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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블로프의 개가 내 안에도 있었다.
▲ 매일 실험당하는 투자자 파블로프의 개가 내 안에도 있었다.
ⓒ 남희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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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주식 투자 행태를 말할 때, 너무나도 유명한 파블로프의 개를 언급하지 않을 수가 없다. 종소리만 들으면 침샘이 폭발하는 파블로프의 개처럼, 주가 창만 열면 혹은 9시만 되면 폭발하는 거래욕. 나는 개미인가, 개인가.

모두가 알다시피 파블로프의 개 실험은 먹을 것을 줄 때마다 종소리를 들려주면, 먹을 것을 주지 않아도 종소리에 침을 흘리게 되는 '조건 반사'를 만들어 낸 실험이다. 생리학적인 연구로 시작한 실험은 전혀 상관없는 자극이 반복된 학습으로 인해 반응을 만들어 내는 이유로 행동주의 심리학 이론으로 자리 잡았다.

이를 생각의 오류 측면에서 연상 편향이라고도 한다는데, 나는 이 심리의 취약함에 완전히 노출되곤 한다. 바로 주가 차트만 보면 매수와 매도 버튼을 자꾸 누르고 싶은 것. 음식을 기대하며 침을 흘리던 파블로프의 개처럼 수익에 침을 흘리며 마구잡이로 버튼을 눌러 댔다.

다소 아이러니 한 것은 먹이가 주어졌던 파블로프의 개와는 다르게 수익이 난 적이 별로 없는데 어째서 수익에 침을 흘리는가 하는 것이다. 이는 잘한 것만 기억하는 생존 편향이라는 오류에 의해 완성된다. 즉흥적 결단이 주었던 대다수의 실망스러운 결과보다 단 몇 번의 짜릿했던 성공만이 기억 속에 자리하기 때문이다.

주가 차트가 붉은 색이라고 해서 회사의 가치가 올라가진 않을 텐데도 붉게 물든 봉에 올라타고 "GOGO"를 외쳤다. 그리고 이는 비단 나만의 반응은 아니었는데, 많은 개미들이 이 진화론적인 생체반응에 순응했다. 조금 다른 것이라고 하면 버튼을 누르는 패턴의 차이인데, 상당히 많은 매매 패턴이 조합을 이루며 만들어진다.

오르면 사고 내리면 판다, 오르면 팔고 내리면 산다, 오르면 사고 내려도 산다, 오르면 '더' 사고 내려도 '더' 산다 등등. 이유야 제각각이겠지만 그 원리는 실로 간단하다. 대부분의 반응이 이전의 경험을 반영한다는 사실이다.

대부분의 조합을 수차례 겪어본 바로는, 정확히는 이전의 아쉬움을 반영한다고 봐야 한다. 살 걸, 팔 걸. 단 두 가지의 아쉬움으로 다양한 조급함의 매매 패턴이 완성된다.

급등하는 종목이 고민하는 사이 상한가로 가 버리면 다음엔 재빨리 사게 된다. 지난번의 아쉬움을 반복하지 않으려는 자연스러운(?) 반응이다. 상승하던 종목이 거래를 실은 하락 이후 매수가에 도달하면 다음엔 음봉(주식의 종가가 시가보다 낮게 끝나는 것)만 나오면 팔고 싶어진다. 이 또한 학습하는 인간의 자연스러운 반응이다. 그런데 이 쉬운 반응 덕분에 계좌를 보면 너무 힘이 든다.

생각 자연 발생설

투자의 편안함을 위해 자연스러움을 부자연스럽게 만들어야 하지만, 여전히 붉은 색이면 마구 달려들고 싶다. 가만 보니 투우 소 같기도 하다. 그 욕망을 억누르지 못하면 많은 경우 '내가 미쳤지'라는 자괴감에 돌입하며 투우 소는 '내가 미쳤소'로 거듭난다. 무작정 달려들어 등에 창을 잔뜩 꽂은 소가 되긴 싫은데, 억누르는 게 쉽지가 않다.

이 모든 것이 생각 자연 발생설에 근거한다. 모두가 아는 견물생심이 바로 그것이다. 이 생리를 바꾸는 것이 쉽지 않다. 아무 생각이 없다가도, 혹은 굳건한 의지를 가지고 다짐했더라도 움직이는 주가를 보면 없던 생각은 생겨나고 단단했던 다짐은 말랑해진다. 게다가 애초에 존재하지 않았던 계획도 순식간에 만들어진다.

'그래, 내가 이 회사를 좋게 봤었지. 내 생각이 맞았어.'
'이렇게 하려고 했고 저렇게 하려고 했고...'


아니다. 거짓말이다. 한 번도 진지하게 생각한 적이 없다. 오를 때만 가져다 붙이는 사후 편향에 생존 편향에 이런 저런 편향이 켜켜이 끼어든 오류의 결과물이 저 말이다. '알고 있었는데...' 개미의 탈을 쓴 인간만이 할 수 있는 밑도 끝도 없는 스토리텔링. 이 스토리를 짜내다 보면 투자는 위험해진다.

수익에 침을 덜 흘리는 방법

이럴 땐, 좋은 방안이 있다. 그냥 해보는 거다.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냐는 말이 들려온다. 말려야 하는 것 아니냐는 바른 지적도 들린다. 그런데 이게 말린다고 안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그러니 나도 가끔 개가 되는 거다. 다만 굳이 겪겠다는 이들에게 한 가지만 당부하고 싶다.

"최선을 다해 '기대'를 꺾으세요."

파블로프의 실험 내용을 보면 '소거'라는 개념이 나온다. 종소리가 들려도 계속해서 먹이가 주어지지 않으면 종소리에 반응하지 않게 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반복된 기대의 상실로 기대가 낮춰진다는 거다.

기대가 행동을 만든다. 종소리와 함께 먹을 수 없는 것을 주었다면 침은 나오지 않았을 터, 성공한 행동만을 기억하지 않고 모든 결과를 되짚는 학습이 무엇보다 중요한 이유다. 경험하고 그를 통해 배우자는 얘기다. 조급하고 막연한 기대와 확률 낮은 성공의 연결 고리를 최대한 느슨하게 만듦으로써 계좌와 마음은 조금 더 편안해진다.

반복된 충동 거래가 가져다 준 폐해는 이만 저만이 아니다. 자책, 후회, 손실. 조급한 손놀림으로 결과가 좋았던 적이 별로 없다. 그래서 효과는 제법 확실하다 할 수 있다. 그런데 나쁜 점을 알기 위한 이런 류의 학습은 상당히 많은 시간과 고통을 수반한다. 말리지는 못하지만 결코 권할 만한 것이 못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무턱대고 경험하다 더 빨리, 확실히 망가지는 경우도 있으니까.

둘러 왔지만 아무래도 반면교사가 낫다. 다행히 학습은 경험과 반복으로만 이뤄지진 않는다. 영장류의 학습은 관찰과 모방으로도 이뤄진다. 좋은 것은 따라하고 좋지 않는 것은 따라하지 않는 학습 능력이 인간에겐 있다.

구구절절이 적은 나의 변변찮은 글을 여기까지 읽었다면, 어느 정도 관찰은 끝났다. 이제 이를 모방할지 하지 않을지는 각자에게 달렸다. 부디 일반적인 영장류의 결정과 같기를 간절히 바랄 뿐이다.

매일 같이 실험하듯 그려지는 주가의 등락에 반응하지 않을 때, 우리는 사람의 존엄을 지킬 수 있다. "침 흘리고 있는데 왜 먹을 걸 안 주는 거야!!?" 개도 하지 않을 밑도 끝도 없는 억지다. 우리는 개가 아니다. 개는 귀엽기라도 하지만 사람이 개가 될 땐, 상종할 것이 못 된다. 오늘도 인간의 모습으로 좀 더 오래 머물기 위해 노력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덧붙이는 글 | 개인 브런치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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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글렀지만 넌 또 모르잖아"라는 생각으로 내일의 나에게 글을 남깁니다. 풍족하지 않아도 우아하게 살아가 보려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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