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체 스포츠인 농구에서 포지션별 밸런스는 무척 중요하다. 구성 여부에 따라 전혀 다른 결과가 발생한다. 이름값 있는 선수를 모아 놓았음에도 오합지졸로 전락하기도 하고, 큰 기대를 안 했던 선수들이 뭉쳐 대형사고를 치기도 하는 등 각자의 톱니바퀴가 어떻게 돌아가느냐에 따라 희비가 엇갈리기 일쑤다.

'농구 황제' 마이클 조던이 이끌던 시절의 시카고 불스는 NBA(미 프로농구) 역대 최강팀 중 하나로 꼽힌다. 조던과 그의 조력자 스코티 피펜이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엄청난 팀임은 분명하겠지만 베스트5 면면을 뜯어보면 그렇지도 않다.

농구에서 포지션을 짤 때 가장 큰 핵심으로 불리는 1번, 5번의 경쟁력이 정상권을 노리는 팀치고는 많이 부족했다. 선수 구성원은 조금씩 달랐지만 1차 3연패, 2차 3연패 시절 모두 비슷했다. 그나마 4번 파워포워드 포지션에는 호레이스 그랜트, 데니스 로드맨이라는 수준급 선수들이 버티고 있었으나 포인트가드, 센터 자리는 얼핏 보면 참담해보일 정도였다.

1번 같은 경우 예나 지금이나 재능있는 선수들이 워낙 많기에, 아쉽다 정도에 그칠 수 있었겠지만 5번 포지션은 조던 시대가 대단한 전성기였다. 4대 센터(하킴 올라주원, 데이비드 로빈슨, 페트릭 유잉, 샤킬오닐)를 비롯 알론조 모닝, 디캠베 무톰보, 릭 스미츠 등 좋은 빅맨자원들이 차고넘쳤다.

그런 상황 속에서 시카고 왕조를 구축한 데에는 간판스타 조던의 엄청난 능력이 가장 큰 영향을 끼쳤겠지만 원활하게 잘 가동됐던 베스트5의 힘을 간과할 수는 없다. 필 잭슨 감독은 특유의 트라이앵글 오펜스를 바탕으로 1번의 리딩부담을 확 줄였다.

어차피 공격의 중심 축은 조던이었고 피펜 역시 보조리딩에 능한 선수이니만큼 1번은 게임조립보다는 수비에 집중하면 됐고 5번 또한 몸싸움, 리바운드가 주 임무였다. 잭슨 감독은 조던, 피펜 중심으로 공수를 이끌어가면서 토니 쿠코치, 스티브 커, 존 팩슨 등 출중한 식스맨들을 적재적소에서 잘 기용했다.

만약 당시 1번, 5번을 맡고 있는 선수가 자존심도 강하고 수비보다 공격에 치중하는 스타일이었다면 조던과 잘 안 맞았을 가능성이 크다. 조던의 공격 테크닉은 역대 최고급이어서 불스 입장에서는 그가 잘 득점할 수 있도록 받쳐주는 게 중요했다. 거기서 특정 선수가 조던과 볼 주도권을 놓고 신경전을 벌이거나 팀이 원하지 않는 플레이를 했다면 불스 특유의 단단함에 균열이 생겼을 것이다. 
 
 전주 KCC가 다음시즌에도 우승경쟁을 하기위해서는 포지션별 밸런스 강화가 절실하다.

전주 KCC가 다음시즌에도 우승경쟁을 하기위해서는 포지션별 밸런스 강화가 절실하다. ⓒ 전주 KCC

 
장점은 살리고 단점은 커버하고
 
이는 동시대에 활약했던 '영혼의 파트너' 존 스탁턴, 칼 말론 콤비에서도 알 수 있다. 둘은 서로를 언급하지 않고서는 소개가 불가능할 만큼 굉장한 콤비 플레이를 자랑했다. 그 결과 오랜 시간 동안 유타 재즈에서 뛰며 함께 NBA 역대급 레전드가 되는 영광을 누렸다.

어시스트의 귀재 스탁턴과 기복 없는 득점 머신 말론은 서로를 빛내주는 존재였다. 스탁턴은 말론으로 인해 어시스트 수치를 늘려나갈 수 있었고, 말론 또한 득점 도움을 엄청나게 받았다. 상대 팀에서는 재즈를 상대할 때 대부분 공격이 둘에게서 나온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지만 스탁턴, 말론의 픽앤롤은 '알고도 못 막는다'는 평가처럼 언터처블 그 자체였다.

만약 스탁턴이 자신의 공격을 먼저 보는 유형이고, 말론 역시 받아먹기보다 개인기 위주의 플레이를 펼쳤다면 둘의 합은 그렇게 오랜시간 동안 위력을 떨치지 못했을 가능성이 높다. 재즈는 슈터 제프 호나섹 등 나머지 멤버들 역시 스탁턴, 말론을 잘 보좌해줄 선수들로 구성하며 포지션별 밸런스를 꾸준히 맞춰나갔다.

앨런 아이버슨을 앞세워 2000~01시즌 파이널 준우승까지 차지했던 필라델피아 세븐틴식서스는 이른바 에이스 맞춤형 라인업으로 지금까지도 회자되고 있다. 당시 아이버슨은 플레이에서 호불호가 확실한 선수였다. 득점 능력은 리그 최고 수준이었으나 1번으로서 리딩이 안정적이지 않고 작은 신장으로 인해 수비에서도 문제가 많았다.

이에 래리 브라운 감독은 수비형 센터 디켐베 무톰보, 수비 센스가 넘치는 가드 에릭 스노우 등 철저히 아이버슨의 장점을 뽑아내는 라인업으로 각 포지션을 세팅했다. 특히 아이버슨을 단신 슈팅가드로 공격에 집중하게 하고, 수비시 미스매치 문제는 스노우로 커버하는 전략은 이른바 '신의 한 수'로 회자되고 있다.

이렇듯 팀의 전력을 끌어올리기 위해서는 장점은 살리고 단점은 최대한 커버하는 포지션별 밸런스가 필요하다.

올 시즌 KBL 챔피언결정전 우승을 차지한 안양 KGC인삼공사는 자레드 설린저(28·206cm)라는 정상급 에이스 효과를 제대로 봤다. KGC는 각 포지션별로 빼어난 선수가 넘쳐났지만 전력 만큼의 성적이 나지 않았다. '저 멤버로 저것밖에 못하는 게 신기하다'는 말까지 터져 나올 정도였다.

이를 말끔하게 싹 해결해준 것은 설린저였다. 설린저는 탈 KBL급 공격력은 물론이거니와 넓은 시야와 리딩능력을 앞세워 KGC 선수들이 각자의 기량을 120% 뽑아낼 수 있도록 진두지휘했다. 우승을 위해 절실했던 압도적 야전사령관 역할을 설린저가 해낸 것이다. 멱살을 잡고 끌어준 것도 모자라 한명 한명 안아서 우승컵 위에 올려 놓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물론 설린저는 KBL 역사상 다시 나오기 힘들 정도의 '사기캐릭터'다. 여러가지 상황이 맞아서 대체 외국인선수로 들어왔을 뿐 그 정도 괴물 용병이 또다시 국내 무대에서 뛰기는 쉽지 않다는 분석이다.

예상치 못한 설린저 폭풍에 제대로 휘말리며 아쉽게 준우승에 그친 전주 KCC 이지스는 다음 시즌에도 챔피언결정전 우승을 목표로 하고 있다. KCC는 개막전 아슬아슬한 6강 후보 정도로 예상되던 혹평을 비웃듯 정규리그 우승을 차지하는 기염을 토했다.

KCC가 낮은 평가를 받은 데에는 포지션별 밸런스가 좋지 않다는 점이 큰 영향을 끼쳤다는 분석이다. 기존 이정현(34·191㎝), 유현준(24·178㎝), 정창영(33·193㎝)에 김지완(31·187㎝), 유병훈(310·188㎝)까지 가세한 가드진은 양과 질적으로 충분해 보였으나 나머지 포지션이 문제였다. 송교창(25·201cm) 외에는 확실한 주전급이 없었다.

전창진 감독은 이를 가드진을 적극 활용한 '트랜지션게임(Transition Game)'으로 커버했다. 송교창은 물론 귀화선수 라건아(32·199㎝) 또한 동 포지션에서 스피드가 좋은 선수여서 장점을 최대한 뽑아내는 전략을 통해 정규 시즌을 지배했다. 막판 부상으로 이탈하기는 했으나 약한 골밑을 듬직하게 지켜주던 정통빅맨 스타일의 타일러 데이비스(24·208㎝) 효과도 많이 봤다.

하지만 다음 시즌에도 이같은 패턴이 잘 통할 것이라고 속단하기는 이르다. KCC의 경기 스타일은 이미 많이 노출됐다. 가드진 역시 숫자에 비해 안정감이 떨어진다는 분석이다. 야심차게 데려온 김지완, 유병훈은 잘할 때와 못할 때의 기복이 너무 심하며 유현준, 이정현의 수비불안은 심각할 정도다. 늦깎이 전성기를 맞은 정창영 정도만이 안정적인 공수밸런스를 가지고 있다.

결국 기존 가드진만 믿고있기에는 불안감이 클 수밖에 없고 재계약 문제가 남아있기는 하지만 송교창의 부담 역시 덜어주어야 한다. 앞서 언급한 포지션별 밸런스를 보강해야 하는 이유다.

KCC 역시 이를 잘 알고 있는지라 새시즌 전력 변화에 총력을 기울일 태세다. 귀화선수 드래프트 단독입찰로 라건아와 3년 계약을 체결한 것을 비롯 FA로 풀린 간판스타 송교창도 꼭 잡겠다는 내부방침을 세워두고 있다.

인상적인 것은 자유계약시장에 나온 가드 이재도(30·180㎝)에게도 관심이 있다는 루머다. 이같은 루머는 여러 농구 커뮤니티 등에서 활발하게 돌고있었는데 얼마 전에는 농구전문기자들이 진행하는 영상 채널에서도 언급된 바 있다.

이재도가 뛰어난 가드임은 분명하겠지만 KCC 가드포지션은 숫적으로 차고 넘친다. 그런 상황에서 '만약 진짜로 이재도를 잡게 된다면 나머지 가드포지션 선수들을 활용해 트레이드 등으로 다른 포지션을 강화하려는 것 아니냐'는 의견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사실 포지션별 밸런스가 기울어진 상태에서의 KCC 트랜지션게임은 약점이 많았다. 좀 더 위력적으로 상대팀을 공략하기 위해서는 골밑의 든든함, 외곽 지원 등이 함께 해줘야 된다. 과연 KCC는 대대적 변화를 통해 아쉬웠던 전력의 완성도를 올릴 수 있을 것인지, 비시즌 태풍의 눈으로 떠오른 이지스함 행보에 귀추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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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디지털김제시대 취재기자 / 전) 데일리안 객원기자 / 전) 홀로스 객원기자 / 전) 올레 객원기자 / 전) 이코노비 객원기자 / 농구카툰 크블매니아, 야구카툰 야매카툰 스토리 / 점프볼 '김종수의 농구人터뷰' 연재중 / 점프볼 객원기자 / 시사저널 스포츠칼럼니스트 / 직업: 인쇄디자인 사무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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