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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기 위해서는 자기만의 방과 연간 500파운드가 필요하다.' 영국 소설가 버지니아 울프는 자신의 책 <자기만의 방>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오마이뉴스>는 망원동에서 나만의 방을 꾸려가는 여성 사장님들을 만나봤습니다. 그들에겐 자기만의 방 그리고 무엇이 필요할까요.[편집자말]
동네 잡지 만드는 일이 '워라밸'인 직장인이 있다. 그로 인해 얻는 수익은 용돈 정도라고 하는데, 앞으로 10년 동안은 계속 잡지를 만들고 싶다고 한다. 전다원 <안녕 망원> 편집장을 지난 4월 28일 만났다.
  
<안녕 망원>은 서울 마포구 망원동에 사는 전 편집장이 만드는 1인 독립잡지다. 취재, 편집, 배포에 이르기까지 모두 그의 몫이다. '동네 사람이 만드는 동네 잡지'를 슬로건으로 내걸고 전 편집장이 2020년 6월 창간했다. 망원동의 크고 작은 이슈와 동네 사람들의 생생한 이야기를 담아낸다. 망원동 우체국 폐국 결정이 내려지자 이를 막기 위해 행동에 나섰던 주민들, 동네 맥주를 제조해서 함께 마시는 주민들 등이 그 주인공들이다. 현재 5호까지 발행됐으며, 5호 제작비 모집을 위한 텀블벅 펀딩은 4월 11일에 마감했다. 목표 모금액 25만 원의 350%인 87만 6400원을 달성하는 등 많은 관심을 받고 있다. 43명의 정기구독자도 생겼다.

전 편집장이 개인 시간을 포기하면서까지 <안녕 망원>을 만드는 원동력은 무엇일까. 그는 "첫 인터뷰를 하고 집에 와서 자려고 누웠는데 가슴이 벌렁벌렁해서 잠이 안 왔다"고 했다. 두근거리는 가슴을 부여잡고, 그는 "내가 원래 이야기를 좋아하는 사람이었다"는 걸 상기했다고 했다. 그렇게 잠을 이루지 못했던 첫 인터뷰를 시작으로, 벌써 '안녕 동네사람' 코너에 13명의 인터뷰를 실었다.

10년 동안 이어온 평범한 직장생활과는 전혀 다른 "가슴이 벌렁벌렁한 일"을 벌이고 있는 그가 전하는 메시지는 명확하다. "거창하지 않은 작은 일이라도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시도해 보라"는 것. 시도를 망설이는 이들에게 그는 "야, 너도 할 수 있어"라며 용기를 전한다. 다음은 그와의 인터뷰 일문일답이다.

<안녕 망원>을 만들다 
 
전다원 <안녕 망원> 편집장
 전다원 <안녕 망원> 편집장
ⓒ 홍하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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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왜 잡지 이름이 <안녕 망원>인가요?
"처음에는 반가운 느낌의 '하이(Hi)'만 생각해서 그렇게 이름을 지었어요. 그런데 제가 처음 (잡지를) 만들 때 혼자 하기는 힘들어서 수업을 들었거든요. 그때 조언을 들었던 게 '안녕이 나중에는 바이(bye)도 될 수 있겠다'는 얘기였어요. 그래서 많은 의미를 담은 <안녕 망원>으로 정하게 되었어요."

- 처음 어떻게 만들게 됐나요?
"전 무역회사에 다니는 일반 직장인이에요. 직장 생활을 10년 정도 했는데 직장인이라면 누구나 한 번씩 나만의 뭔가를 만들고 싶다는 생각을 하잖아요. 처음엔 그저 막연하게 책을 만드는 거였어요. 그러다 2020년 초에 도시콘텐츠 전문 기업 '어반플레이'랑 로컬 상점 연구 잡지 '브로드컬리 매거진', 종이잡지 전문 서점 '종이잡지클럽' 등 세 군데서 하는 워크숍을 수강했어요. 그때 (꼭 책이 아니어도) 잡지를 만들어 볼 수 있겠다 생각하게 됐죠.

그리고 '망원동 좋아요'라는 페이스북 페이지가 있어요. 2020년 2월쯤에 페이스북에 누가 망원 우체국이 없어진다고 올린 거예요. 좋아요 400개에 댓글이 엄청 많이 달리면서, 사람들이 우체국 폐국 반대 현수막 제작비를 마련하려고 온라인에서 모금 운동을 했어요. 그러다가 우체국 사거리에 사람들이 직접 나와서 모금 운동을 하고, 거리에 현수막도 달리더라고요. 우체국 사거리가 큰길이어서 저도 맨날 지나다니는 길이거든요.

온라인에서 얘기하던 게 오프라인으로 실현돼서 눈에 바로 보이니까 이 변화하는 과정이 너무 멋있는 거예요. 이런 건 기록으로 남기면 좋겠다 싶고 다른 동네 사람들한테도 '우리 동네에 이렇게 멋있는 사람들이 있다'고 알리고 싶었어요. '아, 난 동네를 좋아하니까 동네 이야기를 잡지로 만들어봐야겠다' 결심하면서, 2020년 6월에 1호를 만들게 됐어요."

'서울 같지 않은 서울'에 끌리다

 
<안녕 망원> 5호 제작비는 목표 모금액 25만 원의 350%인 87만 6400원을 달성했다.
 <안녕 망원> 5호 제작비는 목표 모금액 25만 원의 350%인 87만 6400원을 달성했다.
ⓒ 텀블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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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왜 망원에 주목했나요?
"사람들이 망원동은 서울 같지 않은 서울이라는 말을 하는데, 거기에 저도 공감해요. 옛날 시장이나 골목, 오래된 가게들에 대한 어린 시절의 향수가 있는 것 같아요. 서울에 그런 게 남아 있는 곳이 별로 없잖아요. 그러면서도 재미있는 가게들, 새로운 가게들도 있고요. 옛날 것과 새로운 게 같이 있는 것 자체가 재밌어요."

- 어떤 기준으로 잡지에 담을 사람이나 공간을 정하나요?
"제 마음대로 (웃음). 2호 때는 동네 맥주가 있다는 말을 들어서 맥주 만드는 분께 연락해 어떻게 동네 맥주를 만들게 됐는지 인터뷰를 했어요. 그게 성미산 에일, 파릇한 망원이라는 맥주인데, 알고 보니 파릇한 망원 같은 경우에는 옥상 텃밭에서 기르는 홉을 넣고 제조했다고 하더라고요. 그렇게 동네 사람들끼리 같이 만들어서 먹는 얘기가 너무 재밌었어요. 3호에는 앞서 말씀드린 우체국 폐국 얘기를 담았고요.

4호엔 달고나 아주머니와 차 한 잔에 고민상담을 해주는 분의 이야기를 담았고, 동네에서 환경운동 하시는 분들의 이야기도 있죠. 저는 상업적인 얘기는 되도록 안 하려고 해요. 저 말고도 하는 사람들이 많으니까요. 가게 보다는 가게를 운영하는 개인의 얘기를 더 많이 하려고 하는 편이에요. 그리고 가게를 운영하지 않는 그냥 동네 주민도 많으니까요. 1호에는 생활도구를 전부 나눔 받아서 쓰다가 이사 가면서 도로 다 나눠주고 떠난 동네 주민분 얘기를 실었어요."

- 망원에 새로 생기는 곳뿐만 아니라 사라지는 곳도 소개하는 이유가 무엇인가요?
"기록하지 않으면 없어지는 거잖아요. 그나마 여기에 남겨야 '이런 게 있었지' 하고 나중에라도 볼 수 있을 것 같아서요. 우체국도 없어졌지만, 기록해 놓았기 때문에 몇 년 뒤에도 다시 볼 수 있는 것처럼요."

'돈'이 아닌 사람 이야기

- 회사 생활과 잡지 일을 병행하는 데 어려움은 없나요?
"아무래도 잡지 만드는 데 시간이 오래 걸려요. 그래서 두 달에 한 번씩 내려다가 석 달에 한 번 내는 거로 바꿨어요. 사실 인터뷰 자체는 바로바로 하거든요. 동네에서 (인터뷰할 사람을) 마주치면 편하게 '내일 만나요' 하고 만나서 얘기하면 되니까. 그런데 그걸 정리하고 편집하는 게 오래 걸려서 주말에는 시간을 비워 놓아야 돼요.

인쇄도 집에서 직접하니 쉽진않죠. (웃음) 저도 처음엔 인쇄소를 알아봤는데, 잡지가 컬러에 소량출판이라서 제작비가 비싸더라고요. 그래서 집에서 한 번 해 봤는데 생각보다 괜찮게 나와서 이렇게 하게 됐어요."

- 배송도 직접 한다고.
"이게 또 종이 잡지잖아요. 온라인의 경우 링크 보내면 끝인데, 종이니까 만나서 줘야 해요. 동네는 제가 직접 전달하는 데 만나서 한 번 얼굴 보고, 인사하고 그런 게 좋은 것 같아요."

<안녕 망원>을 처음 본 것은 망원동에 있는 한 독립서점에서였다. 가격은 5,800원. 20페이지 정도 분량의 얇은 잡지여서 처음에는 다소 비싸다는 생각을 했었다. 잠깐 들춰보다 책꽂이에 다시 꽂아놓는 경우가 적지 않을 것 같았다. 

- 잡지 가격은 어떻게 책정한 건가요?
"우리 동네 사람들 이야기를 커피 한 잔 값으로 나누자는 생각이었는데, 처음에는 고민이 많았어요. '누가 이걸, 이 돈 주고 살까' 싶어서 여기저기 조언을 구했는데, 창작물에 대해서는 최소한의 금액은 받아야 한다는 조언이 대부분이었어요. 그리고 3호부터는 10%를 마포희망나눔에 기부하고 있어요."

- 수익이 되나요?
"인건비, 용돈 정도예요. 자체 제작이라 나가는 돈이 거의 없어요. 지금까지 몇 부 팔렸는지 계산하기 어려운데, 5호 펀딩한 분이 29명이에요. 1년 구독료 3만 3천 원을 내고 정기구독한 분은 43명이고요. 정기 구독자가 쌓여가는 느낌이 매우 좋아요. 처음엔 되게 신기했어요.

첫 정기 구독자도 전혀 일면식이 없는 분이에요. 전혀 모르는 사이인데 제가 '정기구독을 받겠다'고 인스타그램에 공지를 올리자마자 바로 신청해주셨어요. 이분은 어렸을 때 망원동에서 사셨는데, 그때 추억이 좋아 후원하는 느낌으로 정기구독을 해주셨다고 해요."

- 수익도 크지 않고, 개인 시간도 없는데 계속 만드는 이유가 궁금해요.
"정기구독을 받아서, 해야 해요. (웃음) 개인 시간이 없어지는 것에 대한 아쉬움보다 <안녕 망원>을 만들면서 얻는 보람이 훨씬 커요. 저는 직업상 제가 선택하는 게 많지 않아요. 하는 일이 정해져있죠. 그런데 잡지 만드는 건 오직 제 선택으로 할 수 있는 거니까, 거기에서 오는 보람이 큰 것 같아요. 1부터 100까지 제 손으로 만드는 것에 대한 성취감, 재미 모두 있죠.

사람들을 알게 되는 것도 좋아요. <안녕 망원>을 안 했으면 아무리 동네에 오래 살았어도 아는 사람이 제한적이었을 텐데, 이걸 하면서 '이 사람하고도 한 번 얘기해 볼까' 하면서 거침없이 얘기하게 되고, (사람들과) 이렇게 저렇게 연결되는 것 같아요. 망원동에서 열리는 플리마켓(벼룩시장)에 <안녕 망원> 구독하고 계신 분들 오시라고 했거든요? 새로 나온 5호도 드릴 거니까 겸사겸사 들려주시라고요. 근데 오면서 다들 빵이랑 케이크랑 먹을 걸 사 오시더라고요.(웃음) 너무 고마웠어요."

- 퇴사는 하지 않고 병행하는 이유가 있을까요?
"돈이 안 돼서요. (웃음) 그리고 이게 완전히 직업이 되면 지금처럼 즐거운 마음으로 하기는 쉽지 않을 것 같아요. 지금보다는 책임이 좀 더 무거워질 것 같아서요."

- 원래는 꿈이 뭐였나요?
"꿈은 딱히 없었어요. 저는 돈 버는 게 목표여서 졸업하고 바로 취직했어요. <안녕 망원> 첫 인터뷰를 하고 나서 '내가 정말 인터뷰를 좋아하는 사람이었구나'라는 걸 느꼈어요. 회사 생활을 하면서 잊어버리고 있었는데, 제가 대학 초창기에 <백지연의 피플 인사이드>를 보고 인터뷰하는 사람이 부러웠거든요? 매주 다른 사람의 얘기를 들으니까 얼마나 좋을까 싶더라고요. 첫 인터뷰를 하고 집에 와 자려고 누웠는데 가슴이 벌렁벌렁해서 잠이 안 오더라고요. '맞아. 내가 원래 이런 걸 되게 좋아했었지!' 싶었어요."

혼자 아닌 함께
 
인쇄된 종이를 접어 직접 <안녕 망원> 5호를 만들고 있는 모습
 인쇄된 종이를 접어 직접 <안녕 망원> 5호를 만들고 있는 모습
ⓒ 홍하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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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람들한테 어떤 잡지로 기억됐으면 좋겠나요?
"'야, 너도 할 수 있어'로 기억됐으면 좋겠어요. (웃음) 작은 동네 이야기이고 그걸 개인이 하는 거잖아요. 꼭 대단한 이야기를 해야 된다고 생각할 수도 있는데, '굳이 그럴 필요 없다, 그냥 동네 수선집 이야기해도 된다' 이렇게 느끼셨으면 좋겠어요.

실제로 <안녕 망원>을 구독해 주는 타지역 분 중에 '나도 우리 동네에서 이런 잡지를 만들고 싶다'고 얘기해 주시는 분들이 꽤 돼요. 그런 걸 의도하고 시작한 게 아닌데, 사람들의 응원을 많이 받으니까 '이게 되네?'라는 생각을 저도 하게 되더라고요.

대부분의 독립 매거진은 1호 이후에 안 나오는 데가 많대요. 다들 창간은 하는데 그 이후가 어려운 거죠. 잘하고 싶은 마음이 큰 만큼 다음 호를 만들기가 어렵거든요. 저는 전공자도 아니니, 일단 '하는 것'에 중점을 두고 제가 할 수 있는 선 안에서 최선의 노력을 기울여 만들어요. 이걸 계속 이어 나가는 것 자체만으로도 (구독자들과) 같이 만들어가는 것 같은 느낌을 줄 것 같아요."

- 앞으로는 어떤 이야기를 담고 싶으신가요?
"제가 10호까지 할 얘기를 다 생각해 놨거든요.(웃음) 동네 산책하다 보면 반려동물이 엄청 많아요. 반려동물 얘기도 재밌을 것 같고, 망원동이 채식 천국이라고 그러더라고요. 저도 완전 채식인은 아니지만, 채식에 관심이 있는 사람으로서 그 얘기도 하고 싶고요. 이건 엉뚱할 수 있는데 리어카에 막걸리를 팔고 다니는 아저씨 얘기도 궁금해요. 하고 싶은 얘기는 정말 많아요. 이렇게 앞으로 한 10년 동안은 <안녕 망원>을 하고 싶어요. 계속해야죠."

태그:#안녕망원, #동네잡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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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읽는 것을 좋아합니다. 글 쓰는 것은 어려워하지만, 최선을 다해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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