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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을 떠나 멀리 서울에서 대학을 다니는 딸아이는 본가에 올 때마다 제 엄마를 바라보며 묻는다. "엄마, 지금 행복해?" 딸아이의 마음을 조금은 알 것 같다. 본인은 볼 것 많고 먹을 것 많은 서울에서 좋은 친구와 즐겁게 대학 생활을 즐기지만 직장 생활을 힘겨워하는 제 엄마는 어쩐지 안쓰럽게 느껴지기 때문이리라.

수십 년 전만 하더라도 행복이라는 단어는 그저 문서상에 존재하는 하나의 개념이었을 뿐 실생활에서 발화되는 용어는 아니었던 것 같다. 어쩌다 발화되더라도 행복이라는 추상적인 개념을 설명하거나 학문적인 상황에서 필요한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최근에 와서는 행복이라는 용어가 실제 생활 대화에서 자주 등장한다. 치맥을 즐기면서 '음, 행복해'라고 말하는 사람도 많고 본인 삶의 행복 지수를 자주 말한다. 과거에는 행복이라는 개념이 추상적이었지만 요즘은 경제적 풍요와 평안한 일과 삶의 균형, 여가 생활을 동반하는 물질적 상태를 담보로 하는 경우가 많은 듯하다. 

행복이 취득해야만 하는 구체적인 라이센스와 같은 것이 되어버려서 현대인은 누구나 SNS로 자신의 행복을 자랑하고 타인에게서 인증을 받아야 실패한 인생이 아니라는 안도를 하는 것 같기도 하다. 

인류가 존재한 이후로 가장 윤택하고 안전한 시대를 살고 있지만, 현대인은 점점 불행해지고 있는 건 아닐까. 또 행복이라는 것이 물질적인 풍요를 담보해야 한다고 믿는다. 돈이면 최고라는 생각이 팽배하며 사람들은 무한정 돈을 많이 벌기를 원한다. 과연 돈은 행복은 보증수표인가? 일정 수준 이상의 소득은 분명 사람들의 삶의 질과 만족도를 증진하는 것은 분명하다.

돈이 없으면 불편한 정도를 넘어서 비참해지기에 십상인 한국 사회에서 분명 일정 수준 이상의 소득은 필요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비참'에서 벗어나는 것이지 '행복'한 상태에 이른 것은 아니다. 또 우리 사회에서 고소득자라고 불리는 사람들의 행복도는 비참한 상태를 벗어난 사람들 보아 낮은 것을 알 수 있는데 고소득을 올리기 위해서는 보통 사람들이 감내하기 어려운 여러 가지 스트레스에 시달리기 때문이다.
 
표지
▲ <가짜 행복 권하는 사회> 표지
ⓒ 갈매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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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심리학자 김태형이 쓴 <가짜 행복 권하는 사회>는 우리가 모두 행복해지기 위해서는 행복은 돈으로 살 수 있다는 물질주의 행복이 발을 붙이지 못하는 건전한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행복에 대한 논의는 필요하고 또 우리가 행복해지기 위해서 노력하는 것은 당연하다. 오늘날 많은 사람이 행복의 원천으로 생각하는 금욕주의나 쾌락주의는 우리에게 영구적인 행복을 제공할까? 금욕주의를 대표하는 종교는 현생에서의 행복을 추구하지는 않는다. 불교는 고통에서 탈피하는 그것을 목표로 삼으며 기독교는 현생 보다는 내세에서의 행복을 추구하는 가르침이다.

쾌락주의도 항구적인 행복을 담보하지는 않는다. 우리가 맛난 음식을 먹고 쇼핑을 할 때 순간적인 행복감은 높지만 결국 쾌락에 대한 효과가 떨어지는 '쾌락 적응'을 겪을 수밖에 없다. 점점 강도를 높여야 하는 마약처럼 아무리 맛있는 음식도 계속 먹으면 결국 그 음식을 처음 먹었을 때의 쾌감은 느낄 수 없다.

<가짜 행복 권하는 사회>를 읽으면서 감탄한 부분은 행복이라는 그것이 마음먹기에 달려 있다는 세간의 격언과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을 달콤한 거짓말이라고 지적한 대목이다. 직장에서 상사에게 시달리면서도 '저 상사가 나를 잘 되게 하려는 것이야'라고 생각하는 것은 정신건강에는 도움이 될지언정 갑질이나 부당한 일을 스스로 용인하는 것이며 현실 부정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호랑이를 보고 고양이로 스스로 위안하고 위로하는 것은 위험을 자초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사회를 변화시키고 원대한 꿈을 포기하는 대신 소확행을 선택하는 것은 결국 쾌락주의에 그 결을 함께 한다. 직장에서 성공하거나 더 좋은 사회를 만들려는 꿈을 포기하고 점심 식사 후의 한잔의 맛있는 커피에 행복을 느끼는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은 그 한계가 분명하고 참다운 행복에서 더 멀어지는 길이다.

사람의 마음을 편안하게 하고 작은 것에서 행복을 느끼도록 조언하는 행복 심리학은 사람을 행복하게 하기는커녕 오히려 불행을 더 가중했다고 <가짜 행복 권하는 사회>는 말한다. 행복 심리학이 가장 발달한 나라인 미국인의 행복 지수는 점점 낮아지고 있음을 지적하면서 말이다.

<가짜 행복 권하는 사회>가 주장하는 진정으로 행복한 삶은 무엇인가? 결국, 인간은 사회적인 동물이니 사회 속에서 보호받고 사회의 발전에 이바지하며 다른 사회 구성원을 도우며 사는 것이 진정한 행복이라는 것이다.

기생충처럼 다른 사람에 기대며 살지 말고 오히려 다른 사람을 위해서 뭔가를 하고 도와주는 삶, 더 나은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 더 큰 목적을 실현하기 위한 노력을 다하는 삶을 우리는 추구해야 한다고 믿는다. 결국 인간의 행복은 안전하고 자유로운 사회 안에서 구현된다고 말한다.

가짜 행복 권하는 사회 - 심리학은 어떻게 행복을 왜곡하는가

김태형 (지은이), 갈매나무(2021)


태그:#김태형, #갈매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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