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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 오지 마을에 생긴 다육하우스 덕분에 코로나 세상에서도 웃을 일이 생겼다.
 시골 오지 마을에 생긴 다육하우스 덕분에 코로나 세상에서도 웃을 일이 생겼다.
ⓒ 오창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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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니, 언니, 이것 좀 봐봐. 깔깔깔...."
"어머머머....! 이것 좀 봐라. 이렇게 키우기도 어렵겠다. 호호호."


다육하우스 안에 있던 여자들이 하나둘씩 모여들었다. 한 화분 앞에서 여자들이 웃음을 터트렸다.

부여군 충화면은 부여에서도 인구가 가장 작은 면이다. 백마강을 건너고 큰 고개를 두 개를 넘어가야 하는 첩첩산골이다. 부여 사람들도 충화면을 잘 모르거나 오지로 안다. 그래도 자동차 생활이 어렵지 않도록 도로가 잘 되어 있는 편이라서 주민들은 불편하지 않게 살만 하다. 하지만 이동 인구가 많지 않아서 상업적인 활동을 하기에는 어려운 곳이다.

그 어려운 곳에 어느 날 다육이 판매장이 문을 열었다. 지역에서 양계업을 하던 귀촌인 부부가 취미로 기르던 다육 식물에 대한 노하우를 동호인들과 교류하다가 아예 업종을 전환해 버렸다. 전염병 발생으로 양계업 위기를 맞이하자 차선책으로 다육하우스를 오픈했다. 오지 마을에서 장사가 되겠냐는 우려를 안고 시작한 사업이었다.

처음에는 개점 휴업을 한 것 같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서 사람들이 하나둘씩 다육 하우스에 모여 들기 시작했다. 지나가면서 보면 낯익은 얼굴들이 다육하우스 안에서 구경하고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그 낯익은 얼굴들을 보고 아는 얼굴들이 다육하우스로 들어왔다. 그렇게 충화 산골 마을의 다육하우스에는 충화면에 살고 있는 여성들이 먼저 길을 닦았다. 미니 식물원처럼 잘 키우고 가꿔놓은 다육과 식물들을 구경하러 왔던 동네 여자들이 단골이 되었다.

불멍, 물멍? 우리는 '꽃멍' 합니다 
 
이런 모습에 반해서 충화 여인들이 다육 하우스에 모여든다.
▲ 화초인지 다육인지... 이런 모습에 반해서 충화 여인들이 다육 하우스에 모여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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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그거 키운 지 10년도 넘었거든요. 그거 보고 웃다가 다른 화분까지 깨트리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사온 거예요. 전 지금도 볼 때마다 웃음이 나와요."

다육하우스의 이영순 대표가 20여 년간 자식처럼 정성들여 키워온 다육들은 한결같이 스토리가 있었다. 무엇보다도 누구에게나 이웃들을 대하듯이 서글서글하고 친근하게 응대하는 이 대표의 마음 씀씀이에 어느새 다육하우스는 동네 여인들의 사랑방이 되어버렸다.

다육은 볼수록 매력적인 식물이었다. 다양한 종류와 빛에 따라 변하는 색감, 화분에 연출하는 대로 달라지는 모양에 빠져든다. 찔러도 피 한 방울 나지 않게 생긴 두꺼운 잎을 가진 다육에게서 앙증맞은 꽃이 피어나고 도깨비 방망이처럼 가시뭉치로 생긴 것들에게서는 곱디고운 꽃이 피었다. 꽃보다 잎이 매력적인 다육들은 빛과 수분과 연출력에 따라 변화무쌍한 매력을 보여주었다. 다육은 보면 볼수록 빠져들지 않고는 못 배기게 하는 마성의 식물이었다.

"오늘도 여기서 만나네. 꽃멍하러 왔슈?"
"함부로 나댕기지도 못하고 여기와서 얘네들 보는 재미로 산다니께. 오늘도 몇 개 데려다가 이쁘게 키워봐야지."


이름만 다육하우스였지 그곳은 꽃의 정원이었다. 도시 사람들이 불멍, 물멍에 빠져드는 동안 우리 시골 여인들은 꽃멍에 빠져들었다. 다육을 구경하러 갔던 동네 사람들이 다육 매니아가 되어갔고 동네 문화 센터가 되어버렸다. 전염병으로 주민 자치센터에서 하던 프로그램도 중단되고 농한기에 떠나곤 했던 계모임 여행도 못가는 시절을 살고 있던 충화 여인들은 다육하우스로 모여들었다.
 
돌봄 본능을 자극하는 꽃들
▲ 화초 세상 돌봄 본능을 자극하는 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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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꽃을 좋아하는 여인네들이 반하는 공간
▲ 버리는 아깝고 쓸 수는 없는 옹기들을 이용해 재탄생한 공간  꽃을 좋아하는 여인네들이 반하는 공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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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인들에게 꽃은 힐링이었고 환타지였다. 모든 살아있는 것들이 잠을 자고 있는 것 같은 코로나의 세상에서 동네 다육하우스는 환상의 섬이었다. 여인들의 만남의 장소가 되었고 문화적 갈증을 해소하는 장소가 되었다. 작은 시골마을의 허파처럼 충화면에 생기가 돌게 했다.

대가족 시대가 가고 1인과 2인 가구가 대세가 된 요즘 반려 식물이나 동물과 함께 사는 삶이 자리 잡아 가고 있다. 시골 사람들에게 가장 쉽고 흥미로운 취미생활은 화초를 기르는 일이다. 생활과 가장 근접하면서도 즐거움을 주는 일이기 때문이다.

생계인 농사일로 기본기가 되어있어서 국민 반려 식물이 되어버린 다육이를 기르는 일은 연출력과 안목만 키우면 쉽게 접근할 수 있다. 집콕 시대를 맞이하여 홈 가드닝에 대한 욕구가 늘어나자 미니 식물원 같은 다육하우스는 지역의 문화 생활을 주도하는 충화면의 문화 공간으로 자리 잡아 갔다.

"장독대에 있는 깨진 항아리들을 갖고 오셔요. 제가 화분으로 만들어 드릴게."

이영순 대표의 핸드 그라인더를 다루는 솜씨는 어지간한 남자들도 못 따라한다. 깨진 옹기 항아리와 금이 간 뚝배기, 유행이 지난 냄비들을 가져오면 핸드 그라인더로 손수 물구멍을 내주고 어울리는 다육을 심어주는 서비스를 하는데 단번에 주부들을 사로잡아 버렸다. 집에서는 쓸모가 없고 버리기는 아까운 사연이 있는 그릇들은 다육과 화초들을 심는 화분으로 재탄생했다.
 
다양한 식물 돌봄에 대한 욕구를 충족시켜주는 공간
▲ 작은 사막처럼 연출한 공간 다양한 식물 돌봄에 대한 욕구를 충족시켜주는 공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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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마음에 정원을 하나씩은 가지고 산다. 그 정원에서 살기 위해 일을 하기도 하고 일을 때려치우고 산골 마을로 들어가기도 한다. 나이가 드니 시골 장날마다 화초를 파는 노점상 앞에만 항상 여인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이유를 알 것 같다.

한적한 오지마을의 사시사철 꽃을 볼 수 있는 다육하우스에 여인들이 몰려드는 것은 기르고 돌보는 마음을 자극하는 공간이 펼쳐져 있기 때문이다. 타샤 튜더가 버몬트 산골에서 야생화를 심고 가꾸며 살았던 이유와 같은 것일 것이다.

"다육도 기를수록 정이 드는 것 같아요. 정이 들다보니 20여 년 동안 다육에 빠져 살았지요. 정이 들면 재주가 없어도 누구나 예쁘게 키울 수 있어요."

이영순 대표는 화초들뿐만 아니라 사람들에게도 정을 나누는 공간으로 다육하우스를 개방하고 있다.

봄이 되자 다육하우스 마당에는 각종 야생화들이 피어서 사람들의 눈길을 끌고 발길을 사로잡아 버렸다. 고향 마을을 찾아왔던 사람들과 서동요 드라마 세트장에 왔던 사람들이 꽃을 따라 다육하우스에 들어왔다가 신비로운 다육과 화초 세상에서 길을 잃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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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부여의 시골 마을에 살고 있습니다. 조근조근하게 낮은 목소리로 재미있는 시골 이야기를 들려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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