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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월 23일 국회의사당 앞에서 가사노동자법 제정을 촉구하며 기자회견과 피켓 시위를 했다.
 3월 23일 국회의사당 앞에서 가사노동자법 제정을 촉구하며 기자회견과 피켓 시위를 했다.
ⓒ 한국여성노동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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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8년이 되었다. 근로기준법이 제정된 지. 그리고 근로기준법 제정 이래 줄곧 법에 의해 노동자라는 지위에서 배제된 노동자들이 있다. 바로 가사 노동자들이다. 개별 가정이 사용자로서의 책임을 지기 어렵다는 이유에서였다. 최근에 생긴 직업이었다면 특수고용 노동자나 프리랜서 등의 이름으로 분류되어 연구라도 되었을 터다. 하지만 가사 노동자들은 애초에 이런 상태에서 노동해 왔기 때문에 관심의 대상이 아니었다.

여성노동자회가 가사 노동자에게 관심을 갖기 시작한 것은 IMF직후였다. 실직 여성 노동자들에게 어떤 일을 가장 자신 있게 할 수 있느냐는 질문에 가사 노동이란 대답이 돌아왔다. 그러면서 살펴본 가사 노동자들의 현실은 매우 열악했다. 낮은 임금, 안전하지 않은 노동 환경, 4대 보험은커녕 임금이 체불되어도 민사소송 외에는 방법이 없었다.

심지어 노동자로서의 호칭조차 없었다. 가정부나 파출부는 여성을 의미하는 말일 뿐 노동자로서의 호명이 아니다. 여성노동자회는 가정 내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의 이름을 가정관리사라 붙이고 이 중 가사 노동을 하는 이들을 가사관리사라 부르자 제안했다. 이후 2004년 전국가정관리사협회를 발족하고 가사 노동자들이 물리적, 사회적으로 안전한 환경에서 노동할 권리 찾기에 본격 나섰다.

가사 노동은 숙련과 기술이 필요한 일이었다. 내 집안의 일을 하는 것과 타인의 집에서 일하는 것은 매우 다르다. 제한된 시간 내에 노동을 끝내기 위한 체계적 순서가 필요하고 균일한 결과물을 내기 위해서는 각종 세제와 도구들의 사용법을 알아야 한다.

세제 사용과 칼질과 물질, 불을 쓸 일이 많은 가사 노동에서 안전을 위한 교육 역시 필수다. 심지어 감정 노동까지 요구하는 일이다. 신입 조합원들은 반드시 교육이 필요했다. 직업훈련을 시작했다. 교육 과정을 만들고 현장 실습을 위한 체계를 세워갔다.

당시 가사 노동은 노동이 아닌 그저 '남의 집 일'이라 인식되었고 남에게 말할 수 없는 부끄러운 일이었다. "꿈이 뭐니?"라는 질문에 되고 싶은 직업을 답하는 사회에서 생업으로서의 노동을 타인에게 말할 수 없다는 것은 얼마나 참담한가. 가사 노동자들이 노동자로서의 자존감을 가질 수 있도록 가정관리사는 전문직업인이라는 교육을 했다.

가사 노동자들은 일정한 소속 없이 개별로 흩어져 있었다. 소속감이라는 안정성을 경험하는 것이 중요했다. 월례회와 소모임, 각종 교육, 야유회 등을 진행했다. 협회원들은 1박 2일 교육을 매우 좋아했다. 실컷 교육받고 내 손으로 밥하지 않아도 아침에 일어나 따뜻한 밥을 먹을 수 있어서였다.

가사 노동자들이 스스로 '가정관리사라고 불러주세요'라는 거리 캠페인을 나갈 수 있기까지 몇 년의 세월이 필요했다. 협회는 '협동조합 형태'로 운영되었다. 대량 생산이 가능하지 않은 1대1의 노동이다. 이 과정에서 수익을 추구하려면 가사 노동자가 벌어들이는 임금에서 중간착취가 일어날 수밖에 없다.

이윤을 추구하지 않는 협동조합이 최선의 형태라 판단했다. 전국의 여성노동자회 지부는 부설로 가정관리사협회를 만들고 직접 운영하거나 현장 노동자들이 운영할 수 있도록 도왔다. 국내에 협동조합 관련법조차 없던 시절이었다.

국회는 차일피일 미루고만 있다

가사 노동자가 노동자로서의 권리를 보장받기 위해서는 법 개정이 시급했다. 근로기준법 적용 범위에 나와 있는 '가사사용인 적용 제외'라는 단 한 줄의 문구를 지우기 위해 백방으로 뛰었으나 모두 고개를 흔들었다. 섣불리 이 문구를 지우게 되면 개별 가정이 사용자로서의 책임을 져야 한다는 이유였다.

방향을 선회해야 했다. 외국의 입법례를 뒤지기 시작했다. 미국 캘리포니아주 법에 개별 고객이 아닌 에이전시를 사용주로 하여 만든 법안을 참고로 특별법 제정을 추진키로 했다. 몇 년의 연구를 통해 법을 만들었다. 이 법은 중개업체를 사용자로 지정하되 비영리 생태계를 구축하여 가사 노동자의 권리를 보장하고 국가의 역할을 요구하는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다. 2016년 드디어 법안 발의를 하였으나 회기 마감으로 폐기되었다.

이후 20대 국회에서도 세 개의 법이 발의되었지만 역시 논의조차 되지 못 하고 폐기되고 말았다. 21대 국회 들어 현재 네 개의 법안이 발의되어 있지만 역시 국회에서 공회전을 거듭하고 있다. 올해 2~3월, 여성노동자회와 가사 노동자 단체들이 연대하여 국회 앞에 농성장을 만들고 법 제정을 요구하고 있지만 국회는 차일피일 미루고만 있다. 4월 국회가 시작되면 다시 농성을 시작할 것이다.

이런 와중에 2017년, 대리주부를 필두로 가사 노동이 플랫폼에서 거래되기 시작했다. 가사 노동을 중개하는 플랫폼 업체들은 점점 그 규모를 키워가면서 전국가정관리사협회를 비롯한 비영리로 운영되던 조직들을 잠식해갔다. 플랫폼 업체들은 가사 노동자들을 고객 평점에 의해 분류하여 이에 따라 임금을 다르게 책정한다.

시간 쪼개기도 심각한 수준이다. 한 가정에서 보통 네 시간 단위로 일하는 형태가 일반적이었지만 업체들은 이를 두 시간까지 낮추고 단가를 내리고 있다. 아무리 집이 작다 해도 일의 종류가 많고 구석구석의 청결을 요구하는 가사 노동의 특성상 고객의 욕구를 수용하기에는 무리가 따른다. 두 시간 노동으로 인해 노동자들은 이동에 많은 시간과 노력을 할애할 수밖에 없다.

또한 과도한 수수료를 떼고 있지만 고객과 노동자 사이에 분쟁이 발생했을 때 플랫폼 업체들은 이에 개입하지 않는다. 반면 가사 노동은 수요가 점점 증가하고 있다. 통계청과 KT경제경영연구소에 따르면 2006년 2.8조 원 수준이었던 가사 서비스 시장은 2018년 현재 7.5조 원에 육박하였다.

현재 국회에 발의되어 있는 가사 노동자 권리보장법이 통과되어도 플랫폼 가사 노동자들을 모두 포괄하기는 어렵다. 중개업체가 사용자로서의 책임을 지는 형태를 골자로 하는 현행 발의 법은 플랫폼 업체들을 규율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빠르게 변해가는 환경 속에서 가사 노동은 점점 더 파편화되고 있지만 이에 대항하는 목소리는 매우 작다. 더 많은 연구와 현장의 더 많은 목소리가 필요하다.

오는 6월 16일은 국제가사노동자의날이다. 2011년 국제노동기구(ILO)에서 '가사 노동자를 위한 양질의 일자리 협약(C189)'이 채택된 것을 기념하기 위한 날이다. 68년간 노동자이지만 노동자로 인정받지 못 했던 가사 노동자의 권리가 보장될 수 있도록 각계의 관심과 연대가 필요하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배진경 한국여성노동자회 대표가 쓴 글입니다. 한국비정규노동센터에서 발행하는 격월간 <비정규노동> 5,6월호에 연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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