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길> 한 장면

<아버지의 길> 한 장면 ⓒ 전주영화제 제공

 
노동자들에게 해고는 죽음이라고 하듯 임금체불 문제도 다를 바 없다. 단란했던 한 가정을 파괴하고 노동자와 그 가족을 죽음으로 내몰기 때문이다. 최근 창업주가 구속된 이스타항공 노조가 지난해 조합원들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벌인 결과, 일부는 임금체불로 인해 생활이 어려워져 가정불화와 우울증을 겪었다고 고백한 것으로 드러났다. 또 자살 충동을 느꼈다고 밝힌 이들도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임금체불로 한 가족이 파괴되는 상황은 유럽의 세르비아도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다. 전주영화제가 개막작으로 선택한 <아버지의 길>은 한 가정을 통해 임금체불의 사회적 문제를 다룬 작품이다. 굳이 영화가 제작된 나라가 아니더라도 어느 나라에서나 쉽게 볼 수 있는 풍경이기에 장면 장면이 낯설지 않다.
 
임금체불로 인해 회사를 그만둔 니콜라는 약속된 퇴직금 등도 받지 못한 채 일용직을 전전한다. 생활고는 당연한 일. 결국 더 이상 버틸 수 없었던 부인이 결국 일을 저지른다. 아들과 딸을 데리고 남편이 일했던 회사로 찾아가 "먹을 것이 없어 아이들을 굶기고 있다"며 울분을 토하고는 몸에 휘발유를 붓고 불을 붙인 것이다. 
 
현장에서 일하고 있던 노동자들이 황급히 불을 끄고, 일용직으로 일하고 있던 남편은 소식을 듣고 급하게 병원으로 뛰어온다. 입원한 아내는 우울증이있던 상태였고, 아무 말 없이 원망하듯 남편을 쳐다보며 그가 내민 손마저 뿌리친다. 
 
<아버지의 길>은 영화 시작부터 임금을 받지 못해 고통당하는 노동자와 그 가족들의 아픔을 절절하게 보여준다. 일한 대가를 제대로 받지 못해 마음 고생을 해 본 경험이 있는 사람들에게 영화 속 노동자 가족의 분신은 단순히 영화의 한 장면으로만 보이지 않을 것이다. 

임금체불에 아이들까지 뺏기고
  
 <아버지의 길> 한 장면

<아버지의 길> 한 장면 ⓒ 전주영화제 제공

 
하지만 그게 끝이 아니다. 여기서 문제는 더 확대된다. 사회복지센터는 충격받은 아이들을 보호해야 한다는 명분으로 아이들을 맡기라고 명령한다. 아버지와 자녀들이 만날 수도 없게 된다. 사회복지센터는 아버지의 항의에도 법에 따른 조치라는 것을 강조하며 가족 간 재회를 가로막는다. 
 
아이들을 데려오려면 심사를 통화해야 한다. 니콜라는 이웃의 도움을 받아 끊어진 전기도 연결하고, 수도도 고치고 허름한 집안도 페인트로 도색하는 등 노력을 기울인다. 하지만 사회복지센터장은 아이들을 집으로 돌려보낼 생각이 없다.
 
아이들을 보호한다는 것은 형식적인 명분일 뿐, 사회복지센터장은 전형적인 지역 기득권 세력 중 한 명이다. 아이들을 다른 가정으로 보내고 잇속을 챙기려 하는, 가난한 노동자의 피를 빨아먹으려는 거머리 같은 존재다. 
 
결국 아버지가 아이들을 되찾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베오그라드의 중앙정부를 찾아가 하소연하는 것밖에는 없다. 오직 아이들을 찾겠다는 마음으로 아버지는 300km 거리를 걷기 시작한다. 빵 한 조각과 물, 모포 등을 담은 배낭을 멘 아버지의 여정이 시작된다. 
 
생존을 위해 걷는 노동자들의 모습은 우리 사회에서도 익숙하다. 지난해 12월 한진중공업에서 해고된 김진숙 민주노총 부산본부 지도위원이 복직을 요구하며 청와대까지 도보행진을 했다. 삼보일배를 하며 억울함을 호소하는 노동자들의 모습도 종종 볼 수 있다. 온 몸을 던진 절규다. 
 
베오그라드로 향하는 니콜라의 걸음도 마찬가지다. 한 가정의 가장으로서 가족들을 챙기기 위한, 아내의 분신과는 또 다른 처절한 몸부림이다. 힘들고 어려워도 가족을 포기할 수 없다는 가난한 노동자의 마지막 자존심이기도 하다.
 
비록 함께 하는 사람 없이 쓸쓸하게 홀로 걷는 여정이지만, 가정과 스스로의 존엄을 지키기 위한 결연한 각오가 배어 있다. 죽음 외에는 더 밀려날 곳이 없는 노동자의 마지막 선택지와도 같은 것이다.
 
따라서 그 걸음은 숭고하게 보인다. 비록 무기력한 가장이지만 자신보다는 아내와 아이들을 생각하는 가장의 무게감이 그 발걸음에 담겨 있다. 어쩌면 세상의 모든 아버지가 필연적으로 걸어야 할 길과도 같다.

아버지의 투쟁이 주는 감동 
 
 <아버지의 길> 한 장면

<아버지의 길> 한 장면 ⓒ 전주영화제 제공

 
<아버지의 길>은 임금체불이 한 가족에게 미치는 불행을 전달하면서 보여주기식 행정과 어설프게 마련된 복지제도의 허점, 토착 세력의 비리 등을 지적한다. 처음에는 외면하다 여론을 의식해 움직이는 정치인들의 행태와 이기적인 주민들의 모습 등을 복합적으로 비춘다.
 
그럼에도 가족과 함께 하겠다는 소박한 꿈을 지키기 위해 풍찬노숙을 마다하지 않는 아버지의 투쟁만큼은 뭉클한 감동을 안겨준다. 베를린영화제를 비롯한 유럽의 유수 영화제들이 이 영화에 여러 상을 준 이유기도 하다.
전주영화제 아버지의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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