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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여당이 잘하는지) 잘 모르겠더라고. 그래서, 오세훈 찍었어." 

지난주 40대 초반 초등학교 동창 친구들이 둘러앉았다. 한 친구 어머님의 장례식장에서였다. 시간이 흐르자 몇몇 친구들 사이에서 정치가 화두에 올랐다. "사업하느라 진보·보수, 여·야, 이런 거 뜻도 모른다"던 중소업체 대표 친구 A는 직전 투표와 달리 야당에 표를 줬다고 했다. 왜냐고 물었더니 위와 같은 단순한 답이 돌아왔다. 

한 달 가족 생활비로 1천만 원 넘게 쓴다던 친구 B는 자신의 정치 성향을 '중도'라고 강조 또 강조했다. 역시나 사업체를 운영한다던 그 친구는 여야 정당 모두에 부정적이고 회의적이었다. 그의 주장을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지나고 보니 여·야 정치인 모두 썩기는 마찬가지'라 할 수 있었다. 결국 이 친구들이 요하는 것은 훨씬 더 깨끗하고 한층 더 개혁적인 정치였다. 

1주일 앞서 방문한 동네 전통시장. 30년째 장사 중인 어느 비좁은 순댓국집에서 만난 손님들은 우연히도 30대 후반부터 70대까지 고른 연령대였다. 다닥다닥 붙어 앉은 그들은 마침 TV에 정치 뉴스가 흐르자 너도나도 한마디씩 저마다의 정치평론을 시작했다. 여당의 4.7 재·보궐 선거 패배에 대한 냉정하고도 일관적인 평가가 꽤나 인상적이었다.  

"(백신 접종 사망률이) 백만 분의 일이어도 무서워서 (백신은) 안 맞을 것"이라며 '백신 공포'를 몸소 증명하던 70대 남성은 "여당이 질 만해서 졌다"라고 했고, 또 다른 70대 여성은 "박영선이 똑똑한데 여성 시장은 시기상조"라고 했다. 전반적인 분위기가 그랬다. 여당의 패배를 마치 예상했다는 듯 대수롭지 않다는 분위기였다.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던 비교적 젊은 30대에서 40대로 보이는 남성의 일침이었다. 

"오세훈(후보)이 돼서 다행이죠. 이제 윤석열을 찍을 차례인가 봐요."

이들의 판단은 일반적인 언론 보도와 직접 접하는 소셜미디어, 매일 마주치는 일상의 여론이 근거인 듯싶었다. 피부로 느끼는 민심이 그랬다. 대체로 작금의 여·야를 두고 크게 차별성을 느끼지 못하는 듯했다. 대신 여당을 향해선 '180석을 가지고도 뭘 했느냐'란 책망과 '정권을 바꿨더니 다를 게 뭐냐'란 심판 정서가 팽배해 보였다. 

지난 6일 더불어민주당 초선 모임인 '더민초'가 개최한 20대 청년 간담회에서도 쓴소리가 이어졌다고 한다. 비판이 쏟아진 가운데 민주당 심판 정서를 한마디로 함축하는 발언이 나와 주목된다. 아무리 언론 지형이 정부·여당에 불리하다고 해도 결코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을 꿰뚫은 한마디가 아니었을까.     

"제가 보기엔 민주당도 또 다른 기득권이라고 생각합니다." 

심판 정서의 요체 

4.7 재·보궐선거로부터 한 달, 민주당의 현재는 어떠한가. 2030 의원부터 초선‧중진까지 앞다퉈 쏟아낸 반성문과 그에 따른 논란은 일단 접어두자. 반성보다 더 무게감을 둬야 할 것이 이후 정책적인 실천 아니겠는가. 

즉각 종부세 완화 등과 같은 부동산 정책 후퇴 논란이 일었다. 일부 의원은 '이재용 사면'을 들고 나왔다. 또 어느 초선 의원은 한전 민영화로 비칠 만한 주장을 내놨다. 부정적인 2030 청년층 지지율이나 소위 '이대남' 여론을 의식한 듯 여권 대선 주자들이 '군 전역자에게 3천만 원 지급'이나 '사회초년생 1억 원 통장 지원'과 같은 정책을 천명했다. 부분적으로 민주당 의원들의 정체성을 드러내거나 당면한 소나기를 피해가기 위한 선심성 정책 아니냐는 의문이 제기된다. 

신임 송영길 당 대표는 민생 승부수를 천명하며 부동산과 코로나19 백신을 최우선 현안으로 꼽았다. 그리고 6일 당 신임 부동산특별위원장으로 5선의 경제부총리 출신 김진표 의원을 내정했다. '개혁이 민생'이란 기치를 내걸었던 송 대표가 당 내 첫 번째 주요 인사에 '보수' 색채가 강한 김 의원을 내정한 것이다. 

일각에서는 민주당도 국민의힘과 다를 바 없이 '올드보이의 귀환'이 이뤄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보수‧경제지들이 이미 갈팡질팡이란 비판을 앞세운 지 오래다. 진보 커뮤니티 사이에서도 우클릭을 경계하는 목소리가 적지 않다. 신임 당 대표가 과연 '민생이 개혁', '개혁이 민생'이란 애초 기치를 지켜낼 수 있을지 의문을 표하는 이들도 늘고 있다. 
 
"일하다 죽는 노동자는 없도록 하겠다며 중대재해처벌법을 만들었는데, 또다시 꽃다운 청년을 잃었습니다. 청년노동자 김용균씨 참변이 일어난 지 2년이 넘었지만, 이런 일이 되풀이된 데 대해 고개를 들 수 없습니다. 미안하고 미안합니다. 아침에 출근했다 저녁에 돌아오지 못하는 사회, 끝을 봐야겠습니다. 노동자의 생명과 건강을 지키기 위해 무엇을 더 해야 하는지 찾겠습니다." 

그리고 7일 이낙연 전 대표가 페이스북을 통해 지난달 22일 평택항에서 아르바이트로 일하다 컨테이너 날개에 깔려 숨진 20대 대학생 고 이선호씨의 사망 소식에 미안함을 전했다. 이 전 대표의 이 사과가 상징적인 것은 '180석(지금은 174석)을 가지고도 뭘 했느냐'는 성난 민심의 정체를 여전히 민주당이 정확히 파악하지 못했다는 반증과도 같아서다. 

 
더불어민주당 송영길 대표가 4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초선 의원들과 간담회를 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송영길 대표가 4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초선 의원들과 간담회를 하고 있다.
ⓒ 공동취재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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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득권 민주당 

맞다. 민주당이 주도해 지난 1월 중대재해처벌법을 통과시켰다. 하지만 법안 자체 취지가 후퇴했다는 비판이 난무했다. 이를 전후해 지난 1년간 많은 노동자들이, 청년들이 노동 현장에서 죽어나갔다. 이 전 대표의 "미안합니다"란 사과가 공허한 건 그래서다. 이 전 대표는 이미 당을 이끌면서 원안만큼 강력한 중대재해처벌법을 밀어붙여 기업들과 관계 기관을 향해 강력한 경고 메시지를 던질 수 있었다. 

하물며 '내로남불'이나 진영논리란 비판에도 맞설 충분한 의회 권력을 지니고 있었다.  조국 사태와 표창장 위조로 2030 세대가 실망했다? 필요하다면 4.15 총선 이후 전국 교수 자녀들의 입시 관련 전수조사라도 해야 했다. 또 이명박 정부 당시 입시  제도에 대한 국정조사를 제안하고 실현시켜야 했다.  

무엇이 진짜 불공정이고 실상은 어땠는지, 누가 진짜 위선이었는지, 시시비비를 가릴 기회는 얼마든지 있었다. 보수 언론이 프레임화 한 추-윤 갈등 또한 강 건너 불구경할 것이 아니라 적극 개입할 여지가 없었던 것도 아니었다. 

그러다 진짜 '내로남불'이 내부에서 터졌다. 대표적인 이가 결국 지난 4월 구속된 이상직 의원이었다. 민주당이 이스타항공 노동자들의 눈물을 제대로 닦아준 적이 있었던가. 불공정과 기득권의 끝판왕이라 불리던 이 의원이 갖가지 의혹에도 버티는 일련의 과정을 수수방관하지 않았던가.

보수야당과 보수언론이 집요하게 공세를 펼친 사안 외에도 이처럼 무능한 기득권의 면모를 내비친 것은 물론, 180석을 가지고 밀어붙일 법안과 그렇지 않은 법안을 선택한 것 또한 180석 민주당이었다. 그 와중에 차별금지법 등과 같은 진보개혁적 정책의제가 다수 묻혔던 것은 물론, 급조한 것 아니었느냐는 부동산 3법에 대한 설왕설래가 오갔던 것도 사실이었고. 

"우리 시대에 공고해지고 있는 거대한 구조적 불평등, 전 생애에 걸친 경제적 불평등, 법적·사회적 불평등의 문제에 천착하겠다." 

전날 20대 청년 간담회에 참석했다는 초선 이탄희 민주당 의원이 7일 한 라디오 방송에서 천명한 민주당의 향후 나아갈 방향이다. 초선 의원도, 국민들도 이미 정답은 알고 있을 터다. 문재인 정부도 쉽사리 해결의 실마리를 찾지 못한, 아니 더욱 고착화된 이 불평등 구조를 깨는 일이 바로 민생 그 자체란 사실을.

여당이 뭘 하는지 몰라서 4.7 보궐선거에서 국민의힘 후보를 찍었다는 40대도, "민주당이 또 다른 기득권"이라는 20대 청년도, 평택항 일터에서 안타깝게 숨을 거둔 고 이선호씨의 친구들 모두 극단화된 불평등 구조의 해결이야말로 민주당이 선결해야 할 개혁과제란 사실을 피부로 느끼고 있는 것이다. 

그리하여 본인이 청년 세대인 정의당 장혜영 의원의 "MZ 세대는 위악보다 위선을 더 싫어한다"(2일 채널A 토론회)라는 말도, 586세대인 김기식 전 의원의 "(민주당이) 스스로를 여전히 우리 사회의 강고한 기득권 주류에 맞서는 비주류로 인식하고 비주류적 태도를 보인다"(4일 <한겨레> 칼럼)라는 회초리도 되새겨야 할 것이다.

기울어진 언론지형 및 가짜뉴스를 탓하고, 정부관료들의 저항을 탓해서만 끝날 일이 아니다. '180석 여당'의 유통기한은 아직 2년 11개월이나 남았다. 의회권력을 장악한 민주당이 왜 정치 효능감을 못 느끼게 해주느냐고 질타하는 민심을 향해 개혁이 민생임을 국민이 체험하게 하지 못한다면, 유능한 개혁을 확인해 주지 못한다면, 정권 심판론이 우세한 작금의 여론 지형을 쉬이 바꿀 수는 없어 보인다. 

최근 회복세를 보이는 대통령 지지율을 믿고 우클릭하거나 섣불리 중도층 잡기에 나선다? "민주당도 또 다른 기득권"이라던 청년이 원하는 방향을 되새기시기를. 이미 국민들은 지난 대선과 지방선거, 총선까지 민주당을 세 번씩이나 밀어줬다. 이번 보궐선거에서 싸늘하게 돌아선 그 민심이 내년 대선까지 쉽사리 돌아설 리 없지 않겠는가. 

태그:#민주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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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작업 의뢰 woodyh@hanmail.net, 전 무비스트, FLIM2.0, Korean Cinema Today, 오마이뉴스 등 취재기자, 영화 대중문화 칼럼니스트, 시나리오 작가, 각본, '4.3과 친구들 영화제' 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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