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06.01 07:35최종 업데이트 21.06.01 07: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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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회찬이 우리 곁을 떠난지도 어언 3년이 흘렀다. 그의 3주기에 즈음하여 노회찬 재단은 오마이뉴스와 함께 공동기획으로, 4월 16일부터 매주 화요일과 금요일에 [우리시대 '6411투명인간'과 '약자들의 벗 노회찬'의 정치실천: 기록으로 기억하다] 기록 연재를 시작한다.[편집자말]
(*지난 기사 [6411 투명인간과 약자들의 벗 노회찬] 장애인과 노회찬 ①에서 이어집니다.)
 

2007년 3월 6일 국회 본회의장에서 휠체어를 탄 장애인들이 2월 임시국회 마지막 본회의를 참관, 장애인차별금지법 처리를 기다리고 있는 모습. ⓒ 연합뉴스

 
4월 20일 '장애인의 날'을 '장애인차별철폐의 날'로

지난 기사에서 언급한 것처럼 2007년 4월 11일 '장애인차별금지 및 권리구제 등에 관한 법률'(장애인차별금지법)이 제정되는 데 노회찬은 큰 역할을 했다. 그렇지만 장애인 차별 금지 및 철폐에 대한 활동을 노회찬(민주노동당 국회의원)은 멈출 수가 없었다. 

장차법 제정 며칠 뒤인 4월 20일 노회찬은 '장애인의 날 민주노동당 결의대회'에 참석한 뒤 '장애인 차별 철폐!' 본대회에 참석했다. 4월 26일 서울역 광장에서 '제3회 전국장애인대회'가 420공동투쟁단의 주최로 개최됐다. 420장애인차별철폐공동투쟁단(420공동투쟁단)은 4월 20일 장애인의 날을 시혜와 동정의 잔치라고 비난하며, '장애인차별철폐의 날'로 만들기 위해 꾸려진 조직이었다.
 

2007년 4월 26일 서울역 광장에서 '제3회 전국장애인대회'가 420공동투쟁단의 주최로 열린 가운데(사진 왼쪽), 노회찬이 발언하고 있는 모습(오른쪽). ⓒ 노회찬재단

  
연단에 오른 노회찬은 "장애인들이 몸을 던져 싸운 장차법이 간신히 국회를 통과했으나 애매모호한 조항으로 가득 차 있다. 국무총리 산하에 시정위원회가 설치되지 못한 것이나, 징벌적 손해배상 청구가 삽입되지 못한 것은 그 단적인 예"라고 말하며 이렇게 연대발언을 이어갔다(장애인, 국민 맞는가?, <복지타임즈>, 2007.3.26.).

"정부가 장애인을 국민으로 여기지 않는다. 장애인의 기본권 쟁취를 위해 앞장서겠다. 장애인이 국민인가. 헌법에 보장된 기본권을 누리지 못하는 장애인은 아직 국민이 아니므로 장애운동은 장애인도 국민이라는 선언이며, 기본권이라는 인권을 투쟁으로 획득하는 운동이다. 민주노동당도 내부로부터의 장애인 차별금지에 앞장서 가고 있다. 앞으로 더욱 적극적으로 장애인 제도개선에 앞장서 나갈 것이다." 


2008년 4월 20일 오후 서울 광화문 세종문화회관 앞. '장애인의 날'을 맞아 개최된 '장애인차별철폐투쟁결의대회' 현장에서는 "우리는 인간이라면 누구나 가질 수 있는 기본적인 권리, 더도 아니고 덜도 아닌 인간의 기본권을 원한다"고 외치는 목소리가 울려퍼졌다. 노회찬도 강조한 것처럼 장애인권은 "시혜로 얻는 것이 아닌 쟁취해야 하는 권리"라는 것이었다.

이날 행사를 주최한 420공동투쟁단은 ▲장애인연금제도 즉각 도입 ▲사회복지사업법 개정과 탈시설권리 보장 ▲성(性)인지적 관점의 장애여성 정책 수립 ▲장애인의 방송통신 접근권 보장 ▲희귀난치병 장애인의 권리 보장하는 특별법 제정 ▲장애인을 위한 보조기기 지원체계 마련 등 10대 요구를 발표하며 대책 마련을 촉구했다.

행사 시작과 함께 시설비리를 규탄하고 탈시설 권리를 주장하는 석암재단 베데스다 요양원의 장애인 11명의 삭발식이 진행됐다. '탈시설 권리'는 장애인들이 외딴 시설에 격리돼 사람들로부터 고립, 무시되고 있는 상황을 비판하며 시설이 아닌 지역사회 내에 장애인 마을을 조성할 것을 요구하며 내놓은 슬로건이다.

이들은 "장애인의 몸으로 보여줄 수 있는 것은 삭발밖에 없다"며 "이 삭발이 아무런 의미 없는 것이 되지 않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20여 분에 걸쳐 삭발식이 진행되는 동안 그들은 침통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일부는 끝내 울음을 참지 못하고 눈물을 보이기도 했다. 
 

2008년 4월 20일 ‘장애인의 날’을 맞아 개최된 ‘장애인차별철폐투쟁결의대회’. 현장에서 거행된 삭발식의 모습. ⓒ 노회찬재단

  

2008년 4월 20일 ‘장애인의 날’을 맞아 개최된 ‘장애인차별철폐투쟁결의대회’에서 발언하고 있는 노회찬. ⓒ 노회찬재단

 
이를 지켜본 노회찬(진보신당 상임대표)는 "총선에 패배했을 때조차 흘리지 않았던 눈물인데 오늘 삭발식을 보니 목줄기를 타고 눈물이 흐른다"고 말했다.

그는 4월 11일 시행되기 시작한 '장애인차별금지법'에 대해서도 "예외적 차별을 인정하고 있고 실질적인 보장이 미약하다"며 "오히려 장애인차별금지법을 장례 치르고 있는 수준"이라고 비판했다(양진비 기자, 노회찬 "총선 때도 흘리지 않았던 눈물이…": [현장]"장애인의 날? '장애인 차별철폐의 날'!", <프레시안>, 2008.4.21.).

"저는 늘 여러분 곁에서 여러분들과 고락을 함께하겠습니다"

노회찬은 시간이 허락하는 한 간담회·토론회·신년 인사회·이취임식 등 각종 행사에 참석해 장애인들과 희로애락을 함께 나눴다. 몇몇 예를 들면 이렇다.

- 2005년 12월 6일 장추련 간담회
- 2006년 02월 23일 장추련과 함께 장차법 제정 촉구 기자회견 
- 2006년 09월 18일 '사례를 통해본 실효성 있는 장애인차별 해소방안에 관한 토론회'
- 2007년 03월 26일 '제3회 전국장애인대회' 인사말
- 2007년 06월 29일 '제3회 장애인정치학교 초청 강연'
- 2007년 07월 30일 '장애인 차별철폐와 교육권 확보 대전공대위 단식농성장' 지지 방문
- 2008년 04월 21일 '서울시청 장애인 행사' 참석
- 2008년 07월 02일 '시각장애인 안마업권 보장 합헌촉구 범장애인계 결의대회' 참석
- 2010년 02월 01일 '전국장애인부모연대 신년인사회' 인사말
- 2012년 04월 18일 '노원구 장애인체육회 현판식' 축사
- 2012년 09월 14일 '노원구 장애인 한마음축제' 참석
- 2012년 10월 27일 '제4회 서울장애인 보치아대회' 참석
- 2012년 10월 30일 '장애해방운동가 고 김주영 동지 장례식' 참석
- 2016년 10월 25일 '중증장애인 간담회'
- 2017년 09월 27일 '경남 장애인 권익옹호기관 개관식' 참석
- 2018년 04월 25일 시각장애인연합회 면담


2018년 5월 3일 국회 헌정기념관 대강당. '(사)한국시각장애인연합회 회장 이취임식에 참석한 노회찬은 홍성봉 신임 회장과 연합회의 일보전진을 진심으로 기원한다면서 공동주최자로서 축사를 했다. 

"아시다시피 2004년 이후로 시각장애인연합회와 인연을 맺은 이유로 늘 가까운 친구처럼 서로 의지하며 지내왔다고 생각하는데 맞습니까. … 사실 우리나라가 무역규모로 전세계 10위, GDP 규모로 전세계 12위, 13위를 기록하고 있는 이제 선진국 대열을 눈앞에 둔 나라임을 우리가 다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진정 우리 모두가 바라는 선진국으로 되기 위해서 넘어야 할 강이 있다면 장애인에 대한 각종 차별의 강입니다.

… 지난 17대 국회에서 장애인차별금지법을 만들 때 저도 함께 했었지만 그러나 그 법은 여전히 부족한 점이 대단히 많습니다. 그리고 현실을 둘러보면 더 그렇습니다. 특히 시각장애인, 청각장애인, 지체장애인도 마찬가지겠습니다만 오늘 이 자리에 참여하신 많은 분들의 현실을 보면 교육, 취업, 고용, 이동에 있어서나 아직 우리가 선진국으로 가기 위해서 넘어야 할 지점들이 많습니다.

그런 점에서 시각장애인의 역사 자체가 아직까지는 투쟁의 역사였습니다. 이제 12년 지났습니까. 저는 아직도 2006년 헌법재판소 판결 이후로 한강다리에 투신하던 그 광경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국가인권위원회 옥상에 올라가서 절규하던 그 모습도 아직도 뇌리에 새겨있습니다. 이런 중차대한 항의들이 단순히 당사자들만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사회가 제대로 된 선진복지국가로 나가는 진통이라고 여깁니다. … 저는 늘 여러분 곁에서 여러분들과 고락을 함께 하겠습니다. 여러분들의 무궁한 번성과 협회의 발전을 기원합니다."


"저는 늘 여러분 곁에서 여러분들과 고락을 함께 하겠습니다"던 노회찬이 떠난 뒤에도 4월 20일 장애인차별철폐의 날 행사는 계속됐다. 
 

2020년 4월 20일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활동가들이 집단수용 장애인 거주시설 폐쇄와 장애등급제 폐지 등 요구사항을 적은 피켓을 목에 걸고 광화문 광장을 출발해 대학로 방향으로 행진하고 있다. ⓒ 연합뉴스

 
2020년 4월 20일 서울 혜화동 마로니에 공원. '제19회 420장애인차별철폐 투쟁 결의대회'가 열리고 참석자들은 한 목소리로 외쳤다. 

"4월 20일은 장애인의 날이 아니라 장애인 차별 철폐의 날입니다! 365일 장애인의 인권이 보장되는 날이 돼야 합니다!"

박경석(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대표)은 "박능후 복지부장관이 농성장에서 부양의무제 완전 폐지를 약속했지만 발표된 보도 자료에는 제대로 된 언급이 없었다. 문재인 정부가 5개 분야별 추진계획을 발표했지만 탈시설의 내용은 단 한 마디도 없었다. 이들은 탈시설이라는 용어조차 법률적으로 담아내기 두려워하고 있다"라면서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다.

강은미, 배진교, 장혜영, 이은주 등 21대 총선 정의당 당선자 네 명과 정의당 김종민 부대표가 함께했다. 장혜영은 "장애가 있다는 이유로 동생이 시설에 보내졌을 때 나는 비장애인이고 너는 장애인이라 우리 인생이 다른 건 어쩔 수 없는 것 아니냐고 생각해왔다. 그런데 여러분들이 그건 틀린 것이라고 알려줬다"며 "동생과 함께 탈시설을 하고 나니 이것이 내 가족과 동생만의 행운이면 안 되기 때문에 모든 사람들의 권리를 되찾기 위해 정치를 시작했다"면서 장애인 단체와 함께 투쟁하겠다는 의지를 강하게 밝혔다. 

김종민은 "거대 여당에 거는 기대가 크다. 거대 여당의 탄생이 불평등 차별철폐를 향한 새로운 투쟁의 시작이 될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다. 정의당은 여러분들이 원했던 적폐에 대한 투쟁에 앞서고 장애등급제, 부양의무제, 시설 완전 폐지를 이루고 장애인 최저임금을 위한 노동권 쟁취 투쟁에 함께 나서겠다"며 말했다.

만약 노회찬이 이 자리에 섰다면 연대사로 어떤 말을 했을까? "저는 늘 여러분 곁에서 여러분들과 고락을 함께 하겠습니다"는 말에 이어서 아마도 이런 말이지 않을까 싶다.

"사실 우리 장애인들의 처지 문제는 시혜와 복지가 아닌 인간으로 침해당할 수 없는 기본적인 인권의 문제입니다. 복지 문제 이전에 모든 우리 국민들에게 보장되는 기본권이 장애인에게 보장되기 위해서는 더 각별한 배려와 노력, 투자가 필요합니다."

2007년 3월 16일 노회찬이 받은 장애인차별금지법제정추진연대의 감사패에는 이런 내용이 적혀 있었다. 
 

2007년 3월 16일 노회찬이 받은 장애인차별금지법제정추진연대의 감사패. ⓒ 노회찬재단

 
"귀하는 평소에 장애인 복지·인권 향상에 지대한 공헌을 하였을 뿐만 아니라 특히 장애인차별금지법 제정 활동에 남다른 애정을 가지고 법제정에 이바지한 바가 크므로 이에 귀하의 업적을 오래 기억하고 그 동안의 노고에 감사하는 마음을 이 패에 담아 드립니다."

경남장애인자립생활센터협의회의 추모사(2018.7.24.)로 '장애인과 노회찬' 기록 이야기를 마친다.

"고인은 장애인차별금지법을 대표 발의한 분으로 장애인의 인간으로의 권리를 쟁취하고, 대한민국 사회에 만연한 장애인차별에 대해 장애인 당사자와 함께 저항하고 싸웠던 분입니다. 고인은 살아오면서 사회적 약자들, 차별받는 사람들의 편에 함께했습니다. 그들의 편에서 힘이 되려 했고 목소리를 내는 일에 함께하였습니다. 그것이 그분의 정치였고, 이 세상의 희망이라는 것을 스스로 실천하며 보여주었습니다."

기록 연재 | 조현연 노회찬재단 특임이사

(* 다음 기사 '성소수자와 노회찬'은 6월 4일에 게재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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