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꼭, 돈을 써야만 행복할 수 있을까요? 소비하지 않고도 재밌고 다채롭게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은 분명 있을 겁니다.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들의 '무소비 OO' 이야기를 들어봅니다. [편집자말]
"좀 편하게 키우자, 편하게."

재료를 칼로 다지고 냄비에 끓여 이유식을 만든다니, 나보다 2개월 앞서 아기를 출산한 지인이 말했다. 그러다 손목 다 나간다는 경고와 함께, 이유식 마스터기를 파는 쇼핑몰 링크를 덧붙였다. '육아는 아이템 전(戰)'이지 않겠느냐며.

아기가 8개월에 접어들어 하루 세 번씩 먹기 시작해, 이유식을 만드는 내 손이 바빠졌다. 슬슬 꾀가 나던 차에, 지인과 이유식 이야기를 주고받다가 마스터기 얘기가 나온 거다. 편하게 이유식을 만들 수 있다니, 솔깃했다. 보내 준 링크를 클릭했다.
 
ⓒ elements.envat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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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팀으로 쪄 영양소 손실을 최소화 해 맛이 살아남'이라는 문구가 마음을 사로잡는다(그동안 내가 끓여 만든 건 영양소가 모두 파괴 되었을 것만 같다). 소독과 찜 기능이 있다니, 이유식이 끝나도 잘 쓸 것 같다.

불 앞에서 냄비를 젓는 일 대신 버튼만 눌러 놓으면 된다는 후기에 홀린 듯 구매버튼을 찾아 스크롤을 내리다 전체 부속품이 12가지나 된다는 설명을 보고서야 멈추었다. 그 거대한 덩치를 관리하고 유지하는 게 나한테 몹시 어려운 일이라는 걸 이제는 안다.

아기 용품으로 가득 찬 거실

사실, 큰 아이를 키울 때는 몰랐다. 아이를 낳고 덜컥,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었다. 훤한 대낮에 집에 있는 내 몸 자체가 낯선데, 더 어색한 엄마 노릇까지 하느라 매일 쩔쩔맸다. 아기가 깨어 있는 시간은 점점 늘고, 내가 생각할 수 있는 '까꿍'이나 '도리도리 잼잼'은 1분이면 끝나고. 그 대략난감 한 상황에 산후조리원 동기의 집에 처음 초대받아 갔다.

아기 용품으로 가득 찬 거실은 신세계였다. 아무 것도 없는 우리 집과 비교되었다. 비교는 불행의 씨앗이라지 않던가. 그 집 아이는 뒤집기를 하는데 우리 아기가 못 하는 건, 그 집엔 있는데 우리 집에는 없는 소서, 점퍼루 같은 아이템 탓 같았다. 갑자기 마음이 급해졌고, 빠르게 집을 채웠다.

커피가 뜨거울 때 후후 불며, 한 자리에 앉아 천천히 마셔보는 게 소원이던 때였다. 한 번씩 새 아이템이 집에 도착할 때마다 아이는 반짝, 혼자 놀았다. 국민 아이템이라고 해서 샀는데 아이가 관심이 없으면, 아이의 발달을 의심하다가, 우울해졌다가, 다른 아이템을 찾아 헤맸다. 안 그래도 자신 없던 육아에, 아이템이라도 쓰면 덜 불안했다. 신박한 육아 아이템만이 육아에 찌든 내 삶을 구원해 줄 거라고 철석같이 믿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꿈꾸는 대로 되는 육아 아이템은 없었다. 밥을 먹으려 하면 아기는 꼭 졸려서 매달리고, 화장실에 가고 싶을 때 품에 안겨서 잔다. 아이를 재우고 드디어 내 시간을 보낼 수 있다는 생각에 거실로 나오면, 아이의 물건들로 잔뜩 어질러져 있었다. 내가 앉을 곳이라도 찾으려 제자리를 찾아주고 나면, 이내 몸이 피곤해졌다. 물건은 애초에 내 삶을 고려해 설계되지 않았다는 걸 그 때는 미처 알지 못했다.

나를 위한 시간만 있으면 될 줄 알았다. 그렇지만, 곳곳에 아이들의 물건만 가득한 집에서 보내는 내 시간은 언제나 아이들의 방해를 전제로 했다. 책 한 줄 읽다 아이가 '엄마' 하고 부르면 답하고, 또 한 줄 읽다 '배고파' 하면 자동반사로 몸을 움직였다. 아이들 물건으로 가득한 집에서는 아이들이 없는 시간에도, 그 물건들을 닦고 정리하느라 내 시간을 써야 했다.

책 한 줄 자유롭게 읽고 내 생각을 끊임없이 적어 내려갈 수 있는 공간에 대한 욕망은 아이들이 다 자라 집을 떠나면 언젠가 가능하리란 희망으로 오늘을 참았다. 내 만족과 행복이 유예된 상태, 아이들의 즐거움을 보는 눈이 고왔을 리 없다. 시시때때 삐죽 튀어나와 아이들을 찌르고 나를 할퀴었다.

정선에 살고 계신 친정 엄마가 병원 진료 차 서울에 오셨다가, 우리 집에서 며칠 묵고 돌아가면서 말했다.

"니들 집에는 애들 거밖에 없냐."

메아리처럼, 여러 날 귓가에서 울렸다. 그제야 거실도 안방도 아이들 방도, 심지어 부엌까지, 두 아이를 위한 물건이 차지하고 있는 집이 눈에 들어왔다. 겨우 식탁 한 쪽에 있는 몇 권의 내 책, 그마저도 식구들이 밥 먹을 때나 간식 먹을 때면 이리저리 떠밀렸다. 내 자리 하나 없는 주인의 처지와 꼭 닮은 모습에, 갑자기 서글퍼졌다.

아기 용품 거품이 빠진 거실
 
어질러질 거리가 없고, 하나하나 닦아주느라 힘들이지 않아도 되니, 아기가 놀다 낮잠을 자면 바로 내가 쉴 시간이 된다.
 어질러질 거리가 없고, 하나하나 닦아주느라 힘들이지 않아도 되니, 아기가 놀다 낮잠을 자면 바로 내가 쉴 시간이 된다.
ⓒ 김성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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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아침에 아이들 물건을 버리고 모두 내 공간이라고 할 순 없었다. 서서히 아이들 물건을 정리했고, 내 책 꽂을 자리와 노트북 둘 곳을 찾았다. 이기적이라는 죄의식이 작동할 때는, 공원으로 카페로 몸을 피했다. 그렇게 나만의 시공간에 대한 열망과, 아이들의 시공간이 균형을 찾아 가던 때에, 셋째를 낳았다.

24시간 붙어 있어야 할 갓난아기와 나 사이의 균형은 어떻게 찾을 수 있을까. 지금의 상태는 노력의 결과가 아니고 첫째와 둘째 아이가 스스로 집 현관 비밀번호를 누르고 드나들 수 있는 나이가 되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나. 묘책은 알 수 없지만, 적어도 다시 육아 아이템으로 집 안을 가득 채우는 건 하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아기를 돌보는 거야 기꺼이 마음을 다할 수 있지만, 물건을 관리하고 유지하는 데에는 에너지를 쓰고 싶지 않았다.

며칠 전, 둘째 아이의 친구가 집에 잠깐 놀러 왔다가 물었다. "애기가 있는데 집이 왜 이렇게 깨끗해요?" 아기를 키우는 집에 흔히 있어야 할 아이템들이 없어서 물었을 게다. 아기 용품은 걸음마 보조기와 물려받은 장난감 몇 개가 전부이므로.

각종 국민 아이템을 사지 않는 요즘, 나의 육아는 충분히 편안하다. 밥을 짓느라 부엌에 있으면, 아기는 싱크대 수납장을 열어 숟가락, 국자, 양푼과 냄비를 꺼내 논다. 야채를 자르다 툭 던져 주면 오감을 활용해 탐색한다. 과일이나 야채가 담겼던 비닐봉지, 택배가 왔던 상자만 던져줘도 한참을 가지고 놀다가 싫증을 내면 버린다.

어질러질 거리가 없고, 하나하나 닦아주느라 힘들이지 않아도 되니, 아기가 놀다 낮잠을 자면 바로 내가 쉴 시간이 된다. 초록이 우거지는 산이 보이는 거실 창가에 둔 의자에 앉아 커피를 마시며 책을 보고, 음악을 듣는다. 24시간 붙어 있는 아기와 나 사이의 균형을 이렇게 조율하는 중이다.

'아이템 전(戰)' 자체가 비교와 불안을 기반으로 한다. 같은 게임을 하는 데 상대방이 사용하고 있다거나, 이것이 있어야만 게임에서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하니까. 그 어떤 아이템을 써도 육아 자체가 편해진 적이 없음을 이미 첫째와 둘째 아이를 기르며 경험했다. 셋째 육아는 지금 '노템전(戰)' 중인데, 그 결과는 어떻게 될까.

태그:#무소비 육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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