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최근 이재명 경기도지사의 청년 지원 정책에 관한 내용이 화두에 올랐다. 그중 도마 위에 오른 키워드는 '청년 세계여행비 1000만 원 지원'이었다(관련 기사: 이재명 "'세계여행 천만 원 지원' 발언 왜곡, 전문 보시라"). 이는 다양성을 논의하기 위한 아이디어 구상 차원에서 나온 예시일 뿐이었지만, 실제로 대학교에 진학하는 대신 1000만 원으로 세계여행을 다녀온 이후 이를 바탕으로 한 책을 출간한 나로서는 자연스레 정책에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또한, 일부 언론사에서 '세계여행'이나 '1000만 원'과 같은 키워드만 두고 '포퓰리즘'이나 '허경영 벤치마킹'이라는 이름으로 비난 공세를 펼치는 데에 안타까움을 느꼈다. 이런 이유로 나는 지금 기사를 통해 세계여행이 아닌 '갭이어(Gap year: 학업을 중단한 뒤 봉사·여행·창업 등 다양한 활동을 통해 자신의 흥미를 찾는 시간을 뜻함)'에 초점을 두고 나의 이야기를 하고자 한다.

'대학 대신 세계여행' 선택한 이유
 
일상과 비일상, 고등학생과 여행자의 경계, 김포공항에서
 일상과 비일상, 고등학생과 여행자의 경계, 김포공항에서
ⓒ 이원재

관련사진보기

  
나의 10대는, 학교에 다니면서도 학교 밖 청소년에 더 가까웠던 것 같다. 당시엔 소속도 있었고 결석하는 일도 없었지만, 학교생활에는 크게 정을 두지 않았다. 대신 학교에 가지 않는 주말이나 방학에는 제주도와 같은 국내 여행지의 게스트하우스를 다녔고,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 다양한 이야기를 듣곤 했다. 대부분의 나이는 20대에서 30대, 앞으로 내가 살아갈 날들을 먼저 지나온 사람들이었다.

게스트하우스에 모인 이들은 여행자라는 공통분모를 가지고 유대감을 형성한다. 일상에서 만나는 사무적인 관계도 아니니 자연스레 진솔하고 현실적인 자기 이야기를 꺼내기 시작했고, 이들은 대학교 진학만이 정답은 아니라고 말했다. 여러 유형이 있었다. 성적에 맞춰 학과에 진학했고, 결국 전공과 맞지 않는 일을 하는 사람. 주변의 등쌀에 밀려 대학에 갔지만, 그 의미를 찾지 못해 등록금만 날렸다고 생각하는 사람. 대학에 진학하진 않았지만, 자신이 진정으로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만족감을 얻는 사람.

본인의 꿈과 목표가 대학교에 없다면 굳이 진학할 필요가 있는가? 나는 고개를 저었다. 그런데 왜 고등학교에서는 대학교 진학만이 정답이며, 대학에 진학하면 마치 환상이 펼쳐질 것처럼 열변을 토하는가. 이는 진정으로 학생을 위해서인가, 아니면 얼마나 많은 학생을 '좋은 대학'에 보내는가에 따라 학교나 본인의 위신이 올라간다고 믿는 교사를 위해서인가. 물론 모든 교사가 이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으며, 학생 개개인의 진로에 대해 진심으로 관심을 가지는 이들도 많지만 말이다.

수능이 끝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인도로 떠났고, 이후 세계여행을 통해 책을 출간해 여행작가가 되겠다는 목표를 가지게 됐다. 당연히 대학교 원서 접수는 한 곳도 넣지 않았다. 학교에서는 출결 사항이 향후 문제가 될 수 있다며 우려를 표했지만, 이는 크게 중요하지 않았다. 이미 나의 목표 의식은 확고했으니 말이다.

건설 현장에서 처음 해본 사회생활
 
같은 나이, 같은 노동자로서 2016년 5월 28일 구의역 사고는 나의 마음을 무겁게 만들었다. 그와 나는 무엇이 다르기에 나는 이 곳 9-4 승강장에 말없이 서 있을 수밖에 없는가.
 같은 나이, 같은 노동자로서 2016년 5월 28일 구의역 사고는 나의 마음을 무겁게 만들었다. 그와 나는 무엇이 다르기에 나는 이 곳 9-4 승강장에 말없이 서 있을 수밖에 없는가.
ⓒ 이원재

관련사진보기

  
스무살이 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경기도 화성의 건설 현장에서 일을 시작했다. 10대의 여행이 사교육을 대체한 것이었다면, 성인이 되고 나서의 것은 그렇지 않았기 때문이다.

과거 인문계 고등학교에 다녔던 내게 건설 현장은 낯설고 숨 막히게 다가왔다. 현장에서 쓰는 공구·장비의 이름이나 일의 진행 과정이 그랬고, '사회생활'이란 장벽아래 생겼던, 함께 일하는 이들과의 마찰도 처음이었다. 그런 시간이 몇 개월 지난 뒤에야 나는 천만 원에 가까운 여행경비를 마련하게 됐고, 중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을 수 있었다.

지극히 당연한 이야기지만, 여행이라고 해서 즐거운 나날만 이어지는 건 아니었다. 제한된 여행경비 속에서 하루에 한 끼밖에 먹지 않은 날이 부지기수였고, 숙소를 구하지 못하거나 야간에 도시 이동한 탓에 노숙했던 날도 많았다.

하지만 이를 타파해 한 걸음 더 내딛게 한 건, 언제나 사람들과의 만남이었다. 중국에서 중국의 현 체제에 회의감을 느끼며 민주주의에 관한 이야기를 하는 사람을 만난다거나, 폴란드에서 히치하이크를 할 때는 날이 어두워지자 자기 집에서 자고 가라던 가족을 만난다거나 하는 일 말이다. 한국 안에만 있었다면 만나지 못했을 사람들, 우물 안에서는 쉽게 체득하지 못할 경험. 세상을 보는 시야가 넓어지고 사고방식이 변한다는 것, 이게 바로 여행이 인생에 주는 긍정적 영향 아닐까.
   
 우리 모두는 그저 수평선상에 놓인 수직일 뿐이라고, 몽골의 대평원은 그렇게 말하지 않을까.
  우리 모두는 그저 수평선상에 놓인 수직일 뿐이라고, 몽골의 대평원은 그렇게 말하지 않을까.
ⓒ 이원재

관련사진보기

   
365일 내내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루는 인도 델리의 거리
 365일 내내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루는 인도 델리의 거리
ⓒ 이원재

관련사진보기

 
갭이어, '대학 대신 여행'이 내게 남긴 깨달음
 

내가 정한 나의 '갭이어'는 입대하기 전까지 2년이었다. 전역한 뒤에는 여행 에세이를 출간했고, 25세가 된 지금은 제주도에 게스트하우스 창업을 계획하고 있다. 10대 때부터 나의 삶은 여행이었고, 여행을 통해 많은 이들로부터 받은 도움과 선의를 조금이나마 다른 이들에게 베풀고자 한다. 비록 나의 갭이어는 여행만이 주를 이뤘지만, 사실 갭이어의 범주는 봉사활동이나 진로 탐색과 같이 자신의 역량을 키울 수 있는 체험 활동 모두가 포함된다.

2020년 대학진학률은 72.5%로 여전히 고등학생 4명 중 3명 가까이가 대학교에 진학한다. 과연 이들 중 꿈과 목표를 가지고 진정으로 자신이 원하는 학과에 진학하는 이들이 과연 얼마나 될까. 사실 그보다 집과 학교, 학원의 반복이라는, 좁은 우물 안에서 일상을 살아가는 학생들에게 진로나 적성에 관해 이야기하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 아닐까.

SNS와 인터넷의 발전으로 더욱 넓은 세상을 손 쉽게 접할 수 있는 세상이 됐지만, 실제 그럴까 의문이다. 이를 통해 비친 세상은 최소한 한 번은 누군가의 주관이 개입된 것이기 때문에, 오롯한 자신의 주관으로 판단하기엔 어려움이 있는 탓이다.

대한민국 고등학생 모두가 대학교에 가야 한다고 말하는 '정답사회' 속에서, 이재명 같은 기성 정치인이 다수가 선택하지 않은 길에 관해 관심을 둬 감사하다. 자라나는 청소년들에게, 앞으로의 청년들에게 꼭 대학만이 정답은 아니라는 것을, 기성세대가 보여줘야 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대학에 진학하지 않은 것은 사회와 어른들이 말하듯 '오답'에 들어선 게 아니라, 단순히 가보지 않은 길에 대한 호기심과 궁금증에서 시작돼야 한다는 것을 말이다.

[관련 기사] 
이재명 지사님, 대학 안 간 청년에게 세계여행비 주자고요? http://omn.kr/1t45p 
'이재명, 고졸, 1000만원'... 국민의힘은 그만 좀 비트세요 http://omn.kr/1t5f0

태그:#이재명, #청년지원정책, #세계여행
댓글9
이 기사의 좋은기사 원고료 5,000
응원글보기 원고료로 응원하기

이상을 마음에 품고 현실을 바라봅니다. 열아홉 살의 인도와 스무 살의 세계일주를 지나 여전히 표류 중에 있습니다. 대학 대신 여행을 택한 20대의 현실적인 여행 에세이 <우리는 수평선상에 놓인 수직일 뿐이다> 저자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