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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페미니즘에 대해 부정적인 정서가 편만하다. 그래서인지 여성주의에 대해 속시원하게 이야기할 상대를 찾기가 어렵다. 특히 50~60대 여성들의 삶을 여성의 시각으로 해석하며 함께 이야기를 나눌 사람이 많지 않아 보인다.

그러던 차에 두잉 사회적 협동 조합 블로그에서 다음과 같은 모집 공고를 보게 되었다. '시니어 페미니스트 네트워크', 곧바로 연락을 취해 함께 한 것이 3주 전의 일이다. 이번주가 참가 3회차, 눈에서 비늘이 한겹 벗겨지는 시간이었다. 
 여성들의 연대 '시니어 페미니스트 네트워크' 모집 공고
 여성들의 연대 "시니어 페미니스트 네트워크" 모집 공고
ⓒ 박미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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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신 중에도 폭력을 당하는 짓밟힌 여성의 인권

현재 함께 읽고 토론하고 있는 책은 정희진의 <페미니즘의 도전>이다. 이번에는 제 2부의 '가정 폭력의 정치학'이라는 장(chapter)을 읽었다. 우리는 모두 임신한 여성도 폭력의 대상이 된다는 것에 경악했다. 
 
"미국 휴스턴과 볼티모어에서 저소득층 임신 여성 여섯 명 중 한 명은 임신 중에 폭력을 경험했다. 구타당한 여성의 60퍼센트가 그렇지 않은 여성보다 임신 중에 세 배 이상의 폭력을 경험한다. 멕시코시티에서 무작위로 342명의 여성들을 조사했는데 20퍼센트의 여성들이 임신 기간 동안 위(胃)를 가격당했다. 코스타리카 산호세에서는 남편에 대해 사법적 개입을 요청한 80명의 매 맞는 아내들에 대한 연구에서, 49퍼센트가 임신 중에 구타당했다고 보고했고 이중 7.5퍼센트가 구타로 유산했다."(155쪽)

그렇다면 우리나라는 어떤가. 우리보다 여성 운동이 활발하고 사회복지시설이 잘되어 있는 미국조차도 임신한 아내를 구타하는 상황이라고 하니 말이다. 여성가족부의 '2019년 가정폭력 실태조사'에 의하면, 가정 폭력 경험자의 26.9%가 임신 중에도 같은 배우자로부터 폭력을 당했다고 한다. 낮은 신고율로 인해 통계보다 실제 피해자는 더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임신 중에도 구타를 당한다! 여성들이 얼마나 취약한 상황에 놓여있는지 이보다 더 잘 보여줄 수는 없다. 드라마에서 보여지는 것처럼, 임신한 아내를 신줏단지 모시듯 하는 그런 이미지들을 덮어버리기에 충분하다. 버스나 전철에 의무적으로 설치된 임산부 배려석이 무색하게 느껴진다. 

모임에서 이렇게 심각하게 여성 인권이 짓밟힌 상황에서 어떻게 탈출할 수 있는가에 대한 논의가 활발하게 펼쳐졌다. 
 
인권은 사회의 권력 관계와 관련 없이 추상적, 초월적으로 본래 존재하는 개념이 아니라, 구성되고 쟁취되는 경합적 가치이다. 인권은 언제나 피억압 집단의 개입을 기다리는 과정적 개념인 것이다.(177쪽)

정희진은 인권은 추상적, 초월적, 본래적, 자연적 개념이 아니라, 피억압 집단이 쟁취해야 되는 가치라고 말한다. 여성들이 직접 나서서 싸우지 않으면 여성 인권을 쟁취할 수 없다는 말이다. 수천년 동안 권력자와 피권력자의 관계로 살아왔기 때문에, 남녀 불평등의 두터운 벽 앞에 무력감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계란으로 바위치기라도 해야 되는 것이 여성들의 과제이기도 하다. 

피해자가 가해자를 걱정하는 어이없는 현실

참석자중 K는 탈혼했다고 자신을 소개했다. 이혼이라는 것은 동등한 관계에서 쓰는 용어로, 결혼에서 탈출했다는 의미의 탈혼이 자신에게 더 적절한 단어라고 설명했다. 동화 작가이자 시민운동을 하는 그녀는 남성들과 함께 일하지 않는다. 지금은 여성 연대 중심으로 활동한다고 한다. 

S는 비혼으로 그동안 많은 남자들을 만나보았다. 그들은 하나같이 그녀를 동료 인간으로 보지 않았다. 제일 잘 대해 주는 방식이 사랑스런 인형을 대하는 태도였다. 지금은 그런 관계에 지쳐 남자들을 더 이상 만나고 싶지 않다고 한다.

잠깐, 그녀들의 고백이 언뜻 남성 혐오처럼 들린다. 가까이 있는 옆지기, 아들, 아버지가 다 남자인데, 어떻게 그들과 함께 살아가야 하지? 불편한 마음이 스멀거려 입을 떼려는 순간, Y가 나의 마음을 대신하여 말한다. 

"남자를 배제하는 것처럼 들리네요. 남자도 가부장제의 피해자인데... 여남 함께 잘 사는 것, 우리가 추구해야할 페미니즘 아닌가요?"

이때 P의 반응이다. 

"저도 남편이 있고 아들이 있지만, 저는 그들을 걱정하지 않아요."

순간 망치로 얻어맞은 듯, 정신이 번쩍 들었다. 눈에서 비늘이 벗겨지는 순간이다. 누가 누구를 걱정하고 있는 거지? 조금 전까지 임신한 여자들이 배우자에게 폭력을 당하는 현실에 모두 분노하지 않았던가.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지구의 절반 여자들이 거의 예외없이 가정에서 얼마나 취약한 구조 가운데 있는지 새롭게 인식하지 않았던가.

그런데 (좀 극단적으로 말하자면) 매맞는 여자들이 매를 때리는 남자들을 걱정한다? 그들과 함께 살아갈 방법을 모색해야한다? 늪에 빠진 사람이 누구를 걱정할 처지인가?

스톡홀름 증후군이라고 들어본 적이 있는가. 이것은 1973년 스톡홀름의 은행 강도 사건에서 유래된 말이다. 강도들은 6일 동안 경찰들과 대치하며 여자 3명과 남자 1명을 인질로 삼는다. 그들은 인질들의 생살여탈권(生殺與奪權)을 쥐고 경찰과 협상을 벌이면서, 인질들을 거칠게 다루기도 하지만 친절을 베풀기도 한다.

인질들은 인질범들의 작은 호의에 감동하고, 그들에게 유대감을 형성한다. 생존을 위해서 말이다. 게다가 그들이 붙잡혀 구속되는 상황에서 인질들은 그들의 신변을 걱정하기까지 했다고 한다. 참 당혹스런 사건이다. 그런데 이런 일이 스톡홀름 강도 사건에서만 일어난 특이한 현상은 아니다. 피해자와 가해자 사이에 종종 나타난다는 것이다. 이름하여 스톡홀름 증후군이다. 

피해자가 생존하기 위해 가해자에게 동조하는 현상. 여남 위계 구조 가운데 하위에 있는 여자들이 상위에서 권력을 행사하는 남자들의 신변을 걱정하는 모습, 이것도 스톡홀름 증후군으로 설명할 수 있지 않을까. 

여성의 시각과 언어를 찾는 것, 여성 인권 쟁취의 길

이 모순을 극복하기 위해서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오랫동안 학습된 남성들의 시각과 남성들의 언어로는 이 불평등한 구조에서 탈출할 수 없다. 오히려 남성중심 사회에 부역할 수 밖에 없는게 우리의 쓰라린 현실이다. 여성들의 시각과 여성들의 언어로 여성들의 삶을 해석하지 않는 이상, 남성들의 권력과 그 권력을 지탱하는 폭력에서 헤어나오기란 불가능하다. 

우리는 페미니즘을 공부하며 여성들의 현실을 보지 못하게 하는 남성중심적 사고를 벗겨내는 일이 절실하다는 데 생각을 모았다. 그동안 자연스럽고 당연하게 생각했던 틀, 그것이 나를 억압하고 착취하는 수단이었다는 것을 자각할 때, 거기로부터 탈출할 수 있는 힘이 생길 것이다. 

무엇보다 내가 먼저 살고 봐야 되지 않겠는가. 그럴 때 옆지기, 아들, 아버지, 그 외 다른 남성들과도 잘 살아갈 수 있겠다. 그런 날을 기대하며 각자의 위치에서 작은 날갯짓으로 서로를 응원하고 연대하는 모임, 시니어 페미니즘 네트워크에 접속하시라.

덧붙이는 글 | 개인블로그, 브런치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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