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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희씨(반도체 공장 난소암 산재노동자)는 어렵사리 산재인정을 받고도 큰 어려움에 처했습니다. 건강보험공단에서 지난 2년간 암 요양병원에 적용된 건강보험료 1400만 원을 반환하라고 했기 때문입니다. 산재 지정병원이 아니라는 이유로 요양급여를 적용 받지도 못했는데, 건강보험공단에서는 산재노동자이므로 건강보험 적용은 안 된다는 것입니다. 이에 반올림은 산재 노동자에 대한 건강보험 요양급여 부당환수 결정 철회 및 제도개선 촉구하는 활동을 펼치고 있습니다.[편집자말]
산재보험제도는 일하다 다친 노동자와 유족들의 생계를 보장하고 회복할 수 있는 사회보장기본법상의 사회보장제도다. 산재보험은 사용자의 책임보험이 아닌 '산재노동자'의 치료와 회복에 초점이 맞춰진 노동자 국민을 위한 제도이고, 이를 기본 원칙으로 해야 한다.

많은 제도적 보완을 통해 사회보험으로 거듭나고 있는 산재보험이지만, 여전히 문제점이 많다. 제도는 복잡하고, 제도를 모르는 일반 노동자들이 신청부터 보험급여를 받기까지 그 절차는 다른 사회보험 제도에 비해 간편하지 않고 친절하지도 않다. 신청부터 보상까지의 과정이 과거보다 많이 간소해지고 편리해졌다고 하나 아직 산재보험은 사회보험서비스로서 친절하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근로복지공단이 제공해야 하는 서비스에 비해 예산과 인력이 충분하지 않다는 현실적 제약을 고려하더라도 산재보험을 적용받는 '산재노동자'의 입장에서, 이들의 편의를 존중하는 사회서비스로 나아가기 위해 문제점은 드러나고 알려질 필요가 있다. 물론 궁극적으로 제도는 편리하게 개선되어야겠지만, 그 과정에서 국가는 최소한 산재노동자가 제도를 제대로 몰라 불이익을 당하지 않도록 정확히 고지할 의무가 있다.

산재보험 지정병원제의 문제점

산재보험 의료기관 지정제도 아래에서 비지정의료기관을 이용했다는 이유로 산재보험은 물론 건강보험료 환수처분까지 당한 산재노동자 사례가 최근 발생했다. 이글에서는 산재보험제도의 여러 문제 가운데 산재보험 지정병원제의 문제를 지적하고자 한다.

우선 산재노동자는 산재보험 지정병원제도로 인해 의료서비스 선택 및 제공에 있어서 범위가 제한되는 문제점이 있다. 2019년 공공데이터포털 통계와 2020년 보건의료빅데이터개방시스템에 따르면, 산재보험 의료기관으로 지정된 병원은 전국의 의료기관 5만5069개의 10%인 5203개다. 산재노동자가 의료서비스를 제공 받을 수 있는 범위가 매우 협소하다.

산재노동자가 산재지정병원에서만 치료받도록 하는 것은 산재보험과 건강보험의 재정의 문제, 보험수가 산정의 문제, 의료기관 내 산재처리시스템 구비여부 등의 다양한 문제가 포함돼 있다. 그러나 이는 어디까지나 제도 설계와 운영의 문제다. 산재노동자의 사회보험 수급권 차원에서 바라볼 때, 상당한 제약이며 차별적 제도임이 분명하다. 다양한 의료기관이 지역별, 기관별로 동일한 수준의 의료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는 것이 아니며, 재해자가 자신의 질병을 가장 잘 치료할 수 있는 의료진으로부터 치료를 받을 기회를 사회보험제도가 막아서는 안 되는 것이다.

건강보험의 경우 건강보험 수급권자라면 누구나 전국의 의료기관에서 건강보험을 적용받을 수 있다. 이런 건강보험 시스템이 국가의 사회보험으로서 역할에 부합하는 방식이고 이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는 자는 없다. 그러나 산재보험과 관련해 산재보험 의료기관 지정제도 폐지하고 모든 의료기관을 당연지정 해야 한다고 주장하면 여전히 무리한 주장이라는 반응이 나온다. 산재보험의 사회보험으로서 취지를 고려한다면, 의료서비스 선택을 제한하는 현재의 지정병원제도는 반드시 수정할 필요가 있다.

산재보험 지정병원제도는 다분히 행정 편의적 이유로 도입됐고 운영되고 있기 때문에, 산재노동자가 산재비지정병원을 근로복지공단의 승인을 받지 않고 이용했다는 이유로, 요양비 부지급 처분을 해서는 안 된다. 산재보험 의료기관으로 지정된 병원은 근로복지공단에 요양비 신청 등 산재노동자의 산재보험과 관련된 업무처리를 담당한다.

공단과 함께 협력해 산재보험 지급업무를 수행한다고 할 수 있다. 산재비지정병원은 이런 시스템이 구축돼 있지 않아 산재노동자가 직접 요양비를 근로복지공단에 신청해야 한다. 즉, 산재노동자가 산재비지정병원을 이용해 진료를 받을 경우 관리의 문제가 발생하는 것일 뿐 산재보험 지급여부가 달라져서는 안 된다.

그러나 산업재해보상보험법(산재보험법) 제40조는 "요양급여는 산재보험법 제43조에 따라 지정된 의료기관에서 요양하게 한다(현물급여)"고 규정하고 있고, "부득이한 경우에는 요양을 갈음하여 요양비를 지급할 수 있다"는 산재보험법 제40조 제2항 단서에 따라 산재비지정병원에서 예외적으로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규정돼 있다.

그 판단은 근로복지공단의 재량에 맡겨두고 있다. 제도가 이렇다 보니 산재비지정병원에서 치료받던 산재노동자는 지정병원으로 진료기관을 옮기게 되며, 비지정병원에서 계속 치료를 받기 위해서는 근로복지공단 허락을 받아야 치료비를 보존받을 수 있고 만약 비지정병원에서 '임의로' 치료를 계속 받으면 산재보험을 지급받을 수 없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만약 지정병원제도를 제대로 안내받지 못한 산재노동자가 산재비지정병원을 이용했다는 이유로 요양비를 지급받지 못하는 것이 과연 타당한가? 현행 산재보험 지정병원제도를 유지하는 한, 공단의 성실한 안내가 뒷받침되지 않는 한 비지정병원을 이용하는 산재노동자는 계속 발생할 것이고, 그들은 산재보험 수급권의 문제로 고통을 겪게 될 것이다. 산재보험이 진정한 사회보험으로 거듭나기 위해 기존의 산재보험 의료기관지정제도는 지금이라도 전면적으로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

[기획 / 산재노동자 진희씨에게 일어난 일]
① "1400만 원 토해 내"... 어느 날 찾아온 비극의 서막 http://omn.kr/1sv1n
② 저는 산재 노동자입니다, 산재은폐의 공범이 아닙니다 http://omn.kr/1sw8i
③ 난소암 환자에서 범법자가 되었습니다 http://omn.kr/1syen

덧붙이는 글 | 글쓴이는 문은영 변호사(법률사무소 노동과삶)입니다. 이 글은 매일노동뉴스에도 게재되었습니다.


태그:#건강보험공단, #반올림, #산재보험, #건강보험, #부당환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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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황상기 씨의 제보로 반도체 직업병 문제가 세상에 알려진 이후, 전자산업노동자의 건강과 인권을 보호하기 위하여 만들어진 시민단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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