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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21년 5월 5일, 99번째 어린이날을 맞이하여 동료와 함께 어린이 인권에 관련된 문구를 적은 피켓을 들고, 분필로 초등학교 담벼락과 놀이터 바닥 등에 문구를 적은 장면을 기록한 사진
 지난 2021년 5월 5일, 99번째 어린이날을 맞이하여 동료와 함께 어린이 인권에 관련된 문구를 적은 피켓을 들고, 분필로 초등학교 담벼락과 놀이터 바닥 등에 문구를 적은 장면을 기록한 사진
ⓒ 여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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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초등학교에서 어린이들을 만나는 일을 하고 있다. 간혹 학교에서 나를 처음 보는 동료 교사는 나에게 반말로 인사한다. 키가 작은 편이고, 화장을 하지 않고, 편하게 티와 바지를 입고 다니는 나를 아마도 6학년 학생으로 생각한 것 같다. 학생과 교사의 모습에 대한 고정관념으로 인해 나는 종종 청소년으로, 심지어 초등학생으로 '패싱' 되곤 한다. 그럴 때면 어김없이 반말을 듣는다.

교생 실습을 나갔을 때의 일이다. 수업 준비물을 챙기러 준비실에 갔는데, 준비실을 관리하는 교사가 나를 보자마자 다짜고짜 반말로 신경질을 냈다. 수업에 필요한 준비물은 챙겨야 해서 '저 교생인데요'라고 정체를 밝혔더니, 교사가 화들짝 놀라며 사과했다. '어려 보이셔서 학생인 줄 알았어요. 너무 죄송해요.'

그런데 교사의 사과는 어딘가 이상했다. 내가 학생이면 무작정 반말로 화를 내도 괜찮고, 교사이면 존댓말로 친절하게 대해야 하는 건가? 상대가 학생이면 미안하지 않았을 일이 교사이면 미안해지는 건가? 교사는 왜 다짜고짜 반말로 신경질을 냈던 걸까? '어른이 아이에게 반말을 하는 것은 당연하다'는 한국 사회의 분위기 탓이 크다고 하더라도, 교사는 학생이라는 사람들을 상대로 공적인 업무를 수행하는 직업인데 말이다.

교생 실습 기간, 수업 시간에 학생들에게 '~해주실래요?'라고 말했다는 이유로 지도 교사에게 지적을 당한 적이 있다. 학생에게 '존칭'을 사용하면 학생이 교사를 만만하게 본다는 이유였다. 학생을 존중해주는 것은 좋지만, '~해요' 정도의 '가벼운 존댓말'만 사용하라는 지적을 받았다. 이 외에도 내가 학생에게 존댓말을 하거나 학생이 나의 이름을 부르면 지도 교사는 나를 불러 '교사의 권위를 무너뜨리는 행동을 하면 학생들이 기어오른다'고 경고했다.

기어오른다는 표현이 참 이상했다. 나는 나무가 아니고 학생들은 나무늘보가 아니다. 나와 학생들은 '수업'이라는 목적을 가지고 학교에서 만난 동등한 존재일 뿐이다. 나는 권위를 가지고 학생들 앞에 군림하는 사람이 되고 싶지 않았고, 서로 합의한 것이라면 학생들이 어떤 행동을 하든 아무런 상관이 없다고 생각했다. 학생들에게 내 마음대로 정한 기준으로 권력을 부리기 위해 교사가 되고 싶었던 것이 아니다. 나는 학생들과 함께 수업을 만들어가는 사람일 뿐이다.

반말뿐만 아니라, 교사들이 학생들에게 막말을 하는 경우도 정말 많다. 교사가 정한 기준에서 조금이라도 벗어나는 학생이 있으면 '교실에서 당장 나가'라고 소리치는 건 기본이고, 각종 인신공격을 쏟아낸다. 학생의 물건을 마음대로 빼앗아 쓰레기통에 버리기도 한다. 물론 이 과정에서 학생들과 협의 과정을 거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오직 교사의 기준과 교사의 판단으로 인해 학생들은 각종 공격을 받는 것이다. 학생을 지적하는 것이 업무의 중요한 부분이라고 생각하는 교사들이 많은데, 특히 '사회화의 첫 단계'로 여겨지는 초등학교에서는 학생들의 생활 습관을 교정하고 바른 어린이로 만드는 것이 교사의 가장 중요한 역할로 여겨지곤 한다. 하지만 모든 기준은 오직 교사의 시선에서 정해진다. 교사가 보았을 때 마음에 들지 않는 부분을 지적하면, 막말을 해서 상처를 주었더라도 모두 '교육'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되는 것이다.

무시무시한 교사보다는 무시해도 괜찮은 교사
 
지난 2021년 5월 5일, 99번째 어린이날을 맞이하여 동료와 함께 어린이 인권에 관련된 문구를 적은 피켓을 들고, 분필로 초등학교 담벼락과 놀이터 바닥 등에 문구를 적은 장면을 기록한 사진
 지난 2021년 5월 5일, 99번째 어린이날을 맞이하여 동료와 함께 어린이 인권에 관련된 문구를 적은 피켓을 들고, 분필로 초등학교 담벼락과 놀이터 바닥 등에 문구를 적은 장면을 기록한 사진
ⓒ 여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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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가 만만하게 보이면 학생들이 무시한다고 생각하는 교사가 많은 것 같다. 하지만 나는 학생들이 나를 무시할 수 있는 학교에서 일하고 싶다. 학생들이 교사를 대단한 존재로 우러러보지 않아도 괜찮은 사람으로, 대수롭지 않게 지나쳐도 괜찮은 사람으로 여길 수 있길 바란다. 동등한 존재로서 학생이 나의 존엄을 침범하는 무례한 행동을 한다면 언제든지 그 학생에게 문제제기를 하면 된다. '학생이 감히 교사에게'와 같은 권위적인 생각이 아닌 존중과 합의에 대한 문제의식을 가지고 말이다. 그리고 학생들도 언제든지 나의 무례한 행동에 문제제기 할 수 있기를 바란다. 무시무시한 권위를 가진 교사보다는 무시하고 지나쳐도 괜찮을 수 있는 교사가 되고 싶다.

교사들이 반말과 막말을 하며 군림하는 행태는 교사들만의 문제인 것은 아니다. 학교에서 일어날 수 있는 각종 문제와 사고를 교사 개인이 책임지도록 하는 시스템은 학생들이 통제되지 않을 때 교사를 불안하게 만든다. 하지만 이는 구조의 문제이지 학생들의 존재가 문제인 것이 아니다. 따라서 교사들의 불안은 학생들을 향할 것이 아니라 학교, 그리고 지금의 학교를 만들어 온 사회를 향해야 한다. 학생들을 향해 반말과 막말을 쏟아내 보았자 해결되는 것은 없다. 학생들이 교사들을 불안하게 만드는 원인이 아니기 때문이다. 오히려 학생들과 교사들의 관계만 점점 더 위계적으로 나뉘어 멀어질 뿐이다. 개개의 교사들도 학교의 위계적인 구조 안에 있는 피해자일 수 있는 것이다.

나이가 어린 사람들에게 반말로 협박하고 막말을 내뱉기 위해 교사가 된 사람보다, 학생들과 소통하며 함께 배우는 교사가 되고 싶은 사람이 더 많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나를 비롯한 교사들이 학교 시스템이 강제한 방식으로 관계 맺지 않고, 교사라는 직업을 가진 개별 존재로서 학생들과 평등한 관계 맺기를 상상하고 실천하는 전문직 종사자가 될 수 있기를 바란다.

태그:#교사, #교생실습, #교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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