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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물 다섯의 엄마는 아이를 입양시키고 싶다며 전화를 걸어왔다.
 스물 다섯의 엄마는 아이를 입양시키고 싶다며 전화를 걸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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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입양을 하려는 게 아니고, 입양을 보내려는데요..."

작고 조심스러운, 이런 말을 여기에 꺼내도 되는지 자신 없는 목소리였다. 어린 엄마는 우리 기관명에 들어간 '입양' 글자만 보고, 이곳이 아이를 입양 보내는 데 도움을 주는 곳인가 싶어 전화를 걸어왔다. (건강한입양가정지원센터는 입양 이후의 삶을 지원하는 입양사후서비스 기관이다.)

아이를 4년째 키우고 있는 스물다섯의 엄마는 남편이 얼마 전 이혼을 선언했다면서 자신은 홀로 아이를 키울 수 없으니 입양을 보내야겠다고 했다. 자신이 입양 보내는 것을 도와줄 수 있냐며 말이다.

질문

이 어린 엄마는 입양이 무엇인지 제대로 알고 말하는 걸까. 입양으로 아이를 떠나보내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입양인으로 성장하는 건 어떤 삶인지를 알고 이런 문의를 하는 걸까.

"힘든 가운데 4년이나 아이를 키우셨네요. 이런 전화를 하기까지 많이 힘드셨지요. 아이를 입양 보내고 싶다는 건 엄마 생각이에요? 아이 아빠 생각이에요?"
"남편은 아이에게 아예 관심이 없어요. 제가 혼자 아이를 못 키우니 아이를 입양 보내는 게 낫겠다 생각이 들어서요."
"엄마는 아이가 행복하게 살길 바라서 여러 고민 끝에 입양을 생각하신 거네요?"
"네, 보육시설에서 사는 것보단 좋은 양부모님 만나서 행복하게 자라는 게 나을 것 같아요."


좋은 양부모님, 행복하게, 잘 자라는 것. 어느 것 하나 쉽지 않은 단어들이다. 입양이 이 모든 문제의 해결책이 될 거라는 환상이 어린 엄마의 말 속에서 일렁였다.

"아이에겐 지금의 엄마가 온 세상이고 우주인데, 엄마와 헤어진 아이의 마음은 어떨 거 같으세요?"

조심스럽지만 분명한 어조로 물었다. 당신이 아이의 엄마인데, 그 자리를 왜 쉽게 포기하려느냐는 말이 목구멍까지 차올랐지만, 그녀의 어깨를 짓누르고 있는 거대한 현실도 알기에 말을 아꼈다.

"제가 사실 데리고 있으면서 잘해주지도 못하고, 가끔 아이한테 화내고 때리기도 했어요... 저 같은 엄마하고 사는 것보다 좋은 부모님 밑에서 사랑받고 자라는 게 나을 것 같아서요..."

터져버린 눈물
  
눈물이 터진 어린 엄마는 고해성사를 이어가듯 자신이 얼마나 모자란 엄마인지, 아이가 더 좋은 양부모 밑에서 자라야 한다는 말만 이어갔다.
 눈물이 터진 어린 엄마는 고해성사를 이어가듯 자신이 얼마나 모자란 엄마인지, 아이가 더 좋은 양부모 밑에서 자라야 한다는 말만 이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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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하는 사이 엄마의 눈물이 터져버렸다. 가족의 도움도 없이 어린 나이에 아이를 낳아 기르며 직장에 다니다 보니, 저녁에 집에 돌아와도 아이에게 좋은 것을 주는 날보다 화풀이하고 아프게 할 때가 많았다고 했다.

아이에 대한 책임감이 전혀 없는 남편이니 육아를 함께 했을 리는 만무하고 삶에 지친 어린 엄마는 무슨 힘으로 아이를 돌봤을까. 입양은 가장 최후의 선택지니, 아이와 엄마가 함께 잘 살 방법을 함께 알아보자고 건넸지만, 어린 엄마는 고해성사를 이어가듯 자신이 얼마나 모자란 엄마인지, 아이가 더 좋은 양부모 밑에서 자라야 한다는 말만 이어갔다.

"아기 엄마, 아이가 네 살이라고 했죠? 그동안 엄마한테 학대 경험도 있다고 했고요. 내가 솔직히 이야기할게요. 이 아이는 입양되기 힘든 조건을 가졌어요. 네 살 때까지 친생부모와 함께 살았던 아이가 느끼는 상실감과 충격은 보육시설에서 단체생활을 하다가 입양되는 아이들의 상실감과는 또 달라요. 아이가 기억하는 엄마, 아빠와 함께한 삶이 너무도 분명하기에 새로운 부모를 받아들이는 시간이 훨씬 길고 고통스러울 거예요.

또한 친생부모와 살며 학대를 당한 네 살짜리를 입양하겠다는 부모님도 잘 없어요. 입양된다 해도 아이가 보내는 두려움과 분노를 받아주며 치유되도록 품어줄 가족을 만날 확률도 높지 않고요. 아이가 현실적으로 지금보다 더 행복해질 확률은 낮아요. 어쩌면 입양도 안 되고 시설에서 줄곧 남아 있다가 18살이 되어 혼자 세상으로 나가게 되는 게 최종 시나리오일 수 있어요. 엄마가 바라는 것처럼 좋은 입양부모님 아래서 살 기회 자체가 아예 없을 수 있다고요."


내 이야기를 듣던 엄마의 눈물이 잠시 멈췄다. 자신이 꿈꾸던 해결책이 현실과 동떨어진 기대라는 사실에 놀라 멍해진 것 같았다.

"그리고 엄마는 어떻게 살아갈 것 같으세요. 엄마의 일부였던 아이를 떠나보내고 아이가 어디서 어떻게 자라고 있는지도 모르는 채 내 삶에 집중하며 잘 살 수 있을까요?

입양을 보낸 많은 엄마가 그렇지 않다고 이야기해 주었어요. 아이만 떠나보내면 모든 문제가 해결될 줄 알았는데 끝나지 않은 슬픔과 죄책감, 괴로움이 계속 삶을 집어삼켰다고요. 아이를 보내는 것은 결코 문제의 해결이 아니에요. 아이와 함께 살면서 어려움을 해결하는 방법을 우리 같이 찾아보아요."

엄마가 엉엉 운다. 막다른 골목 앞에 선 심정이 얼마나 괴로울까. 낯모르는 이에게 부끄러운 이야기를 털어놓는 것도, 해결책이라 생각한 입양조차 기회가 없을 수 있다는 말을 듣는 것도 감당하기 쉽지 않았을 것이다.

도움의 손길

"정말 애썼어요. 아이를 키우는 건 누구라도 쉽지 않은 일인데 어려운 가운데서 아이를 키우느라 정말 애썼어요. 이제 도움받으며 같이 키우는 방법을 찾아봐요."

수화기 너머로 눈물 닦는 소리만 들린다. 한참 울던 어린 엄마가 차분한 목소리로 다시 생각해 보겠다고,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주어 고맙고, 자기도 좀 더 고민해 본 후 도움이 필요하면 다시 연락하겠다고 했다. 달려가 손이라도 잡고 맘껏 울 수 있도록 품을 빌려주고 싶었지만, 그냥 알았다고 했다. 도움이 필요할 땐 꼭 전화하라는 당부를 남기자 전화는 끊어졌다.

우리 아이들의 생모도 누군가와 이런 첫 대화를 나눴을 텐데 그때 전화를 받은 이는 무어라 이야기해 주었을까. 도움이 필요한 어린 엄마의 첫 상담자는 어떤 어른이어야 할까.

태그:#입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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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의 연결을 돕는 실천가, 입양가족의 성장을 지지하는 언니, 세 아이의 엄마, <가족의 탄생>,<가족의 온도>,<모두의 입양>저자, 가끔 예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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