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무료한 시간이나 집필을 하는 시간에는 주로 음악을 듣는다. 이전에는 카세트테이프, CD를 듣다가 요즘에는 유튜브에서 듣는다. 오늘 저녁 유튜브에서 선곡하다가 '이번엔 딸의 묘를 찾을 수 있을까? 8년째 딸의 묘를 찾는 가수 박재란의 사연은?'이라는 제목에 눈길이 갔고, 바로 나의 제자였던 박성신 가수의 이야기이기에 그 프로를 클릭을 했다.
 
왕년의 인기가수 박재란은 통곡을 하면서 충북 진천의 어느 산에서 딸의 이름을 부르고 있었다.
 
 1984학년도 이대부고 1학년 1반 때 박성신(그해 학급사진첩으로 그의 이름은 만년필로 쓴 내 필체다.)

1984학년도 이대부고 1학년 1반 때 박성신(그해 학급사진첩으로 그의 이름은 만년필로 쓴 내 필체다.) ⓒ 박도

 
 
"꼭 찾으면 죽은 영혼에라도 내가 못해줬던 것을 사과하고 싶다. … 죽은 영혼이라도 찾으면 최선을 다해주고 싶다"

그는 어머니로서 딸에게 못다 해 준 당신의 잘못을 깊이 참회하면서 눈물 짓고 있었다.
 
2014년 이승을 떠난 가수 박성신은 1984년 당시 내가 근무했던 서울 이대부고 1학년 1반 학생이었다. 그를 담임한 지 37년이 지났지만 지금도 그를 또렷이 기억하고 있다. 노래를 잘 불러 학급 오락회 때면 단골로 불려나와 청중들을 즐겁게 해 주기도 했고, 신장이 가장 커서 출석부 마지막 66번이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입학초 담임교사들은 학생들의 이름도 빨리 외우고, 가정환경도 알고자 개별 면담을 한다. 그는 끝번이라 면담이 가장 늦었다. 그래서 나는 그를 면담하기 전에 이미 그의 이름을 외우고 있었다. 가정환경 조사서를 보자 그의 주소지는 마포구 망원동이었고, 어머니 인적사항 란은 비어있었다.

그는 면담 때 스스럼없이 "어머니는 아버지와 별거 중"이라고 먼저 얘기했다. 그리고 그 어머니가 당시 가수로 이름을 떨친 박재란이라는 것도 자기가 솔직히 말해주었다. 나는 더 이상 묻지 않았다. 인간관계에서 상대의 아픈 점이나 약점을 캐묻는 것은 서로 친밀해질 수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호흡이 잘 맞았던 그해 학생들
 
나는 33년 교사생활 중 20여 차례 학급담임을 했는데, 1984학년도 1학년 1반 학생들과는 참 호흡이 잘 맞아 즐겁고 수월케 일 년을 보냈다.

그래서 나는 종례시간 잔소리보다 '오늘의 말씀'이라고 하여 내가 읽은 작품의 한 구절을 읽어주거나, 명사들의 말씀, 또는 심지어 내가 쓴 글의 한 대목을 읽어주었던 골동품 교사였다. 후일 나의 첫 창작집 <비어있는 자리>라는 책을 펴낼 때 그해 마지막 종례의 말을 책에 남기기도 했다
자, 여러분! 이제 닻을 내리겠습니다. 작년 3월에 출항한 우리 11호(1학년 1반) 기선은 단 한 명의 낙오자 없이 무사히 항구에 도착했습니다. 그동안 어려운 일도 많았지만, 오늘 무사히 항해를 마치게 됨을 선장으로서 대단히 기쁘게 생각합니다.

10여 년 담임을 하면서 내 반에서 한 번도 학생부에서 처벌되지 않은 나의 기록은 여러분 덕분으로 아직 깨어지지 않았습니다. 학기 초 공정한 심판관이 되겠다는 나의 공약은 여러분들이 평점을 내리십시오. … 자, 끝났습니다. 모두들 돌아가세요.
- <비어있는 자리> 156쪽
박성신(朴性信), 그는 어머니의 재능을 이어받은 탓으로 노래를 잘 불렀다. 학교 노래선교단(교내 합창반)에서도 맹활약했다. 그가 학급오락회 때 곡명은 주로 그의 어머니 히트곡으로 내 기억에 남아있는 노래는 '밀짚모자 목장 아가씨'다.
시원한 밀짚모자 포플러 그늘에
양떼를 몰고 가는 목장의 아가씨…
그는 서울예대로 진학했고, 1988년 강변가요제에서 '비 오는 오후'라는 노래로 데뷔했다. 내가 그를 마지막 본 것은 이대부고 개교 30주년기념 음악제에서 그가 '한번만 더'를 열창하던 모습이었다. 그는 46세로 하늘나라로 갔다.
 
 박성신, 고3 졸업앨범 사진

박성신, 고3 졸업앨범 사진 ⓒ 박도

 
아비의 눈물

유튜브에서 박성신 <한 번만 더>를 찾아 클릭하자 노래가 흘러나왔다.
 
이제 다시 볼 수 없을 거란 인사에
나의 눈에 고인 눈물방울 흐르고
그대 돌아서서 외면하고 있지만
흐르는 눈물을 알아
이렇게 쉽게 끝나는 건가
이것이 우리의 마지막 모습인가
헤이 조금만 내게 가까이 와봐
그대의 숨결 들리지 않아
마지막 한번만 더
그대의 가슴에 안기고 싶어

그는 누구의 가슴에 그토록 안기고 싶어 애절하게 노래를 불렀을까? 아마도 '그대의 가슴'은 어머니의 가슴이었을 것이리라.

그의 노래를 듣는데 눈물이 주르르 흘러내린다. 자식들에게 최선을 다하지 못한 아비의 눈물인가 보다.
한 번만 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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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 은퇴 후 강원 산골에서 지내고 있다. 저서; 소설<허형식 장군><전쟁과 사랑> <용서>. 산문 <항일유적답사기><영웅 안중근>, <대한민국 대통령> 사진집<지울 수 없는 이미지><한국전쟁 Ⅱ><일제강점기><개화기와 대한제국><미군정3년사>, 어린이도서 <대한민국의 시작은 임시정부입니다><김구, 독립운동의 끝은 통일><청년 안중근>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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