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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는 5.18민주화운동 41주년을 맞아 1980년 당시 계엄사 합동수사본부에서 작성한 문건을 분석해 세 편의 기사로 싣는다. 광주의 진실을 알리다 신군부의 표적이 된 두 여성을 중심으로 뜨거웠던 그때를 재구성했다. 이 기사는 그 마지막이다.[편집자말]
[기사 수정 : 20일 오전 9시 24분]
 
젊은 시절 정양숙(왼쪽)과 콜렛 누아르.
 젊은 시절 정양숙(왼쪽)과 콜렛 누아르.
ⓒ 윤순녀, 전진상교육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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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 광주의 억울했던 상황을 새삼 떠올려 봅니다. 그리고 광주의 참상을 알리기 위해 이름도 남기지 않고 희생한 두 분을 다시 생각해 봅니다. 그들을 기억해주세요. 현재를 사는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역사의 증인입니다."

콜렛 누아르(Colette Noir)와 정양숙. <오마이뉴스>는 지난 17, 18일 두 편에 걸쳐 5.18민주화운동의 진실을 알리다 고초를 겪은 두 여성을 소개했다. 콜렛은 당시 외국인으로선 유일하게 계엄사 합동수사본부(아래 합수부)에 두 차례나 끌려가 조사를 받았고, 정양숙은 체포돼 고문을 당한 뒤 그 후유증으로 평생을 고생하다 2016년 세상을 떠났다.
  
이 두 사람을 추적하게 된 이유는 1981년 7월 15일 합수부가 생산한 16쪽짜리 문건 때문이었다. 문건에는 쿠데타를 일으킨 신군부의 핵심 조직이었던 합수부가 외국인 여성 1명과 한국인 여성 1명을 겨냥하고 있었던 사실을 기록하고 있었다. 문건에 따르면 두 여성은 광주의 참상을 담은 유인물과 테이프를 전파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고 그것이 외신에까지 보도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뜨겁고도 뚜렷한 41년 전 기억   
 
윤순녀 평화의샘 대표.
 윤순녀 평화의샘 대표.
ⓒ 소중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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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아 있는 기록이 거의 없었지만 수소문 끝에 콜렛과 정양숙을 기억하는 이들을 만날 수 있었다. 두 사람은 여전히 많은 이들의 가슴 속에 우직한 나무로 자리 잡고 있었다.

그중 가장 큰 도움을 준 이가 두 사람을 "언니"라고 부르는 윤순녀 평화의샘 대표다. 윤 대표는 국제가톨릭형제회(AFI), 가톨릭노동청년회(JOC) 등을 통해 콜렛, 정양숙과 인연을 맺었고 5.18 당시 두 사람의 활동을 지켜봤다. 아니, 지켜봤을 뿐만 아니라 온몸으로 그들과 함께 했다.

윤 대표의 41년 전 기억은 지금도 뜨겁고 또렷하다. 영국에 머물던 그녀는 TV에서 광주의 모습을 목격하고 곧장 한국으로 들어왔고, 프랑스 신문을 옷가지에 숨겨와 한국에 오자마자 김수환 추기경을 만났다.

"1980년 5월엔 AFI 회원으로서 영국에 나가 있을 때에요. 옥스퍼드대학 인근 수녀원에서 생활했는데 수녀님 한 분이 막 달려오시더라고요. '너네 나라 전쟁났다'면서요. 그때 BBC 방송에서 광주의 모습을 처음 본 거예요. 사람들이 굴비처럼 엮여서 끌려가는 장면이었어요. 지금 우리가 TV에서 보는 미얀마 같은 모습이었죠.

'내가 이곳에서 룰루랄라 하늘만 쳐다보면 뭐하겠냐'는 생각이 들었어요. 곧장 도버해협을 건너 AFI 본부가 있던 벨기에로 이동했고 거기서 이것저것 준비해 8~9월에 한국에 들어오려고 했어요. 근데 너무 마음이 급해 죽겠는 거예요. 그래서 벨기에에 2- 3일 정도만 머물다 비행기 타러 파리로 갔어요. 

한국에 들어오기 전 파리에 있던 신학생 몇 명을 만났어요. 그들에게 한국 상황을 물으니 대략적으로 설명을 해주더라고요. 그래서 <르몽드>지를 구해다가 광주 소식을 담은 기사를 하나하나 다 오렸죠. 그걸 옷가지 사이사이에 다 넣었어요. 한국으로 오는 비행기에서 어찌나 가슴이 뛰던지... '제발 안 걸리게 해주세요' 기도했는데 다행히 통과가 됐죠.

그리고 제일 먼저 김수환 추기경님께 뛰어갔어요. 가져온 <르몽드>지 기사를 다 갖다드렸죠. 그때가 6월 5일 즈음이에요. 추기경님이 절 쳐다보더니 '남들은 전쟁 나면 다 도망가는데 넌 왜 들어왔냐'고 물으셨어요. 그래서 '나라에 전쟁이 났는데 들어와야지 어디로 가요'라고 대답했죠. 추기경님이 '아휴' 한숨을 내쉬며 '그래그래' 그러시더라고요."


얼마 지나 윤순녀는 콜렛과 정양숙을 만났고, 합수부 문건에 나오는 '유언비어 유포'에 동참했다. 주로 정양숙이 건네는 누런봉투를 여기저기 나르는 일을 맡았다.

"마리안나(정양숙의 세례명) 언니가 누런 봉투에 뭘 넣어서 미아동성당 양홍 신부에게 전해달라는 거예요. 제가 그 지역 출신이거든요. (독재와 싸웠던) 우리끼린 감이 있으니 '이게 뭐냐'고 묻지 않았어요. 혹시나 잡혔을 때 알고 있는 게 많으면 안 되거든요. 그래서 봉투를 뜯어보지도 않고 그대로 전달했죠. 나중에 신부님들이 끌려가고 사달이 난 뒤에야 그 봉투에 테이프가 들어 있었다는 걸 알았죠."

잊을 수 없는 서빙고 면회
  
1969년 정양숙(오른쪽)과 윤순녀.
 1969년 정양숙(오른쪽)과 윤순녀.
ⓒ 윤순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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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던 중 윤 대표는 합수부가 콜렛을 조사하려고 한다는 소식을 접했다. 뿐만 아니라 정양숙이 갑자기 실종됐다는 이야기도 들려왔다. 윤 대표에겐 두 차례 합수부 조사를 받은 콜렛과 함께 서빙고(국군 보안사령부 분실)로 정양숙을 면회한 기억이 남아 있다.
 
"콜렛 언니, 최세구 신부님(파리외방전교회 소속 제제구 로베르트 신부의 한국 이름, 앞서 콜렛의 합수부 조사 때 입회한 인물), 그리고 지금은 잘 기억나지 않지만 AFI 회원 한 명과 함께 마리안나 언니를 찾아 갔죠. 이태원에서 미8군 내려가는 곳에서 어디로 들어갔던 거 같아요. 건물에 제 기억엔 '송학사'라고 회사 이름 같은 간판이 붙어 있었어요.

언니를 만났는데 울컥 하더라고요. 콜렛도 그런 마음이었겠죠. 그땐 서로 어떤 일을 당했는지 모르지만 그래도 대략 상상이 되잖아요. 그래서 우리끼리 한국말로 막 이야기를 주고받고 있는데 최세구 신부가 벼락 같이 소리를 질러요. 전 그때 무슨 소리인지 몰랐는데 프랑스어로 '침묵'이란 말이었대요. 보안요원들이 우릴 옆에서 다 지켜보고 있으니 어떤 말도 하지 말라는 이야기였죠."

 
왼쪽부터 김지하, 콜렛 누아르(Colette Noir), 김정남.
 왼쪽부터 김지하, 콜렛 누아르(Colette Noir), 김정남.
ⓒ 전진상교육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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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정양숙은 징역 2년형을 선고받고 복역하다 형집행정지로 석방됐다. 콜렛 역시 합수부 조사 후 한 동안 일상적인 생활이 어려울 정도로 감시의 대상이 됐다. 

콜렛과 정양숙의 삶은 이 사건으로 다 이야기할 수 없다. 1980년 5월 이전에도 그 이후에도 민주주의, 노동자, 철거민, 빈민, 기후, 환경, 먹거리 등을 위해 힘썼다. 윤 대표 역시 두 사람과 함께 한국 현대사를 관통했고, 지금은 천주교 성폭력상담소 및 청소년 지원시설 기능을 하고 있는 평화의샘을 이끌고 있다.

윤 대표는 기자 못지않게 두 사람의 발자취를 쫓는 데 힘을 쏟았다. "그때의 일을 정리하는 게 죽기 전 숙제"였다는 그녀는 당시를 떠올리며 자주 눈시울을 붉혔다. 윤 대표가 콜렛과 정양숙에게 전한 말이다.

"콜렛 언니. 이번에 이 일 때문에 우리 통화했었죠. '기억하는 한 모든 걸 다 이야기하겠다'고 말해주셔서 얼마나 반가웠는지 몰라요. 이번에 저도 새롭게 알게 된 사실이 많아요. 당신이 한국에서 한 일 때문에 많은 분들이 고마움을 느끼고 있어요. 아마 '광주'를 경험한 분들도 마찬가지일 거예요. 언니 스스로 뿌듯해하셔도 돼요. 코로나19 지나면 프랑스로 찾아 뵐게요. 우리 같이 만나서 울고 웃어봐요. 사랑하고 존경합니다.

그리고 우리 마리안나 언니. 언니가 맡았던 JOC 회장을 내가 이어받고, 또 언니 따라 저도 AFI에 들어가고... 언니를 뒤따라 그렇게 살아왔네요. 이번에 언니를 기억하는 이들을 만나느라 저도 좀 바빴어요. 언니의 희생과 고통이 많은 이들에게 위안을 주고 이 세상을 더 밝게 만드는 데 촉매제 역할을 했다고 생각해요. 언니가 평소 그랬듯 그곳에서도 바쁘게 지내고 계시죠? 얼마 안 있으면 만날 테니 그때까지 잘 계세요. 언니, 사랑해요."

 
정양숙(가운데)·길자·화숙 세자매가 함께 찍은 사진.
 정양숙(가운데)·길자·화숙 세자매가 함께 찍은 사진.
ⓒ 정길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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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프랑스로 돌아간 뒤 콜렛 누아르(Colette Noir)의 모습.
 2016년 프랑스로 돌아간 뒤 콜렛 누아르(Colette Noir)의 모습.
ⓒ 윤순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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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악의 저편을 바라봅니다. extremes88@ohmy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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