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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많은 갈등을 해결하기 위해 토론과 회의를 거쳐 지리산의식주연구회(이하 연구회)는 주민들이 다 함께 공동으로 작업을 하는 방안을 마련했다. 사실 아무리 머리를 짜내도 원주민들 간의 갈등과 원주민들과 귀농·귀촌인들의 대립을 근본적으로 풀어낼 방법은 없었다. 잠재되어 있던 갈등들이 현실의 표면으로 드러난 건 밤 생산량 감소로 마을 전체에 휘몰아친 농가 소득의 하락 때문이었다.

하지만 주민들 각 개인의 마음에 뿌리 깊이 박힌 미움과 증오는 소득 감소라는 경제적 요인이 만들어 낸 건 아니다. 그러한 부정적 감정들이 생겨난 것은 원주민들의 경우에는 시간의 앙금 탓이었고, 원주민들과 귀농·귀촌인들 사이에는 문화적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오히려 경제적 위기는 서로 간의 분노와 미움을 마음껏 드러낼 기회를 제공한 셈이었다. 주민들의 내면에 깊게 새겨져 있는 서로에 대한 분노와 원망은 자신을 표출할 기회만 찾고 있었으니까.

사실 각 개인의 내밀한 내면에 직접적으로 다가갈 방법은 없다. 그래서 연구회는 주민들에게 함께 노동하는 계기를 제공함으로써 갈등의 해소 혹은 관계의 회복을 꾀하고자 했다. 내면에 곧바로 다가갈 수 없다면 몸들의 부대낌과 접촉을 통해 뭔가 실마리를 찾을 수 있지 않을까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마을 회의를 소집하고 주민들에게 의견을 물었다. 다들 칠색 팔색을 하며 경악했다.

"뭐라카노! 내 밤을 훔쳐 가는 저 도둑년하고 같이 일하라꼬?"
"저 새끼는 애시당초 싹수가 글러 먹은 놈인데, 저런 놈하고 뭘 하라꼬?"
"저 놈이 측량을 해가꼬 내 땅을 뺏었는데, 같이 일하라꼬, 니가 돌았나!"


대부분의 반응이 이러했다. 하지만 연구회는 끈질기게 주민들을 설득했다. 나이 든 농부들이 산 정상까지 20kg의 비료를 옮겨서 뿌리고, 경사가 심한 산비탈에서 예초기를 돌리는 일이 만만치 않으니 함께 일을 해 보자고. 대다수의 주민들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석연치 않은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결국은 마지못해 거의 찬성했다. 내키지는 않지만 주민들이 찬성한 이유는 실제로 밤나무 산을 관리하는 것이 혼자 하기에 꽤 힘이 드는 작업이기 때문이었다. 다들 회의적이고 부정적인 말 한마디씩을 던지며 마을 회의가 끝났지만, 어쨌거나 일단은 함께 일을 하는 것에 찬성했다는 점이 중요했다.

말 한마디에서 비롯된 파국
 
산 정상으로 밤비료 옮기는 모습
 산 정상으로 밤비료 옮기는 모습
ⓒ 노일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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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 한 번으로 충분했다. 서로에 대한 불신과 미움의 크기가 얼마나 큰지를 단 한 번의 공동 작업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십여 명이 모였지만 서로 간섭하고 다투느라 작업에서 한 사람의 몫도 하질 못했다. 작업의 관점에서 보자면 중구난방에다 이런 오합지졸도 없었다.

작업의 순서부터 작업의 방법 등 모든 문제에서 주민들은 자신을 제외한 모두를 적으로 간주했다. 그것은 마치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 상태라 할 만했다. 두레, 향약, 계 등 상호 부조의 집단 무의식은 그저 교과서에만 있는 것인가 생각이 들 정도였다.

어릴 적 내 기억을 더듬어 보면 분명 마을에는 협동이란 것이 있었다. 그렇지만 모든 사안에서 사사건건 격렬하게 대립하는 주민들을 보고 있자니, 내 기억이 잘못된 것이 아닐까 의문이 들었다.

그래서 마을의 최고 연장자 아저씨에게 물었다. 우리 마을이 원래부터 이랬냐고. 상상을 초월하는 압도적인 자연재해 앞에서는 다들 힘을 모았지만, 늘 갈등은 있었고, 주민들 대부분은 자신의 감정이 이끄는 대로 서로에게 상처를 주며 살았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항상 평화롭고 서로를 배려하고 협동하던 우리 마을의 이미지는 내 기억이 왜곡된 결과물이었다.

공동 노동의 파국적 결말은 말 한마디에서 시작되었다.

"이 낫 이거 내 꺼 아이가?"
"이 양반이 돌았는 갑네. 도둑놈 눈까리로 보먼 다 도둑질한 거로 뷘다 카디만."
"내 눈이 도둑놈 눈까리라꼬? 이 새끼가요, 니가 저기 중평댁 집에 밤마다 들락거리는 거를 내가 봤다 아이가. 니가 도둑질하러 댕긴 거 아이가?"
"내가 언제 중평댁 집에 들락거맀다 카노. 이게 미친놈 아이가!"
"도둑질이 아이먼, 뭐 딴짓하러 간 기가? 하기사 홀애비가 과부 만나는 게 죄는 아이까네."


70을 넘긴 두 농부가 멱살을 잡고 엉겨붙었고, 마을 주민들은 제각각 제일 미운 상대를 골라 말싸움과 멱살잡이를 시작했다. 그 순간 마을의 공동 작업은 끝장이 났고, 지리산의식주연구회의 활동도 그렇게 허무하게 종지부를 찍는 듯했다.

이해 못할 국가 기관

그놈의 기후 때문이었다. 2020년에도 밤꽃의 개화기 때 비는 줄기차게 쏟아졌고, 바람은 미친 듯이 불어댔다. 밤나무에 달린 밤꽃은 보물찾기 놀이를 해야 볼 수 있을 정도였다. 초여름 밤을 농밀하게 뒤덮던 밤꽃 향기는 사라지고 마을에는 한숨 소리만 번지고 있었다.

주민들이 모여서 연구회가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기 시작했다. 나를 포함해서 연구회를 만든 5명의 사람들에게 해결책을 내놓으라고 주민들은 입을 모았다. 연구회가 도대체 무슨 수로 이상 기후에 대한 해결 방안을 마련할 수 있겠는가. 나 역시 그저 답답할 따름이었다.

따지고 보면, 이런 사안은 국가 사회를 구성하는 단체 중에서 함양군이나 농협 같은 기관들이 구조적으로 해결해야 할 문제라고 할 수 있다. 이상 기후가 지역에서 굳어지는 징후를 파악하고 그에 대한 대책을 마련하는 것은 사실 개인이나 연구회 같은 단체에서 할 수 있는 일은 아니다.

우리 마을에서 밤농사가 시작된 지 50년이 훌쩍 넘었다. 하지만 50년의 세월 동안 농부들은 밤을 산에서 주워 농협이나 중개업자에게 운반하는 수단으로 치부되었다. 어디 그뿐인가. 밤의 출하 가격은 중개업자들이 결정한다. 밤농사를 짓는 농부들은 늘 가격 결정 과정에서 제외되었고, 그 결과 한 마을 전체의 경제적·내면적 삶의 질이 몇몇 업자들에 의해 좌우됐다.

또 농민들의 이익을 대변해야 할 농협 역시 중개업자나 다름없는 행태를 보이고 있다. 농협은 밤농사를 짓는 농부들의 밤을 중개업자들이 그날그날 정하는 가격으로 수매해서 업자들에게 넘기는 역할을 하고 있다. 농부들이 볼 때 농협은 밤을 취급하는 중개업자들이나 다름없다. 농민들의 이익을 대변하는 것이 아니라 업자들과 함께 농부들을 착취하는 구조에 안주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50년이다. 함양군에서도 백전면과 병곡면이 밤의 주요 산지가 된 지 50년이 흘렀다. 그런데도 함양군에는 밤과 관련된 가공 센터나 밤의 유통에 관한 공익적 기관이 전혀 없다. 물론 밤이라는 작물을 부업 정도로 여기고 대수롭지 않게 생각한 농민들의 잘못도 있다. 하지만 함양군 같은 국가 기관이나 농협 같은 준국가 기구가 밤과 관련해서 아무런 인프라도 구축해 놓지 않은 점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다. 사실상 직무유기라고 해도 할 말이 없을 것이다.

2020년의 밤농사 결과는 최악이었다. 2019년 당시 더 이상 바닥을 칠 수 없다고 생각했지만 현실은 상상을 초월하는 법이다. 함양농협 백전지점의 밤 매입 실적표에 따르면 2016년 백전면에서 매입한 밤은 360t이었고, 2019년에는 189t, 2020년에는 104t이었다. 나와 남편이 한 달 넘게 산을 돌아다니며 밤으로 번 돈은 고작 250만 원이 조금 넘었다. 벼랑 끝에 서 있는 것이 아니라 벼랑에 엄지손가락 두 개로 매달려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우리가 마을 기업을?
 
밤 작업 초기에 떨어지는 밤송이와 밤톨
 밤 작업 초기에 떨어지는 밤송이와 밤톨
ⓒ 노일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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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지리산의식주연구회 활동을 요청 받았다. 귀농을 하신 마을 주민 한 분이 '마을기업'이라는 단어를 꺼내면서부터였다. 정부가 지원하는 '마을기업 육성 사업'이라는 것이 있는데, 연구회가 이 마을기업이라는 것을 우리 마을에서 해보면 좋겠다는 의견이었다.

잘 알지도 못하는 뭔가를 시도하는 것에 불쑥 두려움부터 앞섰다. 20년이 넘는 도시 생활을 후다닥 단칼에 정리하고 귀농을 한 건, 내가 변화 앞에서 용감하기 때문이 아니었다. 시골로 다시 돌아온 건 내가 변화에 대해 두려움이 없어서가 아니라, 어릴 적 아련했던 좋은 기억들이 낭만적인 결심으로 변한 덕분이다.

더구나 남편과 나는 뼛속까지 개인주의자들이다. 집단의 논리를 따르기보다는 개인의 자유와 권리를 더 소중하게 여기고, 전체의 이익을 위해 개인의 희생이 어느 정도 필요하다는 식의 사고방식에는 전혀 공감을 하지 못하는 사람들이라는 뜻이다. 따라서 타인의 자유와 권리도 내 것만큼이나 중요하게 생각하기에, 나 자신의 의견이나 연구회의 결정을 따르라고 요구하는 일이 생길 경우를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머리가 지끈거렸다.

그런데 예상외로 남편은 흥미를 느낀 모양이었다. 인터넷을 좀 뒤적이고 마을기업 관련 서적을 몇 권 사서 읽더니, 내게 그 책들을 건넸다. 읽어보라고 자꾸만 강요를 해서 몇 번 훑어봤는데 사실 더 엄두가 나지 않았다.

마을기업은 마을이라는 단어와 기업이라는 낱말이 합쳐진 합성어라 할 수 있다. 중·고등학교 때 국어 수업 시간을 떠올려 보면 합성어에는 몇 가지 종류가 있다. 종속합성어는 '국밥'처럼 국이 밥이라는 단어에 종속되는 관계이고, '춘추' 같은 융합합성어는 두 단어의 본래 뜻이 사라지고 나이라는 새로운 뜻이 생겨나는 합성어다. 이와 달리 마을기업이라는 합성어는 병렬합성어라고 볼 수 있겠다. 병렬합성어란 두 단어가 원래의 의미를 유지하면서 동등한 자격으로 연결되는 것이다.

마을이 공동체성 혹은 공공성을 의미한다면, 기업은 이윤 추구와 사업성 그리고 시대의 흐름을 읽고 변화하는 기업가 정신을 뜻한다고 할 수 있다. 이 두 가지를 함께 실현해야 하는 마을기업이라는 과제를 과연 우리 마을이 그리고 우리 마을의 구성원들이 할 수 있을까?

(* 다음주 월요일 4편으로 이어집니다.)

덧붙이는 글 | 노일영 기자는 프로 골퍼로 KLPGA 정회원입니다. 현재 지리산의식주연구협동조합 이사장과 마을기업 대표, 함양군 백전면 음천마을 이장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이 기사는 <주간 함양>에도 실립니다.


태그:#마을기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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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양에서 태어나 도시에서 살다가 함양으로 귀농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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