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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들어 20,30대의 '영끌 투자'가 작금의 집값 폭등을 유발했다는 보도를 심심치 않게 봤다. 어떤 이들은 '지금 아니면 집 못 산다는 두려움 때문'이라는 심리적 분석을, 혹자는 주택가격 상승을 조장하는 언론 보도와 일부 투기 세력에 청년들이 속고 있다는 음모론을 제기하기도 했다. 둘 중 무엇이 맞는지를 따지기 전에, 시야를 넓혀보자. 

대도시 중심의 집값 상승은 세계적인 추세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인한 글로벌 경제의 불안정성과 저금리로 발생한 유동성 증가가 주원인으로 지목된다. 지난해 영국 부동산 정보업체 '나이트 프랭크'에 따르면 2020년 3분기 글로벌 주택가격 지수는 전년동분기에 비해 4.5% 상승했다.

최근 '패닉 바잉(공황 구매)'이란 수식어가 붙은 2030세대의 주택 매입은 이런 세계적인 추세 속에서 나타난 현상이다. 이 추세는 지역적, 단기적 현상이 아닌 전 세계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발생하는 장기적 현상이라고 볼 수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막 사회에 진입했거나, 사회에 내던져질 준비 중인 2030세대는 무엇을 근거로 한 치 앞을 알 수 없는 미래에 대비해야 할까. 부동산·주식 등 자산 소득의 성장률과 근로소득 성장률 간 관계를 분석해 세계 경제 흐름을 모델화한 사람이 있다.
 
파리경제대 교수 토마 피케티의 <21세기 자본> 표지
 파리경제대 교수 토마 피케티의 <21세기 자본> 표지
ⓒ 글항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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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프랑스 경제학자 토마 피케티다. 그는 2014년 출간한 <21세기 자본>에서 200여 년간의 국가별 경제성장률(노동이 돈을 버는 속도)과 자본수익률(돈이 돈을 버는 속도)을 비교해 한국 경제의 현재와 미래를 암시한다. 

2030세대에게 막연한 조급함은 금물이다. 이들에겐 과거를 통해 현재와 미래를 명확하게 진단하고, 현명한 선택의 근거가 돼주는 지혜가 필요하다. 피케티 교수의 <21세기 자본>이 바로 그 길잡이가 될 수 있다. 청년들은 지금이 바로, <21세기 자본>을 다시 읽을 때다.

피케티가 한국 경제에 보내는 경고
 
'21세기 자본'의 저자 토마 피케티(Thomas Piketty) 파리경제대 교수.
 "21세기 자본"의 저자 토마 피케티(Thomas Piketty) 파리경제대 교수.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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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g(자본수익률-경제성장률) 차이가 일정 한도를 넘으면 균형 분배가 나타나지 않는다는 데 주의하자. 이때 부의 불평등은 한없이 심화되고, 부의 분포에서 최대치와 평균 사이의 차이가 무한정 증가할 것이다.
- 418p 

'돈이 돈을 버는 속도'가 '노동이 돈을 버는 속도'를 일정 수준 이상으로 초과하면, 그 간극은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커진다는 뜻이다. 그런데 한국에서 이 차이는 이미 벌어지고 있다. 
 
최근 10년간 우리나라의 자산을 소득으로 나눈 것. 숫자가 클수록 자산과 소득 간 불균형이 심하다.
 최근 10년간 우리나라의 자산을 소득으로 나눈 것. 숫자가 클수록 자산과 소득 간 불균형이 심하다.
ⓒ 고용진 의원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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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피케티지수(가계와 정부의 순자산을 국민순소득으로 나눈 것)'는 2013년부터 꾸준히 상승 중이다. 2013년 7.8이던 피케티지수는 2019년 8.6까지 치솟았다. 2019년 한국은행 자료를 고용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분석한 것에 따르면 국민순자산은 국민순소득의 10.3배, 명목GDP의 8.7배에 달했다. 이는 자본수익률이 경제성장률을 앞서는 속도가 점점 빨라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코로나19로 자본 가치가 노동 가치를 압도했던 작년 한 해, 빈부 격차는 통계로 나타났다. 작년 4분기, 1분위(하위 20%) 계층의 소득은 전년동분기보다 1.7% 증가한 164만 원이었다. 반면 5분위(상위 20%) 소득은 전년 4분기보다 2.7% 증가해 1,002만 원에 도달했다.

이 격차는 근로소득에서 더욱 컸다. 2020년 4분기 1분위 계층의 근로소득은 전년동분기보다 13.2%나 급감한 59만 원이었다. 반면 5분위 계층의 근로소득은 전년 4분기보다 1.8% 증가한 721만 원이었다. 이로 인해 소득불평등을 나타내는 지표인 소득5분위배율은 4.72로 2분기 연속 악화했다. 

자산 격차도 벌어졌다. 우리금융연구소는 소득 상위 10%~30% 가구의 2020년 순자산이 전년보다 약 1억 1,400만 원 증가했다고 밝혔다. 반면 소득 하위 20% 가구의 순자산은 2019년에 비해 겨우 3% 증가했을 뿐이다(2020 가계금융복지조사, 통계청). 피케티는 이런 경향이 지속하면 '상속 소득'이 '저축 소득'을 압도한다고 주장했다.
 
자본수익률이 현저하게 그리고 지속적으로 경제성장률보다 높은 경우, 거의 필연적으로 (과거에 축적된 자산의) 상속이 (현재 축적되는 자산인) 저축을 압도한다…부등식 r>g(자본수익률>경제성장률)는 과거가 미래를 잡아먹어버리는 경향이 있다는 것을 뜻한다. 노동을 하지 않고도 과거에 만들어진 자신이 노동을 통한 저축으로 만들어진 자산에 비해 자동적으로 더욱 빠르게 성장한다. - 426p
어떤 한도를 넘어서면 자본은 스스로 재생산하고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는 경향이 있다…그리고 그것은 다음 세대로 이전되어서도 계속 증가한다. - 450p

지금과 같이 '자본수익률>경제성장률'인 상황에서는 아무리 열심히 노동을 통해 저축하더라도, 자본과 자산이 상속을 거듭하며 덩치를 불리는 속도를 절대 따라잡을 수 없다는 것이다. 고소득층이 굴리는 자본과 자산의 크기는 저소득층의 그것보다 훨씬 크므로, 두 계층 간 격차는 시간이 지날수록 필연적으로 벌어진다. 

실제로 한국에서 상속 자산은 그 비중을 점점 키우고 있다. 낙성대경제연구소의 2015년 논문에 따르면, 상속과 증여를 통한 자산이 부의 축적에 기여하는 정도는 1980년대 27%에서 200년대엔 42%로 급등했다. 피케티는 인구가 고령화할수록 '상속 자산'이 덩치를 키운다고 덧붙였다.
 
고령화 사회에서는 상속이 더 나중에 이루어지지만, 부도 함께 늙어가기 때문에 이 효과(더 많은 금액의 상속 혹은 더 많은 증여)가 고령화 효과를 상쇄한다. - 442p

한국은 OECD 국가 중 가장 빨리 늙고 있다. 한국경제원 조사에 따르면 최근 10년간 한국의 고령인구(65세 이상)는 연평균 4.4%씩 증가했으며, 이 속도는 OECD 연평균의 1.7배로 가장 빠른 속도다.

"방금 코인 단타쳐서 8만 원 벌었다"

며칠 전 카페에 마주 앉아 있던 친구가 한 말이다. 불과 10분 만에 암호화폐 단기거래로 8만 원을 벌었다는 뜻이다. '10분에 8만 원?' 잠시 생각해봤다. 마침 카페 알바생이 시야에 들어왔다. 8만 원은 그가 2021년 최저시급(8,720원)을 받는다면 9시간 이상 일해야 받을 수 있는 돈이었다. 눈앞에서 '돈이 돈을 버는 속도'가 '노동이 돈을 버는 속도'를 조롱하듯 추월하고 있었다.

이 추월 속도는 점점 빨리질 것이다. 이는 정부도 막을 수 없다. 지난해 정부는 코로나19를 겪으며 심해지는 소득 격차를 완화하기 위해 총 50조 원 이상의 재난지원금을 네 차례에 걸쳐 지급했다. 하지만 지난해 3·4분기 오히려 전년동분기 대비 소득5분위배율이 악화하는 등 소득 격차 완화에 실패했다.
 
이미 한 가지 결론은 꽤 분명하다. 현대적 성장의 특징이나 시장경제 법칙과 같은 어떤 것이 부의 불평등을 줄이고 조화로운 안정을 달성할 거라는 생각은 착각이라는 것이다. - 426p

자본주의는 불평등 완화에 관심이 없다고 피케티는 말한다. 그저 돈을 더 많이 버는 쪽에 유리하게 작용할 뿐이다. 뒤처지는 자들이 생기지만, 현대 정부는 그들을 온전히 보호하진 못 한다. 결국, 각자 주어진 환경 속에서 최선의 선택을 해야 한다.

백세시대, 2030청년들은 앞으로 70년 동안 매 순간 선택의 기로에 놓일 것이다. 그 선택에 근거가 필요하다면, '감'을 믿는 게 아닌 '흐름'을 알고 싶다면, <21세기 자본>이 그 길잡이가 돼 줄 것이다.

21세기 자본 (양장)

토마 피케티 지음, 장경덕 외 옮김, 이강국 감수, 글항아리(2014)


태그:#21세기자본, #토마피케티, #한국경제, #2030패닉바잉, #부동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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