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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교서열화 해소 정책 토론회 현장.
▲ 고교서열화 해소 정책 토론회 현장.  고교서열화 해소 정책 토론회 현장.
ⓒ 사교육걱정없는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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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30일, 오늘은 나의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이하 사교육걱정) 인턴십 첫 출근일. 첫날부터 사교육걱정이 주관하는 정책 토론회 '고교서열화 해소 정책의 현주소를 진단하고 향후 과제를 제시한다'에 참관할 좋은 기회가 생겼다. 토론회는 오후 3시부터 사무실 건물 3층 세미나실에서 진행하는 동시에, 유튜브에도 실시간으로 방송됐다.

이날 토론회의 주제는 제목대로 '고교 서열화 해소'였다. 예상대로 토론 내내 거론되는 여러 단체 간의 이해관계나 어려운 법률용어는 머리에 바로 들어오지 않았다. 하지만 대한민국 학생으로서 비교적 최근에 겪어야 했던 고교 진학의 직·간접적 경험을 매개 삼자 주제가 바로 와 닿았다.

나는 4년 전, 일반 공립중학교 3학년에 재학 중이었다. 일반고, 과학고, 영재고, 외고, 자사고 등 이런 이름들을 귀에 못이 박이도록 들어왔다. '고입'에 온 동년배들이 술렁이던 시기였다. 나도 예외는 아니었다.

내 기억엔, 과학고는 이름대로 과학에 적성이 있는 학생들이 가는 고등학교가 아니었다. 그냥 '공부 잘하는' 학생들이 '갈 수만 있다면 가는' 고등학교였다. 외국어고고 역시 마찬가지다. 외국어나 외국 문화에 흥미가 있어서 가는 게 아니라 유학을 다녀왔거나, 아무튼 '공부 잘하는' 학생들이 '성적만 된다면 가는' 소위 '좋은 고등학교'였다.

물론 학교에 공식적으로 선악이나 서열이 있단 말은 세상 어디서도 못 들어 봤다. 하지만 왜인지 모두가 그 서열을 믿었다. 나 또한 야심한 시각까지 학원에 이 악물고 남아 있다 보면, 당연히 그렇게 믿고 생각하게 됐다. 오후 10시가 넘어서까지도 몰래 불 끄고 학원을 여는 선생님들로부터는 카스트제도라도 되는 듯한 엄포를 들었다.

"인정하기 싫어도 결국은 좋은 고등학교가 곧 좋은 대학이고, 좋은 대학이 곧 좋은 인생이야! 얘들아, 인생 '망하기' 싫으면 빨리 내신 챙기고 공부해라."

껄끄럽지만, 한국 고등학교들의 사이에는 분명 인생의 성공 여부와 직결되는 양 거론되는 좋고 나쁨이, 그리고 확고한 서열이 있었다. 인터넷 커뮤니티에서도 심심찮게 이런 걸 본 적이 있다. 방금도 클릭 몇 번으로 찾았더니 금방 나왔다. 아래 사진을 보자.  
 
'고교 티어'로 검색하면 찾아볼 수 있는 댓글 하나.
 "고교 티어"로 검색하면 찾아볼 수 있는 댓글 하나.
ⓒ 인터넷 커뮤니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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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교 티어'는 검색어에 상위 노출된 글의 댓글 중 하나다. 우연히 마주친 저급 커뮤니티 글이라고 잊어 넘겨 버리기에는, 생각보다 모든 학생이 다들 한 번쯤 하는 말과 똑같은 불편한 진실을 담은 글이었다. 내 눈엔 저 댓글이 내 중학교 동창들 목소리로 읽힌다. 

저 캡처 속 댓글은 '티어'라는 용어를 사용해 고등학교 사이의 서열을 지칭하고 있었다. '티어(tier)'란 '단계'를 의미하는데, 10대와 20대에게는 뜻보다는 온라인 게임상에서 유저들을 '실력별로 계급을 붙여 피라미드식 우열로 명확히 구분 짓는 것을 가리키는 게임 용어'로 더 익숙하다.

이를테면 점수를 잘 딴 유저는 귀한 보석의 이름을 딴 상위 계급 '다이아몬드 티어', 잘 못 딴 유저는 흔한 금속의 이름을 딴 하위 계급 '브론즈 티어', 이런 식이다. 학생 당사자들이 스스로 고등학교 종류를 게임처럼 '티어'에 비유하는 모습은 서열화를 넘어서 '고교 신분제도'처럼 보인다. 

그들의 망측한(?) 카스트로 따지자면, 내가 재학 중인 금산간디학교 고등과정은 브론즈 고등학교, 불가촉천민 고등학교쯤 될 것이다. 고졸 학력도 안 주고, 대입 경쟁도 안 시키니까 말이다. '고교 서열화'가 기준 삼는 가치에만 입각한다면, 난 정말 하등 무가치한 '망한' 인생이다.

당연하지만 난 결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우리 학교는 '나쁜 고등학교'가 아니다. 난 학생 간 서열화된 교육방식을 지양하자는 교육이념을 가진 우리 학교가 자랑스럽다. 그 이전부터도 고교를 계급처럼 여기고 싶지 않았기에 고등학교를 두 번 입학하는 수고를 감내하면서도 금산간디학교를 택했다. 

물론 어딜 가든 많은 사람이 경쟁 사회야말로 변별력을 가지고 인재를 성장시키기 때문에, 경쟁과 차별화는 필수 불가결하다고 말한다. 나 역시 경쟁과 서열을 피해갈 수는 없음을 절감한다. 대안학교에 가서조차도 말이다. 우리 학교가 따로 경쟁 압박을 주지 않아도 졸업을 앞두려니 바깥 사회가 알아서 나에게 따가운 시선과 압박을 보내온다. 그 사람들의 말은 슬프지만 사실이다. 사람 사이에 차등을 두는 경쟁과 서열은 부정할 수 없는 우리 사회의 현실이다.

하지만 나는 그게 당장은 사실이 될 수 있지만, 최종 진실만은 결코 될 수 없다고 생각한다. 그렇기에 더욱 받아들이지 말고 반발하며 바꾸어야 한다. 신분 제도가 부당한 것과 똑같이, 고교의 서열화 또한 정당한 일이 아니다. 

비록 복잡하게 느껴지는 논찬을 모두 알아들은 건 아니지만, 나와 같은 지향점을 바라보는 교육시민운동 단체의 전문적인 현장에 가까운 눈과 귀가 되어 있을 수 있어서 정말 기뻤다. 세상에 더는 '좋은 고등학교'도, '나쁜 고등학교'도 없어야 한다. 하루빨리 모든 학생에게 있어 자신의 출신 학교가 그 어떤 우월함도, 열등함도 되지 않는 세상이 오길 바란다.

토론회 다시 보기 ☞ https://youtu.be/wF1V1cWn_pY
토론회 결과 간략히 보기 ☞ https://bit.ly/3vwljw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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