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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태일 일기장 관리위원회가 29일 오전 서울 종로구 평화시장 부근 청계천 전태일다리(버들다리)에서 '전태일 일기장 육필 원본 공개 기자회견'을 열었다. 전태일 열사의 동생 전태삼 씨가 열사의 육필 일기장을 공개하고 있다.
 전태일 일기장 관리위원회가 29일 오전 서울 종로구 평화시장 부근 청계천 전태일다리(버들다리)에서 "전태일 일기장 육필 원본 공개 기자회견"을 열었다. 전태일 열사의 동생 전태삼 씨가 열사의 육필 일기장을 공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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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을 위해 산다. 절망은 없다."

29일 처음 공개된 전태일 열사의 육필 일기 첫 장에 새겨진 내용이다. 스무 살 전태일이 삐뚤삐뚤한 글씨로 '내일을 위해 산다는' 말에 이어 '절망은 없다'라는 문장을 4회에 걸쳐 꾹꾹 눌러썼다.

이날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과 한국노동조합총연맹, 전국불안정노동자철폐연대, 전태일재단 등 7개 단체로 구성된 '전태일 일기장 관리위원회'(이하 위원회)는 서울 종로구 청계천 평화시장 앞 전태일 동상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전태일 열사 유가족이 50년 동안 보관한 일기장을 공개했다.

위원회는 "전태일 열사의 친필 일기는 우리 시대 노동자들에게 보내는 편지"라면서 "7권에 달하는 전태일의 친필 일기장은 1960년대와 70년대 노동 현실과 사회를 보여주는 기록이며, 가난한 삶 속에서도 사회의 모순을 자각한 이의 기록"이라고 평가했다.

이날 공개된 친필 일기장은 총 7권이다. 그간 일기 내용의 일부가 발췌돼 <전태일 평전> 등 책자에 소개된 적은 있지만 원본 그대로 공개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전태일의 일기장은 추후 보존처리 과정을 거쳐 대중에게 공개될 예정이다. 다만 그 장소가 서울 청계천가에 위치한 전태일기념관이 될지에 대해서는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 
 
전태일 일기장 관리위원회가 29일 오전 서울 종로구 평화시장 부근 청계천 전태일다리(버들다리)에서 '전태일 일기장 육필 원본 공개 기자회견'을 열었다. 전태일 열사의 동생 전태삼 씨가 열사의 육필 일기장을 공개하고 있다.
 전태일 일기장 관리위원회가 29일 오전 서울 종로구 평화시장 부근 청계천 전태일다리(버들다리)에서 "전태일 일기장 육필 원본 공개 기자회견"을 열었다. 전태일 열사의 동생 전태삼 씨가 열사의 육필 일기장을 공개하고 있다.
ⓒ 공동취재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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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태일 일기장 육필 원본 공개 기자회견'이 29일 오전 서울 종로구 청계천 전태일다리에서 전태일 일기장 관리위원회 주최로 열렸다. 열사의 일기장 7권은 유가족이 50여년간 보관해온 것으로 이날 관리를 '전태일 일기장 관리위원회'로 위임했다. 사진 왼쪽은 전태일 열사의 동생 전태삼씨.
 "전태일 일기장 육필 원본 공개 기자회견"이 29일 오전 서울 종로구 청계천 전태일다리에서 전태일 일기장 관리위원회 주최로 열렸다. 열사의 일기장 7권은 유가족이 50여년간 보관해온 것으로 이날 관리를 "전태일 일기장 관리위원회"로 위임했다. 사진 왼쪽은 전태일 열사의 동생 전태삼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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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개 이유는... 노동자 하나 돼라"

전태일 열사 일기장의 공개를 결정한 동생 전태삼씨는 미리 배포한 원고 이외에 자필로 쓴 원고를 따로 준비했다. 자필 원고에는 50년이 지나 전태일의 일기장을 공개하는 이유가 적혀 있었다.

"하늘에 계시는 이소선 어머니께 그 (공개) 이유를 묻는다면 어머니는 지금 이 순간 아들인 전태삼에게 말씀하실 거다. 노동자와 학생, 농민, 한국노총과 민주노총이 하나가 되라고. 천만 노동자가 하나가 되면 못할 것이 없다고."

전태일의 유족은 그동안 일기장이 정부에 의해 왜곡될 수 있다는 우려에 원본을 공개하지 않았다. 하지만 많은 시민이 전태일의 일기를 함께 보고 청년 전태일을 함께 기억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해 올 초 노동단체 및 전태일재단 등을 통해 공개를 결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날 현장에는 천정환 성균관대 국문학과 교수도 참여해 전태일이 남긴 일기장 7권의 의미를 "연구자에게 너무나 큰 자극이 되는 일"이라면서 상기된 목소리로 설명했다.

"스물둘 셋 남짓한 평범한 청년이 어떤 생각을 했고 어떻게 공부했는지 상세한 이야기가 원본에 나와 있다. 근래 사회적으로도 큰 논란이 되는 산업재해·최저임금·노동시간 등의 문제에 대해서도 전태일 일기는 원칙이 돼야 할 바가 무엇인지 일러준다."
 
'전태일 일기장 육필 원본 공개 기자회견'이 29일 오전 서울 종로구 청계천 전태일다리에서 전태일 일기장 관리위원회 주최로 열렸다. 열사의 일기장 7권은 유가족이 50여년간 보관해온 것으로 이날 관리를 '전태일 일기장 관리위원회'로 위임했다.
 "전태일 일기장 육필 원본 공개 기자회견"이 29일 오전 서울 종로구 청계천 전태일다리에서 전태일 일기장 관리위원회 주최로 열렸다. 열사의 일기장 7권은 유가족이 50여년간 보관해온 것으로 이날 관리를 "전태일 일기장 관리위원회"로 위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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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태일의 일기장에는 꾹꾹 눌러쓴 필체로 1960~70년대 제조업 노동자로서 느끼는 문제의식과 청년으로서 가진 연애 감정, 낮은 학력에서 오는 콤플렉스 등 온전히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가 함께 담겨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날 공개된 1967년 2월 14일 일기에는 열아홉 전태일의 연애 감정이 솔직히 담겼다. 당시 전태일은 "지금까지 많이 여자를 사귀어 보았지만 정작 그 사람만큼 한시도 빼놓지 않게 생각하게 한 사람은 그녀 혼자뿐이다. 비록 사귄 지는 얼마 되지 않았지만 그녀는 분명히 여자다"라고 일기장에 적었다.

그러면서도 전태일은 "하루를 넘기면서 아쉬움이 없다니, 정신이 이토록 타락할 줄은, 정말 나 자신도 이때까지 생각해본 일이 없다"면서 "좀 더 현실적으로 냉정해야 할까. 지금 내 현실에, 사랑이 다 무엇이냐. 동심을 버리고 현실에 충실해야 한다"라고 썼다.

전태일은 1948년 8월 26일 태어나 1970년 11월 13일 생을 마감했다. 생의 마지막 날 근로기준법이 노동자의 인권을 보호하지 못하는 무능한 법이라는 걸 깨닫고 평화시장 앞에서 '근로기준법 화형식'을 할 것을 결심했다. 그러나 경찰에 의해 화형식은 막혔다.

전태일은 그날 오후 1시 30분 평화시장 골목에서 자신의 몸에 석유를 부은 뒤 불을 붙이고는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 일요일은 쉬게 하라, 노동자를 혹사하지 말라"고 외쳤다. 전태일은 이날 오후 10시 서울 성모병원에서 사망했다.
 
'전태일 일기장 육필 원본 공개 기자회견'이 29일 오전 서울 종로구 청계천 전태일다리에서 전태일 일기장 관리위원회 주최로 열렸다. 열사의 일기장 7권은 유가족이 50여년간 보관해온 것으로 이날 관리를 '전태일 일기장 관리위원회'로 위임했다.
 "전태일 일기장 육필 원본 공개 기자회견"이 29일 오전 서울 종로구 청계천 전태일다리에서 전태일 일기장 관리위원회 주최로 열렸다. 열사의 일기장 7권은 유가족이 50여년간 보관해온 것으로 이날 관리를 "전태일 일기장 관리위원회"로 위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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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태일 일기장 관리위원회가 29일 오전 서울 종로구 평화시장 부근 청계천 전태일다리(버들다리)에서 '전태일 일기장 육필 원본 공개 기자회견'을 열었다. 전태일 열사의 동생 전태삼 씨가 열사의 육필 일기장을 공개하고 있다.
 전태일 일기장 관리위원회가 29일 오전 서울 종로구 평화시장 부근 청계천 전태일다리(버들다리)에서 "전태일 일기장 육필 원본 공개 기자회견"을 열었다. 전태일 열사의 동생 전태삼 씨가 열사의 육필 일기장을 공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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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이 끊어지기 전 전태일은 어머니 이소선에게 "내가 못다 이룬 일을 어머니가 대신 이뤄주세요"라는 유언을 남기고 세상을 떠났다. 어머니 이소선은 아들의 유언대로 평생을 노동의 최일선에서 노동자의 어머니로 살았다.

이날 전태일의 일기장을 공개한 위원회는 노동절인 5월 1일 전태일 일기 낭송회를 평화시장 옥상에서 진행할 예정이다. 전태일 유가족을 비롯해 비정규직 노동자, 청년 노동자, 문화예술가, 법률가 등이 참석한다. 

태그:#전태일, #일기장, #근로기준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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