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서복> 장면

영화 <서복> 장면 ⓒ CJ 엔터테인먼트

 
서복(박보검 분)은 평생 한 번만 잔다. 죽을 때다. 그 인류 최초의 복제인간 특성이 또 있다. 뇌파의 가공할 에너지다. 그런 서복이 비밀 프로젝트에 소환된 전직 정보국 요원 민기헌(공유 분)과 동행하다 토하듯 파토스를 드러낸다. 자기를 만든 엄마 임세은 책임 연구원(장영남 분)을 향한 질문 "왜 그랬어?"에 깃든 한스러운 두 이유에서다. 하나는 하고 싶은 꿈을 아예 지닐 수 없게끔 조건 지어진 실험체의 운명이다. 그렇기에 다른 하나는 "아무리 무서워도 도망칠 수 없다는 거"다.     
 
그래서 실험체 서복은 끝내 도망자가 될 수 없다. 영원한 생명 유지는 실험실 환경에서나 가능하니까. 죽음이 두렵지는 않아도, 서복은 실험실을 택한다. "누군가에게 의미 있는 무언가가 되고 싶었어요"를 실현하기 위해. 박보검은 무망한 실험체의 건조함부터 낯선 세상에 꽂힌 천진난만한 눈빛과 살상무기 같은 뇌파를 발산할 때의 분노 등 다채로운 표정으로 나를 사로잡았다. 물론 거기에는 내 감성을 툭툭 건드리는 서복의 대사도 한몫한다.  
    
동서고금 죽음을 두려워하는 인간들은 진시황처럼 불로초를 열망한다. 진시황의 꿈을 위해 파견된 방사(方士)가 '서복'이다. 그러니까 영화 <서복>의 서복은 자고이래 불멸을 향한 인간의 탐진치(貪瞋癡)를 고발한다. 서복의 뇌파력이 미지수인 생명공학 수준을 가늠하게 하면서. 노욕(老慾)으로 치닫다 찌그러진 서복의 소유주 서인그룹 회장 김천오(김재건 분)와 이래저래 제 발등을 찍는 정보국 요원 안부장(조우진 분), 그리고 뒤늦게 항의하다 죽음을 맞은 임세은 등이 서복의 대사 "그러지 말지. 그런다고 끝나는 게 아닌데"와 맞물리면서.

서복이 수단이듯 기헌도 그렇다. 조직에서 떨렸음에도 불구하고 소환에 응한 기헌이 문 미끼는, 서복을 통해 의식 소실을 일으키는 뇌종양에서 자유로워질 수도 있다는 꿈이다. 도망길에서 서복과 소통하며 참회의 울음을 터뜨린 기헌은 서복을 실험실 돼지처럼 취급하는 연구원을 제지하다 결국 거대한 선박, 일명 (노아의) 방주 폭파에 기여한다. 그 결과는 "형, 나 졸려요"다. 그 순간 서복은 기헌에게 실험체가 아니다. 문득 자문한다. 생명공학기술이 낳으려는 복제인간에게 생명의 평등성을 부여할 권리는 누구에게 있는가.     
 
 영화 <서복>의 한 장면

영화 <서복>의 한 장면 ⓒ STUDIO101,CJ ENM

 
그러니까 <서복>은 삶과 죽음을 응시하게 하는 감성드라마다. 숨이 끊기면 죽을 시한부 인생이면서 죽음을 마냥 두려워하거나 남 일처럼 대하던 관객을 동요시킬 수 있는. 공유가 연기한 기헌의 흔들리는 눈빛처럼. 물론 그 촉매는 서복과 기헌이 주고받는 짤막짤막한 대사들이다. 전쟁터 같은 화면에 피는 작은 꽃들이다. 팍팍한 삶터에 형이상학적 물꼬를 트는 이용주 감독의 솜씨가 돋보인다. 가방끈 길이와 상관없이 먹힐 수 있는 담백·명쾌한 물기다.     
 
"무기의 본질은 두려움"이다. 궁극적으로 서복은 죽지 않는 게 두렵고, 기헌은 죽을 게 두렵다. 두려움을 공유했으니 둘은 비범과 평범으로 갈릴 수는 있지만, 닮은 셈이다. 그런 관점에서 뭉뚱그리면 누구의 어떤 종류의 탐진치든 두려움의 산물이리라.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탐진치에 노출된 우리 모두는 서로 다르나 닮은 동행자다. 서복의 뇌파가 만든 바닷가 돌무더기에 돌 하나를 얹고 돌아서는 기헌 속에 서복이 있는 그런 뉘앙스는 아니더라도.  
덧붙이는 글 https://brunch.co.kr/@newcritic21/65
서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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