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05.12 12:34최종 업데이트 21.05.13 1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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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양유업 홍원식 회장이 4일 오전 서울 논현동 본사 3층 대강당에서 자사 제품인 '불가리스'의 코로나19 억제 효과 논란과 관련해 대국민사과를 하면서 회장직 사퇴를 밝혔다. 남양유업은 지난달 '코로나 시대 항바이러스 식품 개발' 심포지엄에서 불가리스 제품이 코로나19를 77.8% 저감하는 효과를 확인했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해당 연구 결과는 동물의 '세포단계' 실험 결과를 과장해 발표한 것으로 알려져 논란을 빚었다. ⓒ 공동취재사진


ESG가 유행이다. 최근 한 달간 'ESG'가 들어간 뉴스 건수가 무려 2만5000건에 이른다(포털 '다음 뉴스' 검색 기준). ESG는 환경(Environment), 사회(Social), 지배구조(Governance)를 뜻한다. 즉, 기업이 이익만 추구하는 것에서 벗어나서 환경·사회적 가치·좋은 지배구조도 같이 추구해야 한다는 얘기다.

ESG가 뜨니 ESG 투자에도 관심이 쏠리고 있다. 조금 솔직해지자. 우리의 주요 관심은 'ESG 투자를 하면 돈을 벌 수 있을까'가 아닐까? 부가가치를 많이 만들어서 이익을 많이 내는 기업은 결과적으로 주가가 오른다.


그런데 비록 이익은 크지 않아도, 다시 말해 재무적 가치는 좀 부족하더라도, ESG 경영을 잘한다는 이유로 주가가 오를 수 있을까? 기업이 돈을 벌지 못해도 주가가 오를 수 있다는 것은 권선징악을 말하는 동화 속 얘기처럼 들리기도 한다.

회장이 사퇴하자 주가가 급등했다

지난 4일 남양유업 주식이 10% 가까이 급등 마감했다. 다음날은 또다시 7% 올랐다. 돈을 많이 벌었다는 어닝 서프라이즈 뉴스가 시장에 퍼진 것은 아니다. 회장이 사임하고 자식에게 '경영권'을 물려주지 않는다고 밝힌 덕분이다.

회장 사퇴는 불가리스를 먹으면 코로나19를 예방할 수 있다고 했던 황당한 쇼가 불러온 후폭풍이다. 남양유업은 지난 4월 불가리스가 코로나19를 예방할 수 있다고 해석할 수 있는 연구결과를 발표했다. 과학적 근거가 없다는 비판이 일면서 이후 사과를 했지만, 압수수색·영업정지·불매운동 등이 이어지면서 후폭풍이 줄어들지 않고 있다.

그런데 왜 회장이 사임했다고 주가가 오를까? 시장은 불가리스 사태를 '오너 리스크'로 해석한 것 같다. 오너 리스크가 해소되었다고 주가가 오르는 것을 보면 그렇다.

'오너 경영'이 주가에 긍정적인지, 아니면 전문경영인이 더 효율적인지 케케묵은 얘기를 하려는 것은 아니다. '오너 경영'에도 좋은 측면이 많다. 그러나 그 장점이 지속가능하려면 반드시 '오너 리스크'는 관리해야 한다. 오너 리스크를 관리하지 못하는 오너 경영체제는 사고가 나기 마련이다. 주인-대리인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는 전문경영인 체제는 비효율적일 수밖에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나는 불가리스가 코로나19를 막을 수 있다는 황당한 발표를 접하고, 로봇 물고기 사태가 떠올랐다. 누가 봐도 황당한, 최소한 전문가가 보기에는 절대적으로 말이 안되는 아이디어를 보스가 지지한다. 보스가 지지하는 황당한 아이디어를 막을 수 있는 기업 분위기와 절차가 없으면 언젠가는 사고가 터진다.

'통촉하여 주시옵소서' 식으로 자신의 목을 내놓고 보스의 잘못된 판단을 막고자 하는 충신을 기대하면 안 된다. 자신의 의견을 '쿨'하게 말할 수 있는 분위기가 필요하다. 호랑이 같고 하늘 같은 보스의 지시를 쿨하게 비판할 수 있는 분위기와 절차는 반드시 필요하다. 그래서 이러한 '오너 전횡'을 견제하고 오너 리스크를 막을 수 있는 절차를 마련하고자 좋은 기업지배구조가 필요하다.

좋은 기업지배구조가 작동하는 법

기업지배구조 얘기를 하면 꼭 나오는 질문이 있다. '강력한 리더쉽이 있는 오너 경영도 장점이 많지 않나요? 삼성전자처럼 대규모 투자를..."처럼 이어지는 질문들이다. 그러나 좋은 기업지배구조는 불이 났을 때, 불을 끌 수 있는 소화 시설을 설치해 놓는 일과 같다. 소화전을 설치하지 않았다고 기업실적이 나빠지는 것은 아니다. 아니 어쩌면 소화전 설치할 돈과 시간을 아껴서 집중적인 투자를 하면 기업 실적은 더 좋아질 수도 있다.

그런데 불이 났을 때가 문제다. 작은 불이라도 번지면 재빨리 불을 진압할 수 있어야 한다. 오너가 황당한 소리를 하면 재빨리 진압할 수 있는 리스크 관리 체제가 작동해야 한다. 그러나 좋은 실적만 믿고, 지배주주의 카리스마와 능력만 믿고 돈을 들여서 소화전을 설치해 놓지 않으면, 작은 사고도 크게 번진다.

하늘 같은 보스의 말에 쿨하게 반대할 수 있는 직원이 없으면, 결국 코로나19 예방이 가능하다는 불가리스가 나오고 로봇 물고기가 나오고 삼성자동차가 나온다. '우리 기업은 실적이 좋기 때문에 현재의 지배구조가 좋은 것이야'라는 얘기는 '우리 기업은 실적이 좋기 때문에 소화전을 설치할 필요가 없어'라는 말과 비슷한 얘기다.

남양유업 사태는 ESG가 주가를 올릴 수 있다는 사실을 말하기에는 너무 특수한 얘기일까? 결국 주가는 재무적 지표를 따라간다는 것은 상식적인 말처럼 들린다. 그러나 최근 가장 주식 가치가 높아진 회사들을 보자.

승자와 패자를 나누는 새로운 기업 가치 평가
 

서울 송파구 신천동의 쿠팡 본사의 모습. ⓒ 연합뉴스


최근 가장 이슈가 된 종목은 쿠팡이다. 쿠팡이 미국 주식시장에 상장하면서 시가 총액이 단숨에 우리나라 기업 중 3위로 뛰어올랐다. 롯데쇼핑·신세계·현대백화점·이마트 등 우리나라 모든 유통회사 주식을 다 합친 것보다도 몇 배가 더 크다. 그런데 쿠팡의 재무적 지표는 처참하다. 2018년 영업손실액은 1조원을 초과했고 '코로나 특수'를 누렸다는 2020년 실적도 무려 5800억원 손실이다. 쿠팡의 높은 시가총액은 재무적 지표의 결과가 아닌 것은 확실하다.

전 세계 주식시장의 기린아는 테슬라다. 테슬라의 시가총액은 폭스바겐·토요타·닛산·GM·현대·포드 등 기라성 같은 자동차 회사의 시가총액을 합친 것보다 더 크다. 그러나 테슬라의 재무지표도 그리 좋지 않다. 역대 최고 실적을 냈다는 올해 1분기 순이익도 4800억원 정도에 불과하다. 그것도 비트코인 매매 차익 1000억원을 포함한 수치다. 테슬라의 높은 주식가치도 재무적 지표의 영향이 아닌 것도 확실하다. 그래서 재무적 지표를 신뢰하는 전 세계 기관투자자들은 과거 테슬라의 주가 하락에 베팅을 해서 40조원이 넘는 손실을 보기도 했다.

물론 쿠팡과 테슬라의 높은 주가가 ESG의 영향이라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확실한 것은 쿠팡과 테슬라의 시가총액을 보면, 일개 기업의 주식이 전체 시장보다 더 큰, '배보다 배꼽이 큰' 것과 같은 황당한 일이 현실이 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과거의 정상적 지표와 상식으로는 해석할 수 없는 비정상이 주류가 되고 정상이 되는 뉴노멀(new normal)의 시대다. 주가는 재무적 지표만 반영된 게 아니다. 미래가치에 엄청난 가중치를 둔다는 사실은 이미 정상적(normal) 현실이 되었다.

이러한 비재무적 미래가치를 따질 때, 환경(E)과, 사회적 가치(S), 그리고 지배구조(G)를 떼어놓을 수는 없다. 다만 ESG는 고정된 개념이 아니다. 일관된 틀로 수치화해서 전 세계 모든 기업에 순위를 부여할 수 있는 시스템이 아니다. 하지만 기업을 평가할 때 ESG와 같은 비재무적 요소의 평가는 점점 중요해지고 있다. 그리고 주식시장에서의 비재무적 미래가치는 이미 과도하리만치 시장의 승자와 패자를 나누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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