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비와 당신의 이야기> 배우 강하늘 인터뷰 이미지

ⓒ (주)키다리이엔티/ 소니 픽쳐스


"저는 항상 연기할 때 역할보다 튀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역할은 작품보다 튀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편이고. 그 역할을 넘어서 내가 튀어나와 버리면, 역할로서의 매력은 사라지는 것 같더라. 그러려면 어떤 방법이 있을까 고민하게 된다. 작품에서 허용하는 역할 범위를 넘지 않았나. 과하지는 않은가. 그런 고민들을 항상 한다."

그간 tvN 드라마 <미생>, 영화 <스물> <재심> 등을 통해 다양한 청춘의 얼굴을 연기해온 배우 강하늘이 이번에는 서울 노량진 학원가를 방황하는 대입 삼수생으로 돌아왔다. 그는 배역에 현실감을 불어넣는 걸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다며, 이러한 연기지론을 고백했다. 강하늘이 표현한 청춘들이 늘 우리 주변 어딘가에 실제로 있을 것 같은 인물로 느껴졌던 이유가 이 답변에 녹아있었다. 22일 온라인 화상 인터뷰로 강하늘을 만났다.

오는 28일 개봉 예정인 영화 <비와 당신의 이야기>(아래 <비와 당신>)는 '12월 31일에 비가 오면 만나자'는 편지로 인해 시작된 기약 없는 기다림에 관한 이야기다. 강하늘은 대학에 가야 할 이유도, 하고 싶은 일도 찾지 못한 영호로 분했다. 

그는 방황하는 청춘인 영호에 대해 "내면에는 곧은 심지가 있는 인물"이라고 표현했다. 실제로 극 중에서 영호는 좋은 머리로 쉽게 명문대에 입학해 일확천금을 꿈꾸는 형(임주환 분)에게 "인생이 그렇게 쉬워 보이냐"고 직언하고, 고민을 마친 뒤에는 재수학원을 단번에 그만두고 진짜 하고싶은 일을 찾아 나설 줄 아는 용기 있는 인물이기도 하다.

"영호가 그냥 이리저리 휘둘리기만 하면서 사는 친구라면 오히려 더 현실성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친구가 갈팡질팡 하는 이유는 그만큼 곧은 심지가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 심지를) 현실에서 실현하며 살 수 없다보니,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는 거다. 그래서 갈팡질팡 하는 모습들이 나온다고 생각했다. 이 친구가 어떻게 성장하는지 확실히 보여드리면, 관객분들이 공감해주실 거라고 생각했다."

<비와 당신>에서 영호는 새로울 것 없는 일상을 견디던 어느날, 갑자기 떠오른 어릴 적 기억으로 국민학교 동창이었던 친구 소연에게 손편지를 보낸다. 아픈 언니를 대신해 편지를 받은 소희(천우희 분)가 여기에 언니인 척 답장을 보내면서 두 사람의 일상은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한다. 

극의 주된 시간적 배경은 2003년이다. 우리는 스마트폰으로 언제든 빠르고 편리하게 소통할 수 있는 시대에 살고 있지만, 영화는 편지를 보내고 난 뒤 설레는 마음으로 며칠을 기다려야 했던 그 시절 아날로그 감성을 추억한다. 대본을 보며 중학교, 고등학교 시절이 많이 떠올랐다는 강하늘은 스스로도 "디지털보단 아날로그가 더 잘 어울리는 사람인 것 같다"고 말했다. 

"문자도 있고, 전화도 있지만 지인들에게 진짜 하고싶은 말은 쪽지나 손편지를 쓰는 편이다. 편지의 의미는 진정성인 것 같다. 말로도 할 수 있지만, 말이라는 게 사실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서 다르게 받아들여질 수도 있지 않나. 더 정확하게 마음을 표현하고 싶어서 글로 쓰는 것 같다. 오해를 일으키고 싶지 않아서. 꼭 편지가 아니어도 되지만, 저는 쪽지나 편지를 손으로 쓰는 걸 좋아한다."
 
 영화 <비와 당신의 이야기> 배우 강하늘 인터뷰 이미지

ⓒ (주)키다리이엔티/ 소니 픽쳐스

 
오직 편지로만 소통하는 소희와 영호는 극 중에서 만나는 장면조차 많지 않다. 강하늘 역시 촬영 현장에서 천우희를 거의 만나지 못하고 연기해야 했다고. 대신 편지를 읽는 천우희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단다. 그러면서도 강하늘은 "(천우희와) 굉장히 많이 만나서 연기한 기분이 든다"며 "만나서 연기하는 것보다 더 많은 감정적 교류를 하는 것같은 느낌을 주더라. 목소리를 들으면서 연기하니까 (상대방의) 표정도 상상하게 되고 느낌도 상상하게 되고. 저한테는 오히려 더 큰 울림을 줬다"고 전했다.

영화는 손편지라는 소재뿐만 아니라 이야기를 전개하는 방식에서도 오래 전 감성을 떠올리게 만든다. 극 중에서 영호와 소희는 편지를 통해 서로를 위로하고 용기를 얻지만, 영화는 두 사람의 감정이 사랑인지, 우정인지, 그저 위로일 뿐인지 명확하게 규정하지 않는다. 자꾸 영호 주변을 맴도는 재수학원 동기 수진(강소라 분)의 감정 역시 마찬가지다. 강하늘이 이 작품에 빠진 이유도 그래서였다고. 

"시나리오에 정확한 표현이 없어서 좋았다. 요즘 개인적으로 느끼기에, 기승전결이 확실하고 메시지가 분명하고 그걸 표현하는 연기자도 한 번에 관객이 알아챌 수 있게 연기하는 스타일이 많은 것 같다. 저도 그런 작품을 싫어하진 않는다. 그래도 한편으론 관객으로서 이런(정확하지 않은) 작품에 대한 갈증이 있었다. 정형화된 느낌이 아니라 '이런 느낌인가?', '이게 이런 뜻인가?', '얘가 이런 감정인가?' 생각해볼 수 있게 하는 지점이 굉장히 매력적이었다.

얘가 얘를 좋아하고, 얘는 싫어하고. '썸' 타고 사귀고. 정확하게 좋아한다, 좋아하지 않는다고 표현하는 건 이 영화의 톤과 맞지 않았다. 오히려 소희와 영호가 하루하루 조금씩 더 어른이 되어가는 느낌에 더 집중하려고 했다. 그 과정에서 정성 들여 쓴 편지가 성장의 촉매제가 된다는 느낌을 대본을 읽을 때 많이 받았다. 두 사람의 사이에 있는 수진에게도 마찬가지였다. 이 영화가 표현하고자 하는 건 '좋아한다'는 감정의 바로 밑 지점인 것 같다. '이 사람 생각이 계속 나는데 이 사람을 내가 좋아하는걸까?' 그 고민의 단계에 머물러 있는 감정이라고 생각했다."

이어 강하늘은 시나리오에도 영호의 감정에 대한 설명은 비어 있었다고 털어놨다. 그렇다 보니 자연스럽게 강하늘 본연의 감정이 많이 담길 수밖에 없었다. 그는 처음으로 캐릭터로서가 아닌, 강하늘이라면 어떨까를 고민하게 됐다고 말했다.

"극이 진행되기 위해 필요한 텍스트만 간결하고 함축적으로 쓰여 있었다. 영호의 상황 위주로 서술돼 있었고. 영호로서 표현해야 하는 감정은 빈칸으로 남겨두셨더라. 감독님, 작가님은 (시나리오에 빈 부분을) 제가 느끼는 대로 채웠으면 좋겠다고 해주셔서 그렇게 채워나가려고 했다. 그동안엔 (촬영할 때) 제 표정이나 뭔가에 대한 반응을 '이 역할이면 어떻게 할까'를 생각해서 연기했다면 영호를 연기하면서는 '내가 어떻게 했었지'를 먼저 고민했다."

한편 최근 '코로나 19' 확진자 숫자가 좀처럼 떨어지지 않으면서 극장가 분위기도 다시 얼어붙고 있는 상황이다. 그러나 강하늘은 "어차피 이렇게 된 것, 그래도 (시사회 때) 영화를 재밌게 봐주셨다는 반응이 많아서 기분이 좋다"며 "어려운 시기를 딛고 일어섰던 과거의 기억을 떠올릴 수 있을 것"이라며 극장에 많이 와 달라고 당부했다.

"관객분들도 코로나 뚫고 극장 오시기가 어려우실 텐데, 좋은 영화이니까 그래도 많이 보러 와주셨으면 좋겠다. 아마 여러분들이 지나오셨을 그때가 떠오를 거다. '내가 하는 일이 맞나. 내가 잘 가고 있나.' 그런 고민을 하는 인물들이 현실을 딛고 서로한테 힘이 되어주는 이야기니까 그 성장을 따뜻하게 바라봐 주셨으면 좋겠다."
강하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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