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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오늘의 기사 제안에서 라면 이야기 글 모집하는 기사를 보니 꼭 나를 위한 기사 제안 같았다. 퇴근하고 온 딸에게 "라면 이야기 한번 써 볼까?" 하고 물었다.

"그럼 써야지, 드디어 우리의 라면 이야기가 공개되겠네!"

잔뜩 기대하는 것 같다.

5년 전 겨울 남동생이 대뜸 "누나 중 가게 하나 내줄테니 뭐든 하고 싶은 것이 있으면 해보라"고 말했다. 장사 경험이 없던 자매들에게는 와 닿지 않는 말이었다. 장사라는 게 어디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인가. 새로 건물을 지은 동생이 가게도 살릴 겸 해서 내놓은 제안이었는데 선뜻 나설 수 없었다. 계획 없이 덤벼들 수 있는 일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삼촌 그 가게 제가 한번 해볼게요."

이 같은 딸의 말에 기막힌 것은 가족이었다. 딸은 그즈음 취업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도 꼭 한 번은 가게를 운영해 보고 싶었다며, 가족을 놀라게 했다. 딸은 그 말을 내뱉은 순간부터 준비를 시작했다.

제주도에서 그 라면을 먹지 않았다면

메뉴를 정하는 일부터 인테리어, 집기를 구하고 주재료와 부재료 거래처를 알아보는 일까지 딸아이가 지금까지 경험한 모든 것을 총동원하여 계획을 짰고 인테리어도 직접 구상했다. 덩달아 엄마까지 나서 그야말로 집안이 가게 준비로 돌입한 겨울이었다. 딸과 내가 정한 메뉴는 해물 라면이었다.
 
해물 라면 각종 해물을 넣고 끓인 해물 라면
▲ 해물 라면 각종 해물을 넣고 끓인 해물 라면
ⓒ 김정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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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 여행 중 바다를 앞에 두고 해물 라면을 먹는 게 아니었다. 아이들이 9천 원짜리 라면을 시켰을 때 "미쳤다"라며 어이없어 했던 해물 라면. 그런데 한번 먹어보고 너무 맛있어서 아무 말도 못 했던 그 해물 라면. 딸이 해물 라면 가게를 선택하게 된 결정적인 이유가 거기 있었다고 밖에 볼 수 없었다. 경험이 전혀 없는 상태에서 그나마 무리 없이 해낼 수 있는 메뉴가 라면이었다.

수산시장에 가서 꽃게와 새우, 여타의 해물과 가격을 알아보고, 다른 가게의 라면도 수차례 먹어봤다. 라면 관련 책을 사서 읽고 또 읽었다. 뿐만 아니라 가게를 운영하는 것인 만큼 세금 관련 책도 보았으며, 주변 상권도 살폈다. 나름은 완벽하다 싶게 준비를 마쳤다.

고모, 이모, 삼촌, 큰아빠, 할머니 다 모아 놓고 시식회도 가졌다. 이제 시작이다. 그동안 해 왔던 음식 솜씨로 우리만의 요리법을 만들었다. 해물 라면, 된장 라면, 비빔 라면, 열무 라면, 부대찌개 라면, 여름의 콩국수 라면, 주먹밥까지.
  
순두부 라면 얼큰하게 끓여낸 순두부 라면
▲ 순두부 라면 얼큰하게 끓여낸 순두부 라면
ⓒ 김정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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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 산 예쁜 그릇과 인테리어, 모든 것이 새롭고 어색하고 낯설었으나 딸과 같이 시작한 라면 가게는 재미도 있었고 괜찮았다. 딸과 엄마는 모든 것이 처음이어서 손님이 와도 걱정, 안 와도 걱정, 가슴 두근거리며 몇 달을 보냈다.

무례한 손님도 만났다. 덩치 큰 세 모자가 와서 라면을 조금 더 달라고 했다. 그 조금이 어느 기준인지 몰라 당황하다 한 그릇을 더 주게 되었는데 올 때마다 요구했다. 두 아들들은 애도 아니고 청년이었다.

그런가 하면 어느 중년의 아저씨는 주말마다 라면 한 그릇에 주먹밥 몇 개를 주문했다. 작업복 차림인 걸로 보아 일하다 나온 것 같은데 등을 보이며 라면 한 그릇을 맛있게 먹는 모습이 감사했다. 뒷모습을 보며 코끝이 시큰거렸던 적이 여러 번이다. 

그런데 생각보다 손님이 없었다. 시내 외곽이어서, 한 끼 식사로는 라면이 국수보다 못할 수도 있으니, 농사철이니까, 꽁당보리 축제가 있어 사람들이 그곳으로 다 몰려가서 등등등 어떤 핑계를 대서라도 손님 없는 가게를 변명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가을이 되었다. 다녀간 손님들이 두 번 세 번씩 계속 들러 주기도 해 그나마 위안이 되기도 했으나 라면 가게는 점점 손님이 줄었다. 어느 날은 손님 한 분이 라면을 먹고 계산하면서 이런 말을 했다.

"이 정도 맛이면 대학교 앞으로 가도 충분할 것 같다. 여기는 외곽이라 사람들이 가게가 있는 줄도 모른다. 맛도 그렇고, 깔끔한 인테리어도 아깝다."

귀한 경험이 된 1년, 최선을 다했다는 딸
  
콩국수 라면 콩을 넣어 고소한 라면
▲ 콩국수 라면 콩을 넣어 고소한 라면
ⓒ 김정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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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을 고민했으나 딸과 나는 서로의 마음을 읽기 시작했다. 장사는 어려워. 이렇게 시작한 것은 누가 봐도 아니었어. 장사는 장난이 아니야. 그렇게 일 년 만에 가게를 정리했다. 아쉬움도 미련도 없다고 딸은 말했다. 그 경험이 얼마나 큰 인생 공부였는지 모른다며 딸은 가끔 말한다.

"엄마, 나는 최선을 다했어. 해보고 싶었던 일을 어린 나이에 해봤고, 그 일 년의 시간 동안 세상 경험, 사람 경험, 장사의 즐거움과 두려움, 어려움, 사람을 기다리는 막막함까지 다 겪었기 때문에 큰 공부가 된 소중한 시간이었어."

그러면서 "지금도 남은 대출금을 갚고는 있지만 내 경험 몫이라 생각한다"고 한 마디 덧붙이며 씩씩하게 웃는다.

"딸! 이번 참에 해물 라면 요리법이나 공개할까?"
"엄마! 무슨 소리야. 그게 어떤 요리법인데, 절대 안 돼."


별거 없는 요리법이지만 자신과 엄마의 한때 소중했던 기억을 오래 간직하고 싶어 하는 마음인 것 같다.

나 역시 느닷없이, 계획한 바 없이 한 가게 운영이었으나 얻은 게 많다. 또한, 안 될 때 빨리 접은 것도 참 잘한 결정이었다는 사실을 요즘 더 실감한다.

주변 사람들은 지금도 그때 먹은 해물 라면이 먹고 싶고, 생각난다고 한다. 그런데 거짓말처럼 이후로 한 번도 그때의 요리법으로 라면을 끓이지 않았다. 라면은, 라면 본래의 요리법으로 끓인 것이 가장 맛있는 것 같기도 하다가 간혹, 묵혀둔 요리법을 꺼내 제대로 된 해물 라면을 끓여 식구끼리 파티라도 열어볼 날이 왔으면 하고 바라는 요즘이다.

라면도 여느 음식처럼 누군가의 노동과 수고로 끓여지는 값진 음식이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살면서 우리가 시도하고 겪는 새로운 경험의 대가는 절대 가볍지 않다. 그것이 작은 라면 가게든 큰 사업체든 우리가 치른 경험은 두고두고 얘깃거리가 된다. 귀한 경험이 녹아 있기 때문이다. 경험은 결코 우리를 그냥 지나치지 않는다. 라면은 딸과 나에게 특별한 경험을 선물한 '경험라면'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개인 브런치에도 실릴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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