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특수군 제1광수인가, 동네청년 시민군 김군인가. 영화 <김군>의 한 장면.

북한 특수군 제1광수인가, 동네청년 시민군 김군인가. 영화 <김군>의 한 장면.

 
"(광수로 지목된 피해자들이) 굉장히 억울하죠. 오죽하겠습니까. '광수'라는 것은 그야말로 거짓말, 페이크 뉴스고. 광주에 어떤 침투가 있었다, 그건 말이 안 돼요.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기 때문에 (미 육군에) 보고할 가치도 없었던 거고요. 적어도 (북한군) 게릴라 600명이 침투했다면, 그건 선전 포고입니다. 그래서 그런 일 자체가 없었고,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5·18 당시 미군 501정보여단 군사정보관으로 근무했던 김용장씨)

지난 2019년 5월 방송된 KBS1 <거리의 만찬> '광수를 찾습니다'편에 출연한 김씨의 증언은 이랬다. 당시 김씨는 언론 인터뷰를 등을 통해 전두환씨가 '5.18 광주'에 직접 방문했다고 폭로해 세간의 주목을 받기도 했다. 그가 말도 안 된다고 단언한 그 '광수'란 누구인가.

'광수', 군사평론가 지만원씨 등 극우보수 인사들이 5.18 당시 시민군을 북한 특수부대원으로 지칭하며 붙인 명칭이다. 이러한 '5.18 북한 개입설'은 1980년 6월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장인 전두환씨가 최초 주장했으며, 이후 지씨와 같은 극우보수 인사들을 통해 끊임없이 반복 재생산돼 왔다. 2017년 출간된 <전두환 회고록>에도 같은 주장이 담겼다.

이를 근거로 지씨는 2000년대 들어 5.18 당시 무장 시민군 개개인의 사진을 발굴, 이를 확인이 불가한 북한군의 얼굴과 대조하며 5.18 북한 개입설 및 북한군 침투설의 증거로 활용해 왔다. 십 수년 동안 꾸준히, 첨단 안면인식 프로그램을 동원, 사실을 확인했다며 당시 '600여 명의 광수'가 활약했다는 주장을 유포해온 것이다.

이런 허위 거짓 주장의 반박에 나선 영화가 바로 2019년 개봉한 다큐멘터리 <김군>이었다. 지씨로부터 '36번 광수', 즉 북한 최고 인민위원회 2인자 최룡해로 지목받았던 양기남씨가 직접 출연한 <김군>은 '39년 전 광주에서 사라진 시민군 김군의 행방을 추적하면서 자연스레 지씨의 '5.18 북한군 침투설'을 반증해 나간다.

공범들

그 과정에서 만난 수많은 '김군'이라 지목받은 실제 '광수'들이 5.18 광주의 '진실'을 증언한다. <김군>에 이어 공영방송 KBS의 <거리의 만찬>에도 출연한 양기남씨 또한 1980년 당시 입시학원에 다니던 평범한 재수생이었을 뿐이었다. 스무살 시절 계엄군에 끌려가 혹독한 고문을 당했던 양씨는 머리가 희끗한 지금까지 당시의 트라우마로 인해 고통을 받고 있다. 

그렇게 양씨와 같은 평범한 시민을, 시민군을 '광수'로 몰아간 것은 지씨와 같은 극우보수 인사들만이 아니었다. '북한군 침투설'은 2010년대 들어 '일간베스트'와 같은 극우보수 사이트에서 정설처럼 받아들여졌고 인터넷 상에서 무한 증식돼 왔다. 급기야 이런 일부 세력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정치인들까지 출현했다.

대표적인 사례로, 지난 2019년 2월 자유한국당(현 국민의힘) 일부 의원들은 '5.18 진상규명 공청회'를 국회에서 개최, 지씨를 연사로 세우며 마치 '북한군 침투설'이 사실인양 전 국민을 호도한 바 있다. 아울러 이러한 극우보수 인사들과 정치인들의 주장을 여과 없이 보도하고 전달했던 방송 및 언론들 역시 넓게는 '공범'이라 부를 수 있을 것이다.

지난 2013년 5월 <김광현의 탕탕평평>에서 '방송사 최초 5·18 광주투입 북한군 인터뷰'를 단독 보도한 채널A가 딱 그랬다. 당시 자신을 '광주투입 북한군'이라 밝힌 김명국(가명)씨는 채널A와의 인터뷰에서 "자신이 1980년 광주에 있었고 그해 5월 27일 오전 9시 철수명령을 받았으며 철수 도중 국군과 교전했다"고 주장했다(2019년 2월 <미디어오늘>, <1980년 광주 갔다는 북한군 김명국씨, 빨리 연락주세요>).

대한민국 방송이 최초로 '광주투입 북한군'을 수면 위로 올린 동시에 '북한군 침투설'을 세상에 각인시킨 역사(?)적인 순간이었다. 이후 지씨와 같은 인사들이 김씨의 증언을 자신의 주장을 이어가는 근거로 활용한 것은 물론이었다.

그 결정적인 증언자이자 북한군 출신 탈북자인 김씨가 과거 증언을 정면으로 뒤집고 나섰다. 6일과 7일 JTBC <뉴스룸>과의 인터뷰를 통해서였다. 뒤집힌 김씨 주장의 핵심은 북한군의 광주 침투는 본인이 지어냈고, 정작 본인은 1980년 당시 광주에 가 본 적도 없으며, 지씨와는 일면식도 없는 사이인 자신을 이용하려는 정치 세력이 존재했다는 사실 등이었다. '북한군 침투설'로 고통 받은 '김군'들, '광수'들이 천인공노할 만한 증언이 아닐 수 없었다.

천인공노할 거짓말
 
 지난 6일 JTBC <뉴스룸>이 보도한 <[단독] 북한군 김명국 "5·18 광주침투설은 내가 지어낸 것">의 한 장면

지난 6일 JTBC <뉴스룸>이 보도한 <[단독] 북한군 김명국 "5·18 광주침투설은 내가 지어낸 것">의 한 장면 ⓒ JTBC

 
"나는 이 문제가 이렇게 돼가지고 자꾸 이런 걸로 번져가는 게 그들한테는 좀 죄스러워서 어느 때건 한 번 이걸 밝혀야 되겠다. 필요 없이 던진 몇 마디 말이 이렇게 광주 시민들의 맘을 후벼놓고 아프게 했다면 정말 내가 머리 숙여 사죄합니다." (김씨의 <뉴스룸> 인터뷰 중)

7일 <뉴스룸>이 전한 김씨의 사과다. 방송에서 밝힌 김씨 주장에 따르면, 김씨가 지어낸 이야기의 출처는 1980년 당시 18살, 19살 남짓이던 김씨가 같은 부대 조장 리상국으로부터 들은 허위 정보였다. 5.18 기간 전사자 병원에 입원해 있었다던 김씨가 밝힌 '북한군 침투설'의 연원은 이랬다.

"솔직히 조장이 말하는 건 (광주의) 여자 임신부도 ○를 갈라 가지고 길바닥에 뿌려진 것도 봤다 그러던데. 또 북한에서 어떻게 교육하냐면요. (적에게 잡히면) 자기 몸을 남기지 말라는 거예요. 머리를 만약 남기면 그 머리를 가져다가 가죽 기계에 갖다 놓으면 아이 때부터 생각해 놓은 게 다 나온다고." (김씨의 <뉴스룸> 인터뷰 중)

김씨는 탈북 이후인 2008년 탈북작가 이주성씨를 통해 탈북민 임천용씨를 만났고, '북한군 광주 땅굴 잠입설'을 주장하는 임씨와 논쟁을 하다 결국 '북한군 침투설'을 기정사실화 해버렸다고 설명했다. 북에서 교육 받은 내용 중간 중간 자신이 살을 붙이고 부풀려 조작한 주장이 어느새 탈북민 사회 및 극우보수 인사들을 넘어 언론 인터뷰를 통해 세상에 나오게 되는 과정은 그야말로 블랙 코미디의 한 장면이라 할 수 있었다.

피해자들이 천인공노할 상황은 또 있었다. 2010년 국정원에 불려간 김씨는 이 같은 상황을 설명했다고 했다. 하지만 국정원은 이 같은 자백을 확보하고도 이를 묵인했고, 결국 작년 5.18 진상규명위로 관련 자료를 넘겼다고 한다.

국가 정보기관이 '북한군 침투설'이 허위란 사실을 확인하고도 침묵으로 일관한 셈이다. 이쯤 되면, 국정원 역시 한국사회에 '북한군 침투설'을 확산시킨 공범 중 하나라고 봐도 무방하지 않을까. 심지어 김씨의 주장을 정치적으로 활용하려는 세력도 존재했다. 2010년께 김씨에게 100억을 줄 테니 공개 기자회견에 나서 달라고 요구한 이들은 재향군인회와 보수 정당 관계자였다고 한다.

"내 솔직하게 말할게. 저 ○○○이 패거리들도 나한테서 100억까지 주겠단 사람 있었어. 자기네한테만 나서 달라고(...). (뭘 요구한 겁니까? 거액을 준다면서 요구사항이 있을 거 아닙니까) 내가 기자회견을 해달라는 거죠. (기자회견? 공개적으로?) 예."(김씨의 <뉴스룸> 인터뷰 중)

8년 만의 사죄
 
 지난 6일 JTBC <뉴스룸>이 보도한 <[단독] 북한군 김명국 "5·18 광주침투설은 내가 지어낸 것">의 한 장면

지난 6일 JTBC <뉴스룸>이 보도한 <[단독] 북한군 김명국 "5·18 광주침투설은 내가 지어낸 것">의 한 장면 ⓒ JTBC

 
"아직도 5.18을 부정하고 모욕하는 망언들이, 거리낌 없이 큰 목소리로 외쳐지고 있는 현실이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너무나 부끄럽다. 5.18의 진실은 보수·진보로 나뉠 수 없다. 독재자의 후예가 아니라면 5.18을 다르게 볼 수 없다." (문재인 대통령, 2019년 5.18 기념식 기념사 중)

그럼에도 부끄러워 하지 않는 이들이 부지기수다. 지씨는 물론 2년 전 '5.18 진상규명 공청회'를 주도했던 정치인들 역시 단 한 번도 반성하지 않았다. 8년 만에 다시 방송 카메라 앞에 선 김씨는 "필요 없이 던진 몇 마디 말이 이렇게 광주 시민들의 마음을 후벼놓고 아프게 했다면 정말 내가 머리 숙여 사죄합니다"라고 말했다. 물론 여기서 끝날 일이, 김씨의 사과로 그칠 일이 아니란 얘기다. 

지씨는 물론 고 조비오 신부 명예훼손 혐의로 항소심을 진행 중인 전두환씨를 비롯해 '북한군 침투설'을 주장하고 관여했던 모든 '공범'들의 사죄가 뒤따라야 할 것이다. 최근 <미디어오늘>과의 취재 요청에 "통화하고 싶지 않다"며 전화를 끊었다던 2013년 당시 <김광현의 탕탕평평> 진행자이자 현 동아일보 김광현 기자(부국장급) 및 채널A는 물론이고.

"벌써 35년이 흘렀어요. 저 제 1 광수가 광주 시민이었다면 그 35년 동안 나와서 '내가 그 사람이다'라고 말을 했겠지. 그런데 한 번도 없었어요. 그러니 북한군이라는 게 자명한 거 아닙니까." (지만원씨, 영화 <김군> 중에서)

피해자가 직접 나서서 자신의 피해를 입증해야 한다는 논리, 얼핏 한국사회 전반이나 형사사법체계에 깔려 있는 논리와 비슷하다. 하지만 <김군>에 출연한 어느 광주시민은 "어떤 놈이 광주에 북한군이 내려왔다고 헛소리를 해. 그럼 그걸 가지고 왜 우리가 북한군이냐, 우리는 북한군이 아니었다는 증거를 찾아서 내밀어. 왜 그래야 해?"라고 반문한다.

정답이다. 하지만 김씨의 거짓말에, 지씨와 같은 이들의 허위 주장을 반박하고 증명하기 위해 한국사회는 엄청난 사회적 비용을 치러야 했고 그 사이 수많은 '김군'들이, 광주시민과 피해자 및 유족들이 고통 받아야 했다. 그리고 영화 <김군>은 지씨가 '내가 그 사람이다'라며 나와보라던 그 '광수'를 찾아헤맨 끝에 사진 속 시민군이 5.18 당시 계엄군에 의해 벌써 사망했다는 안타까운 사실을 전한다.

<김군>에 이어 최근 또 하나의 '광주 5.18 영화'가 개봉을 앞두고 있다. 5·18 공수부대원의 참회와 복수를 그린 <아들의 이름으로>다. 최근 영화의 주연을 맡은 배우 안성기는 언론 인터뷰를 통해 "당시 책임자들이 반성하고 용서를 구했다면 이런 영화는 나오지도 않았을 것"이라며 "아직 해결되지 않은 문제이기에 계속 5·18민주화운동을 다룬 영화에 출연하는 것"이라고 출연 의도를 밝힌 바 있다.

배우로서 쉽지 않은 선택을 연기로 승화시킨 이 관록의 배우가 전한 저 말이 '북한군 침투설'을 유포시킨 '공범'들에게 전해지기를. 안성기 배우처럼 말하고 싶어도 말하지 못하는 '김군'을 대신해 여전히 5.18 광주의 진실을 규명하기 위해 노력하는 이들이 아직 차고 넘친다는 사실은 물론 결국 거짓이 진실을 가릴 수 없다는 진리까지도.
 
 영화 <아들의 이름으로> 관련 이미지.

영화 <아들의 이름으로> 관련 이미지. ⓒ 영화사 혼

 
5.18광주 김군 뉴스룸 아들의이름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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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작업 의뢰 woodyh@hanmail.net, 전 무비스트, FLIM2.0, Korean Cinema Today, 오마이뉴스 등 취재기자, 영화 대중문화 칼럼니스트, 시나리오 작가, 각본, '4.3과 친구들 영화제' 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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