80년대 광주항쟁, 90년대 강기훈 유서대필사건 등 굵직굵직한 변론으로 인권옹호와 사회정의 실천에 분투하셨습니다. 천주교인권위원회는 2009년 5월 유 변호사님의 5주기에 맞춰 유족이 고인의 뜻을 기리고자 출연한 기부금을 바탕으로 ‘유현석공익소송기금’을 출범시키고, 공익소송사건을 선정하여 지원하고 있습니다. 이 연재를 통해 기금의 지원을 받아 진행된 소송이 우리 사회에 남긴 변화를 되짚고자 합니다.[기자말]
"제가 지금 독방에 조사수용이 된 이유는 한두 달 전에 저희 장애인방에서 잠시 생활하다가 다른 교도소로 이감을 간 사람이 당시 저희 방에서 생활을 했을 때 긴 팔 티셔츠를 방 사람에게 입으라고 선물로 주고 갔는데 두 달이 지난 이제야 '그 옷을 갈취당했다'고 이곳 교도소로 진정 서신을 보내와서……." (수신 <목포 KBS> 보도국장)

"마약사범들은 교도소나 구치소에 들어와서 마약 방의 사람들이나 운동 시간에 일반인들에게 접촉해서 마약에 대한 투여를 해보라는 권유와 이로 인해 마약거래의 판로가 생기게 됩니다." (수신 <광주 MBC> 보도국장)

 
한 교도소 정문 사진.
 한 교도소 정문 사진.
ⓒ 사진공동취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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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9월로 시계를 돌려보려 한다. 당시 해남교도소 수용자 김아무개씨는, 광주교도소의 수감 당시 상황에 대해 편지 2통을 작성했다. 그 뒤 1통은 목포 KBS 보도국장을 상대로, 다른 1통은 광주 MBC 보도국장을 상대로 발송하기 위해 해남교도소에 제출했다.  

해남교도소는 이후 김씨가 제출한 각 편지를 개봉하여 검열한 뒤 '형의 집행 및 수용자의 처우에 관한 법률' 제43조 제5항 제4호 '수용자의 처우 또는 교정시설의 운영에 관하여 명백한 거짓사실을 포함하고 있는 때'에 해당한다고 판단해, 발송을 불허했다.

김씨가 목포 KBS 보도국장을 상대로 작성한 편지는 ▲수용자가 국가인권위원회 진정과 법무부장관 청원 등을 해도 증거를 확보할 수 없어 유야무야로 넘어가기가 다반사이고 ▲다른 교도소로 이송된 수용자가 자신으로부터 티셔츠를 갈취 당했다고 무고했으며 ▲이에 따른 보복성 검방 때문에 자신이 독방에 조사수용 되었다는 내용이었다(이후 김씨는 티셔츠를 갈취당했다고 주장한 수용자를 무고죄로 고발했고, 검사로부터 해당 수용자를 무고죄로 약식기소했다는 통지서를 받았다).

김씨가 광주 MBC 보도국장을 상대로 작성한 편지는 '마약사범이 일반사범과 접촉할 수 없도록 분리 수용해야 한다'는 취지의 내용이었다. 실제로 당시 언론은 마약사범이 일반 수용자를 이용해 필로폰을 반입한 사건, 정신과 의사가 수감 중인 마약사범에게 향정신성 의약품을 제공한 사건, 마약사범이 형사재판을 받으면서 공범과 수학 문제 형식의 암호문을 주고받은 사건 등을 보도하기도 했다. 김씨는 이런 기사를 바탕으로, 수감 생활 경험과 생각을 정리하여 마약사범-일반사범의 접촉을 막고 분리 수용해야 한다는 의견을 피력한 것이었다.

법원 "판단 쉽지 않으나... 교도소 측 행위, 고의·과실 증거 없다"

약 1년 뒤. 2014년 4월 김씨는, 자신이 편지에 작성한 내용이 수용자의 처우 또는 교정시설의 운영에 관하여 '명백한 거짓사실'을 포함하고 있지 않은데도, 당시 해남교도소가 서신발송을 불허한 조치는 위법이라면서 국가를 상대로 200만 원 위자료를 청구하는 소송을 제기했다.

같은 해 12월 18일, 서울중앙지방법원 민사7단독(우광택 판사)은 김씨가 목포 KBS 보도국장을 상대로 작성한 편지에 대해서는 명백한 거짓 사실이라고 볼 수 없으므로 해남교도소의 서신발송 불허조치는 위법하다고 인정, 위자료를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반면, 김씨가 광주 MBC 보도국장을 상대로 작성한 편지에 대해서는 "원고(김씨)는 교도소 안에서 마약이 유통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라고 기재하였으나, 이 부분은 명백한 거짓 사실에 해당한다고 할 것이고, 피고(교도소)가 이를 이유로 위 편지의 발송을 불허한 것은 정당하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위 사건 항소심에서 서울중앙지방법원 제5민사부(재판장 박이규)는 원심을 취소하고 김씨의 청구를 기각했다. 재판부는 "편지들에 발송금지 사유가 존재하는지를 판단하는 것은 쉽지 않는 듯하다"면서도, "발신 금지처분이 결과적으로 위법한 것으로 밝혀진다고 하더라도, 바로 그 처분행위가 원고에 대한 불법행위에 해당한다고 볼 수는 없다. 불법행위가 성립하려면 그 처분행위에 고의 또는 과실이 있다고 볼 사정까지 입증되어야 하기 때문"이라며 "서신 발송 불허행위와 관련하여 그 고의, 과실을 인정할 증거가 없다"고 판단했다.

김씨는 이에 불복했다. "원심은 편지가 명백한 거짓사실인지 여부에 대해 어떠한 판단도 하지 않았다", "아예 존재하지 않는 사실을 기재한 것이라면 명백하다고 할 수 있으나 기왕에 발생한 사실에 대하여 해남교도소와 그 수용자가 평가를 달리하는 것이라면, 이는 명백한 거짓 사실이라고 할 수 없다"며 그는 상고했다.

그러나 2015년 12월, 대법원 제2부(주심 이상훈 대법관)는 그의 불복이 소액사건심판법에서 정한 상고이유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기각했다. 참고로, 소가가 3000만 원(당시는 2000만 원) 이하인 소액사건은 다른 사건과는 달리 "법률의 헌법위반여부에 대한 판단이 부당한 때" 등에만 상고를 허용하고 있다.

김씨의 편지에 다소 부정확하거나 감정적 또는 과장된 표현이 있었다고 하더라도, 김씨의 주장이 사실인지 여부를 확인하는 주체는 해남교도소가 아니라 편지를 받은 방송국이 되는 것이 바람직하다. 방송국은 편지를 토대로 취재한 결과 '거짓'이면 아예 방송을 하지 않을 것이고, 김씨 편지는 그대로 묻히고 말 일이다.

교도소가 먼저 편지 열어본 뒤 판단한 것, 자의적 해석 아닌가

그럼에도 해남교도소가 김씨의 편지를 개봉하여 살펴본 후 '거짓'이라고 단정을 짓고 편지 발송 자체를 가로막은 것은, 진실을 은폐하는 방법이 될 수 있다. 교정시설을 운영하는 자들이 외부에 밝히고 싶지 않은 사실이 있을 때 편의에 따라서 '거짓이 명백하다'고 자의적으로 평가하고 발신을 불허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 교도소 측의 자의적 해석에 따른 서신발송 불허조치는 수용자의 표현의 자유와 통신의 자유를 심각하게 침해하는 결과를 낳는다.

그런데 법원이 내용상 발송금지 사유가 명백하지 않은 편지 발송을 불허한 해남교도소에 대한 법적 책임을 부과하지 않고 문제가 없다고 본 것은, 교정시설에 만연한 서신 발송 금지 조치에 면죄부를 부여한 것이나 마찬가지다.

김씨는 포기하지 않았다. 그는 2015년 1월 해남교도소의 서신발송 불허조치의 근거가 된 '형의 집행 및 수용자의 처우에 관한 법률' 제43조 제5항 제4호 '수용자의 처우 또는 교정시설의 운영에 관하여 명백한 거짓사실을 포함하고 있는 때'가 위헌이라고 주장하면서 헌법소원을 청구했다. 법률 자체가 권리를 침해한다는 주장이었다.
 
김씨는?2015년 1월 헌법재판소에 헌법소원을 청구했으나 각하됐다.?사진은 지난 2월 헌법재판소장 등 헌법재판관들이 대심판정에 착석해 있는 모습.
 김씨는?2015년 1월 헌법재판소에 헌법소원을 청구했으나 각하됐다.?사진은 지난 2월 헌법재판소장 등 헌법재판관들이 대심판정에 착석해 있는 모습.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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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헌법재판소는 각하했다. "청구인의 서신이 이 사건 법률조항에서 발신을 금지하는 서신에 해당한다면 해남교도소장은 단순히 이 사건 법률조항에 따라 서신의 발신을 금지한 것이어서 이에 관여한 공무원에게 고의 또는 과실이 있다 할 수 없으므로, 국가의 청구인에 대한 손해배상책임이 성립한다고 볼 수 없다", "위헌 여부에 따라 당해사건 재판의 주문이 달라지거나 재판의 내용과 효력에 관한 법률적 의미가 달라지는 경우에 해당한다고 할 수 없"다며 재판의 전제성 요건을 갖추지 못했다는 이유였다.

헌법재판소는, 해남교도소가 법률조항에 따라 서신 발신을 금지한 것이라면 자신이 그 법률조항을 위헌으로 판단하더라도 담당공무원에게 책임을 물을 수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시간 지나면 바뀌기도 하는 개념... '거짓사실'인지 여부는 누가 판단하나

2010년 헌법재판소는 "공익을 해할 목적으로 전기통신설비에 의하여 공연히 허위의 통신을 한 자"를 처벌하는 전기통신기본법 제47조 제1항에 대한 위헌소원(이른바 '미네르바 사건')에서 '공익을 해할 목적' 부분이 죄형법정주의의 명확성 원칙에 위배된다고 판단했다. 그리고 이 당시 재판관 5인은 '허위의 통신' 부분도 과잉금지원칙에 위배된다는 보충의견을 냈다.

재판관들은 "어떤 표현이나 정보의 가치 유무, 해악성 유무가 국가에 의하여 1차적으로 재단되어서는 아니되며, 이는 시민사회의 자기교정기능과 사상과 의견의 경쟁메커니즘에 맡겨져야 한다. 세계적인 입법례를 살펴보아도 허위사실의 유포를 그 자체만으로 처벌하는 민주국가의 사례는 현재 찾아보기 힘들다"고 지적했다(헌법재판소 2010. 12. 28. 선고 2008헌바157, 2009헌바88(병합) 결정).

이 사건으로 돌아오면 결국 '명백한 거짓사실' 여부를 누가 판단하느냐가 중요하다. '거짓'이라는 것은 누가 판단하는지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 매우 추상적인 개념이기 때문이다. 어떤 표현에서는 '의견'과 '사실'을 구별하는 것이 어렵고, 객관적인 '진실'과 '거짓'을 구별하는 것 역시 어렵다. 지금은 '거짓'으로 인식되지만, 시간이 지난 후에 그 판단이 뒤바뀌는 경우도 있을 수 있다.

더구나 '명백한 거짓사실'이라는 추상적 규정과 그 법률에 근거한 발송 불허조치는 책임을 물을 수 없다는 법원 논리가 합쳐지면, 서신 내용에 '수용자의 처우 또는 교정시설의 운영'에 관여하는 사람들이 외부로 알리고 싶지 않거나 불편한 내용이 있을 때마다 자의적으로 해석될 여지가 있다. 특히 수용자들은, 처우 또는 교정시설 운영에 대한 언급만으로도 통신이 불허될 수 있다는 두려움 때문에 자기검열을 하고 아예 언급하지 않게 된다. 이것이 심화되면, 외부와 단절되어 있는 교정시설 내에서 심각한 기본권 침해 상태가 방치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사건 3년 뒤 국가인권위 "언론사에 보냈단 이유로 검열하는 건 헌법자유 침해"

2018년 8월 국가인권위는 "서신의 수신처가 언론사라는 이유로 교정시설이 서신을 검열해 발송을 불허하고, 서신 내용을 문제 삼아 징벌한 것은 헌법이 보장하는 신체의 자유와 통신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이라며 법무부 장관에게 재발 방지를 위해 서신 업무 담당자 등에게 사례를 전파하고 해당 구치소에는 징벌 의결을 취소할 것을 권고했다(18-진정-0214100. 참고로, 이 사건은 필자가 수임하거나 '유현석공익소송기금'의 지원을 받은 사건은 아니다).

해당 편지에 '시설의 안전 또는 질서를 해칠 우려'가 있다는 구치소 측 주장에 대해, 국가인권위는 "서신이 언론사로 보내져서 기사화되는 등 수용시설 내부의 일이 외부로 알려지는 것 자체가 시설의 안전이나 질서를 해치는 행위라는 인식에 기반을 둔 것으로 판단된다. 그러나 언론사는 모든 제보를 무조건 기사화하는 것이 아니라, 내용의 신빙성과 뉴스 가치를 판단하고, 사실관계 등 취재 과정을 거쳐 기사화하는 것이므로, 그 취재 과정에서…(구치소 측이) 사실관계를 바로 잡는 것이 얼마든지 가능할 뿐 아니라, 그러한 대응 과정도 (구치소 측의) 직무상 필요한 업무로서 서신의 불허 사유가 될 수는 없다"고 판단했다.
  
국가인권위원회
 국가인권위원회
ⓒ 더인디고 이호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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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의미에서 법원의 판단이 다소 아쉽다. 김씨 사건에서, 앞서 법원이 국가인권위와 같은 입장을 견지하면서 해남교도소의 서신발송 불허조치가 위법하다고 판단했다면 어땠을까.

그렇다면 법원 판결이 토대가 되어, 향후 서신을 검열하면서 '명백한 거짓사실'을 판단하는 기준에 대해 보다 활발한 논의가 이루어져서 인권의 사각지대에 있을 수 있는 수용자들이 최소한의 기본권을 보장받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더 나아가 '명백한 거짓사실'이라는, 다소 추상적 규정에 대한 개정 논의가 본격화되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운 마음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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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글쓴이는 허윤정 변호사(천주교인권위원회 이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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