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미국 전기차 기업 테슬라의 최고경영자(CEO) 일론 머스크.(AP=연합뉴스)
  미국 전기차 기업 테슬라의 최고경영자(CEO) 일론 머스크.(AP=연합뉴스)
ⓒ 연합뉴스

관련사진보기


지난 8일, 가상자산 시장 시가총액 4위 도지코인(Dogecoin) 가격은 고공행진하고 있었습니다. 1코인당 원화 가격은 811원까지 치솟으면서 사상 최고가를 기록했습니다. 하지만 투자자들의 기쁨은 오래가지 않았습니다. 그로부터 하루 뒤인 9일 오후 9시께 488원까지 떨어졌기 때문입니다. 40%에 가깝게 추락한 것입니다. 이틀 동안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요?

그 중심엔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의 '한 마디'가 있었습니다. 머스크는 지난 8일(현지시간) 미국의 유명 텔레비전 프로그램 새터데이 나이트 라이브(Saturday Night Live, SNL)에 진행자로 출연했습니다. 그가 방송에서 도지코인을 언급할 것이라 판단한 투자자들은 8일 전후 도지코인을 매수했습니다. 그러나 정작 머스크는 방송에서 "도지코인은 사기(Hustle)"라며 농담을 던졌고 곧 폭락세가 이어졌습니다.

머스크의 한 마디에 도지코인 가격이 오르내리는 게 이번이 처음 있는 일도 아닙니다. 도지코인 급등의 역사는 머스크를 빼놓고 설명하기 힘들기 때문입니다. 그가 트위터로 도지코인에 대한 옹호 발언을 내놓을 때마다 가격은 급등하곤 했습니다. 최근에는 머스크가 도지코인의 시세를 조작하는 게 아니냐는 의혹이 나오는 것도 사실입니다. 도지코인을 급등락하게 하는 머스크의 입, 과연 법적인 문제는 없을까요? 

한없이 가벼운 머스크의 '입'
   
일론 머스크가 도지코인을 언급한 트위터.
 일론 머스크가 도지코인을 언급한 트위터.
ⓒ 트위터

관련사진보기


결론부터 말하자면, 지금까지 나온 정보들만으론 '표면적으론' 머스크가 미국 증권법에서 정하는 시장 조작(Market Manipulation) 행위를 했다고 보긴 어렵습니다.

미 증권법은 시장 조작 행위를 '시장을 간섭하려는 고의적 시도이자 투자자를 속여 이익을 챙기기 위한 방법'이라고 정의내리고 있습니다. 핵심은 고의가 있었냐는 것입니다. 만약 스스로 부당한 이익을 얻기 위해 시세를 움직였다면, 고의성이 있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머스크는 현재 도지코인에 투자하고 있는지 밝히지 않고 있습니다. 결국 자신이 이득을 보기 위해 말과 글로 도지코인의 가격 변동을 부추겼는지 알기 힘든 셈입니다.

그런데도 그가 '시장 조작' 논란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 없는 이유가 있습니다. 머스크가 도지코인의 소유주가 아니라 하더라도, 그가 경영하고 있는 테슬라는 가상자산 시장 시가총액 1위 비트코인을 상당량 보유하고 있다고 알려져 있기 때문입니다. 내재가치가 없는 가상자산의 특성상, 시장에는 투자자들의 '심리'에 따라 가격이 요동치는 모습이 자주 나타나곤 합니다. 도지코인의 호재가 전체 가상자산 시장의 호재로 읽히기도 하죠. 머스크가 도지코인의 상승을 자극하면 덩달아 비트코인가격 또한 영향을 받을 수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그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실제로 머스크는 지난 1월 자신의 트위터 프로필에 직접적으로 비트코인(bitcoin)'이라는 해시태그를 추가해 비트코인 가격 급등에 영향을 미쳤습니다. 지난달 26일(현지 시간)에는 테슬라가 올해 1월부터 3월까지 비트코인을 팔아 총 1억100만 달러(1123억 원)의 수익을 봤다고 밝혀 '먹튀' 논란에 휩싸였습니다.

게다가 머스크는 지난 12일(현지시간) 트위터에 올린 성명을 통해 테슬라 차 구매시 허용했던 비트코인 결제를 돌연 중단한다고 선언해 가상자산 시장에 큰 충격을 가했습니다. 

미국 법률 회사 앤더슨 킬의 파트너 변호사 프레스턴 번은 지난 2월 미 가상자산 전문매체 디크립트(Decrypt)와의 인터뷰에서 "테슬라가 비트코인에 꽤 많은 지분을 갖고 있다고 알려져 있기 때문에 (머스크가) 트위터에서 비트코인에 대해 이야기할 때는 조심성을 보여야 한다"고 지적했습니다. 그는 또 "비트코인을 보유하고 있는 회사 경영자들은 그들의 말이 상품이나 증권의 맥락에서 조작이나 기만적 장치, (그들의) 편익으로 보이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머스크의 돌발행동, 처음이 아니다
   
사실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는 기업들의 장난이 시장에 영향을 미칠 경우, 엄격히 대처해왔습니다. 

일례로 지난 4월 자동차업체 폭스바겐의 미국 지사가 '만우절'을 맞아 브랜드명을 볼츠바겐으로 바꾸겠다는 내용의 보도자료를 홈페이지에 올리면서 주가가 크게 오르는 사건이 있었습니다. 투자자들은 폭스바겐이 전기차 시대를 맞아 이름에 볼트(Volt)를 사용하겠다고 밝힌 줄로 오해했습니다. 투자자들을 중심으로 주가 조작 논란이 일자 SEC는 현재 직접 폭스바겐을 조사하고 나선 상황입니다. 

게다가 SEC가 머스크의 입을 예의주시할 수밖에 없는 이유도 있습니다. 머스크의 가벼운 언행이 시장에 논란을 일으켰던 게 이번이 처음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SEC는 지난 2018년 9월 머스크를 사기 혐의로 고소했습니다.

당시 월가가 연일 테슬라의 주가를 비관적으로 보자, 머스크는 트위터에 사측과의 별도 논의 없이 '테슬라를 비공개 개인 회사로 전환하기 위해 주당 420달러에 주식을 매입할 수 있는 자금을 확보했다'고 적었기 때문입니다. 트위터가 게재된 이후 주가는 급등했습니다.

결국 이 사건을 계기로 머스크는 테슬라 이사회 의장직에서 물러나야 했고, 테슬라와 머스크에는 각각 2000만 달러의 벌금도 부과됐습니다. 또 SEC는 머스크에게 테슬라와 관련한 일부 트위터를 게시할 때는 사내 법무팀의 사전 승인을 받으라고 명령하기도 했습니다.

비트코인은 CFTC가, ICO는 SEC가 규제?
 
10일 오전 서울 강남구 업비트 라운지 전광판에 도지코인 시세가 표시되고 있다.
 10일 오전 서울 강남구 업비트 라운지 전광판에 도지코인 시세가 표시되고 있다.
ⓒ 연합뉴스

관련사진보기


미국 현지에서는 머스크의 도지코인과 관련한 돌발행동이 중범죄인 시세조정 행위라며 조사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습니다. 만약 주식시장에서 머스크가 돌발행동을 했다면 큰 곤욕을 치러야 했을 겁니다. 하지만 가상자산 시장에서는 현재 시세조정 행위를 처벌할 법적 근거가 미비한 상황입니다. 가상자산을 누가, 어떤 법에 따라 규제할 것인가를 두고 명확한 방침이 아직 없습니다. 미국의 규제당국이 머스크를 조사하고 제재를 내리기는 걸림돌이 많다는 이야기입니다. 

우선 가상자산에 대한 정의부터 제각각입니다. 세계 각국 정부도 가상자산을 물건을 구입할 수 있는 '화폐', 가치를 저장하는 '자산', 혹은 물건과 물건을 교환할 수 있는 '상품' 중 하나로 보고 있습니다. 그중에서도 미국은 과세 측면에선 가상자산을 '자산'으로 봐야 한다는 입장입니다. 미국 국세청(IRS)은 2014년 이후 가상자산을 통화 아닌 자산으로 보고 과세하고 있습니다. (관련 기사: 코인 투자는 도박이라는 정부, 자릿세만 걷겠다?)

하지만 가상자산의 고삐를 쥐어야 할 미 규제 당국의 상황은 간단치가 않습니다. 전에 없던 성격의 가상자산이 새롭게 등장할 때마다 가상자산의 성격별로 각기 다른 기관에서 관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처음에 미 정부는 비트코인과 이더리움과 같은 초기 가상 자산들을 상품교환법상 '상품'이라고 봤습니다. 그래서 지난 2014년부터 상품선물거래위원회(CFTC)가 관리해오고 있습니다.

그런데 가상자산을 공개해 투자자들로부터 사업 자금을 마련하는 가상화폐공개(ICO)나 주식·채권·부동산 등 실물자산을 담보로 만든 '증권형 토큰 발행(STO)'이 늘어나면서 규제 당국의 셈은 점차 복잡해졌습니다. 미국 시장에서 증권에 대한 규제는 SEC의 영역이기 때문입니다. 결국 SEC는 2018년 공식 성명을 통해 "가상자산 형태의 증권을 발행할 때는 법에 정해진 절차와 규제를 따라야 한다"고 밝혔습니다. 

미국 내 가상자산을 관리하는 기관이 두 개뿐인 것도 아닙니다. 미 재무부나 연방준비제도(Fed) 등 다수의 연방·국가기관이 현안에 따라 다른 규제를 하고 있습니다. 결국 머스크의 돌발 행동을 제재하기에 앞서, 머스크의 도지코인 관련 논란을 해결할 '담당기관'이 어디인지부터 정해야 하는 셈입니다.

하지만 미국 정부라고 마냥 시장에서 일어나는 부정행위에 손을 놓고 있는 건 아닙니다. 일례로 SEC는 지난해 10월 백신 개발자 존 맥아피(John McAfee)를 상품 및 증권 사기 행위 등 혐의로 고발했습니다. SEC는 맥아피가 7여개 ICO 프로젝트를 자신의 트위터를 통해 홍보하면서 이에 대한 대가로 1160만 달러에 해당하는 가상자산을 제공받는다는 사실을 알리지 않았다고 문제를 제기했습니다. CFTC 역시 맥아피가 상품 교환법 규정을 위반하는 사기 및 조작 행위에 가담했다고 보고 민사 소송을 제기했습니다.

성태윤 연세대학교 경제학과 교수는 "머스크가 트위터로 도지코인의 가격을 움직이는 행위가 국내 자본시장법(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 규제 범위 내에서 이뤄졌다면, 법을 엄격히 적용했을 때 시세조종으로 볼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현행법상 시세를 움직이려는 자가 주관적인 동기에 따라 매매가 성황인 것처럼 오인시키거나 시세를 변동시킬 경우 시세 조종에 해당합니다.

하지만 성 교수는 "가상자산에 어떤 법규를 적용해야 하는지 정해져 있지 않은 데다 미국 또한 마찬가지라, 미국 정부도 머스크에 별도 문제 제기를 하지 있지 않은 걸로 보인다"고 설명했습니다. 그러면서 "특정인의 발언에 따라 가상자산이 이 정도로 흔들린다는 건 그 만큼 해당 자산이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다는 말과 같다"며 "위험성을 감수하고도 투자할 것인지 투자자들이 스스로 결정해야 한다"고 조언했습니다.

태그:#일론머스크, #도지코인, #테슬라, #비트코인, #가상자산
댓글3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안녕하세요. 오마이뉴스 류승연기자입니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