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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잠...자는 숲 속의 공주' 배달입니다...."

약간의 멈칫거림을 이겨내며 또박또박 배달 품목을 읽어주시는 배달 기사님. 집에 놓여 있는 커다란 대형 쿠션은 그렇게 우리 집 대문을 통과했다. 그러니까 '잠 자는 숲속의 공주'는 커다란 대형 쿠션의 이름이었다. 배달 기사님 입장에서는 마치 '열려라 참깨!'라는 생뚱맞은 주문을 외는 듯한 기분이었을 터. 덕분에 우리는 뜻하지 않은 웃음도 함께 배달 받았다. 

요즘 회사 일에 치여 웃을 기회가 많이 없었는데, 택배 기사님의 당황감을 이겨낸 직업정신에 오랜만에 한참을 웃었다. "ㅎㅎ 이젠 공주도 배달되는 구나" 하며 즐거움을 함께 배달해 주신 택배 기사님께 진심을 다한 함박웃음으로 고마움의 시간을 가졌다.

무엇이든 배달된다는 세상에 살고 있음을 새삼 느낀다. 이제는 공주도 배달이 되는 세상. 우유와 신문을 넘어 대부분의 물건을 집에서 고르고 며칠 상간에 받아 볼 수 있는 호사를 누리고 있다. 집 앞까지 오는 것은 물론이고 원하는 시간에도 받을 수 있으니, 유통과 빅데이터로 수년 후 냉장고를 필요 없게 만들겠다던 어떤 중국 기업의 호기로움이 귓등에 조금씩 와 닿는다.

내가 누리는 또 다른 배달
 
받아들이기만 하면 미련없이 돌아서는 쿨함
▲ 기사님들 좀 짱인 듯 받아들이기만 하면 미련없이 돌아서는 쿨함
ⓒ 남희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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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같이 물건이 배달되지만 내 것인 경우는 거의 없다. 원래 물욕이 없었던 것인지 네 아이를 건사해야 하는 현실에 맞게 서서히 없어진 것인지, 쇼핑에 영 열정이 솟아나질 않는다.

배달되는 대부분이 식재료다. 어찌 보면 식욕이 물욕을 대체한 것 같기도 하다. 아무튼 식욕으로 월급의 반이 나가는 요즘, 물욕이라도 없어 다행이다. 그래서인지 가끔씩 오는 개인(?) 택배의 반가움이 자못 크다. 남편보다 택배 기사님이 더 반갑다던, 실언인 줄 알았던 진심에 이렇게 공감지수가 올라간다.

들어서며 밥 달라고 하는 남자와 들어오지도 않고 물건을 주고 가는 남자. '오다 주웠다'는 듯한 시크한 뉘앙스로 물건을 두고 가는 츤데레의 면모를 지닌 기사님들이 매력적일 만하다. 게다가 가끔씩 오늘 같은 즐거움을 선사하기도 하니 고마움은 배가 된다.

즐거움의 배달이라... 참 멋진 일이다. 그런데 생각해보니 내게는 이런 멋진 일이 매일같이 일어나고 있었다. 정보와 감정과 생각을 전달하는 글 배달. 바로 구독 서비스가 그것이다. 수많은 작가들의 좋은 글을 매일같이 내 손에 쥐어주고 가는 매력적인 배달 전문가가 또 있었던 것. 우연찮게 공주(?)가 배달된 즐거움이 그간 누리던 글 배달을 다시 보게 만들었다.

내 삶을 채우는 글 배달
 
생각해보니 가장 많이 누리고 있는 배달 시스템
▲ 글 배달 생각해보니 가장 많이 누리고 있는 배달 시스템
ⓒ 남희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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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독 서비스라는 이름으로 널리 사용되고 있는 이 글 배달이 알게 모르게 내 삶을 꽤 찰지게 했음을 부정할 수 없다. 누군가의 짧은 글을 읽었던 5분이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인생의 금쪽같은 시간이 되기도 했고 누군가의 서평으로 알게 된 책이 두고두고 볼 반려 책, 애착 책이 되기도 했으니 말이다.

손꼽아보니 상당히 많은 글을 받아 보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타의인지 자의인지 모르나) 물욕이 없는 줄은 진즉에 눈치 챘지만 이렇게 글욕(발음주의)이 많은 사람인진 몰랐다. 식욕을 위해 매일같이 집으로 배달되는 식재료처럼 많은 글들이 나의 글욕을 채워줬다.

특히, 관심 분야의 글이나 특정 작가의 글은 뜸해지면 목이 조금씩 길어지기도 한다. 그러다 새 글 알림이 울리면 오랜만에 주문한 물건을 받아 든 듯 설렌다. 그리고 글의 양이나 질과는 무관하게 내 삶은 채워진다.

그간 많은 생각과 감정이 내게 닿아 내 생각과 감정에 영향을 줬다. 글쓰기에 대한 독려 글은 나 같은 사람도 글을 쓸 수 있다는 용기를 내게 했고 읽다가 눈물과 웃음을 자아내게 하는 글을 보면서 가능하면 울림이 있는 글을 쓰고 싶다는 욕심도 내게 했다.
  
정보의 홍수 속에서 글 배달은 적당히 내리는 빗물과 같아서 내가 뿌리내린 토양을 기름지게 하고 있다. 비록 성장이 좀 많이 느리긴 하지만, 이런 땅에서라면 언젠간 예쁜 꽃망울을 틔울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도 하면서.

"띠링"
[OOO님의 새 글이 배달되었습니다]


오늘도 말라가는 토양에 한차례 비가 훑고 지나간다. 많은 사람들이 좋은 글과 인연을 맺고 살아갔으면 좋겠다. 문 앞에서 건네받는 따뜻한 치킨의 감동만큼이나 군침 도는 반가움을 좋은 글에서도 경험하길.

그리고 욕심내 바라건대 매일같이 이런 복을 누리는 이 마흔이의 글도 누군가에게 적당히 내리는 빗물이 될 수 있길. 모든 것이 배달되는 이 시스템에서 나도 한 역할을 담당해 인연을 맺고 싶다. 그런 마음으로 이렇게 글을 쓴다.

이 글은... 수신지가 어딘가요? 분명 있겠죠? 저.. 저기요!?

덧붙이는 글 | 개인 브런치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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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글렀지만 넌 또 모르잖아"라는 생각으로 내일의 나에게 글을 남깁니다. 풍족하지 않아도 우아하게 살아가 보려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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