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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이 온통 연한 초록빛으로 뒤덮였다. 투명하고 파란 하늘에 흰 구름이 가볍게 떠다닌다. 한낮에는 만물의 표면에 광채를 더하는 햇살이 쏟아지고 저녁엔 마음을 간지럽히는 실바람이 분다. 봄이라는 계절의 절정에 서 있다. 이런 때엔 밖으로 나가야 한다. 귀찮다고, 편안하다고 집에만 숨어 있으면 절대 만날 수 없는 게 있다. 계절을 수놓은 빛나는 조각들은 문 밖에 있다.

엄마에게 외출이 필요한 이유

오랜만에 외출 약속을 잡았다. 동네에 새로 생긴 와인 가게에서 친한 후배와 만나기로 했다. 그것도, 저녁에. 어린 아이를 둔 엄마에게 저녁 외출은 특별한 일이다. 아이를 챙겨야하는 평일엔 꿈도 꿀 수 없고 주말에도 가족 모임이나 이러저러한 사정으로 저녁에 집을 비우는 일은 쉽지 않다. 얼마만의 저녁 외출인지, 약속을 잡은 날부터 설렘은 시작되었다.

육아와 함께 사라진 많은 것들이 마음 한 켠에 상실의 우물을 팠다. 그 중 '저녁 시간의 자유'는 우물을 채우는 가장 큰 물줄기가 되었다. 어쩌다 한 번, 늦은 밤 (아이없이) 자유롭게 길을 걸을 때마다 낯설고 황홀한 기쁨이 나를 찾아왔다. 홀가분하고 자유로운 느낌에는 일탈의 즐거움이 스며 있었다. 밤이라는 시간이 지닌 비밀스러움이 더해져 마음은 들떠 올랐다.

와인 가게에 도착해 예약석으로 안내 받았다. 하지만 바깥의 날씨가 우리를 유혹했다. 기분좋게 차가운 바람이 불었다. 낮 동안 대지를 달구던 열기가 느슨하게 풀어져 바람 속에 섞여 들었다. 하늘을 얇게 뒤덮고 있던 구름은 걷혔고 파란 하늘에 어둠이 깃들며 회색빛이 번지고 있었다. 저녁 해가 길게 여운을 남겼다. 우리는 야외 테이블로 옮겨 봄날 저녁의 애틋한 기운을 즐기기로 했다.

한동안 우울감에 잠겨 있었다. 아이가 다치는 바람에 병원을 다니며 받았던 스트레스가 컸다. 아이는 성장하는데 내 생활은 변화없이 머무는 것 같아 기운이 빠졌다. 사회적으로 입지를 굳혀가는 남편과 달리 집에만 매어 있는 처지가 박탈감을 키우기도 했다. 그런 마음을 후배에게 토로했다. 후배는 상황을 변화시키기 위한 조언이나 대안을 찾으라는 요구없이 있는 그대로 내 이야기를 듣고 공감해주었다.

후배는 결혼을 하지 않고 자기 일을 하면서 혼자만의 삶을 건강하게 꾸려나가고 있다. 하지만 그녀 주변에도 가사와 육아로 힘겨워 하는 동료들이 태반이라고 했다. 일이 있든 없든, 여성이기에 맞닥뜨릴 수밖에 없는 상황과 감정을 공유할 수 있었다. 육아와 가사의 고충은 홀로 고립되어 나 혼자 겪는 어려움이 아니었다. 보이지 않는 많은 이들과 연결되어 있음을 느끼면 그것만으로도 슬며시 위안이 되고 외로움은 덜어진다.

집에서도 온전한 휴식이 어려운 '엄마', '아내'라는 명함

저녁 시간의 외출, 그리고 후배와의 만남은 답답했던 일상에 숨통을 트이게 했다. 이제 좀 살 것 같다는 느낌 뒤로 즐겁게 삶을 꾸려야겠다는 기운이 스며들었다. 다음날도 밖으로 나갔다. 

가족들과 공원으로 향했다. 날씨가 좋아 평소보다 더 사람이 많았다. 하지만 너른 잔디밭 한편에 자리를 깔고 앉자 북적거림은 활달한 생기로 다가왔다. 피자를 먹고 남편과 아이는 공놀이, 모래놀이를 했다. 나는 책을 읽고 메모를 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오후 4시가 넘자 서편으로 기운 해가 낮은 하늘에서 금빛으로 빛났다. 민들레 꽃씨와 나무에서 떨어진 작은 부유물들이 날아다녔다. 숨을 들이마시면 풀내음이 몰려 들었다. 쌉싸름하면서 큼큼한 냄새가 상쾌하게 가슴을 채웠다. 온 몸으로 맑은 기운이 번졌다. 가만히 앉아 하늘에 떠 가는 구름을 보고 사방을 둘러싼 초록빛에 젖어 드는 사이, 이런 게 온전한 휴식이 아닐까 싶었다.

집에 있었더라도 시간을 보내는 방식은 비슷했을 것이다. 배달 주문으로 점심을 먹고 남편과 아이가 놀이를 하고, 나는 짬짬이 책을 읽거나 글을 썼을 거다. 그러다 TV 재방송을 보거나 저마다 빈둥거리는 시간을 보내기도 할 테고. 잠깐 집 앞 놀이터에 나갔다 오면 주말 반나절은 금세 사라진다. 그렇게 주말을 보내고 나면 제대로 쉬었다는 느낌은 들지 않는다. 뭔가 답답한 마음이 되어 빨리 월요일이 되길 기다리는 것이다.

집에서의 휴식은 분주했던 일상을 잠시 멈추어 주긴 하지만 잃어버린 생기를 채워주기엔 부족하다. 일주일 내내 대부분의 시간을 집에서 보내는 탓도 있을 것이다. 집에 있는 한 밥을 먹고, 놀이를 하는 것이 결국은 설거지와 청소로 이어진다. 피로감은 지속된다. '엄마'와 '아내'라는 명함을 가지고 있는 한 가족과 집에 있는 시간이 온전한 휴식이 되기는 어렵다. 주말에라도 집에서 벗어나 낯선 공기를 쐬고 새로운 기운을 채우고 싶어지는 이유다.

돗자리 한 장, 피크닉용 의자 두 개, 모래 놀이 장난감과 공 하나, 책 한 권. 단촐하게 들고 나갔다. 물건들로 가득 찬 집을 벗어나자 빈 공간으로 자연이 들어왔다. 생활이 끊어낼 수 없던 스트레스가 지워지고 여백이 생겼다. 새소리를 듣고, 하늘에 떠 가는 구름의 모양을 감상하고, 수풀이 뿜어내는 초록의 내음을 들이마셨다. 무엇에도 쫓기지 않는 홀가분하고 편안한 마음이 찾아 들었다.

엄마의 외출, 나를 세상과 연결하려는 시도

지난 주말 사이 내게 온 메시지를 다시 한 번 펼쳐본다.  세상과 연결되어 있다는 느낌, 여전히 삶이 건네는 생생한 즐거움을 누릴 수 있다는 감각이 우울한 일상에 활기를 불어넣었다. 그러니 없는 이유를 만들어서라도 외출을 하고, 집을 벗어나는 경험을 자주 해야 겠다. 집과 아이에게 몰두했던 나를 세상과 다시 연결해야겠다. 그렇게 나와 세상 사이에 구멍을 뚫고 자주 오가며 제대로 된 길로 가꾸어내고 싶다.

나에 대한 발견이 집이라는 누에고치 속에서만 가능한 건 아니다. 집이 건네는 편안함과 안정에 익숙해지는 사이 많은 가능성이 지워졌다. 안정만이 추구해야할 가치는 아니다. 자유란 불안정이란 토대에서 더 커지고 흔들리면서 찾아가는게 가능성이라는 걸 안다. 어쩌면 나와 세상 사이에 무언가를 채워야할 때가 왔는지도 모르겠고. 이러나 저러나 돌아오는 주말에도 밖으로 나갈 궁리를 한다. 봄이라는 이 계절이 손짓하고 있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기자의 개인 블로그에도 게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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