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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주변의 원룸은 장애 여부와 관계없이 모든 사람이 편안하게 살아갈 수 있는 집일까? 사람이면 누구나 여러 가지 이유로 신체가 불편해지는 상황을 맞이하게 된다. 태어날 때부터 그럴 수도 있고, 사고가 발생하거나 노인이 되어서 후천적으로 신체가 달라질 수 있다.

지금 당장 내 몸 누울 따뜻한 보금자리를 구하는 것이 고된 일인 한국 사회지만, 열악한 주거 현실은 사회적 약자에게 더욱 치명적으로 다가온다. 높은 부동산 가격, 판박이처럼 나오는 설계, 넓지 않은 공간적 제약으로 인해 대부분 민간 전월세방들은 엘리베이터가 없어서 휠체어 사용자가 진입조차 불가하거나 집 안에서 제대로 이동조차 할 수 없고, 화장실도 편하게 사용하기 어렵다.

문턱이 없는 집
 
유니버설 수유 실내외 전경
 유니버설 수유 실내외 전경
ⓒ 유니버설하우징협동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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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 등을 비롯한 주거약자에 대한 사명에서 출발했고, 차별 없이 함께 살 수 있는 소셜믹스와 유니버설 디자인 프로토타입을 염두에 두고 사회주택 사업에 진입했습니다."

유니버설하우징협동조합(아래 조합)의 시작은 사회주택 사업을 하겠다는 목적 이전에, 장애인에게도 진입장벽이 낮은 집을 고민하면서부터였다. 조합의 모태가 되었던 사단법인 한국장애인인권포럼(2004년 설립)은 비장애인과 장애인의 구분 없이 모든 사람이 웹사이트를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어야 한다는 이야기를 시작하며 사회적기업 '웹와치'(대표 이범재) 운영으로 이어졌다.

2007년 장애인 차별금지 및 권리구제 등에 관한 법률에 '정보접근권과 정보접근에서의 편의제공의무'가 명문화되는 성과에도 큰 기여를 했다. 그리고 웹접근성을 넘어 주택에 있어서 문턱까지 낮추기 위한 역할을 자임하게 됐고, 목표 및 취지에 가장 부합하는 사회주택 사업을 도전하게 된 것이다.

조합은 주택 설계에 있어서, '유니버설 디자인' 적용을 원칙으로 하고 있다. 개념이 어려울 수 있어 몇 가지 예시를 들어 보겠다. 화장실, 현관, 방문 등을 유심히 보면 문턱이 있는 집이 대다수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크게 신경을 안 쓰며 살지만, 휠체어로 방을 돌아다니다 보면 문턱은 어느 순간에 큰 장벽이 된다.

또한 똑같은 평수가 주어진다면 보통은 화장실 크기를 줄이고 방의 크기를 키워서, 세입자들에게 좀 더 매력적인 방처럼 보이고자 노력하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하지만 신체가 불편한 사람들은 적정 공간이 주어지지 않으면 화장실을 이용하기 매우 어렵다. 

'유니버설 디자인'은 이처럼 성별, 연령, 국적, 문화적 배경, 장애의 유무에도 상관없이 누구나 손쉽게 쓸 수 있는 제품 및 사용 환경을 만드는 디자인이다. 인권 감수성이 높아지며 유니버설 디자인 일상에서 익숙해진 시대이지만, 주택에서만큼은 너무나 먼 이야기이다.

같은 평수의 집을 짓더라도 유니버설 디자인이 훨씬 더 많은 건축비를 지출해야 하기 때문에, 영리를 목적으로 하는 사업자들은 선뜻 시도하지 않는다. 누군가에게는 접근조차 어려운 '집'이 우후죽순 늘어나는 안타까운 상황에서, 유니버설하우징협동조합의 시도는 매우 반갑다.

모두를 위한 디자인
 
유니버설 화곡 탐방
 유니버설 화곡 탐방
ⓒ 유니버설하우징협동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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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급을 총괄하고 있는 심상득 이사는 "약자를 위한 디자인은 곧 모두를 위한 디자인"이라고 말하면서, 장애인의 접근성을 높이기 위한 설계이지만 결국 모두가 편하게 이용할 수 있는 결과로 이어진다며 유니버설 디자인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특히 시설처럼 사회적 약자만 모아놓은 공간은 오히려 게토(ghetto)화만 되는 부작용이 있기 때문에, 장애인이든 비장애인이든 함께 어울려 사는 '소셜믹스'를 이루는 것이 조합의 특징이라고 강조했다.

실제 조합은 2016년 9월에 설립된 이후, 현재 서울 화곡, 수유, 창동, 망우, 수락까지 총 5개 사업지 약130호 규모의 사회주택 시행 및 운영을 하며, '유니버설 디자인'과 '소셜믹스'를 구현하고 있다. 청년, 서민, 무주택자, 장애인, 고령자 등 이동·주거약자들이 입주하여 조합이 의도한 설계대로 편리하게 생활을 하고 있으며, 사회주택의 주된 특징인 저렴한 가격으로 주거비 부담까지 완화하고 있다.

조합은 앞으로 주택의 설계적 차원뿐만 아니라, 운영 프로그램 개발에도 집중할 계획이다. 심 이사는 "향후 인구구조와 수요를 고려한 생활서비스 및 건강 프로그램 개발에 집중할 예정이다"고 밝히며 현재 조합의 방향은 실버세대가 급증하는 미래의 고령화 사회 주택에 있어서도 좋은 대안이 될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하고 있다.

"사업자는 99.99....%, 공공은 0.00.....1%의 리스크를 부담합니다."

물론 일반 영리 사업자와는 달리 유니버설 디자인을 적용한 주택 공급은 너무나 많은 비용이 지출되기 때문에 사업성 측면에서는 확장의 한계를 지니는 아쉬움도 있다. 특히 공익적 목적으로 추진되는 사회주택 사업인 만큼 공공의 역할이 중요하지만, 현재의 거버넌스 구조에서는 책임감 있는 모습을 보이지 않고 있다고 한다.
 
유니버설 현장 인터뷰 사진. 심상득 이사(왼편)와 윤창섭 한국사회주택협회 매니저(오른쪽).
 유니버설 현장 인터뷰 사진. 심상득 이사(왼편)와 윤창섭 한국사회주택협회 매니저(오른쪽).
ⓒ 유니버설하우징협동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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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 이사는 "주택을 공급할 토지를 잘 찾아서 협업을 시작하면, 사업을 구성하는 기관들(서울시, 서울주택도시공사, 리츠, 주택도시보증공사 등) 사이의 입장 차이로 금융상품이용이 몇 개월 혹은 몇 년동안 미뤄지는 경우가 있다"며 "사업자 입장에서 모든 불확정성과 리스크를 짊어지게 되는 반면, 공공의 땅값은 지속적으로 올라가니 이득만 본다"며 아쉬움을 드러냈다.

높은 비용으로 사업성이 잘 나오지는 않고, 행정의 칸막이식 관행의 한계를 경험하면서도, 유니버설하우징협동조합은 누구나 편하게 살아갈 수 있는 집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사람이라면 언젠가는 신체가 불편한 순간이 오고야 만다. 특히 저출생 및 고령화 시대는 피할 수 없는 미래이다. 집은 사람에게 없어서는 안 되는 꼭 필요한 공간인 만큼, 누군가는 시대적 변화에 대한 준비를 시작해야만 했다. 미련해 보일 수 있는 조합의 도전이 그저 반가울 뿐이다.

태그:#다채로운임대주택, #유니버설하우징협동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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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입자, 1인가구, 비전형노동의 한복판에 있는 청년이자, 사회주택을 짓고 운영하고 살기도 하는 주거 덕후이다. 세상이 조금이나마 나아지길 바라며, 시민의 힘을 키우는데 관심을 가지고 산다. 현재 국무조정실 청년정책조정위원, 한국사회주택협회 이사장, 민달팽이주택협동조합 이사, 한빛미디어노동인권센터 이사 등 청년, 주거, 노동 영역에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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