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2회 전주국제영화제 문성경 프로그래머.

제22회 전주국제영화제 문성경 프로그래머. ⓒ 전주국제영화제

 
지난해 코로나19 팬데믹이라는 초유 사태를 겪으며 전주영화제는 오프라인 상영을 전면 막고, 온라인 비대면 상영을 원칙으로 했다. 영화제 후엔 서울 일대에서 장장 114일간 초청한 영화를 틀기도 했다. 이른바 장기상영회다. 여러 실험을 거친 후 올해 오프라인 상영과 OTT 플랫폼을 통한 온라인 상영을 동시에 진행하기로 했다. 그 결과 48개국 194편이 초청됐고, 이중 142편은 국내 OTT 업체 웨이브에서 만날 수 있게 됐다.

코로나19로부터 배운 것

이런 프로그래밍 중심엔 세 명의 프로그래머가 있었다. 문석, 전진수 프로그래머가 2019년 말 집행위원장 등 집행위원회 주요 인원이 바뀌며 지난해 새로 영입된 인원인 반면, 문성경 프로그래머는 2019년부터 과거 사무국도 경험한 인원이다. 프로그래머로는 3년 차지만 2004년 전주영화제 프로그램팀을 경험한 이후 아르헨티나에 머물면서 남미 영화 전문가로 경력을 쌓아왔다. 올해 전주에서 각종 실험영화와 함께 여성 영화인의 작품, 여성 영화인 관련 행사가 부쩍 늘었는데 이게 바로 문성경 프로그래머의 기획이었다.

"20회 때는 정말 잠 잘 시간도 없을 정도로 일이 많았다. 그러다 지난해엔 코로나를 처음 겪게 되면서 어떻게든 창작자를 위한 자리를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에 장기상영회도 진행했지. 스태프들이 정말 쓰러질 듯 일했다. 올해는 큰 그림 차원에서 기준이 명확했다. 지난 3년이 각각 너무도 다른 상황이라 그 짧은 시간에 많은 걸 배운 것 같다. 지금 로테르담영화제와 베를린영화제가 초반에 일부 상영하고 하반기에 나머지 영화를 상영하기로 했는데 SNS에선 전주영화제가 했던 걸 수입해 간 거 아니냐는 말도 나오고 있다(웃음)."

지난해 실험 덕에 올해 더욱 오프라인 행사를 확신하게 됐다고 문 프로그래머는 강조했다. 다른 영화제보다 훨씬 개방적으로 온라인 플랫폼을 들인 것이 그는 "극장 상영의 원칙이 중요한 만큼 그런 부분을 지키면서 제한된 좌석 수로 표를 구하지 못하는 분들, 아직까지 코로나 상황에 이동하는 것 자체가 부담이신 분들, 학생분들에게 편의를 제공하는 측면에서 수단일 뿐"이라며 "극장 중심이 맞지만 온라인도 꾸준하게 가져가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지난해까지 '영화, 표현의 해방구'라는 슬로건을 내세우다가 올해 새롭게 'Film goes on'(영화는 계속된다)을 내세운 이유 또한 그 연장선에 있었다. 문성경 프로그래머는 "여러 실험을 하면서 국제영화제의 역할과 전주영화제의 역할을 고민했는데 과거엔 정치와 자본으로부터의 자유를 외치며 도전적이고 실험적 영화를 선보이고자 했다면, 이젠 우리가 위기로 느끼는 것들을 감지하고 시대 변화를 느끼면서 의지를 표현한 것"이라 설명했다.

올해 출품한 작품 경향 및 초청 작품 경향을 그에게 물었다. 그의 말대로 도전적이고 실험적 작품이 전주영화제의 오랜 특징인데 올해에도 그런 기조가 이어졌을까. "올해 한국 경쟁 및 국제 경쟁 부문에서 그런 성격을 충분히 느낄 수 있다"며 그가 말을 이었다. 

"경쟁 부문은 아무래도 첫 번째 혹은 두 번째 장편을 내놓은 감독님들의 작품이 대상인 만큼 신인을 발굴하고자 하는 영화제 의지를 읽을 수 있을 것이다. 2000년 처음 전주영화제가 시작할 때 기조를 잇고 싶은 마음이다. 프론트 라인엔 사회적 담론의 생산이랄까 그런 부분에 집중한 영화를 초청했다.

또 가능한 올해 다양하고 많은 작품을 발굴하면 좋겠다는 합의가 내부에 있었다. 코로나19에 영화인들이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도 보일 수 있고, 다큐멘터리들을 보면 코로나 상황에 즉각 반응한 작품들이 이번에 초청됐다."

 
 제22회 전주국제영화제 문성경 프로그래머.

제22회 전주국제영화제 문성경 프로그래머. ⓒ 전주국제영화제

 
영화제란 무엇인가 라는 질문

동시에 국내영화산업 허브 역할을 하던 마켓 행사 또한 올해부터 크게 바뀌었다. 각종 부스를 차려놓고 영화 관계자들 만남의 장이 되었던 전주프로젝트마켓을 전주프로젝트라는 이름으로 확대 개편한 게 그 예다. 올해 전주프로젝트에선 영화 산업 현안 관련 각종 포럼, 멘토링 프로그램 및 영화인 교육 과정을 아울러 진행된다. 

"칸영화제 등의 마켓을 보면 점점 구매자들이 현장을 찾아가는 일이 줄고 있다. 온라인 등을 통해 영화를 직접 구매하는 시대가 되어 가고 있는데 향후 5년 내에 기존 마켓이 없어지지 않을까 조심스럽게 전망하고 았다. 마켓이란 게 아직 공개되지 않은 작품을 선보이는 프로모션 역할과 그 해의 이슈 및 트렌드를 알 수 있는 장이었는데 그런 장소가 없어지는 셈이지.

마켓이 축소되는 것에 크게 의미 부여하지 않고, 전문가들이 그런 현상을 잘 설명해주면 될 것 같다. 전주에서 준비한 컨퍼런스도 그런 내용이 있다. 영화제 마켓이 미팅 장소를 제공하는 것도 좋지만 외부엔 좀 덜 드러나더라도 창작자들에게 실질적 도움이 되도록 제작 과정에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연계 프로그램을 마련하고자 했다."


혹시 이런 마켓 축소 현상이 OTT 플랫폼 발전과 더불어 국제영화제 존재 의미 자체를 축소하는 건 아닐까. 문성경 프로그래머가 이에 답했다.

"2004년인가 <영화제란 무엇인가>란 책을 봤는데 그때 기억나는 문구가 국제영화제는 영화 산업 안에서 일종의 대안적 플랫폼 역할을 한다는 것이었다. 이미 그때도 대형 멀티플렉스 극장이 전 세계를 뒤덮고 있어서 독립영화의 자리가 없어질 거란 관측이 있었다. 그런데 동시에 여러 국제영화제들이 엄청 생겨나기도 했다. 그래서 예술영화를 소개할 장소가 생긴 거지.

앞으로 어떻게 될진 잘 모르겠지만 한국에서 개봉하기 어려운 낯선 영화, 예술영화를 소개하는 대안적 창구로써 전주영화제 역할은 지속될 것이다. 국내의 독립예술영화가 해외로 진출하려 할 때 첫 번째 창구가 되는 역할 또한 여전히 하고 있고."


문 프로그래머는 "매년 해보고 싶고, 관객분들에게 보이고 얘기하고 싶은 소소한 기획들이 굉장히 많다"며 "그런 것들을 꾸준히 하고 싶은 마음"이라 포부를 전했다. 전주영화제를 대표하는 젊은 프로그래머의 패기를 엿볼 수 있는 지점이었다.
전주국제영화제 문성경 전주 JIF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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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메가3같은 글을 쓰고 싶다. 될까? 결국 세상을 바꾸는 건 보통의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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