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가는 길> 영화 포스터

▲ <학교 가는 길> 영화 포스터 ⓒ 스튜디오 마로


2017년 9월, 무릎을 꿇고 호소하는 엄마들의 사진이 커다란 반향을 일으켰다. 강서지역 공립 특수학교인 '서진 학교' 신설과 관련한 2차 주민 토론회에서 지역 발전을 위해 국립한방의료원 건립을 주장하는 주민들을 향해 장애인 학부모들이 학교 설립을 호소하며 무릎을 꿇었던 것이다. 이처럼 대한민국은 단지 장애를 가지고 태어났다는 이유만으로 차별을 받아야 하고 부모가 죄인처럼 고개를 숙여야 한다. 당시 장애 아이를 둔 어머니는 눈물로 호소했다.

"저희 아이들 그렇게 혐오스러운 아이들 아닙니다. 일반 아이들 못지않게, 아픈 아이기 때문에 집에서 더 귀하고 공들여 키운 아이들입니다. 귀하게 키운 아이들이 지역 사회에서 여러분들과 더불어 살고 싶은 게 욕심입니까?"

다큐멘터리 영화 <학교 가는 길>은 강서 특수학교인 '서진 학교' 설립과 관련한 주민 토론회, 특수학교 설립을 반대하는 주민들의 시위, 장애인부모회의 투쟁, 서진 학교 개교까지의 상황을 카메라에 담았다. 연출을 맡은 김정인 감독은 딸이 있어 아이들 교육 문제에 관심을 두던 중에 1차 주민 토론회가 무산되었다는 언론 기사를 접하고 호기심에 2차 주민 토론회 현장에 갔었다고 한다. 

김 감독은 온갖 비난과 야유, 고성이 오가는 상황에서도 또박또박 강단 있게 말씀하시는 장애인 부모들을 보며 "이분들을 주인공으로 해서 다큐멘터리 영화를 만들고 싶다"고 결심했다고 한다. 그는 <학교 가는 길>은 '공존의 삶'에 대해서 질문을 던지는 영화라고 설명한다.

"장애인 특수학교 설립을 둘러싼 논란에 대한민국의 온갖 성장통이 복잡하게 얽혀 있었다. 가난을 밀어내기 위해 집요하게 작동했던 차별과 배제는 다시 장애를 향해 날카롭게 본심을 드러냈다. 이런저런 이유로 나와 수준이 맞지 않으면 공존하기 어려운 시대가 되었다. 그렇기에 다시 한번 함께 산다는 것의 의미를 되짚어보고 싶었다."
 
<학교 가는 길> 영화의 한 장면

▲ <학교 가는 길> 영화의 한 장면 ⓒ 스튜디오 마로

 
<학교 가는 길>은 장애 학생 지현이 오전 7시 20분에 학교로 가는 스쿨버스를 타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지현이는 고등학교 재학 내내 하루 3시간씩 스쿨버스를 타고 학교에 다녔다고 한다. 지현이의 현실이 보여주듯 2020년 현재, 전국에 있는 182개 특수학교는 모두 과포화 상태이며 재학생의 46%가 왕복 1~4시간 거리에서 통학하고 있다. 동네에 있는 특수학교의 정원이 이미 찬 경우가 많아 먼 곳에 있는 학교에 가거나 아이의 배움을 위해 가족 전부가 이사를 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한 상황이다. 

그러나 신규 특수학교가 절실하다는 요구는 설립을 반대하는 일부 주민들의 완강한 반대에 부딪혔다. 교육권은 누구나 보장받아야 하지만, 장애인의 교육권은 철저히 차별당하고 배제되어 온 것이다. 지현의 어머니인 이은자씨는 자신과 딸이 겪는 어려움을 대물림할 수 없기에 특수학교 설립에 앞장선다고 말한다.

"만약에 지현이가 말을 할 수 있었으면 '나 왜 이렇게 멀리 학교에 보내는 거예요?'라고 항의했을 것 같아요. 그게 온전히 제 책임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지현이한테 정말 많이 미안했어요."

<학교 가는 길>은 단 하나의 특수학교를 만드는 데 얼마나 많은 시간, 노력, 사회적 합의가 필요한지를 낱낱이 보여준다. 특수학교를 '학교'로 여기지 않고 '기피 시설'로 인식하며 반대하기에 주민 편의 시설을 함께 지어준다는 조건 등으로 협의하느라 공사가 지연되는 일이 다반사다. 서진 학교의 경우도 서울시교육청이 향후 강서지역에 통폐합 학교가 발생하면 해당 부지에 국립한방병원을 최우선으로 건립하는 조건을 받아들이면서 마무리되었다. 해결을 위해 교육권조차 타협할 수밖에 없는 게 현실이다.
 
<학교 가는 길> 영화의 한 장면

▲ <학교 가는 길> 영화의 한 장면 ⓒ 스튜디오 마로

 
<학교 가는 길>은 서진학교 설립을 둘러싼 논란을 찬반 구도로 바라보지 않는다. 특정한 개인이나 집단을 비난하거나 망신 주려고 만든 영화는 더욱 아니다. '국립한방병원 건립하여 우리도 한번 잘살아 보자'란 현수막을 건 반대의 목소리를 지역이기주의에 의한 '님비현상(공공의 이익은 되지만 자신이 속한 지역에는 이익이 되지 않는 일을 반대하는 행동)'으로 보길 거부한다. 

영화는 서진 학교 설립 이전에 일반분양아파트 주민들로부터 '영구임대아파트 아이들'로 구별됐던 공진 초등학교의 사연을 비추며 편견과 혐오의 근원을 추적한다. 그 과정에서 불균형한 개발이 초래한 경제적, 사회적 불평등이란 역사적 맥락과 지역 사회가 지닌 문제점을 하나하나 살핀다. 

1990년 정부가 주택난 해소를 위해 가양동 일대에 국내 최대 규모의 영구임대아파트 단지를 건설했다. 그 결과 이곳은 장애인, 기초생활수급자, 독거노인, 탈북민 등 저소득층 거주 비율이 전국에서 가장 높은 지역이 되고 말았다. 취약 계층을 집단 수용해버린 국가의 주거 정책으로 인해 가양동 주민들의 불만은 쌓여만 갔다. 그리고 빈곤으로 차별을 받았던 사람들이 다시 장애인에 대한 차별을 양산하는 결과를 낳았다. 가양동의 한 주민은 지역에 대한 정부의 배려가 필요했다고 이야기한다. 

"저는 '왜 잘 사는 동네 한복판에 짓지 못하느냐?'는 주장이 충분히 타당하다고 봐요. 장애인을 혐오하는 사람도 있을 거고, 집값 걱정하는 사람도 있을 겁니다. 그분들의 걱정과 욕망을 채워줄 다른 것도 들어와야 한다고 생각하거든요."
 
<학교 가는 길> 영화의 한 장면

▲ <학교 가는 길> 영화의 한 장면 ⓒ 스튜디오 마로

 
<학교 가는 길>의 도입부엔 '마로와 마로의 친구들에게'란 문구가 나온다. 김정인 감독은 한 매체와 인터뷰에서 "마로는 딸(이름)"이라며 "이 영화가 다음 세대 세상에서는 적어도 이런 특수학교 짓는 문제 갖고는 진통이 없는 사회가 됐으면 하는 바람에서 딸에게 주는 영상 편지라고 생각한다"라고 문구를 넣은 이유를 밝혔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여러 이해관계가 거미줄처럼 엉켜있다. 하지만 학교가 어떤 곳인지, 교육받을 수 있는 권리가 중요한지 만큼은 잊지 말았으면 좋겠다. 학교 가는 길은 멀어서도, 높아서도 안 된다. 장애를 가진 재준의 어머니 정난모씨는 모두 함께 '학교 가는 길'을 희망한다.

"조금 더디더라도, 느리더라도 우리가 함께 걸어갈 수 있는 학교 가는 길이 함께 가는 길의 출발선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학교 가는 길 김정인 이은자 정난모 조부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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