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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정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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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은행에서 판매한 이탈리아헬스케어펀드, UK루프탑·VAT·신재생에너지펀드도 투자자들에게는 악몽과 다름 없었다.   

이 펀드 투자자들 역시 1조원이 넘는 피해를 일으킨 라임·옵티머스펀드와 유사한 피해를 입었지만, 대형 펀드들에 비해 언론과 금융당국의 관심을 받지 못하고 있다. 이달 말 열리기로 했던 이탈리아헬스케어펀드에 대한 금융감독원 분쟁조정 일정은 알 수 없는 이유로 미뤄졌고, UK펀드의 경우 아예 분조위 일정조차 잡히지 않은 상황이다.   

[이탈리아헬스케어펀드] 수상한 브로커가 챙긴 수수료 47억원 

이탈리아헬스케어펀드의 경우 피해자 수는 510명에 피해액은 약 1500억원에 이른다. 

이탈리아헬스케어펀드는 이탈리아 병원이 정부에 청구할 진료비 매출채권에 투자하는 상품으로, 미 자산운용사 CBIM이 채권을 할인 매입해 지방 정부에 청구하는 식으로 소개됐다. 그런데 그 과정에서 투자자들이 알지 못하는 한남어드바이져스라는 회사가 하나은행과 이탈리아 현지 운용사를 연결해준다는 명목으로 약 4%(47억원)에 달하는 거액의 수수료를 챙겼다. 판매사인 하나은행이 받는 수수료는 1.2%, 자산운용사의 수수료는 0.16%라는 것을 고려하면 매우 높은 수수료를 챙긴 셈이다. 

또 이 회사는 이후 CBIM과 긴밀한 관계라는 것이 드러났다. 김현호 한남어드바이져스 대표이사가 CBIM의 75% 이상 최대 지분을 가진 파트너인 것이 밝혀진 것. 특히 이 과정에서 하나은행 투자상품부 전 직원인 신아무개씨의 역할도 주목받고 있다.  피해자들은 신씨가 처음부터 사기를 목적으로 펀드를 기획한 것이라는 의심을 하고 있다. 신씨는 이미 2019년 9월 퇴사한 뒤 싱가폴로 도주한 것으로 알려졌다. 

신장식 법무법인 민본 변호사는 "신씨가 김현호 한남어드바이져스 대표와 함께 이 펀드를 기획하고 판매까지 이끈 정황이 짙은데, 은행은 인사 관련 파일을 폐기했다는 입장"이라며 "하나은행이 비이자수익 증대를 강조하던 시기에 신씨가 채용됐는데, 최고경영진이 이에 개입했는지 감독당국이 철저히 확인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피해자 양아무개(49세)씨는 "사기꾼들이 처음부터 기획해 투자금을 모으고, 횡령하려 했던 것으로 의심된다"며 "그럼에도 하나은행은 이를 '이탈리아가 망하지 않는 한 안전하다'는 식으로 정상 상품인 것처럼 판매했다"고 말했다. 

펀드 운용에도 문제가 있었다. 실사 과정에서 SPV가 보유한 채권 가운데 6~7년이 지나야 받을 수 있는 부실채권이 섞여 있었는데, 이는 회수가능성이 거의 없는 오래된 의료비 매출채권으로 보인다는 것이다. 심지어 이런 부실채권은 시장 할인율(15~25%)보다 높은 가격(7~8%)에 매입됐다. 

또 CBIM이 펀드를 운용하는 데 불필요한 영국령 버진아일랜드 SPV를 설립한 것도 피해자들의 의심을 사고 있다. 피해자들은 한국에서 모은 투자금을 조세회피처에 빼돌렸을 가능성이 높다고 주장하고 있다.  
 
2020년 3월 삼일회계법인의 이탈리아헬스케어펀드 관련 실사보고서. 특수목적회사(SPV)가 보유한 채권 가운데 6~7년이 지나야 받을 수 있는 부실채권이 섞여 있었는데, 이는 회수가능성이 거의 없는 오래된 의료비 매출채권으로 보인다는 내용이다.
 2020년 3월 삼일회계법인의 이탈리아헬스케어펀드 관련 실사보고서. 특수목적회사(SPV)가 보유한 채권 가운데 6~7년이 지나야 받을 수 있는 부실채권이 섞여 있었는데, 이는 회수가능성이 거의 없는 오래된 의료비 매출채권으로 보인다는 내용이다.
ⓒ 조선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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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불어 하나은행의 판매 과정에서도 심각한 문제가 있었다. 이 펀드가 2017년부터 2018년까지 300억원 정도밖에 팔리지 않았는데, 2019년에는 1년 만에 1200억원 가까이 판매됐다. 피해자 양씨는 "은행 측이 13개월 만에 상환이 가능하다는 식으로 대대적으로 투자자를 모집한 결과"라고 말했다. 그런데 나중에 은행과 운용사 사이 계약기간은 처음부터 24개월, 36개월 등이었기 때문에, 13개월 만에 상환하는 것은 불가능한 구조였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하지만 피해 구제까지는 갈 길이 멀다. 펀드 판매사인 하나은행은 소극적으로 대응하고 있고, 금융감독원 분쟁조정위원회(분조위) 일정은 현재까지도 확정되지 않았다. 

양씨는 "하나은행은 그저 금감원 권고에 따르겠다면서 여유 있는 태도로 일관하고 있다"며 "금감원은 분조위를 위한 현장검사를 하지 않았으면서도 현재까지는 하나은행의 사기적 부정거래 정황을 찾을 수 없다는 답변만 하고 있다"고 답답함을 토로했다. 

은행은 이탈리아헬스케어펀드를 판매할 당시 문제를 알기 어려웠다는 해명을 내놨다. 하나은행 관계자는 "이탈리아헬스케어펀드의 경우 투자대상이 이탈리아 헬스케어 매출채권으로 정해져 있었지만, 펀드 설정 후 편입될 구체적인 종목을 알 수 없었다"며 "설정 이후에도 은행은 운용사의 펀드 운용에 대해 개입하지 않았다"고 했다. 

김현호 한남어드바이져스 대표를 둘러싼 의혹에 대해서는 "(4%에 달하는) 수수료 부분은 당초 운용사로부터 듣지 못했던 사실"이라며 "해당 의혹에 대한 객관적인 사실관계가 소명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은행 측은 "투자자의 유동성 문제를 덜어주고자 신청자에 한해 가지급금을 지급했다"며 "이와 별도로 자산회수에 최선의 노력을 기울일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UK VAT펀드] 영국 부가가치세 투자금, 다른 곳에 투자됐다
 
지난 1월21일 전국사모펀드사기피해공동대책위 등이 청와대 분수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이탈리아헬스케어펀드 등 사모펀드 피해 구제를 촉구하고 있다.
 지난 1월21일 전국사모펀드사기피해공동대책위 등이 청와대 분수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이탈리아헬스케어펀드 등 사모펀드 피해 구제를 촉구하고 있다.
ⓒ 전국사모펀드사기피해공동대책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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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은행이 판매한 다른 사모펀드 피해자들도 사기성 기획·판매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지난 2018년 5월부터 약 1년 동안 하나은행에서 단독 판매한 UK펀드인 VAT펀드, 신재생에너지펀드, 루프탑펀드 피해자들 얘기다. 

당초 하나은행은 UK VAT펀드에 대해 영국 상업부동산 매수자에게 부가가치세(VAT) 납부자금을 대여하는 데에 투자하는 펀드라고 설명했다. '부가가치세에 투자하는 것이어서 영국 정부가 망하지 않으면 문제 생길 것이 없다', '부가가치세는 영국 정부 보장 채무이므로 거래 상대방 리스크가 매우 낮다'고 안내받았다고 피해자들은 증언했다. 

은행 말을 믿고 투자금을 넣은 정아무개(50세)씨가 이상한 낌새를 눈치챈 것은 지난해 들어서였다. 지난해 2월 은행 측이 보내온 운용보고서에는 '당사는 실사를 통해 VAT와 무관한 자산에 (자금이) 모두 투자돼 있음에 대한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음'이라는 내용이 들어있었다. 정씨가 이 같은 내용의 운용보고서를 받은지 3개월이 지난 지난해 5월 UK VAT펀드는 결국 환매중단을 맞았고, 피해액은 569억원에 이를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정씨는 "하나은행은 올해 5월 실사보고서가 나온다고 했는데, 아직도 보고서가 나오지 않고 있다"며 "금감원은 너무 많은 사모펀드 문제가 걸려있어 UK펀드는 뒤로 밀려있다는 식으로 대응하고 있다"고 한숨을 쉬었다. 

[UK 신재생에너지펀드] 꽁꽁 감추던 운용보고서에 드러난 부실
 
2020년 2월 운용보고서에는 '당사는 본 실사를 통해 VAT와 무관한 자산에 모두 투자돼있음에 대한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음'이라고 적혀있었다.
 2020년 2월 운용보고서에는 "당사는 본 실사를 통해 VAT와 무관한 자산에 모두 투자돼있음에 대한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음"이라고 적혀있었다.
ⓒ 조선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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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은행이 영국 에너지 저장 및 가스발전 시설에 필요한 자금을 대여하는 데 투자하는 상품이라며 판매했던 UK 신재생에너지펀드 가입자들은 모두 535억원을 날릴 상황에 처해있다.

UK 신재생에너지펀드 피해자 박아무개(59세)씨는 "2019년 8월 하나은행이 문자메시지를 통해 가입을 권유했다"며 "처음엔 투자를 거부했는데, 직원은 태양광 에너지 설치 부동산을 담보로 한 상품이고 영국 정부에서 이미 인허가를 받아 안정적인 상품이라고 설명했다"고 말했다. 

그런데 올해 1월 급작스럽게 하나은행은 박씨에게 원금을 돌려줄 수 없다고 통보하면서 이 상품이 사모펀드라는 사실을 상세히 설명했다. 박씨는 "그 전까지 저는 확정금리형 펀드인 줄로만 알았고, 사모펀드라는 이야기는 이때 처음 들었다"고 했다.

이후 박씨는 관련 사업에 대한 인·허가증과 부동산 근저당 서류를 보여달라고 했지만 하나은행으로부터 거부당했다. 그는 "은행이 영국에 실사 용역을 의뢰해 사태를 파악하고 있다고 하면서도 이와 관련한 계약서를 공개하지 않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뒤늦게 피해자 쪽이 하나은행을 통해 입수한 2020년 2월 운용보고서에는 '6개 신규 사이트 중 일부는 토지 임대 옵션이 만료됨에 따라 개발 가치가 상실됐다'고 돼 있었다. 500억원이 넘는 투자금 회수를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라는 이야기다. 

박씨는 "하나은행은 거의 '배 째라'는 입장이다, 4월 초에 나온다던 실사보고서가 아직도 나오지 않고 있다"며 "금감원에도 민원을 접수했지만 지금까지 아무런 연락이 없다"고 했다. 

[UK 루프탑펀드] 2018년 하나은행은 이미 문제 알고 있었다

UK 루프탑펀드는 영국 주요 도시 수직증축 프로젝트 자금을 대여하는 데 투자한다며 약 257억원을 모집했다. 이후 2019년 12월 갑자기 투자자들에게 원금조차 돌려줄 수 없다고 개별적으로 통보했다. 

UK 루프탑펀드에 자금을 맡긴 뒤 피해를 본 80대 어머니를 대신해 하나은행과 다투고 있는 강아무개(51세)씨는 "은행 측이 정식 문서나 편지로 환매중단을 통보한 것도 아니었다, 직원에게 물어보고 난 뒤 원금을 받을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됐다"며 "어떤 투자자는 지난해 6월에서야 뉴스를 통해 환매중단 상황을 알게 되기도 했다"고 말했다. 

강씨는 "어머니는 아직도 본인이 사모펀드에 투자한 사실을 모르고 있다"며 "MMF(머니마켓펀드) 같은 안전한 상품에 가입한 것으로 알고 계시는데, 제가 이후 투자설명서를 받아 확인해보니 모두 거짓말이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UK 루프탑펀드 피해자들도 다른 UK관련 펀드 피해자들과 마찬가지로 투자금이 엉뚱한 곳에 투자됐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됐다. 2020년 5월 루프탑펀드 사후 관리 문건을 통해 '2018년 12월 하나은행은 루프탑 프로젝트가 아닌 아파트 개발 프로젝트에 대출이 나간 것을 인지했음에도 고객에게 안내하지 않았다'는 문구를 발견한 것이다.  

같은 문건에는 이마저도 이미 매각돼 담보물로서의 기능을 하지 못하게 됐고, 매각되지 않은 부동산도 담보권이 후순위라는 내용도 포함돼 있었다. 프로젝트 투자금이 일부 회수되더라도 투자자들에게 돌아올 몫은 극히 적을 가능성이 크다는 얘기였다. 

강씨는 "이렇게 많은 돈을 돌려주지 못하는 사태가 발생했는데 하나은행은 지난 1년 3개월 동안 공식적인 대응도 없었고, 투자자들과의 소통 노력도 전혀 없었다"며 "금감원은 민원이 워낙 많아 시간이 걸린다고만 했다"고 말했다. 

검사 일정 모른다는 금감원... "감독당국이 판매사에 사적 화해 권고해야"
 
금융감독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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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은행은 UK펀드와 관련해 기계적인 답변을 내놨다. 하나은행 관계자는 "펀드 설정 당시 국내 운용사가 제안한 펀드 상품을 충분히 검토해 판매했고, 하나은행 담당자 역시 내부 상품위원회 심의 절차를 거쳐 상품을 출시했다"며 "아직까지 국내 자산운용사들의 불법행위가 명확하게 확인되지는 않았다, 추가 조사를 통해 밝혀질 경우 이에 대한 적절한 법적 대응을 할 예정"이라고 했다.

금감원은 이탈리아헬스케어펀드, UK펀드와 관련해 하나은행에 대한 검사 관련 일정을 확정하지 못하고 있다. 금감원 관계자는 "지난해 12월 은행 종합검사 때 해당 펀드에 대해서도 들여다봤는데, 이에 대한 후속 처리 일정을 아직 정하지 못했다"며 "언제 검사가 마무리될지 일정이 정해지지 않아 답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전문가들은 금융감독당국이 중소형펀드에 대해 사적 화해를 권고하는 등 보다 적극적으로 움직일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신장식 변호사는 "금감원은 사회적으로 크게 이슈가 된, 피해자들이 크게 울부짖는 사모펀드만 보여주기식으로 우선 처리하고 있다"며 "인력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중소형펀드 해결에 소극적인 태도를 보이면서 해당 피해자들은 피눈물을 흘리며 시간을 보내고 있다"고 했다. 

그는 "금감원이 발 빠르게 해결하려는 모습을 보이지 않아 은행들 역시 책임을 회피하면서 사적 화해, 자율배상에 대한 노력을 기울이지 않고 있는 상황"이라며 "금감원이 적절한 행정지도를 통해 문제 해결에 적극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은행 측 "투자원금 50% 선지급하겠다"... 피해자들 "고소 피하려는 속셈"

한편 <오마이뉴스> 취재가 진행되는 과정에서 지난 17일 하나은행은 3개 UK펀드 피해자들을 대상으로 투자원금의 절반에 해당하는 가지급금을 우선 지급하겠다고 발표했다. 

이날 하나은행은 보도자료를 내고 "환매중단으로 투자금을 돌려받지 못한 투자자들에게 유동성 자금을 지원하는 취지"라며 "가지급금을 지급받은 투자자는 자금 회수 때 판매회사와 최종 정산하게 되고, 배상기준은 금감원 분조위 결정을 준용하게 된다"고 밝혔다. 

다만 은행은 피해자들이 해당 가지급금을 신청할 때 '법적권리 행사에 관한 합의서'도 함께 제출하도록 하고 있어 피해자들이 반발하고 있다. 피해자 정씨는 "이는 피해자 보호를 위한 조치가 절대 아니다"라며 "형사고소 취하 및 계좌를 담보로 하는 조건으로 가지급금을 준다는 것인데, 결국 형사고소를 피하면서 50%만 배상하고 끝내려는 속셈"이라고 반감을 나타냈다.  

태그:#하나은행, #사모펀드, #UK펀드, #이탈리아헬스케어펀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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