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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 5월 27일, 계엄군의 무자비한 전남도청 진압 작전이 끝난 직후의 사진. 외신기자가 찍은 것을 고 문재학의 모친이 복사해 보관하고 있는 사진이다.
 1980년 5월 27일, 계엄군의 무자비한 전남도청 진압 작전이 끝난 직후의 사진. 외신기자가 찍은 것을 고 문재학의 모친이 복사해 보관하고 있는 사진이다.
ⓒ 문재학 모친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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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수의 장교·사병이 고속도로를 지나가던 신혼부부를 태운 차량을 저격·사살했다는 증언을 확보했다."

"제3공수여단의 경우 광주역과 광주교도소의 감시탑 및 건물 옥상에 M60기관총을 설치하고 M1소총에 조준경을 부착해 시민을 살상했다는 진술을 확보했다. 제11공수여단의 경우 금남로 주요 건물 옥상에 저격수를 배치해 시위대를 향해 조준 사격했음을 인정한 진술을 확보했다."

"북한 특수군으로 자신이 직접 광주에 침투했다고 최초 발설한 북한군 출신 북한이탈주민 김명국(가명)에 대한 조사를 진행해 (그것이 허위라는) 의미 있는 진술을 확보했다."

"신군부 핵심 관련자들 가운데 조사대상자 37명을 선정한 후 법률자문단과 교수자문단의 실무적 지원을 받아 심문에 필요한 질문서 등을 준비했으며 6월 이후 본격적인 면담조사에 착수할 예정이다."


5.18민주화운동진상규명조사위원회(아래 5.18위원회, 위원장 송선태)가 본격적인 조사 진행 후 약 1년이 지난 시점에 기자간담회를 열어 ▲ 민간인 학살 ▲ 기관총 및 저격수에 의한 시민 사격 ▲ 북한 개입설 등 왜곡 사례 ▲ 실종 및 시신 암매장 등에 대한 중간 조사결과를 발표했다.

5.18위원회는 5.18민주화운동(아래 5.18) 41주년을 엿새 앞둔 12일 서울 중구에 위치한 5.18위원회 대강당에서 "지난 1년 동안 코로나19의 위협에도 불구하고 더디지만 옳은 방향으로 진실에 접근해 가고 있다"며 이 같은 내용을 공개했다. 

"암매장 4세 아이, 신원 및 가해자 확인 위해 조사 중"  
 
광주 북구 망월동 5.18 구묘역
 광주 북구 망월동 5.18 구묘역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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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간인 학살과 실종 및 시신 암매장에 대해 5.18위원회는 "1980년 6월 11일 미국방정보국(USDIA)의 2급 비밀전문에 '광주는 한국판 미라이 사건(My Lai Massacre)'이라고 나와 있을 정도로 참혹했다는 증언이 있었는데, 계엄군들의 증언을 통해 이 의혹이 사실로 확인되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광주교도소 양쪽 광주-순천 간 고속도로와 광주-담양 간 국도를 오가는 차량과 민간인들에 대한 사격으로 최소 13차례 이상의 차량피격사건이 있었음을 증언과 문헌을 통해 확인했다"며 "복수의 장교·사병이 교도소 옆 고속도로를 지나던 신혼부부를 태운 차량을 저격·사살했다는 증언도 확보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주남마을과 지원동 일원에서도 그동안 알려진 마이크로버스 및 앰뷸런스 피격사건 외에도 또 다른 승합차와 앰뷸런스 등 최소 5대의 차량을 피격했단 증언을 확보했다"며 "특히 마이크로버스 피격사건은 현장 사망자가 최소 17명이라는 군 기록과 현장에서 수습된 시신이 11구였다는 광주시청 관계자의 증언을 비교해 실종된 시신 최소 6구의 사후처리 과정을 조사 중이다"라고 덧붙였다.

또 5.18위원회는 "1980년 5월 21일 이후 광주봉쇄작전이 수행되는 동안 제7공수여단, 제11공수여단, 제20사단, 전투교육사령부 병력 등이 모두 관련된 작전이 있었고 계엄군 간 오인사격과 민간인 학살도 발생했는데 그 실상을 계속 확인하고 있다"며 "만 4세 어린이가 총격에 의한 좌후경부맹관총상을 입고 사망한 후 암매장된 사건은 가해자 특정과 피해자 신원 확인을 위해 조사를 진행하고 있다"라고 밝혔다. 

더해 "광주봉쇄작전 중 사망한 이들의 시신 중 광주교도소 일원 최소 41구, 주남마을 일원 최소 6구가 확인되지 않았고 송암동 일원 최소 8구의 시신도 확인이 필요하다"며 "이러한 정황은 현장에서 암·가매장을 지시, 실행, 목격했다는 계엄군 중 제3공수여단 51명의 증언과 주남마을의 제11공수여단 4개 팀이 광주에 다시 내려와 사체 수습에 참여했다는 증언에 기초하고 있다. '사체처리반' 운영 의혹에 관한 조사를 계속 진행 중이다"라고 부연했다. 

"616명 공소사실 및 판결 분석, 북한 연계 한 명도 없어"
 
5.18민주화 운동 당시 광주 제일은행(현재 무등빌딩) 앞에서 최루탄이 터진 상황에서 한 시민이 방독면을 쓴 계엄군에 둘러 싸여 겁에 질린 모습을 하고 있다.
 5.18민주화 운동 당시 광주 제일은행(현재 무등빌딩) 앞에서 최루탄이 터진 상황에서 한 시민이 방독면을 쓴 계엄군에 둘러 싸여 겁에 질린 모습을 하고 있다.
ⓒ 나경택 촬영, 5.18기념재단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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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관총 및 저격수에 의한 시민 사격과 관련해 5.18 위원회는 "제3공수여단의 경우 1980년 5월 20일 오후 10시 이후 광주역, 5월 22일 이후 광주교도소의 감시탑 및 건물 옥상에 M60기관총을 설치하고 M1소총에 조준경을 부착해 시민을 살상했다는 진술을 확보했다"라며 "제11공수여단의 경우 5월 21일 오후 1시경 전남도청 앞 집단발포 직후에 금남로 주요 건물 옥상에 저격수를 배치해 시위대를 향해 조준 사격했음을 인정한 진술을 확보해 분석 중이다"라고 발표했다.

그러면서 "5월 20일 광주역 일원의 총상 사망자들과 5월 22일 이후 광주교도소 일원에서 발생한 총상 사망자들의 사망원인이 일부 칼빈총 총상으로 분류된 의혹의 진실을 풀어가는 데도 실마리를 제공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라며 "이를 위해 탄도학 등의 관련 분야 전문가들과 국립과학수사연구원 등의 전문기관에 관련 진술 내용을 의뢰해 추가 정밀 분석을 진행할 예정이다"라고 밝혔다.

그동안 일각에선 5.18 당시 시민군이 주로 칼빈을 사용한 점을 들어 사망한 이들의 일부 사인이 '칼빈 총상'으로 분류된 것에 의혹을 제기해왔다. 이를 두고 계엄군이 쓴 M16에 의한 총상으로 분류될 경우 '폭도'로 내몰렸기 때문에 애매할 경우 칼빈 총상으로 분류한 경우가 많았을 뿐만 아니라, 당시 혼란스러웠던 상황과 기술력으론 명확한 사인 분석이 어려웠다는 증언이 설득력을 얻어 왔다.  

북한 개입설 등 왜곡 사례에 대해 5.18 위원회는 "북한 특수군으로 자신이 직접 광주에 침투했다고 최초 발설한 북한군 출신 북한이탈주민 김명국(가명)에 대한 조사를 진행해 (그것이 허위라는) 의미 있는 진술을 확보했다"며 "김명국의 진술을 그동안 위원회가 국가정보원과 국방부 등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를 분석한 내용과 연계해 매우 소중하게 활용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5.18 관련 구속·송치된 616명의 구속자들 중에 단 한 명도 북한과 연계돼 있다는 공소사실이나 판결내용이 없다는 사실도 확인했다"며 "향후 북한 침투설을 주장해 온 또 다른 북한이탈주민에 대한 추가조사와 함께 관련 인물들에 대한 조사를 병행해 의혹을 해소하겠다"라고 밝혔다. 

이밖에 "시위대에 의한 무기고 피습과정에 북한군이 개입됐다는 일부의 주장에 대해 당시 시위대, 경찰 관계자, 현장 목격자 등의 증언을 토대로 사실관계를 확인하고 있다"고 밝혔으며, "또한 당시 전남도청 지하실에 '8톤 분량의 군사용 TNT(폭약)가 설치돼 있었다'는 주장을 조사해보니 군사용 TNT가 아니라 민수용 다이너마이트였고 그 분량도 8톤과는 큰 차이가 있음이 확인되고 있다"라고 덧붙였다.

6월 이후 신군부 핵심 조사 계획
 
전두환씨가 지난 2020년 11월 30일 광주지법에서 열리는 사자명예훼손 1심 선고 공판에 출석하기 위해 부인 이순자씨와 서대문구 연희동 자택에서 나오고 있다. 전씨는 자서전에서 5·18 당시 헬기 사격 목격 증언을 한 조비오 신부에 대해 '신부라는 말이 무색한 파렴치한 거짓말쟁이'라고 비난하고 명예를 훼손한 혐의로 기소됐다.
 전두환씨가 지난 2020년 11월 30일 광주지법에서 열리는 사자명예훼손 1심 선고 공판에 출석하기 위해 부인 이순자씨와 서대문구 연희동 자택에서 나오고 있다. 전씨는 자서전에서 5·18 당시 헬기 사격 목격 증언을 한 조비오 신부에 대해 "신부라는 말이 무색한 파렴치한 거짓말쟁이"라고 비난하고 명예를 훼손한 혐의로 기소됐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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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 위원회는 지난 1년 동안 출범준비단이 인수한 2026권 41만 1283쪽 분량의 자료, 출범 후 입수한 7692권 30만 8778쪽 자료 등을 검토 중이며 전일빌딩 등 총 124개 기관과 사건현장을 조사했다고 밝혔다. 또 당시 투입된 2만 353명 계엄군 중 200여 명의 유의미한 증언을 확보했으며 2000명 이상의 증언 확보를 계획 중이라고 전했다. 특히 신군부 핵심 관련자 37명을 선정해 6월 이후 조사에 착수하겠다고 계획을 밝혔다. 

송선태 위원장은 "1997년 4월 17일 대법원의 확정판결 이후 지금까지 24년이 지나도록 내란과 내란목적 살인죄를 저지른 핵심 책임자들은 진솔한 고백도, 단 한 마디의 사과도 없다"라며 "조사과정에서 5.18 피해자들은 통한의 세월을 보내고 있음을 확인했다"라고 지적했다.

이어 "당시 광주에 계엄군으로 투입됐던 장교·사병의 용기 있는 고백과 증언이 이어지고 있다. 피해자의 유가족을 만나 진실을 고백하고 사죄하겠다는 뜻을 전해오는 사례들이 늘어나고 있다"며 "5.18 위원회는 이런 자리가 준비될 때마다 국민 여러분께 공개해 진정한 화해와 화합의 길을 마련하겠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5.18 위원회는 국민과 함께하는 조사, 피해자 중심주의, 법률과 국제규범을 준수하는 조사라는 대원칙을 실천하고자 최선을 다하고 있다"라며 "5.18진상규명특별법의 목적에 명시된 바와 같이 진실에 기초한 국민통합을 달성하기 위해 가해자와 피해자, 사회공동체가 반복과 갈등, 폄훼와 왜곡을 극복하고 대화할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되도록 끝까지 최선을 다하겠다"라고 덧붙였다.
 
송선태 5.18민주화운동 진상규명조사위원회 위원장이 지난해 12월 8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국방위원회 전체회의에 출석해 업무보고를 하고 있다.
 송선태 5.18민주화운동 진상규명조사위원회 위원장이 지난해 12월 8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국방위원회 전체회의에 출석해 업무보고를 하고 있다.
ⓒ 공동취재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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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5.18민주화운동, #진상규명조사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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