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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더기로 쌓인 쓰레기, 집값을 떨어트린다고 위협하는 플래카드, 벌레가 들끓어도 늦장 대응하는 공기업... 공공임대주택은 저렴한 가격 말고 장점이 없는 걸까? 아직 소수지만 풍성한 콘텐츠로 입주자와 함께하는 공공주택(사회주택)들이 있다. 공공주택 현장에서 새로운 발걸음을 뻗어나가는 사람들을 이한솔 한국사회주택협회 이사장이 만난다. [편집자말]
집을 처음 구할 때의 기억을 떠올리면 아련하면서도 아찔하다. 첫 독립이라는 설렘과 동시에 정규교육에서 한 번도 배워본 적 없는 작업이 두려움과 당혹감으로 다가온다. 집주인이라는 사람은 내가 무엇을 어려워하는지 전혀 알지 못하며, 공인중개사는 전적으로 집주인 편처럼 느껴진다.

소개받은 집을 찾아가도, 나의 생활과는 전혀 관계없이, 어딘가 하자가 있을 것만 같으면서도 공장에서 찍어낸 듯이 천편일률적인 방밖에 보이지 않는다. 집은 돈이 많은 사람만 지을 수 있으니깐, 괴리감이 크더라도 자연스럽게 현실을 받아들여야만 하는 것일까?

청년세입자가 직접 해냈다
 
토지임대부 사회주택, '달팽이집 연희' 전경
 토지임대부 사회주택, "달팽이집 연희" 전경
ⓒ 민달팽이주택협동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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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직접 살아보니깐, 무엇이 필요한지 알겠더라고요."

정기웅(28)씨는 민달팽이주택협동조합(아래 민달팽이조합)의 직원이자 입주자이다. 민달팽이조합은 '달팽이집'이라는 사회주택을 공급 및 운영하고 있다. 2011년부터 '청년 주거'라는 새로운 아젠다를 사회에 던지며 시작한 '민달팽이' 청년들의 활동은, 사회주택을 직접 공급까지 해내며 주목받았다.

현재 민달팽이조합은 서울을 비롯하여 경기도, 전주시까지 300호 이상을 운영하고 있다. 민달팽이조합은 설립 이후 7년 동안 많은 시행착오를 겪었고 작년이 되어서야 청년들이 직접 설계하고 공급하고 입주하고 운영하는 모델이 완성됐다.

"집을 짓는 과정은 많은 자본과 기술이 필요한 영역이었는데, 모든 과정을 청년 세입자가 직접 해냈다는 사실이 큰 의미가 있다"는 정씨의 자랑은 오늘의 현실에서 기분 좋게 들을 수 있었다.

"사업을 하기 위해서는 현장을 잘 알아야 하는데, 직원이 현장 그 자체에 있으니 문제가 발생했을 때 빠르고 실효성 있게 대응할 수 있고 커뮤니티 프로그램을 기획하기도 편해요."

사회주택은 운영사마다 고유의 특징이 있는데, '달팽이집'은 공급자와 수요자가 일치하는 것이 가장 큰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청년들의 주거문제를 청년들이 직접 해결하겠다는 설립 취지에 따라, 민달팽이조합은 조합원이 직원이 되고 입주자가 커뮤니티 매니저를 하고 있다.

청년이 청년을 맞이하면 어떤 장점이 있을까? 입주 과정에서 임대차계약서를 비롯한 각종 서류와 절차를 보고 당황해본 경험이 누구나 있을 것이다. 같은 문제를 경험한 또래의 입장에서 안내할 수 있으니, 어디가 어떻게 어려운지 정확한 포인트를 집을 수 있는 것이다.

또한 청년 1인가구의 라이프스타일을 직접 경험하고 있기 때문에, 주거 커뮤니티 내의 실효성 있는 규칙을 만들고 소통하기에 용이하다. 시대가 많이 변해서, 탑다운(Top-Down)식의 규칙은 적용되기 어렵고, 커뮤니티 프로그램이라고 진행되는 것들이 대체로 매력적이지 않은 경우도 많다.

하지만 또래 활동가들이 스스로 고민하고 개발한다면, 일상의 다양한 영역을 선제적으로 파악할 수 있고 프로그램의 매력도 높아질 것이다. 결정적으로는, 같은 청년 세입자들이 운영하고 있기에, 입주자들이 기존의 임대인처럼 어려워하지 않고 조합 사무국의 직원들을 편하게 대할 수 있다.

민달팽이조합의 하나 특이한 점이 있다면, 주택의 설계 단계에서 수요자들의 의견을 반영한다는 점을 꼽을 수 있다. 집을 공급하는 단계에서는 해당 지역의 청년 활동가들이 모여 달팽이집이 지역에서 어떻게 정착할 수 있을지를 고민하고, 자신이 살아갈 공간의 설계도 직접 참여한다.
 
위탁형 사회주택 'LH응암역 달팽이집' 투룸형 내부
 위탁형 사회주택 "LH응암역 달팽이집" 투룸형 내부
ⓒ 민달팽이주택협동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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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모델링형 사회주택, '달팽이집 5호' 전경
 리모델링형 사회주택, "달팽이집 5호" 전경
ⓒ 민달팽이주택협동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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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급 단계에서의 참여 과정은 입주자의 만족도를 높일 뿐만 아니라, 지역 사람들을 청년들이 직접 만나고 설득하니 청년주택을 반대하는 지역 소유권자들의 움직임도 최소화됐다.

다만 청년이 직접 운영하는 시스템의 과제도 분명하다. 그는 "누수가 발생하거나 시설의 하자가 있을 때 전문적으로 처리할 수 있는 주택 관리의 역량은 다른 운영사들에 비해 다소 부족하다고 느껴진다. 빠르게 역량을 키우고 싶지만 쉽지 않다"며 아쉬움을 드러냈다.

또한 모든 주택 공급과 운영 과정을 조합원과 함께 고민하다 보니, 사업이 신중하게 진행할 수밖에 없다. 정씨는 "조합이 사업 규모를 확장해서 스케일업(Scale-Up, 기업의 규모를 확대하는 단계)을 해야 하는데, 방법을 찾고 싶다"는 고민을 오랜 기간 이어오고 있다고 한다.

월세라도 재미있게
 
전주 달팽이집 조합원들의 동네 활성화를 위한 '완산골 영화제' 진행 모습
 전주 달팽이집 조합원들의 동네 활성화를 위한 "완산골 영화제" 진행 모습
ⓒ 민달팽이주택협동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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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사회에서 청년들이 정주하며 정착할 수 있는 기획과 집을 소유하지 않더라도 안심하고 살아갈 수 있다는 확신을 주고 싶어요."

민달팽이조합은 단순히 주택을 공급하는 사업을 넘어서, 청년들의 주거권을 보장하기 위한 사회적 역할을 자임하고 있다. 조합원들에게 꾸준히 세입자 역량 강화를 위한 교육 프로그램을 제공 중이며, 정부와 지자체에도 다양한 정책을 제안하고 있다. 사회주택 정책이라고 하면 시세의 80% 이하라는 저렴한 임대료에만 집중되곤 한다. 민달팽이조합의 활동은 임대료 차원을 넘어서는 다양한 대안과 연결되는 것이다.

민달팽이조합은 입주자에게 제공하는 각종 프로그램과 매뉴얼, 규칙을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입주자들과 함께 직접 만들어나갈 계획이다. '서로가 안심하고 살아갈 수 있는 집'을 바란다는 입주조합원의 의견을 반영해서, 공동체 내에서 발생하는 폭력을 예방하는 '평등문화 교육 프로그램'을 의견을 제안한 사람들과 함께 기획 중이다.

'끝날 줄 모르는 장마로 인해 미래에 대한 고민이 깊다'라는 의견을 받아, 집에서부터 기후위기에 대응 및 실천할 수 있는 '제로웨이스트 매뉴얼'을 관심 있는 입주조합원들과 함께 개발하고 있다. 매년 진행하는 입주조합원 만족도 조사에서, '민달팽이조합에 대한 신뢰'와 '안정감'이 10점 만점에 9점 가까이 나오는 이유도 이러한 조합과 조합원의 관계와 노력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민달팽이주택협동조합의 조합원 대상 랜선 송년회 MBN 보도
 민달팽이주택협동조합의 조합원 대상 랜선 송년회 MBN 보도
ⓒ MB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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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집을 사야만 한다는 결론이 나지 않는 사회, 전세나 월셋집에 거주하더라도 충분히 안정적이고 재미있게 살 수 있는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어요."

정씨의 바람이 지난 7년간 민달팽이조합의 활동을 통해 정착되고 있다. 지나치게 시혜적이거나 영리적으로만 운영될 수 있는 사회주택 사업의 경계에서, 정책 당사자가 사업 개발 및 집행을 주도하는 사례가 의미하는 바는 매우 크다. 민달팽이들의 발걸음이 다음 단계에 이르렀을 때, 또 어떤 사회적 울림을 줄 수 있을까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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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입자, 1인가구, 비전형노동의 한복판에 있는 청년이자, 사회주택을 짓고 운영하고 살기도 하는 주거 덕후이다. 세상이 조금이나마 나아지길 바라며, 시민의 힘을 키우는데 관심을 가지고 산다. 현재 국무조정실 청년정책조정위원, 한국사회주택협회 이사장, 민달팽이주택협동조합 이사, 한빛미디어노동인권센터 이사 등 청년, 주거, 노동 영역에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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