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해서요."

왜 음악을 하는지에 대한 거창한 답변을 기대한 것이 민망할 만큼 단순한 대답이다. 24시간 귀에서 이어폰을 빼지 않던 시니컬한 소년은 훗날 '나로틱(narotic)'이라는 밴드를 만들고 멤버들을 모았다.

2016년 결성된 나로틱은 여러가지 이유로 멤버가 계속 바뀌다가 현재 기타 임정택, 베이스 전현덕, 키보드 최승혁, 드럼 최재형까지 5명이 함께 활동 중이다. ​김정웅은 나로틱의 리더이자 프론트맨이다. 지난달 20일 소격동 한 카페에서 그의 이야기를 들었다.
 
"혼자 들으려고 만드는 건 아니지만 음악을 하는 첫 번째 이유는 나의 즐거움이에요. 음악을 만드는 것이 너무 즐거워요."
 
음악을 사랑하는 소년은 2011년 100만 원을 가지고 무작정 서울로 올라왔다. 열여덟 살, 음악을 하기로 결심한 후였다. 창문도 없는 방 한 칸에 살면서 고시원에서 제공하는 라면과 달걀로 끼니를 때우며 기타를 배웠다.

돈이 떨어지고 아르바이트를 구하려 했지만 미성년자라 받아주는 곳이 없었다. 결국 한 달 반 만에 다시 집으로 내려가야 했다. 가장 힘든 시기였다고 회상했지만, 그때의 경험과 우울증은 앞으로 어떤 음악을 만들어야 할지 표지판이 되었다.
 
"저처럼 우울증을 앓고 있는 사람들에게 제 음악이 위로가 됐으면 좋겠어요. 각자의 이유로 힘들어하는 사람들에게 음악으로 힘을 주고 싶어요."
 
 홍대 야시시에서 공연 중인 나로틱의 김정웅

홍대 야시시에서 공연 중인 나로틱의 김정웅 ⓒ 욘(@wavewewave)


"스물한 살 때 밥을 먹다가 텔레비전에서 배가 뒤집힌 장면을 봤어요. 세월호 사건을 처음 접한 순간이었죠. 세월호는 곧 대화의 화두에서 멀어졌어요. 전원 구출됐다는 뉴스가 나왔으니까요. 그런데 아니었죠. 수많은 사람이 죽었어요. 저는 세월호가 인재(人災)라고 생각해요. 그 생각이 < the ship >이라는 노래를 만들게 했어요."

김정웅은 음악으로 세상을 바꾸고 싶다고 말했다. 아무것도 바뀌지 않는 것 같아 허무하다고 했지만 그가 만든 노랫말은 부조리한 세상에 침묵하지 않는다. 변하지 않는 것 같아도 가만히 있지 말자고 말한다.

"아티스트와 뮤지션은 달라요. 아티스트는 계몽을 할 수 있게 만들죠. 몰랐던 것을 깨닫게 해야 해요. 톰 요크(라디오헤드 보컬)가 저탄소 공연을 기획했을 때 희망을 봤어요. 아티스트라면 계속해서 사회 문제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해요."
 
김정웅이 가장 좋아하는 밴드 Radio Head(라디오헤드)는 기후변화의 심각성에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내는 그룹이다. 라디오헤드의 보컬 톰 요크는 환경운동가이기도 하다. 라디오헤드의 영향으로 김정웅도 환경에 관심이 많다. 요즘에는 미얀마를 주시하고 있다.
 
"과거와 현재가 별로 달라진 게 없는 것 같아요. 가난한 사람들은 계속 더 가난해지고 끊임없이 전쟁이 일어나요. 미얀마에서도 매일 사람들이 죽고 있어요. 그 생각으로 < Nothing Has Changed(달라진 건 없다) >(2019)를 만들었어요."

또 다른 싱글 < Heristory >(2019)는 여자(her)와 남자(he)를 합성해 김정웅이 직접 만든 단어다. 동물과 아이들의 울음 소리, 알 수 없는 외국어 뒤로 총소리가 들린다. 인류의 역사를 소리로 표현했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인류의 역사에서 전쟁은 모든 것을 무너뜨렸다.
 
'someday so dark night comes and then the night in forever(이렇게 가다가는 마지막 밤이 될 거예요)' -< Nothing Has Changed > 中
 
 애플뮤직에서 나로틱의 노래를 들을 수 있다

애플뮤직에서 나로틱의 노래를 들을 수 있다 ⓒ 애플뮤직


"한국은 좀 좁잖아요. 세계적으로 놀고 싶거든요(웃음). 세계에서 제일 큰 페스티벌인 글라스톤베리에 헤드라이너로 서는 게 목표예요."
 
당찬 목표와는 달리 나로틱을 아는 사람은 별로 없다. 각종 음원 사이트에선 TV에 나오는 가수들의 유명한 노래들이 주로 홍보된다. 그 외의 음악을 찾아 듣기란 쉽지 않다.
 
"다양성이 없는 게 제일 큰 문제예요. 길거리를 걷다보면 똑같은 노래들만 들려요. 음악뿐만이 아니라 한국 사회 전반적으로 다양성이 부족하다고 느끼는데 이건 개인의 문제만은 아니에요. 사회적인 문제죠. 학교에서도 똑같은 것만 배우잖아요."
 
나로틱의 음원 수익은 한 달에 4~5천 원 남짓이다. 멤버 수대로 나누면 한 사람당 천 원이 안 된다. 코로나 19 이후로는 공연도 할 수 없다. 아르바이트와 기타 레슨을 해서 번 돈으로 음악을 만든다. 인디 뮤지션들 사이에서는 흔한 풍경이다.
 
"인디 문화에 대한 관심이 필요하고, 정책적으로도 구체적인 해결방안이 있어야 해요. 영화나 책을 포함해서 자본에 구애받지 않은 예술들에 대한 관심과 정책이 절실해요. 이대로 가면 한국 음악 시장은 절대 발전할 수 없어요."   
     
김정웅의 자취방에서 찍은 나로틱 프로필 사진 각자 다른 멤버의 사진을 들고 있는 게 인상적이다

▲ 김정웅의 자취방에서 찍은 나로틱 프로필 사진 각자 다른 멤버의 사진을 들고 있는 게 인상적이다 ⓒ 나로틱

 
나로틱은 지금 첫 정규앨범을 준비하고 있다. 5월 중에 공개될 예정이다. 녹음, 믹스, 커버, 사진, 홍보 작업까지 모든 것을 개인이 직접 해야 하기 때문에 눈코 뜰 새 없이 바쁘고 예산도 빠듯하지만 행복한 시간이다.
 
"정규앨범은 음악을 하기로 결심하고 정한 제 첫 번째 목표였어요. 이 앨범이 부나 명예를 가져다 주진 않겠지만... 물론 가져다 주면 좋습니다(웃음). 우리 노래를 더 많은 사람들이 들을 수 있을 거란 생각에 기쁘고 홀가분해요."

음악을 시작한 지 10년만에 나오는 첫 앨범을 앞둔 소감을 묻자 "잘 되면 좋겠지만 기대는 안 해요"라는 답이 돌아왔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고민하고 있을 때 그가 다시 입을 열었다.
 
"정규는 음악하는 사람으로서 하나의 산을 넘은 거라 생각해요. ​버티고 있으면 언젠가 알아봐 주는 사람이 생길 거예요. 자기의 것을 꾸준히 하는 것! 그게 핵심이에요."
덧붙이는 글 사운드클라우드(soundcloud)에서 나로틱의 더 많은 노래를 감상할 수 있다.
나로틱 인디밴드 김정웅 홍대 인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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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이 나를 비난하거나 내가 나 자신을 완전히 부정하는 순간마다 나는 지체없이 다음과 같이 생각한다. '하지만 무언가를 사랑하는 나의 정신에 의지하자' -헨리 데이비드 소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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